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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105)화 (106/258)

Chapter 105 - 105. 최속 (2)

 

 

“...5분?”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 곧바로 리루한테서 날아왔다.

 

첫 번째로는 아예 못 알아들었다는 반응.

 

 

“...5분 만에 뭘 하겠다는거야? 저 안으로 입장?”

 

“...그 안에 이 구역 터주대감을 사냥하겠다구요.”

 

 

두 번째로는 부정.

 

 

“농담할 때가 아니야. 작열 지대는 이전에 사냥했던 바다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험한 마수들이-”

 

“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놈을 5분 만에 잡겠다구요.”

 

“...”

 

 

여기까지 반복해주니까, 이제 이 사람도 슬슬 내가 말실수나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경악을 넘어 거의 허탈함을 넘어선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리루가, 이내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그 얼굴이네, 너.”

 

“예?”

 

“수룡을 잡는다고 했을 때도 그런 얼굴이었지.”

 

 

리루가 팔짱을 끼고 나를 쏘아보았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그냥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 혼자서만 그게 무조건 된다고 확신하는 놈이잖아, 너.”

 

“...”

 

 

이상하네.

 

말하는 것만 들으면 칭찬인데, 왜 이렇게 사람이 화난 목소리로 말하지?

 

 

“항상 그럴 때 미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니까.”

 

“...”

 

“말해 봐. 나는 또 어떤 용도로 써먹을 참인데? 지금 굳이 나랑 같이 온 것도 또 어디 말도 안 되는 짓거리에 써먹으려고 데리고 온 것 아니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는 말이라 뭐라고 반박을 할 수가 없다.

 

탈리온과 붙여서 보낸 엘노어, 엘리야를 붙여서 보낸 유리아.

 

각각 다 명확한 쓰임새가 있어서 그렇게 나눈 거거든.

 

리루도, 그러니까.

 

써먹을 용도가 아주 확실해서 내 쪽으로 붙인 거다.

 

 

“리루.”

 

 

그렇게 말하며, 리루의 양손으로 리루의 양팔을 각각 꽉 붙든다.

 

 

“...엥?”

 

 

그 모습을 본 리루가 잠시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그렇게 양팔을 붙잡은 내가 거리를 확 좁히자 이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지만.

 

 

“...뭐, 하는 거야?”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잘못하면 어딜 손을 대냐며 그대로 턱이 돌아갈 각오도 했지만,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이전에 첩이니 어쩌니 할 때도 곧바로 내 머리통을 깨놓지 않은 걸 보니 그래도 그 정도 호감도는 있단 소리겠지.

 

그러니까.

 

최소한 내가 지금 하려는 짓에서도 곧바로 날 죽여놓지 않을 거란 확신 정도는 있단 소리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흔들리는 리루의 눈동자에 시선을 똑바로 맞추며 말을 이어간다.

 

 

“...무슨 말?”

 

“저와 당신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

 

 

내 표정이 보통 진지한 게 아니란 걸 깨달은 리루의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거의 전신을 꼼지락거리는 수준까지 그런 몸짓이 발전한다. 얼굴에 차오른 홍조가 좀 더 짙어진다.

 

 

“...무, 무슨, 얘긴데. 뜸 들이지 말고 빨리 해.”

 

“...”

 

 

왜 이렇게 부끄러워 하냐.

 

나름 험하게 굴러먹으며 누구든 다 쥐어패면서 다니던 사람이다.

 

이렇게 그냥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그러니까.

 

조금 위험해 보이는 수준까지 상태가 불안정해질 줄은 몰랐다.

 

잘 익은 토마토처럼 얼굴 전체에 홍조가 차 있다. 눈동자가 팽글팽글 돌아간다. 기분 탓인지 호흡도 조금 가빠 보인다.

 

 

[원래 이런 타입이 은근히 스킨쉽에 약해. 다른 남자들이 무섭다고 근처에도 안 왔을 게 분명하거든?]

 

‘칼리반.’

 

[응?]

 

‘당신도 연애 별로 못 해봤으면서 왜 그렇게 입을 텁니까.’

 

[...]

 

 

당신 검술 수련하고 기사 생활하느라 그럴 시간 없었던 것 내가 다 아는데, 하여간.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며, 생각하는 말을 입 바깥으로 꺼내기 전에 한 번만 더 확인한다.

 

그러니까...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 리루 가르다

 

[ 신뢰 1단계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존재합니다! ]

 

 

이거 말이야.

 

보상은 그렇다 치고.

 

당장 신뢰 1단계면, 그래도 지금 할 짓을 저질러도 될 호감도 정도는 될 것이다.

 

 

“이전에 제가 당신을 첩으로 받는다고 하신 것 기억하십니까.”

 

“...그, 그랬지?”

 

“그거 사실 거짓말이었습니다. 예상하신 것처럼요. 저는 당신과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맺을 생각 없어요.”

 

“...어, 그, 그러면?”

 

“첩은 당신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당신 같은 여자한테는 그것보다 훨씬 더 나은 위치가 어울려요.”

 

 

리루의 눈동자가 팽글팽글 돌아가는 속도가 더욱 가속되었다.

 

 

“처, 첩보다, 더 나은 위치가 낫다고?”

 

“예.”

 

“그, 그, 그거, 이미, 그, 정실이라고 하는 여자 있지 않았어?!”

 

“엘노어는 상관 없습니다.”

 

 

그렇게 말을 턱 끊어버린다.

 

당신과 나의 관계에 그쪽은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는 투로.

 

리루가 움찔하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얼굴은 더 새빨개질 수도 없을 수준으로 붉다.

 

이젠 확연하게 눈에 띌 정도로 호흡이 헐떡이는 정도도 조금 더 심해진다.

 

 

“...야, 얌마. 이, 이런 건 그러니까!”

 

“예.”

 

“조, 조금 더, 무드를 잡고, 좋은 장소에서, 말해주면 좀 덧나냐! 새, 생각할 시간도 좀 주고! 나, 나도 여자야, 자식아! 내 의견도 좀 들어보라고!”

 

 

거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상태로 횡설수설하는 리루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니까.

 

내 목적은, 당장 이 사람을 ‘이용’해서 여길 5분 안에 클리어하는 거다.

 

다른 사냥터에 보내둔 유리아와 엘노어는 반드시 그 시간 안에 사냥을 끝낼 테니.

 

 

‘...이 사람을 직접 전투에 던지는 건 안되고.’

 

 

비록 보스전의 큰 줄기는 비틀렸다지만, 리루는 여전히 뒤집힌 해일의 사도를 잡는데 큰 부분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이다.

 

엘노어나 유리아와 다르게 아직 조각과 충분히 융화가 되지 않아 스펙이 많이 올라와 있는 시점도 아니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단 거다. 다치면 안 되니까.

 

그리고.

 

이 사람을 전투에 나서게 하지 않고, 5분 안에 나도 사냥을 끝내기 위해선.

 

내가 직접 나서는 방법밖에 없다.

 

 

“예. 그러니까 의견을 묻겠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제일... 효과적이고.

 

최소한 어떻게든 감당 가능한 선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

 

 

“친구로 지내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리루의 동작이 전부 딱 굳었다.

 

 

“...뭐?”

 

“당신도 인격체가 있는 여성인데, 저같은 놈의 첩으로 들어오는 극악무도한 처사보다, 신의와 우애로 뭉친 친구가 되는 편이 훨씬 더 좋지 않겠습니까.”

 

“...”

 

“당신 생각도 그렇죠?”

 

 

그 말을 들은 리루의 얼굴에서 표정이 지워졌다.

 

방금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머릿속으로 침착하게 숙고해보는 기색이다.

 

그리고.

 

 

“...뭐라고?”

 

 

몸에서 푸른 기운이 뭉게뭉게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기다리던 모습이기도 했다.

 

 

< System Message >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강대한 존재가 당신에게 적대적인 상태로 돌변하기 직전입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A등급으로 적용합니다. ]

 

< System Message >

 

[ 악마의 기운이 감지됩니다! ]

[ ‘타천의 인장’이 반응합니다! ]

 

 

음.

 

그렇지.

 

악마의 그릇이면 나한테 이런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미친 듯이 화낼 줄 알았다.

 

 

‘...이걸로 부스터는 챙겼고.’

 

 

최근 리루와 함께 매일매일 운동하면서 생겨난 능력치 상승 덕분에, 절체절명으로 뻥튀기된 내 스텟은 어지간히 강력한 놈들과 비교해도 그리 뒤처지지 않는 수준까진 올라왔다.

 

하물며 거기에.

 

 

[ 인피니티 건틀릿 ]

[ 장비: 유니크 ]

 

[ 온갖 고급 재료들이 사용되어 갖가지 효과를 갖춘 건틀릿입니다. ]

 

[ ▶ 용의 비늘: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부서지거나 마모되지 않는 내구력을 가집니다. ]

 

[ ▶ 엑토플라즘: 각종 이능에 대단히 높은 융화율을 보입니다. 장비를 대상으로 시전된 강화 및 버프 스킬 적용 시 효과가 2배로 적용됩니다.]

 

[ ▶ 별철: 각종 저주에 대단히 높은 내성을 가지며, 신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

 

[ ▶ 적응형 가죽: 타격 시 대상의 속성을 자동으로 복사합니다. 두 번째 타격 시 대상의 속성을 자동으로 약화시킵니다. ]

 

 

이런 것까지 있다면.

 

나 혼자서도 꽤 해괴한 짓거리가 가능하단 소리지.

 

 

“...”

 

 

하지만, 그래도.

 

A급 가지고는 좀 모자란데.

 

 

“아, 그리고 리루.”

 

“...”

 

 

대답도 안 하고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리루에게 한 마디 더 이어간다.

 

 

“저 사실 성격 더러운 여자 별로 안 좋아합니다.”

 

“...”

 

“뭐만 하면 욱해서 화내는 성질머리 좀 고치세요. 엘노어는 안 그러던데.”

 

 

< System Message >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생명에 대단히, 크나큰, 절대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EX등급으로 적용합니다. ]

 

< System Message >

 

[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지는 수준의 미친 짓을 자발적으로 하셨습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의 강화 조건이 개방되었습니다! 기프트 탭에 해당 조건이 추가됩니다! ]

 

 

“...”

 

 

일단, 약빨이 잘 듣긴 한 것 같다.

 

너무 잘 들어서 문제인 것 같기도 한데.

 

 

 

 

하탄 우-줄이 상황실 안쪽으로 들어서는 걸음은 비장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튼 지금은 투쟁의 용광로 전체로 따져도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사냥꾼의 밤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이다.

 

학장이자 족장이라는 위치에 서 있는 그라 할지라도 막중한 부담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작열 지대, 통제 시스템 이상 없습니다.”

 

“설원 지대, 통제 시스템 이상 없습니다.”

 

“밀림 지대, 통제 시스템 이상 없습니다.”

 

 

그런 보고들이 줄줄이 들어오는 걸 들은 하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학생들의 생체 징후 추적해.”

 

 

그런 지시를 내리며, 하탄이 화상 화면으로 비춰지는 각 ‘사냥터’의 모습을 확인했다.

 

가히 역대급으로 흉흉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광경이 그쪽에 펼쳐지고 있었다.

 

일반 학생 수준이라면 상대하기는커녕 도망치기도 힘들 중형 마수가 널려있는 것도 그렇고.

 

원래대로는 아무리 이 시기라도 고이 잠들어 있을 대형 마수들까지 심심찮게 보인다.

 

심지어는, 몇 십년에 한 번 구경할까 말까라는 각 마경의 ‘지배자’들의 징후까지 포착된다고 할 정도다.

 

이미 바다의 지배자인 수룡은 그 존재가 확인됐으니.

 

 

‘원래대로라면 이 정도까지 흉흉하진 않았을 텐데.’

 

 

조금 이상한 일이긴 하다.

 

숙련된 사냥꾼의 시선으로 봤을 때, 원래대로는 잠들어 있을 마수들이 깨어나는 이유라면 그것보다 더 강한 마수의 존재가 그 근처에 있는 것이라는 게 가장 합리적인 이유다.

 

하지만.

 

이런 마경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터주대감들조차 두려워할 존재가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래도 올해는.’

 

 

그렇게 환경이 흉흉한 만큼, 남들에 비해 훨씬 빛나는 녀석도 그 모습을 드러낸 게 다행이다.

 

하탄이 머릿속으로 얼마 전에 ‘용 사냥’이란 미친 짓을 성공한 녀석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놈인건 분명했다.

 

 

‘그놈이라면...’

 

 

단순히 수룡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마경에 있는 지배자들을 하나 더 잡을 지도 모른다.

 

학생 신분은커녕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전사들도 쉽게 이루지 못한 대업이지.

 

어쩌면 둘을 넘어, 셋에 이르게 될지도.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부족 연합이 설립된 이후로 단 한 명도 없었던 ‘대사냥꾼’의 칭호를 모든 족장들이 보는 앞에서 수여 받게 된다.

 

사냥에 있어서는 현대에서 가장 뛰어난 자라고 불리는 하탄 본인조차 감히 수여 받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칭호지.

 

단순히 칭호를 수여받는 것보다, ‘모든 족장’들이 인정하는 권위라는 것이 중요하다.

 

적어도 ‘마수’를 상대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부족 연합 전체가 그 인간의 말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니까.

 

 

“-장님. 학장님!”

 

 

그런 상념에 빠져있는 하탄의 앞으로,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렇게 보고했다.

 

 

“세 개의 마경에서, 도, 동시에 지배자가 출몰했습니다! 현재 전투 중입니다!”

 

“...”

 

 

하탄이 시계를 슬쩍 살펴보았다.

 

이제 겨우 3분 지났다.

 

그런데, 뭐라고?

 

 

“...기기 이상 아닌 지 다시 점검-”

 

“밀림 지대의 지배자와 설원 지대의 지배자가 사망했습니다!”

 

“...”

 

 

방금 출몰했다며.

 

이제 겨우 전투 시작했다며.

 

입을 뻐끔거리는 하탄이 뭐라고 더 따질 새도 없이, 직원에게서 숨 넘어가는 기색으로 보고가 이어졌다.

 

 

“이, 일단 현재 유일하게 마경의 지배자가 살아남은 작열 지대의 화면을 전송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화상이 곧 작열 지대의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화면 정중앙에 잡히는 건, 웬지 모르게 몸에서 푸른 빛깔의 기운을 흘리는 리루 가르다와, 남자 한 명이다.

 

그리고, 그 두 명에게서 이어지는 광경은.

 

틀림없이.

 

천재지변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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