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2 - 112. 이독제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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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stem Message >
[ 대상 ‘엘리야 크리사낙스’가 ‘진리의 눈’을 각성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
[ 해당 능력을 각성하면, 대상이 ‘생존의 조력자’ 역할로 지정됩니다! ]
[ 대상과 ???를 진행할 때 대단한 강운이 주어집니다! ]
“...?”
이건 또 뭐람.
진리의 눈, 생존의 조력자?
심지어 마지막 줄은 제대로 나와있지도 않다.
‘...다 원작에서는 없던 기능들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투쟁의 용광로 처음 올 때 그 녀석에게 무슨 ‘역할’이 지정된다는 창이 떠올랐었던가.
강운이 주어진다는 걸 보니 나쁜 건 아닌 모양인데...
[뭘 보는 진 모르겠지만, 지금 거기에 집중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
그건 그래.
칼리반의 말에, 저 멀리 일각수가 있는 밀림 지대 안에서 일순 피어오르는 거대한 참격을 바라본다.
일전에 수룡도 몇 방만에 조각낸 참격이다. 이 정도 거리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지.
다행인 점이라면, 지금 저기에 처맞아서 목이 날아간 건 내가 아니란 점이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맞긴 한데.
◎ 클론 워커
[ 아이템: 특수 ]
[ 가격: 1,000pt ]
[ 본체의 성격과 행동을 모방하는 분신을 만들어냅니다. 다른 버프와도 상호 작용이 가능합니다! ]
[ 남은 포인트: 4,000pt ]
오랜만에 꺼내 쓰는 녀석이다.
꺼내쓰자마자 곧바로 작살나버리긴 했지만.
‘...적어도 시간 벌이 정도는 되겠지.’
물론 저 녀석의 ‘집착’의 수준을 생각하면 저게 가짜라는 걸 알아차리고 내 목을 따러 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창을 전환한다.
!!!!!!!!!!!Demon Alert!!!!!!!!!!!
[ ‘악마 관련’ 긴급 이벤트 발생! ]
[ 최중요 이벤트입니다! ]
[ 제한 시간 안에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사망합니다! ]
[ 대상 ‘유리아’와 관련된 이벤트입니다! ]
[ 지금 당장 생존을 위해 대비책을 강구하십시오! ]
!!!!!!!!!!!Demon Alert!!!!!!!!!!!
[ ‘악마 관련’ 긴급 이벤트 발생! ]
[ 최중요 이벤트입니다! ]
[ 제한 시간 안에 올바르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사망합니다! ]
[ 대상 ‘리루’와 관련된 이벤트입니다! ]
[ 지금 당장 생존을 위해 대비책을 강구하십시오! ]
“...”
눈앞을 시뻘겋게 수놓고 있는 창을 보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우와. 두 배 이벤트네.
악마 관련 긴급 이벤트가 두 배다.
이 정도면 지금 내 자리에 기드온이나, 크라트나, 아탈란테나... 하여간 그쪽 라인을 데리고 와도 100% 죽겠는데?
[뭔가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치고는 표정이 여유로워 보인다?]
소울 링커 안에서 칼리반이 그런 말을 던져오자, 싱긋 웃으며 답한다.
‘아뇨, 마음은 편해서.’
[...그게 어떻게 편한데?]
‘일이 잘못되어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
어차피 내가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목숨을 위협하는 이벤트가 계속 날아오고 있는데, 그쯤 되면 사람이 위기 감각이 마비되거든.
무슨 짓을 해도 일이 대차게 꼬이는 게 일상이 된다면 이런 위협 정도야 이제 산들바람처럼 느껴지게 된다.
뭐, 폭주 직전의 악마 두 명이 동시에 나를 죽이러 오고 있다고?
응, 해봐.
죽으면 그만이야.
[...]
‘...시끄러워요.’
[아무 말도 안 했어.]
‘미친 새끼라고 생각했잖아, 방금.’
[부정은 안 하마.]
그렇게 보인다는 건 나도 알지만.
그래도 나름 다 근거가 있어서 벌이는 일이니까. 이해 좀 해줬으면 좋겠다.
당장 이 사람을 불러낸 것도 그런 근거를 확실하게 만들기 위한 일환이다.
“...유리아한테 무슨 말을 하셨으면 애가 저런 짓까지 한답니까?”
눈앞에 있는 성녀님이, 저 멀리 밀림 지대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멍하니 질문했다.
아마 본인도 저런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유리아밖에 없을 거란 확신이 담긴 목소리다.
“...”
척 봐도 사람 한 명이 낼 수 있는 위력은 아닌데 말이지.
이 사람도, 내 예상대로 유리아가 뭔가 ‘비정상’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말을 받는다.
“알고 싶으세요?”
“...혹시 저와 관련된 말씀을 하셨나요?”
“예.”
“불경하거나, 선정적인 요소가 있었-”
그렇게 질문을 이어가려던 루시엔 씨가 입을 다물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이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아뇨, 됐습니다.”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요?”
“대상이 당신이니까 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
내 이미지 대체 어느 수준인데.
“...손 좀 주시겠습니까.”
한숨을 내쉬며 루시엔에게 그렇게 요청한다.
이상한 짓 하는거 아니라고 덧붙이자 마지못해 쭈뼛쭈뼛 내밀어져 오는 손에 아뮬렛을 감아준다.
“이건?”
“혼을 담는 용기입니다. 아마 성녀님도 아는 얼굴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끔뻑이던 성녀님이, 이내 번쩍이는 아뮬렛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안쪽에 있는 영혼 중 하나랑 소통에 성공한 모양이지.
“...발카서스? 아니, 이 안에 어떻게...!”
“반가워하실 줄 알았어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답한다.
발카서스와 루시엔은, 글쎄.
이전에 보스전을 할 때도 얼핏 보였지만, 악마숭배자와 성녀 치고는 대단히 막역한 사이다.
나처럼 괴상한 루트로 2 챕터를 깨지 않았을 경우 이 둘을 같이 쓸 수 있는 구간이 제법 있었는데, 거기서 둘을 파티로 편성하면 아예 시너지 효과가 나왔을 정도로.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도 딱 그거다.
이어질 보스전을 ‘내가 바라는’ 결과대로 이끄려면.
신성력의 대가와 금술의 대가, 두 명이 동시에 필요한 수준의 기적이 한 개 있어야 하거든.
“그러니까 지금... 딱 2시간 정도 남았는데요.”
시계를 살피며 그리 말을 이어간다.
타티아나가 리루를 막아주는 것도, 눈이 돌아간 유리아가 어떻게든 나를 찾아내는 것도 그 시간이면 아슬아슬하게 충족될 수준이다.
“그 안에 해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계획을 설명한다.
내가 곧 타티아나의 의식으로 소환될 바다 속 뭐시기를 막는 동안, 이 사람이 ‘자기 여동생’에게 해줄 일을.
“...설마, 당신.”
그리고 그 설명을 쭉 들은 성녀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문장이 채 완성되기 전에 말꼬리를 끊는다.
“괜찮아요.”
“당신, 그러다 죽...!”
“괜찮다니까요.”
죽을 위기라면 이미 몸에 수도 없이 두르고 다니고 있다. 이 사람이 걱정하는 거야 별 것도 아닌-
“...”
성녀님한테 머리를 콩 하고 얻어맞았다.
평생 폭력 한 번 안 휘둘러본 사람이 분에 터져서 마지못해 손을 댄 거란 느낌이 물씬 드는 동작이었다.
“자신을 좀 소중히 여기세요, 이 멍청이가!”
씩씩거리는 성녀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당신 목숨을 걱정할 인간이 몇 명이나 있는지 좀 자각하세요! 저도 거기에 포함 된다구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를 좀 껄끄러워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평소에 뭐만 하면 면박 주고 혼내시길래, 이런 걱정은 또 색다르네.
시스템에서도 이 사람이 내... 그.
난봉꾼 짓을 경계하고 있다는 건 계속해서 주지시키고 있었으니까.
“딱히 껄끄러운 게 아니라, 그건, 그, 그건...!”
그렇게 말하려던 루시엔 씨가 입을 다물었다.
입 안으로 뭔가를 우물우물 굴리다가. 이내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내 머리통을 다시 콩, 하고 때린다.
“아무튼 몸 좀 챙겨요!”
“...”
예.
조심하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위험에 처하는 것 정도는 진짜로 괜찮아서 하는 말이다.
그것보다 지금 더 먼저 신경 써야 하는 건 따로 있으니까.
“당신 여동생의 몸에 뭐가 깃들어 있는 진 성녀님도 아실 거라 생각해요.”
그런 말을 꺼내자마자 루시엔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래.
루시엔은 생각보다 유리아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애초에 매일매일 몸에 깃든 저주를 살피는 입장이다. 신성력의 대가인 사람이 그 저주를 발하는 물건에 얽힌 게 뭔지 감지도 못하는 게 이상하지.
“이단 심문소에서도 그것 때문에 사람이 붙었구요. 성녀님도 꽤 신경이 쓰이실 것 같은데요.”
이전에 봤을 땐 그냥 웃기지도 않은 인형 옷 갈아입히기 놀이나 하고 있었지만, 페이놀은 근본적으로 다음 챕터의 최종 보스다.
절대 그런 말랑말랑한 의도로만 유리아에게 접근했을 리가 없단 거지.
“...제국 황실에서, 유리아를 예의 주시하고 있단 소리입니다.”
“...”
루시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단 심문소는 엄밀히 말하면 성황국과는 별개로 작동하는 집단이다. 그쪽에 자문을 구하기는 하지만, 거길 운영하는 곳은 엄연히 제국 황실이니까.
당연한 반응이다.
기껏 법황과 성황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더니, 또 다른 속 시커먼 권력자들이 눈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기뻐할까.
“그러니 이번 기회에 그쪽의... ‘싹’을 좀 뽑아놔야 할 겁니다. 제 걱정보다는 그쪽에 좀 더 집중해보시죠.”
아마, 내 생각이 맞으면.
폭주한 유리아를 잘 ‘진정’시키면.
안 그래도 천정부지를 달리고 있는 내 가치는 제국 황실에서 더욱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
관심의 추가 유리아가 아닌 내쪽에 쏠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에, 루시엔이 피가 나오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또, 당신이 희생하시겠다는 말 아닙니까. 저희 자매를 위해서.”
“괜찮아요.”
제국 황실은 전체 시나리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놈들이면서 가장 폐쇄적인 놈들이다.
법황이고 대족장이고 다 마주친 지금 시점에서 그쪽의 끄나풀조차 못 만났다는 게 그런 사실을 증명하지.
어떻게든 거기에 비비고 들어갈 건덕지가 생기면 나로서는 환영이다. 딱히 손해볼 것도 없-
< System Message >
[ 대상 ‘루시엔’이 당신에게 격한 죄책감을 느낍니다! ]
[ 부정적인 영향이 각인됩니다! ]
[ 부정 각인 2중첩! 곧 대상이 ‘부정’ 상태에 빠집니다! ]
[ ‘부정’ 상태 해결 시 ‘치명적인 매력’이 적용되며, 대상의 호감도가 폭등합니다!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 스킬: 악의 지배가 발동됩니다. 대상에게 사용 가능한 명령권 1회를 얻습니다! ]
“...”
어라.
이거, 기프트 스킬 중에 그거던가.
선 성향 사람 부정적인 영향에 빠지게 하면 보상 받는 거.
하도 오랜만에 보는 창이라 나한테 이런 스킬이 있는지도 까먹고 있었다.
의도하고 쓴 것도 아니라서 좀 당황스럽네.
“...아, 진짜로 부담을 느끼실 필요는 없어요.”
손사래를 치면서 그렇게 말하자, 루시엔 씨가 음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라는 직책이 있다곤 해도, 성황국의 백업이 없는 이상 그건 그냥 형식상의 문제다. 이제 와서 그쪽이 루시엔을 도와줄 기미도 없고.
결국 자신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미 떠오른 시스템 창은 사라질 기미가 안 보인다.
죄책감은 여전히 유효하단 소리겠지.
“...”
아.
모르겠고, 그건 나중에 해결하자.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더 바쁜 게 널려있으니.
“...하지만, 다우드 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루시엔이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나, 더 있지 않으십니까?”
“예?”
“유리아는 저와 발카서스의 도움으로 어떻게 하신다고 쳐도, 나머지 하나는...”
그렇게 말한 성녀님이 말을 흐렸다.
아마 푸른 악마쪽을 말하는 것이렸다.
아니, 근데 용케도 그걸 느꼈네.
지금 바다 저 멀리에서 달려오고 있는 리루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니.
“그것도, 예.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은 있습니다.”
“...그건 어떤 방법인가요? 설마 그것도 당신의 몸을 내던지는-”
“그런 건 아닌데요, 그...”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그게, 음.
적어도 성녀님 앞에서 말할만한 해결책은 아니다.
“...말씀드리기가 좀 힘드네요.”
“왜죠? 역시 이번에도 당신 혼자 크게 다치는-”
“...선정적인 이야기는 아까 듣기 싫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
표정이 멍해지는 루시엔 씨를 내버려 두고 몸을 휙 돌린다.
“아무튼, 부탁한 건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잠시만요, 다, 다우드 씨! 방금 그게 무슨-!”
황급히 제지하는 루시엔 씨의 목소리를 두고 달음박질한다.
아무튼, 아까도 말했지만 이제 진짜 챕터 하이라이트까지 코앞이다.
‘최종 점검’으로, 만나야 할 사람이 있거든.
이번 챕터를 클리어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 역할을 해줄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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