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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129)화 (130/258)

Chapter 129 - 129. 만나서 반가워요

 

 

세라스 에바트리체는 법황 직속의 부관이며,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암약 조직 중 하나인 ‘초승달의 서약’을 이끄는 맹주이자, 뒷세계에서 그 이름만 들어도 전의를 상실할 인간들이 나올 정도로 무지막지한 암살자다.

 

보통 이 정도로 기나긴 직함을 달고 있는 인간은 현장에 나서기보다 뒷짐 지고 현장에서 일하는 인간들이 잘하고 있는지 총괄하는 역할을 맡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그녀도 직접 나서서 누군가를 상대할 일이 생기곤 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인력을 투입하기에는 너무 까다로운 상대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전前 제국 근위대 몇 명이 호위로 붙어있는 대상이라거나.

 

한 명이 모이면 정규 기사 분대 단위의 전력을 내고, 두 명 이상이라면 소대, 셋이 모이면 중대.

 

그런 말이 진지하게 나돌아다니는 게 제국 근위대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가디언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제국 최강의 전력 중 하나.

 

한 명에게 호위로 붙기에는 과다하다 싶을 정도의 인력이다. 어디 난공불락의 던전이라도 토벌하러 가는 인력이라고 봐야겠지.

 

아무리 암살자들이 기습과 대인전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화려한 스펙을 가진 인간들과 직접적인 전투를 치루는 건 틀림없는 부담이다.

 

그러니.

 

그녀가 투입되기에는 딱 알맞은 상황이란 뜻이다.

 

 

“괴, 괴물...!”

 

“...”

 

 

너무 익숙하게 들어서 이제 어떻게 반응할 생각조차 안 떠오르는 말이다.

 

세라스가 무표정하게 그렇게 말하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근처로는 피칠갑이 된 시체가 널려있었다. 방금 전까지 이 뚱뚱한 남자가 하늘이 무너져도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있던 경호원들이었다.

 

개중에는 보통 이들은 대적할 엄두조차 못 내는 제국 근위대 출신 기사들도 끼어있었다.

 

 

”...현역 때랑 비교하면 실망스럽기 그지없을 실력이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세라스가 이런 장면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한 ‘도구’를 옆으로 휙 던졌다.

 

식사용 나이프와 포크.

 

고작 이것만으로, 여기 있는 전원을 학살한 것이다.

 

세라스 에바트리체. 전 대륙에 두 명밖에 없는 [그랜드 어쌔신] 중 한 명.

 

그런 수준에 이른다면, 이런 짓 정도는 어렵지도 않게 가능한 일이다.

 

 

“성황국 내부에서의 밀수, 여러 건의 살인 미수, 그리고 마약 밀매.”

 

 

세라스가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당신. 죽을 이유는 충분하겠지요.”

 

"누가, 누가 보낸거야! 받은 돈의 두 배를 얹어주지!"

 

귀찮다는 한숨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요. 성하께서 지시하신 사항이라서요. 얼마를 주건 당신은 여기서 빠져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서, 성하? 법황? 그놈이! 그냥 내가 사들인 성역 근처의 토지를 집어삼키려고 그런 개수작을-”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뚱뚱한 남성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세라스가 그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기 때문이겠지.

 

동작은 거의 톡 건드리는 수준이었지만, 효과는 경악스러운 수준이었다.

 

 

“...!”

 

 

내부가 순식간에 진탕이 된다. 토악질을 하고, 눈을 까뒤집고, 온 몸에서 피가 줄기줄기 쏟아져 나온다.

 

정확하게 급소 부위의 점혈을 눌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성하를 그 역겨운 입으로 함부로 부르지 마시지요. 당신 따위가 쉽게 부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자의 위로, 세라스의 서릿발같은 목소리가 툭 떨어졌다.

 

 

“죄, 죄송...! 죄송...!”

 

 

말을 제대로 끝마치지도 못한 남자가 바닥에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자, 잠깐, 그래도, 내 말 좀...!"

"유언 정도는 허가해 드리죠. 지껄여 보세요."

"땅은, 땅은 전부 넘길게! 그, 그냥 용서해 달라는 소리도 안 해! 공개 재판을 받겠어!"

 

적어도 법황이 탐내는 성역 근처의 땅을 사들일 수완은 있는 남자인 건 분명했다.

이런 순간에도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재빠르게 파악하고, 포기할 건 그대로 포기할 줄 알다니.

공개 재판을 받겠다는 건 그런 땅 외에도 성황국이 압류하고 싶은 건 전부 다 가져가라는 의미나 다름 없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그냥 죽이는 것보단 그게 더 이득이겠지.

 

세라스도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슬쩍 비틀며 턱을 쓰다듬을 정도였으니까.

 

 

"...흠."

 

 

코웃음을 흘린 그녀가, 이내 바닥에 엎어져서 숨을 몰아쉬는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 앞에 섰다.

 

 

"맞는 말이에요. 당신같이 죽을 죄를 지은 범죄자라고 해도, 따지자면 숨을 붙여두고 그걸 전부 다 가져가는 게 이득이겠죠."

 

 

세라스가 무감각하게 꺼내놓은 말에, 고통으로 얼룩진 남자의 표정에도 잠시 희망이 깃들었다.

 

어쩌면, 정말로 그의 진심 어린 호소가 통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세라스가 활짝 웃으며 말을 받았다.

 

눈은 전혀 안 웃고 있었지만.

   

"제가 알 바는 아니죠, 그게?"

그에 어울리게, 남자의 표정을 다시 절망의 물들이기에 충분한 문장을 내뱉으려던 참이었다.

"왜냐하면, 그냥 내가 당신을 죽이고 싶으니까."

 

"왜, 왜...!"

"성하를 욕보이셨지 않습니까, 당신. 죽을 이유는 그걸로 충분해요." 

 

그렇게 말하려던 남자의 목이 서걱, 하고 가볍게 베였다.

 

세라스가 제자리에 서서 손날을 가볍게 가로로 그은 것만으로 일으킨 현상이었다.

 

 

“...”

 

 

세라스가 고개를 내려 입고 있는 양복에 튄 피를 내려다보았다.

 

고운 미간이 힘껏 찌푸려졌다. 성하께서 자신에게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주었던 복장인데. 이런 임무에서 더럽혀 버리고 말았다.

 

 

“성하께서도 그 정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으실 겁니다.”

 

“...비즐라?”

 

 

한창 언짢은 티를 내던 세라스가,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보았다.

 

비즐라. 초승달의 서약 산하 기관인 ‘퇴마사’들의 수장.

 

아마 원래대로라면 지금 한창 아카데미에서 ‘그 남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야 정상인데. 여기는 어쩐 일이란 말인가?

 

 

“...”

 

 

이어서.

거기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세라스의 안색이 더욱 찌푸려졌다.

 

다우드 캠벨.

 

법황에게 피해를 준 놈 중에서, 유일하게 그녀가 아직까지 죽이지 못한 상대다.

 

성하께서 아직 ‘이용 가치’가 있으니 내버려 두라 하셨기 때문이긴 하지만.

 

 

“법황께서 직접 지시하신 특수 임무입니다.”

 

 

시종일관 언짢은 표정이었던 세라스가, 그 이름을 듣자마자 활짝 피어오르는 웃음을 얼굴에 화사하게 걸었다.

 

 

“성하께서 직접 저한테 지시하셨다구요?”

 

 

흡사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두근거림이 잔뜩 담긴 목소리였다.

 

 

“...”

 

 

물론.

 

온통 피칠갑을 한 상태로 그런 표정을 지으니, 가만히 보고 있던 비즐라는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지만.

 

 

“...예."

 

 

그리고, 마침 우연인지.

 

 

“표정을 보아하니, 관련된 인물을 이미 떠올리고 계신 것 같긴 합니다만.”

 

 

비즐라 역시, 그녀가 방금 떠올린 남자에 대한 말을 꺼내들고 있었다.

 

이어서 그가 품에서 마력 구슬 하나를 꺼내들었다.

 

책상에 앉아 법황이 말하는 모습이 녹음된 물건이었다.

 

 

[곧 때입니다, 세라스.]

 

 

비즐라가 구슬을 작동시키자, 이내 그 안에서 법황이 잔잔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그와 동시에, 세라스가 그 자리에 부복했다.

 

비록 이 자리에 당사자가 없다지만, 자신이 결코 예를 지키지 않을 순 없다는 것처럼.

 

 

[‘낙원’을, 세상에 불러일으킬 때가. 머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슬슬 기반을 다지는 작업에 들어가야겠지요.]

 

“뭐든지 명령을.”

 

[가장 먼저 해야할 건, 혹시라도 계획에 차질이 될 만한 방해꾼부터 없애는 겁니다.]

 

 

그런 목소리가 평탄하게 이어졌다.

 

[특히 악마와 관련된 힘을 자유롭게 다루는 이라면, 재빠르게 치워둬야겠지요. 엘판테에 잠입해서, 그 남자에게 치명상을 입혀주시겠습니까. 죽여서는 안 됩니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니까요.]

 

“그러겠습니다, 성하.”

 

[몇 달 정도 의식 불명일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한... 세 달 정도?]

 

“세 달. 확인했습니다.”

 

 

비즐라가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세라스를 바라보았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마치 대화하는 것처럼 법황의 말에 일일이 반응하고 있다.

 

기괴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장면이다. 마치 아무리 녹화된 영상이라지만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처럼.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럽다는듯이.

 

이 정도면, 거의 광신에 가까운 충성이다.

 

 

“...”

 

 

솔직히, 비즐라는 저 법황이란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속이 시꺼먼 걸 넘어, 보고 있으면 아예 같은 인간을 인간으로 안 본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니까.

 

하지만, 당장 그가 속해 있는 조직의 맹주가 이 정도로 저 남자를 따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 뿐이다.

 

아마 조직 내의 여론도 그의 생각과 비슷하지 않을까.

 

 

“비즐라.”

 

“예, 맹주님.”

 

“엘판테에 잠입할 루트와 시기를 알선해주시겠습니까? 그곳에서 생활하던 당신이라면 잘 알겠지요.”

 

“...”

 

 

하지만.

 

세라스는, 그런 여론을 알고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럴만한 이유도 분명히 있겠지.

 

조직 내에서, 감히 그녀에게 반항할 수 있는 인간은 단 하나도 없을만큼 압도적인 실력이 있으니.

 

전 대륙에 두 명 밖에 없는 그랜드 어쌔신이란 건, 그 정도의 위명을 가진다.

 

 

“...잠입이라면 당장 내일도 가능합니다. 수집한 정보가 맞다면, 그 남자도 그때쯤 돌아올 거구요.”

 

“그럼 기다릴 이유가 없군요. 이동 수단을 준비해주세요. 당장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세라스가, 잠시 침묵하다 말을 덧붙였다.

 

 

“...기대되는군요.”

 

“예?”

“드디어, 그 남자에게, 칼을 꽂을 수 있다니요.”

 

“...”

 

 

아, 그런 거였나.

 

마침내 법황의 적을 무찌를 수 있게 되었다는 황홀감에 젖어있나보다.

 

하지만.

 

그랜드 어쌔신이 고작 학생 한 명을 처리하려고 투입된다고 하면, 다들 경을 찰 것이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는 수준도 아니다. 벼룩 하나 잡겠다고 전술 무기를 때려박는다고 해야 맞겠지.

 

    

‘...글쎄.’

 

 

비즐라가 속으로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다우드 캠벨이란 놈을 살핀 기간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 놈은 변수 덩어리라고.’

 

 

틀림없이.

 

법황과 세라스가 생각하는 것만큼, 일이 만만하게 굴러가지 않으리란건 자명했으니까.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거냐?]

 

 

심각한 표정으로 객실에 앉아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칼리반이 그렇게 말을 던져왔다.

 

 

[너 정도면 한 달 안에 여자 하나 후리는 것 정도는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한 달이 뭐야. 일주일이면 할 수 있는 것 아니야?]

 

“...”

 

 

사람을 뭘로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칼리반을 노려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무슨 일주일이에요.”

 

[그거 의외네. 너라면 틀림없이-]

 

“하루면 충분하죠.”

 

[...]

 

 

할 말을 잃은 칼리반을 내버려 두고, 다시 생각에 빠진다.

 

사실, 페이놀이 나한테 ‘꼬셔달라’고 부탁하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가 하루 안에 녀석을 꼬실 수 있다는 이유도, 딱히 여심을 도사같이 꿰뚫어봐서가 아니라 이게 원작 안에도 있던 전개였으니까 가능한 이야기지.

 

엘리야와 친구로 지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일깨워달라 부탁하는 분기가 있었으니까.

 

 

“...물론, 그 녀석이 정상적인 생물이라는 전제 하에나 가능하지만요.”

 

 

문제는.

 

녀석이 그런 걸 부탁하는 이유가 본인이 ‘죽기 위해서’라는 점이 문제다.

 

애초에 사자 소생이라는 게 그리 쉽게 일어날 리가 없지 않은가.

 

악마는 뭐든지 공짜로 퍼주는 생물은 아니다. 구조적으로 그게 불가능하지.

 

죽었다가 살아난다면, 그 대가로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의미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페이놀이 잃어버린 건.

 

 

“아무것도 못 느껴요, 그 놈.”

 

[...뭐?]

 

“촉각, 후각, 시각, 통각, 청각... 다 잃어버렸어요. 심지어는 감정까지.”

 

 

살아있는 시체.

 

페이놀을 그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문장은 없다.

 

원래대로는, 진짜 숨만 붙어있을 뿐 아무것도 못 하는 좀비 같은 상태가 되었을 확률이 높지만. 놈이 그런 상태인데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건, 그저 달인의 영역에 닿아있는 마력 운용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위장할 뿐이다.

 

숨쉬듯이 사용 가능한 어마어마한 경지의 마력 운용을 통해 오감을 대체하고 있을 뿐이지.

 

하지만, 그런 것까지는 가능해도.

 

‘감정’까지 마력으로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다.

 

치명적인 매력이 놈을 상대로는 발동되지 않는 것도 그래서일 거고.

 

 

“아마, 그렇게 되살아나면서 잃어버린 걸 전부 다시 되찾으면, 자신을 되살린 악마의 금제를 깰 수 있다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차라리 이런 상태로 계속 살아가는 것보다는 다시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오감은 자신의 마력으로 대체할 수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깨울 수 있다.

 

하지만, 감정만큼은.

 

어떻게 해도, 되살릴 수가 없다. 그 점이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악마’ 관련된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꼬셔버리는 내 체질은 그놈에게 유일한 희망이겠지.

 

원작이라면 그쪽과 자주 얽히는 엘리야에게 접근했겠지만, 지금은 적어도 악마 관련된 상호 작용이라면 아득한 상위호환인 내가 있다.

 

 

[...죽기 위해서 꼬셔달라는 이유가 그런 거구만.]

 

“그런거죠.”

 

[그래. 그래서 그 여자한테 다시 감정을 느끼게 해 줄 계획은 있고?]

 

“...”

 

 

있다.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생각나는 게 분명히 있다.

 

 

“...일단 기분을 좀 풀어줘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호문쿨루스 자매.

 

유리아와 루시엔.

 

페이놀의 감정을 일깨우기 위한 첫 번째 스텝은, 그쪽이 시작이다.

 

 

“...”

 

 

아마, 그쪽 기분을 풀어주려면 보통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고.

 

좀 화끈한 이벤트라도 하나 터트려줘야 할 느낌이다.

 

 

[미친 짓 한다고?]

 

“...제가 뭘 거하게 한다고 하면 왜 자연스럽게 그런 뜻으로 알아 들으십니까?”

 

[그럼 니가 여태 한 것 중에 아닌 게 있었냐?]

 

 

할 말이 없긴 해.

 

그래도, 그 자매의 성향을 생각하면 틀림없이 먹힌다.

 

다만.

 

 

“...계획을 진행하는 도중에 이상하고 미친 여자가 꼬이지만 않으면 됩니다.”

 

[어쩐지 네 주변에 있는 여자들 전원을 호박씨 까는 것 같은데?]

 

“...”

 

 

그런 적 없는데.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하여튼.

"그래도 그런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쉽게 마주치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럴 확률이 얼마나 높겠어요."

원래대로는 득달같이 내게 달려들 악마의 그릇들은, 당장은 오히려 전원이 나를 피해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또 새로운 인간이 튀어나오는 게 아니면 그런 방해가 들어올 확률은 대단히 낮단 소리지.

그런 말을 던지며, 하품과 함께 정거장에서 저 멀리로 보이는 거대한 아카데미를 바라본다.

 

 

“...집이다.”

 

 

엘판테를 보고 멍하니 그런 말을 흘린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집은 아니지만, 하루 꼬박 열차 안에 타서 이동하다 보니 진짜 저기가 집처럼 느껴지던 참이었다.

 

열차 안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게 생각보다 되게 고역이라서.

 

 

‘...얼른 들어가서 씻고 좀 쉬자.’

 

 

할 일이 많다고는 해도, 휴식이 없으면 뭐든 될 것도 안 되는 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자니, 열차 안쪽에서 학생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왔다.

 

 

“...우왓...”

 

 

일순 출퇴근 길의 지하철을 연상시키는 무시무시한 인파에, 그런 말을 내뱉으며 나도 모르게 휩쓸린다.

 

농담 아니고,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그대로 주변 사람들의 몸에 의해 알아서 이동이 될 정도다.

 

그리고.

 

이 정도로 빽빽하게 껴있는 인파 사이로, ‘살기’가 느껴진 것도 그때쯤이었다.

 

 

< System Message >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생명에 대단히, 크나큰, 절대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EX등급으로 적용합니다. ]

 

 

느닷없이 켜지는 그런 창에 눈을 크게 뜬다.

 

 

“...?”

 

 

뭐야 이거?

 

지금 이런 타이밍에 이런 게 켜질 일이 있나?

 

 

“...!”

 

 

이를 악물고 주변을 둘러본다.

 

살기는 아직도 느껴진다. 틀림없이 나를 노리고 발해지고 있다.

 

내가 다른 무술의 고수들처럼 기감에 민감한 게 아니니 어느 정도로 가까운지 알아차릴 방법은 없었지만, 이제 겨우 몇 m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는 건 직감적으로 알겠다.

 

하지만, 이 인파의 밀도 때문에 누구인지, 하다못해 어느 방향으로 접근 중인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살기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점점 더. 겨우 한 뼘. 겨우 몇 발자국.

 

근처에 있다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확인할 수 있는 거리.

 

이대로는, 그대로 얻어맞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강제로라도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바닥을 박찰 준비를 하고 있자니.

 

 

< System Message >

 

[ ‘스킬: 절체절명’이 해제됩니다! ]

[ 대상 ‘세라스 에바트리체’가 당신을 보고 머리를 뒤흔드는 충격을 느낍니다! ]

[ ‘스킬: 치명적인 매력’이 발동됩니다! ]

[ 대상의 적의가 사라집니다! ]

[ 대상 ‘세라스’의 ‘호감도’가 개방됩니다! ]

 

“...?”

 

 

그런 창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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