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115)화 (116/258)

Chapter 115 - 115. 푸른 악마

 

 

“그래서,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탈리온이 능숙하게 타륜을 꺾으며 그런 말을 던졌다.

 

역시 예전에 연습을 좀 시켜놓길 잘했다. 지금 이 개판 속에서도 용케도 균형을 잡고 배를 조종하는 걸 보니.

 

 

“계획... 계획이라...”

 

 

비슷한 게 있기는 한데.

 

그걸 계획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이득은 좀 더 봐야 하거든?”

 

“...예?”

 

 

저 멀리서 전속력으로 발진하고 있는 보트보다도 빠르게 달려서 쫒아오고 있는 리루를 바라본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 게 무서울 정도다.

 

저 정도로 빡쳤으면, 진정시키기 위해서 꽤 귀중한 걸 내놔야 한다.

 

그러니까.

 

나한테도 나름 소중한 것 말이야.

 

그런데 그런 것까지 던져주는 거라면, 적어도 저런 상태로 만들어서 뽑아먹을 수 있는 건 다 뽑아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도 이득을 더 챙길 생각이 나신다구요?”

 

“...”

 

 

거의 핀잔에 가깝게 들리는 탈리온의 말에 나도 침묵한다.

 

그럴 수도 있지, 자식아.

 

나도 점점 무슨 상황에 처했을 때의 내 위기 감각이 내 목숨 걸고 하는 게임 비슷한 걸로 변하는 느낌은 받지만, 부담에 짓눌려 벌벌 떠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는 당분간 좀 가라앉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눈앞의 싱크홀에서 빌빌거리고 있는 1번 촉수를 바라본다.

 

리루한테 한 대 얻어터지고, 위엄 넘치게 등장하려다가 지금 동작을 멈추고 몸만 비틀고 있는 모습이다.

 

게임 안의 보스 전에서도 몇 번 본 적 있는 패턴이지. 큰 데미지를 받으면 그로기 상태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거.

 

 

‘...이것만으로 도입부는 스킵.’

 

 

이렇게 처음 튀어나온 촉수와 전투를 벌인 다음, 그다음 저 싱크홀 아래에서 튀어나오는 ‘본체’와 최종전으로 돌입하는 게 보스전의 수순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리루를 ‘묻히는’ 것만으로 시간이랑 자원이 엄청 절약됐지?

 

 

“...”

 

“...”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탈리온의 시선은 무시한다.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한데.

 

맞긴 맞잖아.

 

아무튼 보스 세 개한테 한 번씩은 다 리루를 묻히는 게 무조건 이득이라 그거다.

 

 

‘...문제는.’

 

 

그 과정 중에, 리루가 반드시 한 번은 폭주할 거란 거다.

 

타티아나도 애초에 그렇게 이용하려고 알란한테 ‘그런걸’ 박아넣었을 테니까.

 

게임 안에서 보여준 화신이라는 놈의 메커니즘을 생각하면, 알란은 지금 저 세 놈의 거대 두족류 중 하나에는 반드시 박혀 있을 거다.

 

 

“...”

 

 

이를 악문다.

 

솔직히 말해서.

 

리루에게, 그 꼴은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나도 보자마자 토할 뻔했으니까. 그 정도로 역겨운 거다.

 

하지만.

 

 

‘...결국엔 일어날 일이지, 빌어먹을.’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타티아나는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걸 리루에게 들이밀 거다. 그것만큼은 나도 못 막는다.

 

특히 지금처럼 내가 저렇게 폭주한 리루를 투우하는 것마냥 끌어들여서 1페이즈를 박살내고 있는 걸 보느니, 아싸리 끝까지 폭주시켜서 나도 동귀어진으로 죽여버릴 셈으로.

 

생각보다 유효한 해결책이다. 이전에 엘노어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완전히 폭주한 악마는 나로서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행운에 기대야 하는 수준이니까.

 

 

“...”

 

 

하지만, 놈이 간과하는 점은.

 

푸른 악마는 차라리 어중간하게 폭주하는 것보다 화끈하게 터지는 편이 낫다는 거다.

 

진지하게 그쪽이 생존 확률이 훨씬 높거든.

 

 

“일단 이거 가지고 있어라.”

 

 

한숨과 함께, 품에서 울트리마를 꺼내 탈리온에게 넘긴다.

 

 

“이게 뭡니까?”

 

“성물. 너처럼 신성력 못 다루는 사람이라도 저주에 대한 저항력은 좀 가질 수 있을 거다.”

 

“마음은 고맙습니다만, 형님. 지금 이 정도는 버틸만 합니다!”

 

 

탈리온이 그렇게 말하며, 땀을 흘리면서도 기운찬 목소리로 답했다.

 

주변으로는 리루가 터트려서 흩날리고 있는 육편덩어리에서 뭉게뭉게 비어져 나오는 검은 안개가 가득이다.

 

저것 전부가 평범한 사람이 닿았다가는 그대로 미쳐도 이상하지 않을 악독한 저주의 잔향이지.

 

 

“받아. 너는 몰라도 너랑 같이 있는 것도 문제잖아.”

 

 

그렇게 말하며 탈리온 머리 위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얼음 고양이를 가리킨다. 이에 탈리온도 아차하는 표정으로 변했고.

 

 

“잠시만요, 그런 형님은...!”

 

“나는 괜찮아.”

 

 

나는 오히려 그런 저항력을 ‘덜어내야’ 하는 입장이라 그런 거고.

 

절체절명은 ‘모든 스텟’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 지금 스텟창에 박혀 있는 항마 스텟 또한 그런 효과를 그대로 받고 있겠지.

 

그러면 안 된다.

 

 

“내가 저항력이 너무 높으면, 그.”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잇는다.

 

 

“상대방한테, ‘잡아먹힐’ 수가 없거든.”

 

“...”

 

 

그러니까.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 좀 그만해라.

 

 

 

 

머리가 멍하다.

 

그리고, 눈앞이 새파랗다.

 

푸른색 연무라도 낀 것처럼 보이는 곳 전부가 그런 색깔로 물들어 있었다.

 

 

‘...나, 왜 이렇게 화나 있지.’

 

 

머리 한 칸으로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다.

 

그냥 그런 놈한테서 친구로 지내자는 소리를 들은 것뿐이다. 그게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싶다.

 

 

-당신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리루 가르다.

 

“...”

 

 

어.

 

생각해보니까 화낼 일이 맞는 것 같다.

 

저 빌어먹을 바람둥이, 난봉꾼, 개쓰레기 자식!

 

자기도 모르게 머리가 새하얘지는 분노를 담아 눈앞에 치솟아오르는 ‘장애물’을 치워버린다.

 

 

“꺼지라고 했지-!”

 

 

지금까지 여기로 오는 길에 대체 이런 놈을 몇 놈이고 만나봤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자꾸 자신에게 달려드는 마수들.

 

원래대로라면 지금 상황에 대한 의문을 무진 떠올리고 있어야 정상이다.

 

자신은 어떻게 바다 위를 뛰고 있지.

 

이 놈들은 뭐지. 왜 자신에게 덤벼드는 거지.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그런 것들을 딱 한 대 치는 것만으로도 전부 개작살을 내고 있는 거지.

 

그런 상황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파악이라도 시도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일단 저 녀석 턱주가리에, 주먹 한 대는 박아넣고 봐야겠다.

 

처음부터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만, 좀, 방해하라고-!”

 

 

세 번째로 나타난 거대한 촉수를 주먹으로 작살날 때도 쭉 그런 기세였다.

 

눈앞으로 육편 조각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것까지 반복되어온 루틴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중간에 그녀의 눈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

 

 

터져서 흩날리는 육편 사이로.

 

그 육편 덩어리들 중간에 ‘파묻혀 있던’ 누군가의 모습이 보인다.

 

거대한 신체. 그리고 복부에 새겨져 있는 사자의 문신.

 

잊어버릴 수가 없는 모습이다.

 

알란 바-토르.

 

다짜고짜, 그녀가 존경하는 할머니에게 대결투를 신청했던 인간.

 

그리고 대결투를 진행하는 와중에, 씨족들의 공간을 습격해 그들의 목숨을 거두고, 할머니의 팔다리까지 잘라간 인간.

 

의식 전체를 새하얗게 불태우는 것 같은 분노 때문에 흐려진 이성으로도, 그런 사실만큼은 줄줄이 떠올랐다.

 

분노로 잠식당하던 정신이 일부 깨어났다.

 

기름칠 안 된 고철처럼 삐걱거리던 사고력이 움직인다.

 

덕분에.

 

리루는 눈앞의 ‘광경’에 그대로 집중할 수 있었다.

 

알란 바토르의 몸에서 ‘튀어나와 있는’ 뭔가가 눈에 들어온다.

 

뒤틀린 상상력이 듬뿍 들어간 ‘조형물’의 모습이다.

 

주술적으로 뭔가 의미를 가지는 게 분명한 기괴한 육편 덩어리.

 

 

“...”

 

 

리루가 본능적으로 이게 자신이 지금까지 후려쳐서 부순 거대한 촉수들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것들을 부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중이란, 그런 느낌이 든다.

 

의식을 좀 더 자세히 집중한다.

 

마치 만들다 만 찰흙 인형들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것 같은 형태다.

 

다만, 거기에 사용된 건 찰흙이 아니라, 전부가 ‘인간의 신체’다.

 

죽은 이들의 유해를 이용해 이런 조형물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신체에는.

 

씨족끼리 공유하여 신체에 새기는 ‘문신’이 똑똑하게 드러나 있었다.

 

전부가.

 

가르다 씨족의 문양이었다.

 

 

“...뭐야, 이거.”

 

 

저도 모르게 그런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지금 저 ‘조형물’을 구성하고 있는 신체 전부에, 그런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잊어버릴 수가 없다.

 

자신의 가족들이, 자랑스레 몸에 새기고, 결코 긍지를 잃지 말라고 그녀에게 가르쳤던 문양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가르쳤던 이들이, 자신의 가족들이, 지금.

 

이런 꼴로, 모욕당하고 있다.

 

죽은 뒤에도, 이렇게 비참하게.

 

 

“...”

 

 

누가 이런 짓을 했는 진, 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장례’를 치룬다면서, 그 유해조차 리루에게 인계하지 않고 가져갔던 인간이 누군지는, 현재 상태로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타티아나.

 

사제장.

 

그,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년이, 저지른 일이다.

 

 

“...”

 

 

다음 순간.

 

리루의 몸 주변으로, 푸른색 기운이 폭발하듯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탈리온이 부서져 날아가는 촉수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걸로 세 개의 보스몹은 전부 1페이즈를 스킵한 셈이다. 다음은 얼마 뒤에 안 가서 튀어나오는 본체를 상대하는 거지.

 

다만, 문제는.

 

 

“...뭔가 이상한데요.”

 

 

동작을 멈추는 리루를 본 탈리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지금까지 무시무시한 속도로 쫒아오다가 갑자기 우뚝 멈춰섰으니까.

 

 

< System Message >

 

[ 대상 ‘리루’가 믿기지 않는 광경에 격분합니다! ]

[ 대상 ‘리루’의 타락 수치가 300%를 초과합니다. ]

[ 대상이 ‘폭주’ 상태에 들어갑니다! ]

[ 피해 예상 범위는 ‘반경 10km’입니다! ]

[ 살아남을 확률은 0.3%입니다! ]

 

“...”

 

 

눈을 감고 리루에게 사과한다.

 

정말로.

 

정말로 미안해요.

 

그런 꼴을 보게 해서 미안해요, 리루.

 

 

“...”

 

 

그러니.

 

저런 짓을 한 녀석에게는, 똑똑히 그 대가를 치루게 해야 할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를 지금 밟을 예정이고.

 

 

“멈춰!”

 

 

리루가 동작을 멈추는 걸 보자마자, 바로 탈리온에게 그런 지시를 내린다.

 

이윽고 보트가 멈추자 마자, 곧바로 그쪽에 도움닫기를 통해 ‘날아간다’.

 

 

“잠, 형님?!”

 

 

등 뒤에서 탈리온이 경악하여 그런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주치는 것마다 전부 다 일격에 산산조각 내어버리던 인간을 상대로 오히려 전속력으로 튀어나가다니. 무슨 생각인가 싶겠지만.

 

 

[ ‘스킬: 판데모니엄의 왕’을 발동합니다. ]

[ 5분 동안 악마 타입의 적에 대한 절대적 상성 우위를 가집니다! ]

[ 동격의 능력을 가진 대상과 마주합니다. ]

[ 대상의 고유 능력 ‘권능: 분쇄’에 저항합니다! ]

 

 

다행히, 난 몇 분이지만 그런 권능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쏜살같이 날아가 멍하니 바다 위에 서 있는 리루의 몸에 부딪힌다.

 

원래대로는 접촉하자마자 몸이 박살나야겠지만, 스킬의 영향으로 제법 멀쩡한 상태다.

 

 

< System Message >

 

[ ‘푸른 악마’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

[ ‘타천의 인장’이 반응합니다! ]

 

 

그런 메시지가 떠오르는 걸 확인하며, 리루의 몸에 매달려 신체를 지탱한다.

 

이전에 공중에 떠 있던 엘노어에게 매달려 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네.

 

폭주 직전의 그릇들은 원래 이렇게 철썩 달라붙어도 별 반응을 안 보이더라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리고.

 

주변으로 폭발하기 직전의 푸른색 기운이 넘실거리는 와중에.

 

리루를 향해 그런 말을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전 다우드 캠벨이에요.”

 

 

마치, 처음보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듯이.

 

 

“...당신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이야기 좀 할까요. 푸른 악마.”

 

 

-...

 

 

침묵.

 

침묵.

 

그리고, 이어서.

 

리루의 몸에서 뿜여저 나오던 푸른색 기운이, 이내 나를 ‘감싸듯이’ 달려들었다.

 

 

< System Message >

 

[ 당신을 대상으로 발동된 ‘정신 결계’가 감지됩니다! ]

[ ‘항마’ 스텟 저항 굴림... ]

[ ‘항마’ 스텟 저항 굴림... ]

[ ‘항마’ 스텟 저항 굴림... ]

[ 저항 실패! ]

[ 대상의 ‘심상 세계’에 진입합니다! ]

 

 

그래.

 

저항 굴림 횟수 보니까, 꽤 아슬아슬했다. 울트리마 가지고 있었으면 진짜 저항에 성공해버렸겠지.

 

꺼져 드는 정신 사이로,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다우드 캠벨.]

 

 

그리고, 그렇게 잦아드는 의식 너머로.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틀림없이.

 

 

[이렇게 뵙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대단히, 침착하고 조신한 목소리였다.

 

 

[서방님.]

 

 

말하는 놈이 ‘악마’라는 사실조차 까먹을만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