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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147)화 (148/258)

Chapter 147 - 147. 실기 시험 (4)

 

 

진입로로 내려가는 길은 야산 아래로 쭉 이어져 있는 야트막한 비탈길이었다.

 

그 아래로 쭉 내려가는 와중에, 세라스와 페이놀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서로 면식만 간신히 있는 사이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생기는 공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지금 그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그런 말랑말랑한 것이 아니라는 걸.

 

 

“...솔직히 말해볼까.”

 

 

먼저 운을 띄운 건 세라스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는 말이었다.

 

 

“너 이단 심문소 소속이지?”

 

“그쪽은 성황국 출신이구요.”

 

 

문장을 내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오는 응수에, 세라스가 이마를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단 심문소와 성황국은, 이름만 들으면 전자가 후자의 산하 기관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이지.

 

악마를 대하는 태도에서, 두 집단의 태도는 그야말로 극단적으로 갈리니까.

 

이단 심문소는 악마를 상종 불가능한 인류의 주적으로 규정하여 어떻게든 배격하려 하고, 후자는 악마를 ‘유용하게’ 써먹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하니까.

 

특히 법황이 악마 관련된 연구에 천문학적인 돈을 매년 투자하고 있다는 건 패권국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용케도 보자마자 알아봤네.”

 

“소문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법황 근처에서 그쪽을 보좌하는 그랜드 어쌔신 말이죠.”

 

 

그러니, 그런 조직의 구성원들이라면.

 

“무고한 시체들을 만들어 내는 일에 아주 탁월하다고 들었습니다.”

 

“...”

 

 

이런 식으로 소속을 알자마자 칼로 쑤시는 수준의 문장을 뱉는 건 꽤 자연스러운 일이란 뜻이다.

 

세라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꽤 세련된 모욕이다.

 

법황이 자신의 의도대로 그녀를 수족처럼 부려서 사람들을 죽이는 것도 죽이는 거지만.

 

그녀가 충성하는 그의 대의 자체가 완전히 무의미한 것이라 비꼬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나도 얼추 들은 적은 있지.”

 

 

세라스가 날 선 목소리로 응수했다.

 

 

“이단 심문소에서 애완용으로 기르고 있는 악마의 그릇이 있다고.”

 

“...”

 

“비천한 출신이라고 하더라고.”

 

 

페이놀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말에 별다른 타격을 받는 모습은 아니었다.

 

 

“분명히.”

 

 

아마, 세라스가 거기서 한술 더 뜬 건.

 

틀림없이 그걸 보고 부아가 치밀어서 그런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원래라면 결코 발도 들여놓지 못할 마탑에 자신을 거두어 준 스승의 등에도 칼을 꽂았다고-”

 

 

그렇게 말하려던 세라스가 곧바로 단검을 뽑아들었다.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페이놀의 몸에서 살기가 무지막지한 기운으로 치솟아 오르는 걸 감지해냈기 때문이지.

 

 

“...?”

 

 

어이가 없는 건.

 

그런 살기를 발한 페이놀조차 대단히 당황한 기색이라는 점이란 것이다.

 

 

“...느꼈어요.”

 

 

이어서 페이놀이 얼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느껴, 졌어요. 분노가 느껴졌다구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

 

 

뭐지.

 

미치기라도 한 건가.

 

세라스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그런 말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계속 중얼거리는 페이놀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 덕분인가 보죠. 정말, 정말 만나길 잘했어.”

 

 

심지어, 그런 말을 내뱉을 때는.

 

오히려 안심의 기색마저 느껴지는 모습이다.

 

살짝 붉어진 얼굴로 가슴 위에 양손을 올리는 페이놀을 본 세라스가, 어이 없다는 목소리로 한 마디 얹었다.

 

 

“...이단 심문소 놈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가?”

 

“글쎄요.”

 

 

페이놀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한 가지 착각하시는 점이라면, 저는 이단 심문소에 그다지 큰 소속감은 없습니다, 그랜드 어쌔신. 싫어했으면 싫어했지.”

 

“...뭐?”

 

 

그럼 애초에 이런 신경전을 자신이랑 왜 하고 있단 말인가?

 

세라스가 그런 생각을 담아 그녀를 노려보자, 이내 페이놀이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그냥, 당신한테서 보이거든요.”

 

“무슨 소리-”

 

“그 남자 두고 비비적 거릴 인간 중 한 명인 게 눈에 뻔히 보여서요, 당신.”

    

“...”

 

 

세라스가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페이놀을 바라보았다.

 

화가 나고 뭐가 어쩌고 하기 이전에, 이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먼저 나가는 게 맞다.

 

자신이 그 남자에게 집적거린다는 듯이 말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

 

 

그렇게 튕겨내려고 했지만.

 

그런 말과 어울리지 않게 심장이 먼저 지끈거린다.

    

 

“...”

 

 

제발.

 

얌전히 좀 있어라, 이 뭔지 모를 녀석아.

 

그녀가 슬쩍 붉어진 얼굴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건너편에 있는 페이놀이 다 안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불편한 세라스의 심기를 두 배는 더 배배 꼬이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미리 경쟁자를 견제하는 걸로 이해하셔도 좋아요. 당신, 결국 그쪽한테 흠씬 빠지게 될 운명이니까.”

 

“...헛소리를.”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겠죠.”

 

 

페이놀이 평탄한 어조로 답했다.

 

 

“얼마 안가서 그쪽이 어떻게 함락될지 구경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으니까요.”

 

 

적어도, 지금까지 그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그릇은 단 하나도 없었다.

 

 

“...”

 

 

그러니.

 

언젠가는 자신도.

 

그런 생각을 떠올린 페이놀이 살풋 웃고 있자니.

 

 

“...쓸모없는 대화를 한 기분이야, 진짜.”

 

 

세라스가 그렇게 투덜거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무튼 가서 막는 거나 똑바로 하자고. 아무튼 여기까지 왔으면 서로한테 민폐는 끼치지 말-”

 

 

그렇게 말하려던 세라스의 문장이 툭 끊어졌다.

 

근처에서 규칙적으로 땅을 쿵, 쿵, 하고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

 

“...?”

 

 

페이놀과 세라스가 동시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거 무슨 소리야?”

 

“대형 마수 같은 게 갑자기 튀어나올 리도 없을 텐데요...”

 

 

그런 대화가 무색하게, 소리의 진원지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시험장의 진입로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협곡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인원수가 적은 수비조에게 주는 최소한의 어드벤티지라고 볼 수 있겠지.

 

그리고, 마치.

 

그런 지형을 한꺼번에 ‘생략하듯이’, 그들의 머리 위를, 마치 날아가는 것처럼 도약해서 지나가는 인간이 있었다.

 

쿵쿵 울리는 소리의 근원지는 저 인간이 땅을 박찰 때마다 지반이 박살 나면서 나는 소리고.

 

 

“...”

 

“...”

 

 

세라스와 페이놀이 동시에 침묵했다.

 

아니, 물론 그들 수준에 일반 학생 막아내는 건 그답지 어렵지도 않겠지만.

저건 또 뭐란 말인가.

 

 

“...저것까지 막았어야 했나?”

 

“...”

 

 

불행히도.

 

악마의 그릇 두 명조차, 저런 걸 막아낼 정도로 괴물들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

 

 

아니, 어떻게 하고 자시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엘노어와 저 멀리 연단에 있는 재상을 바라본다.

 

이 사람, 지금 국가 귀빈 모셔놓은 자리에서 이런 사고를 치는 건가?

 

 

[...아니, 몰랐을 리가.]

 

 

칼리반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말을 던졌다.

 

그래.

 

나도 백번 동의한다.

 

게임 안에서 보여지는 설리반의 성격은 속에 능구렁이 사육장 수십 개를 차린 전형적인 책략가로서의 모습이다. 저런 웃기지도 않은 변장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는 소리다.

 

즉.

 

여기가 이런 짓을 할 거란 건 저기도 ‘묵인’했다는 의미지.

 

 

“그럼, 가네.”

 

 

그런 말과 함께.

 

 

[ 위기 상황이 감지됩니다. ]

[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수준으로 판단합니다. ]

[ 스킬: 절체절명을 EX등급으로 적용합니다. ]

 

 

자연스럽게 절체절명도 곧바로 EX급으로 틀어박힌다.

 

아니, 이 사람이 진짜로 날 죽일 생각은 없겠지만.

 

그냥 양자 간의 스펙 차이가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난다.

 

아무리 내가 최근에 운동 좀 해서 신체 능력을 끌어올렸다지만, 지금 이 사람은 이 세계관에서 신체 능력으로만 따지면 최강으로 올라갈 사람 중 하나다!

 

 

“...!”

 

 

식겁을 하며 고개를 젖히자, 그쪽으로 엘노어가 가볍게 내지른 주먹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말이 가볍지, 검질 한 번으로 풍경을 바꿔대는 인간의 주먹질이다.

 

 

“저 이거 맞으면 죽을 수도 있는데요, 엘노어?!”

 

“...걱정하지 말게. 특별히 정신만 잃고 끝나는 수준으로 조절했으니까.”

 

 

뾰루퉁한 기색으로 그렇게 쏘아붙인 엘노어가, 이내 입술을 삐죽이며 답했다.

 

 

“...그리고, 엘노어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그 컨셉 아직도 유지하는 거야?

 

대체 어쩌자고 이런 짓을...!

 

 

[뭐긴 뭐야. 니가 하도 요즘에 여자로 주변을 도배 해 놓으니까, 위기감 느껴서 기정사실을 박으려는 거지.]

 

“...”

 

[그냥 화끈하게 한 번 쥐어짜여 주지 그러냐. 남자면 너도 싫지는 않을 것 아니야?]

 

 

남 일이라고 막말하고 있다, 진짜.

 

전에도 말했지만, 내 목표는 결국 나한테 접근해 올 악마 6명을 다 끼고 사는 거다.

 

지금 엘노어랑 그런 짓을 했다간 그 계획이 어디서부터 망가질지 상상조차 안 가거든.

 

순순히 쥐어짜여 줄 순 없지...!

 

 

[...그래도 끝까지 싫다는 소린 안 하네, 너.]

 

 

아니, 솔직히 싫진 않지. 나도 건강한 남자다.

 

엘노어가 솔직히 좀 이쁘냐. 원래대로면 나 같은 인간은 그런 걸 고려하기는커녕 손도 한 번 못 잡아봤을 레벨인데.

 

 

[...]

 

“...”

 

[...내가 이래서 니가 아무리 병신짓 해도 싫어하진 않잖아. 솔직하긴 해서.]

 

‘시끄러워요.’

 

 

아무튼.

 

그러니까, 지금 그냥 순순하게 패배할 수는 없단 말이지.

 

단순히 그런 계획은 차치하고서라도, 시험 성적이 낮게 나오면 설리번 재상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괜히 사서 부스럼 긁을 필요는 없지.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이는 엘노어의 공세를 가진 능력을 총동원하여 회피한다.

 

 

[ ‘스킬: 검사의 집중’을 발동합니다! ]

[ 반응 속도와 정밀함이 상승합니다! ]

 

 

다행히, 절체절명에 이것까지 얹어두니 어떻게든 대응 자체는 가능한 느낌이다.

 

주변 풍경이 엘노어의 공격에 휩쓸려 시시각각 변하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내 몸 건사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이전에 진심으로 날 쪼개려고 드는 유리아도 드리블하면서 도망 다녀본 전적이 있는 나다. 실패해서 막판에 쪼개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때 몸에 익혔던 감각만큼은 유효하다.

 

문제는 변변한 공격 수단이 없다는 건데...

 

 

[너, 그래도 저번에 고대신급 마수하고도 싸워가지고 이기지 않았냐? 그때 가져온 법술이니 뭐니 쓰면-]

 

‘그거 써도 못 이겨요!’

 

 

물론 법술이 합쳐진 격투술의 위력이 가공할 수준이긴 하지만, 그건 상대방이 맞아줄 때나 할 수 있는 이야기고.

 

법술을 모으고 순환시키는 대기 시간도 대기 시간인데,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서는 순전히 내 전투 감각에 의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내 역량은 빈말로라도 평균 수준조차 못 된다.

 

즉.

 

내가 지금 저쪽과의 ‘대결’에서 이길 수단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방법은 하나뿐이다.

 

판을 뒤엎어 버리는 거지.

 

 

‘...아까 당신이 말한 것 속에 해답이 있잖아요.’

 

 

결국, 지금 엘노어가 이런 짓을 벌이는 것도 내가 하도 다른 여자들을 끼고 다니는 것 때문에 조바심을 느껴서다.

 

이 상황을 풀기 위해선, 그쪽 관련해서 접근해야 하고.

 

 

“...”

 

 

주변을 둘러본다.

 

재상 때문에, 이 시험은 유독 ‘보는 눈’이 많다.

 

이전에 내가 엘노어랑 키스했을 때의 반응으로 미루어보면.

 

엘노어는, 높은 확률로 이 점을 대단히 신경 쓴다.

 

 

[...너 또 뭔가 제비 같은 짓 꾸미고 있지?]

 

 

아저씨.

 

단어 좀 순화시켜서 하자, 제발.

 

 

[부정은 안 하네.]

 

“...”

 

[내가 너 솔직해서 좋아한다니까?]

 

 

시끄러.

 

 

 

 

“...”

 

 

높으신 분들의 생각이라는 건 원래 알 수가 없지만.

 

지금 이 설리번 재상의 경우에는 특히나 더 그렇다.

 

콘라드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늘 걸고 다니는 사람 좋은 미소가 여전히 그 얼굴에 걸려있었다.

 

엘판테의 학생회장이 사심을 듬뿍 담아 저런 장난질을 치는 걸 보고도 여전히 저런 표정이다.

 

 

‘...아니, 뭐 이해는 하는데.’

 

 

선후배 사이에 저런 장난질을 치는 정도야 이전에도 몇 번 있던 사례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는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가가 본인이 왔다는 사실을 숨기고 참석해 있다는 게 문제일 뿐이지.

 

 

“...죄송합니다, 각하. 시험이 조금 난잡하군요.”

 

“아뇨, 괜찮습니다. 활기차 보이고 좋은데요.”

 

“...”

 

 

너무 활기차 보여서 문제기는 하지.

 

콘라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거의 인간형 태풍처럼 주변을 휩쓰는 엘노어를 바라보았다.

 

아니, 예전부터 싹수가 보이는 놈이기는 했는데. 지금 저건 그냥 걸어 다니는 생체 병기다.

 

일선에 나가 있는 기사들 중에서는 켄드리드 변경백 정도나 황궁 안의 검성이 아니면 상대하기는커녕 감당조차 못 할 레벨 아닌가.

 

저 다우드란 놈도 학생치고는 말도 안 되는 녀석이라 잘 버티고 있긴 하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죽음을 겨우 비껴나가는 수준이라는 건 여기서도 잘 보이는 바다.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녀석도 한 명 있었고.

 

 

“하, 하하-!”

 

 

다우드 캠벨이 수세에 몰려 여기저기 도망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던 남학생이, 환희에 가득 찬 웃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저 남자가 곤경에 빠지는 모습이 더없이 유쾌하다는 기색이다.

 

“쫄랑쫄랑 도망치는 꼬라지나 보라지! 그러고도 남자냐, 이 병신 같은 녀석!”

 

 

그렇게 말하는 남자를 본 재상이, 이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콘라드에게 질문했다.

 

 

“콘라드 경. 저 남자는 누구죠?”

 

“분명히... 브릭스 체스터군요. 체스터 백작가의 장남입니다. 이번 공격조의 조장이네요.”

 

“아, 그 콘월 근처의? 백작가 중에서는 세가 큰 편이 아니라서 장자가 있다는 건 잊고 있었군요.”

 

“...”

 

 

그래. 이 사람 정도 되면 체스터 백작가 정도야 그냥 존재 자체를 잊어먹어도 되는 수준이긴 하지.

 

그런 인간이 왜 남작가 자제 한 명에게 이 정도로 관심을 쏟는진 모르겠다만.

 

 

“글쎄요. 분위기가 조금... 경박하군요. 나중에 체스터 백작에게 일러둬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설리번의 황금색 눈동자에, 일순 냉기가 깃들었다.

 

 

“...”

 

 

콘라드가 말없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물론 지금 저 녀석의 행태가 객관적으로도 보기 좋진 않지만.

 

아까부터 느끼는 건데.

 

이 여자, 다우드 캠벨을 ‘검증’하러 왔다는 것치고는 노골적으로 저길 편드는 느낌 아닌가?

 

대체 뭐 하러 온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눈앞의 다우드 캠벨은 점점 더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간신히 깃발 근처에서만 도망다니던 것도 슬슬 몰려나가는 형국이라, 그 사이에 브릭스가 그걸 탈취하러 그 근처로 접근하는 모습이다.

 

공격대 조장인 저 녀석이 깃발을 탈취하면 시험은 그대로 종료다. 수비조에 가혹한 수준의 감점이 들어가겠지.

 

 

“그래, 그거야! 그놈을 완전히 박살 내버리라고! 쓸모 있잖아, 신입생! 갑자기 와서 공격조에 포함 시켜 달라고 했을 땐 그냥 정신이 이상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 근처까지 도달한 브릭스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야.”

 

 

그 몸이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다우드가 그의 턱주가리를 그대로 돌려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따위로 말하지 마. 죽기 싫으면.”

 

"..."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콘라드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실소를 흘렸다.

 

지금, 저 놈.

 

뭔가 저런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친 느낌 아닌가?

 

저런 짓을 할 거면 진작에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콘라드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속으로 한숨을 내뱉고 있자니.

 

“내 여자한테 그따위로 말하면, 다음엔 죽인다. 알겠어?”

 

 

그런 말이 이어졌다.

 

평소에 저 녀석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 지 대충 알고 있는 콘라드로서는 웃음이 터질 만 치 형편없는 연기겠지만.

 

그걸 들은 학생회장의 맹공이 뻣뻣하게 멈춰 서고 있었다.

 

 

“...다우드?”

 

“예.”

 

“내 여자라니, 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게 무슨-”

 

 

그런 대화가 이어지는 걸 본 콘라드가 이내 속으로 탄식했다.

 

 

‘...저걸 노린 거였나.’

 

 

이빨을 잘 까기 위한 최적의 스테이지를 마련하기 위해 지금까지 브릭스를 내버려 둔 건가.

 

물 찬 제비 같은 놈이다. 어떻게 저 상황에서 저런 걸 계속 준비하고 있었지.

 

그가 속으로 낄낄거리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콘라드 경.”

 

 

등골이 쭈뼛 서는 목소리가, 옆에서 날아왔다.

 

여태 설리번의 얼굴에 온화하게 걸려있던 웃음이.

 

일거에, 싹 가셔 있는 모습이었다.

 

 

“내 여자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이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

 

 

그리고, 그걸 듣자마자 콘라드가 직감했다.

 

아.

 

이거, 뭔가 아주 단단히 꼬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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