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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118)화 (119/258)

Chapter 118 - 118. 뒤집힌 해일 (2)

 

 

“마소 추적 시스템 가동합니다. 범위 내 모든 징후를 스캔합니다.”

 

“목표 지점인 아카데미 근처 해안가로 전부 이동시킵니다.”

 

“가속 시퀀스 시작합니다. 인공 형체화 돌입합니다.”

 

 

그런 보고가 들어오는 걸 연이어 들은 하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살아있는 수룡과, 완전히 그 존재의 소멸이 확인된 일각수를 제외한 마경의 지배자 전원의 마소를 한 곳에 끌어모으는 작업이다.

 

다우드 캠벨의 요청에 의하면, 원래대로는 몇 달에서 일 년은 족히 걸릴 그런 마수들을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지정된 장소’에서 불러내달라고 했다.

 

 

‘...이런 걸 한다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할 텐데 말이지.’

 

 

그놈이 왜 아카데미의 ‘전권’을 요구했는지 정도야, 이쯤 되면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세 아카데미 중 가장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투쟁의 용광로라 할 지라도, 아카데미에

 

특급 선에 들어가는 마수 둘을 강제로 ‘부활’시키는 작업이다.

 

허풍을 조금 많이 보태면 거의 사자 소생에 가까운 기적이니까.

 

마탑 정도를 제외하면, 그나마 부족 연합이니까 이런 짓이 가능한 거다.

 

 

-정말로 그쪽이 한 부탁을 들어줄 셈인가, 하탄.

 

 

하탄이 고개를 돌려, 유일하게 지휘실까지 따라온 족장의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우타드 한-차이. 다른 족장들이야 전부 제각각의 반응으로 우려를 나타냈지만, 유일하게 다우드 캠벨의 계획에 찬동한 인간이다.

 

 

“너도 찬성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딴 소리야, 또.”

 

-뭔가 생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의중이 전혀 짐작이 안 가니 말이네.

 

 

우타드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 남자의 재주를 의심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제압한 마경의 지배자를 굳이 부활시키는 이유를 알 수가 없네. 하물며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시선이, 이내 상황실의 화면으로 돌아갔다.

 

지금 이 ‘사태’를 만들어 내고 있는 존재가, 마침 거기서 등장하고 있었다.

 

 

-...저런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확실히, 그런 우려가 이해가 갈 정도로 압도적인 자태였다.

 

바다 아래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인간 형태의 두족류를 본 하탄과 우타드가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척 보기에도 알 수 있는 ‘해묵은’ 마수다.

 

기본적으로 다른 마수를 잡아먹으며 성장하는 마수의 특성상, 일단 마수의 나이는 곧 강함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물질계에서 최강의 마수로서 거의 신적 영역에 들어갔다 꼽히는 4대 아신과 용족들 모두 몇천 년을 기본으로 묵은 마수들이니.

 

 

“새로운 마수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상황을 보고 하던 교직원 중 하나가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이차원의 존재입니다! 식별 가능한 등급은...!”

 

 

이어지는 문장은 거의 비명이나 다름없었지만.

 

 

“여, 연식이 최소 천 년은 넘은 마수입니다! 고대신 클래스입니다-!”

 

“...”

 

-...

 

 

하탄과 우타드가 동시에 넋을 잃었다.

 

연식이 천 년을 넘었다고?

 

그건 사냥꾼들 사이에서 사냥하는 말조차 농담처럼 떠도는 마경의 지배자들조차 어린애 수준으로 만드는 괴물이다.

 

그리고 그런 개체가, 총 셋.

 

 

“마지막으로 특급 이상의 마수가 발견된 게 언제였지?”

 

-백 년도 넘었네, 이 양반아. 4대 아신 이후로는 그 근처에도 간 마수도 없었으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쪽처럼 몇 천 년 묵은 수준은 아니네.”

 

 

넋이 나간 목소리로 그런 대화를 나누던 둘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으로는 서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죽겠지?”

 

-...그렇겠지.

 

 

아무리 그 실력이 대단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저런 걸 상대하는 이상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당장 도망친다 해도 생존을 담보 받는 것조차 웃긴 이야기다.

 

 

“...저놈도 저런 게 튀어나올 줄은 몰랐던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걸, 고작 몇 명으로 상대하겠다는 미친 소리를 했을 리가 없다.

 

하탄의 말에 우타드가 그대로 침묵했다.

 

 

“저놈이 너무 심한 허풍쟁이가 아니기만 빌자고.”

 

 

적어도, 하나 정도는 똑바로 데려가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머지 둘을 어떻게 상대할지 대책이라도 세울 수 있을 테니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이어서 펼쳐진 건,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저 수준의 마수를 상대하는 건 기록으로만 남아있어서 불확실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공통적으로 한 가지 보고되는 사항이 있지.”

 

 

카사가 그렇게 말하며, 전신에 촉수가 달린 거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 바라보았다.

 

고대신 클래스. 때때로 물질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이차원의 균열 안에서 드러낸 마수 중에서는 판데모니엄과 이면계의 짐승들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수준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명성을 얻게 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모두 말도 안 되는 ‘권능’을 한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것.”

 

 

현실 조작에 가까운 스케일까지 가버리는 악마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저 정도까지 해묵은 마수라면 분명히 말도 안 되는 능력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저놈은, 불침의 저주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 온몸에 둘러싸인 마기를 본 카사가 그런 결론을 내렸다.

 

이에 옆에서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던 엘리야가 멍하니 질문했다.

 

 

“...불침의 저주요?”

 

“그게 제작된 ‘무기’라면, 어떤 물건에도 타격을 입지 않는단 소리야.”

 

“...”

 

 

엘리야가 잠시 침묵했다.

 

대체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기색이다.

 

 

“...그런 게 말이 되나요?”

 

“물론 되지. 세상은 넓고, 말도 안 되는 일은 사방에 널렸으니까.”

 

“그런 걸 어떻게 잡습니까...?”

 

 

그래.

 

보통 사람은 다 그렇게 생각하겠지.

 

어떤 무기에도 피해를 입지 않고, 역으로 자신의 몸에서는 지속적으로 주변에 피해를 입히는 저주를 뿌리며, 기본적인 능력 자체가 강대하기 그지 없는 천년 묵은 마수를.

 

대체 어떻게 잡냐고.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 않니. 세상은 넓고, 말도 안 되는 일은 사방에 널렸다고.”

 

 

그렇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미친 생각을 하고, 그걸 실행으로 옮기며, 진짜로 해내는 인간도 한 명쯤은 있다는 소리다.

 

예를 들어.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는 괴수가 상대라면.

 

그냥 ‘맨주먹’으로 쳐 죽이면 된다던가.

 

미치광이나 떠올릴법하지만, 아주 직관적으로 명쾌한 그런 해답에 도달한 인간 이라던지.

 

 

카사가 씩 웃으며, 바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인을 향해 ‘맨몸’으로 접근하는 다우드 캠벨을 바라보았다.

 

 

“어, 잠, 저거 선생님...!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저 또라이 새끼가-!”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하는 엘리야를 보고 있으니 이내 실소가 흘러나왔지만.

 

 

“아주 맨몸은 아니잖니. 팔에 뭔가 낀 것 같은데.”

 

“저런 건틀릿 하나 낀 상태에서 대체 뭘 할 수 있다고요! 상대가 저 모양인데! 기, 기다려 봐. 지금 당장 구하러 가야-”

 

 

그런 말을 내뱉는 엘리야를, 카사가 다시 여유롭게 곰방대를 물며 제지했다.

 

 

“뭐, 일단 두고 보는 게 어떻겠니.”

 

 

그 눈동자는, 틀림없이.

 

 

“못할 것 같은 놈이면, 처음부터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니.”

 

 

‘제자’에 대한 신뢰로 가득 찬 눈이었다.

 

그 사이에, 지척까지 다가운 다우드 캠벨을 본 거인의 눈동자가 그쪽에 고정되었다.

 

이어서.

 

 

-...

-...

-...!!!!

 

 

그 몸에서, 통상적으로 내뿜어내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저주가 다우드 캠벨이 있는 곳으로 내려꽂혔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눈이 멀 것 같은 끔찍한 수준의 저주다.

 

능히 바다를 끓이고, 지축을 뒤흔들며, 천축까지 울릴만한, 그런 위력이 담긴 일격.

 

하지만.

 

 

“법술은 인간의 의지력을 기반으로 발휘된다. 어떤 종류의 목적이라도 좋으니, 그걸 위한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그만큼 법술은 강력해진다.”

 

 

카사가 그런 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다우드의 팔에 이능이 맺히기 시작했다.

 

카사가 일전에 그에게 보여준 기술이다.

 

법술의 운용과, 그걸 이용한 그녀가 만든 격투술의 끝. 하늘 부수기.

 

물론 위력 자체야 그녀가 보여준 그런 현상의 반의반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방금 그녀가 보여준 건 절대 그게 가능한 수준의 기술이 아니었으니.

 

그리고, 그건 저 기술을 사용하는 다우드 캠벨 본인조차 알고 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하지만.

 

그걸 똑같이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 흉내만 낼 수 있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카사가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다우드의 팔에 맺히는 이능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누구나 능히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 말과 함께.

 

다우드의 팔이, 허공을 밀어내었다.

 

타격이 제대로 닿지조차 않을만한 거리에서, 가볍게 휘둘러진 주먹이지만.

 

 

-...

-...

-...!!!!!!!!!!!!!!!!

 

 

그 저주를 ‘부수고’, 공간을 ‘비틀고’, 그 타격점 너머에 있는 거인까지 ‘찢어버린다’.

 

인간 한 명이.

 

천년을 묵은 마수를 일격에 찢어버린다.

 

기적을, 만들어 낸다.

 

 

“...”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엘리야가 뭐라 말도 꺼내놓지 못하고 그대로 침묵했다.

 

 

‘...방금 그거, 뭐였지?’

 

 

아득하다.

 

고아하고, 높다.

 

뭐라고 해석이 되거나, 하다 못해 그걸 보고 ‘감탄’할 수준조차 못 된다.

 

방금 다우드의 일격은, 그런 경지에 닿아있는 공격이었다.

 

 

“...어, 저걸, 어떻게...?”

 

 

딱히 저 양반이 그런 쪽을 이전부터 수련했다거나, 대단한 재능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

 

방금 그건, 대체?

 

 

“...선생님, 격투술 쪽에 저 정도로 재능이 있었던가요?”

 

“아니.”

 

 

카사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말을 받았다.

 

 

“저 녀석의 그쪽 재능은 쓰레기야.”

 

“...”

 

“사실 싸움 관련된 대부분의 재능이 쓰레기라고 봐야지. 네가 가진 찬란한 재능의 발 끝도 못 따라올 놈이란다.”

 

 

가차없이 다우드를 폄하하는 대답에, 엘리야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다만, ‘법술’은 잘 다룰 줄 알았다. 그런 녀석이라서.”

 

 

카사가 연초를 길게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자신이 바라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놈이지. 추상적인 말이긴 하지만, ‘의지력’만큼은 일류인 놈이니까.”

 

“...의지력, 이요?”

 

 

보통 사람이라면 포기했을 것이다.

 

뭐든지 알고 있다는 것처럼 행동하는 저 남자라면, 자신의 상대로 저런 괴물이 셋이나 튀어나온다는 것 또한 미리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대로 포기하고, 주저앉고, 스스로의 불운을 탓하며 짓눌려 죽었겠지.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저 남자는.

 

어떻게든, 방법을 짜내었다.

 

일면식도 없는 카사에게 다가와 한참 전부터 이런 상황을 대비했다.

 

물론 저 남자만의 특별한 번뜩임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을 썼는진 모르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란 걸 미리 알고 있다는 사실도 크게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인간 한 명이, 저 수준의 괴물을 ‘박살내고 있다’는 사실을 만들어낸 기저에는.

 

오직 한 가지 사실만이 그 핵심을 감싸고 있다.

 

의지력.

 

자신이 정한 목표를 위해서라면, 결코 물러서지 않는 신념.

 

 

“네가 배워야 하는 게 바로 저런 거란다, 미래의 용사.”

 

 

카사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불굴不屈.”

 

최선의 결과는, 자신이 살고, 주변 사람들 전부가 다치지 않는 것.

그걸 포기하지 않는다.

 

상대가 누구더라도, 상황이 아무리 최악이더라도.

 

최선의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걸, 결코 멈추지 않는다.

 

남이 보기엔 미친 짓이라도, 스스로가 어느 수준으로 망가져도, 우스꽝스러워도, 존엄성이 바닥에 떨어져도, 지탄받고 비웃음당할 일이라도.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는다.

 

신념과 현실을, 타협시키지 않는다.

 

 

“...”

 

 

엘리야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치 홀린 것처럼.

 

‘이상향’을 발견한 사람의 기색으로.

 

절대로 눈을 떼지 않고.

 

 

-...

-...!!!

 

 

하지만, 이내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괴성에, 엘리야가 흠칫하면서 거인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아직 살아있다.

 

 

“저걸 맞고도, 살았어...?”

 

“고대신이란 호칭은 괜히 따놓은 게 아니지. 저거 한 방으로는 안 죽을 거다, 당연히.”

 

 

카사의 그런 말을 듣던 엘리야의 눈이, 문득 다우드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걸 포착했다.

 

팔을 멀거니 보고 있다.

 

정확히는, 그 손목에 걸려 있는 마공학 시계를.

 

 

“그리고 저 놈 성향을 생각하면, 당연히 뭔가를 더 ‘준비’해 놨을 거고.”

 

 

마치, 이맘때쯤 해서 뭔가 ‘일어날 게’ 있다는 것처럼.

 

 

“...그렇지.”

 

 

그리고 다우드가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만나서 반갑다, 야.”

 

 

근처에서, ‘새하얀’ 기운이 확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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