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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149)화 (150/258)

Chapter 149 - 149. 초대 (2)

 

“...또 왜, 또 왜, 또 이런 일을 또 왜...!”

 

“...”

 

 

정신 차려라.

 

눈앞에서 이성을 잃고 중얼거리는 아탈란테를 보고 있으니 그런 말이 자동으로 떠올랐지만,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스트레이트로 그런 말을 꽂기는 힘들었다.

 

왜냐하면 나도 지금 이게 당최 뭔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가니까.

 

 

“제국의 재상이 일언반구도 없이 아카데미에 쳐들어온 것부터가 이미 재앙인데, 당신은 왜 또 거기에 엮여서...!”

 

“...딱히 제가 엮이고 싶어서 엮인 건 아닌데요.”

 

 

음울한 목소리로 답한다.

 

 

“제가 가만히 있어도 저한테 들이받으셨습니다.”

 

“...예?”

 

 

아탈란테가 거의 숨을 멈춘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상상도 하기 싫은 가능성 하나를 떠올렸다는 기색이다.

 

 

“설마 그분도 악마의 그릇이라거나 하는 소린 아니겠죠?”

 

“그건 아닐걸요.”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확실하다.

 

악마의 그릇이라면 애초에 ‘선역’으로 지정이 될 수가 없다. 시스템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일이지.

 

 

“...”

 

 

근데, 그러면.

 

여러 번 말했지만, 대체 그쪽이 왜 나한테 그런 행동을 보여 주는지에 대한 단서를 유추하는 게 한 없이 불가능하다.

 

접점조차 없는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행동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아무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재상 각하는 지금 당신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게 분명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아탈란테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녁 식사에 초대 받으셨다구요. 트리스탄 공녀와 함께.”

 

“예.”

 

“옷은 제가 준비해드릴 테니까, 제가 에스코트 해드릴 때까지 조용히 응접실에 대기하고 계시죠.”

 

 

아탈란테가 엄중한 목소리로 경고하듯 그렇게 말했다.

 

내가 투쟁의 용광로에서 저지른 그 사고들도 어떻게든 다 커버했던 사람치고는 유난히 강하게 반응한다 싶지만, 확실히 ‘대족장’과 ‘재상’은 그 무게감이 다르다.

 

 

‘...공화정의 수반과 중앙 집권 국가의 권력자는 무게감이 다르기는 하지.’

 

 

나라 단위로 비교하면 부족 연합이나 제국이나 거기서 거기겠지만, 그건 기술 수준의 차이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점이고.

 

바꿔말하면, 제국은 거의 SF수준에서 놀고 있는 부족 연합의 기술력과 수를 맞춰 갈 수 있을만큼의 압도적인 인력과 자원을 들고있단 뜻이다.

 

그걸 말 한 마디로 부릴 수 있는 게 재상과 황제고.

 

 

“이번에는, 크게 사고 치시면 진짜로 제가 못 지켜드립니다. 얌전히 계셔야 해요. 아시겠죠?”

 

“...”

 

 

누가 보면 내가 다니는 곳마다 사고만 치고 다니는 미친 놈처럼 보이겠-

 

 

‘...흠.’

 

 

그거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긴 하네.

 

적어도 지금까지의 내 행적을 돌이켜보면 빈말로라도 저거에 부정하긴 힘들다.

 

좋아. 이번에는 얌전하게 밥만 먹고 돌아오겠다고 아탈란테에게 약속-

 

 

“여기 계셨군요, 다우드 캠벨!”

 

 

그런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총장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인간이 있었다.

 

페이놀이다. 답지 않게 급한 기색이기도 하고.

 

 

“...페이놀 라이펙?”

 

 

아탈란테도 상대방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반 학생이 이렇게 총장의 집무실을 느닷없이 박차고 들어오는 것 자체가 기괴한 상황이겠지만, 아탈란테도 이 녀석이 이단 심문소 소속이라는 건 얼추 알고 있는 모양이다.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순수하게 용건을 질문하는 쪽으로 넘어가는 모습만 봐도 그렇지.

 

 

“여긴 어쩐 일로...?”

 

“그 저녁 식사, 저도 가겠습니다!”

 

“...”

 

 

아탈란테가 미친 듯이 마른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딱히 말리고 싶은 생각이 안 들기도 했다.

 

내가 얌전히 있겠다고 선언하니, 이제 주변에서 제 발로 사고가 찾아오는 느낌이었으니까.

 

 

 

[항상 생각하는 건데, 너랑 다르게 네 주변 여자들은 다 화끈하네.]

 

“...”

 

[그 뭐냐, 아예 다 같이 모아놓고 천하제일 악마 대회 같은 것도 한번 해 보지 그러냐. 제일 강한 놈이 니 초야권을 획득-]

 

“...닥쳐봐요, 좀.”

 

 

아저씨.

 

내가 당신한테서 딱히 성기사로서의 위엄이나 존경스러운 멘토의 모습을 바라진 않는데.

 

우리 제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지키자.

 

부탁이야.

 

 

[너나 나나 어차피 이제 인간도 아니잖아.]

 

“...”

 

 

그건 그렇네.

 

한숨을 내쉬며 가슴팍을 내려다본다.

 

내 종족을 절찬리에 변경 중이신 타천의 인장이 자리 잡은 위치다.

 

 

“조금 이따가 발작하면 안 될 텐데...”

 

[발작은 무슨 발작?]

 

“그릇이 두 명이나 있잖아요.”

 

 

그것도 최강의 악마를 품은 그릇이랑, 현 시점에서 가장 융합도가 높은 그릇 두 명이.

 

사고라도 일어났다간 걷잡을 수 없어지는 조합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저 멀리에서 시끌시끌하게 식사 준비가 준비되고 있는 건물을 바라본다.

 

아마 다이닝 룸에는 엘노어와 페이놀이 미리 대기중일 거다. 나는 조금 나중에 합류할 예정이고.

 

 

[그런데 너는 왜 나중에 합류하냐?]

 

“절차하고 격식이 그렇대요.”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주역은 제일 나중에 입장한다나.”

 

[그래, 그런 절차는 나도 아는데. 그러면 재상이 제일 나중에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왜 네가 제일 마지막이야?]

 

“예. 저하고 재상님이 입장하는 순서가 같대요.”

 

[...]

 

 

칼리반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 사람도 나름 황궁 안에서 근무했던 가디언이니 거기에 숨어있는 의미 정도는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동시에 입장하는 건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나 하는 것 아니냐?]

 

“...그렇죠.”

 

 

말하자면 거의 주변에 윽박지르는 급이다. 이 사람이 내 파트너니까 침 바를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아마, 엘노어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주듯이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경향이 꽤 강하겠지.

 

 

[...너 무슨 페로몬이라도 뿌리고 다니냐?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 말에 나도 말없이 머리만 쓸어 넘긴다.

 

아무리 아카데미의 고즈넉한 건물 한 곳에서 일어나는 개인 행사라지만, 사람 눈이나 귀라는 건 어디에든 있다.

 

분명히 소문이 퍼져나가겠지. 염문이라고 부를 정도의 내용으로 가공되어 곳곳에 흩뿌려지는 것도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나도 몰라요. 애초에 그 사람도 진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데.”

 

[하지만 그쪽은 알고 있는 기색이었지, 아마?]

 

“예?”

 

[이전에도 널 여러 번 만난 분위기였다고.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칼리반의 말에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긴다.

 

동의할만한 말이다. 일관적으로 그런 ‘티’를 내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이니까.

 

 

[그런데 거기에 짚이는 게 없다는 거, 확실하냐?]

 

 

칼리반의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무슨 뜻이에요?"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놈이 이전에도 한 놈 있었잖아. 너랑 별로 마주친 적도 없는데 익숙하단 분위기를 내던 녀석.]

 

"..."

 

 

무슨 소린지는 알 것 같다.

 

항상 가면을 쓰고 있는 어떤 음침한 여자 한 명을 지칭하는 게 분명하지.

 

 

[그런데, 너도 그쪽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다는 티야 계속 냈잖아. 그 정체에 대해서도.]

 

"...그냥 짐작 가는 정도입니다."

 

 

다만.

 

만약 내가 짐작하는 녀석이 진짜로 선각자라면.

정확히는.

그 녀석이 나중에 진짜로 선각자로 '변하는' 거라면.

 

재상이 나를 아는 것도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무슨 소리야?]

 

 

내가 아니라 ‘다른 시간축’의 다우드 캠벨을 만났을 수도 있단 소리지.

 

회색 악마가 나를 볼 때마다 하는 소리도 그렇고. 선각자도 그렇고. 심지어는 푸른 악마까지.

 

일관적으로 해온 소리가 있었으니까.

 

녀석들이 만난 ‘다우드 캠벨’이, ‘내가 처음’이 아니란 느낌이 드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다.

 

재상도, 가능성이 있다면 아마 그런 부류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니가 기억 못하는 과거 시점에서는 너 아무도 못 만날 정도로 골골댔다며?]

 

“과거가 아니면 미래겠죠.”

 

[뭐?]

 

“악마 단위라면 시공의 법칙도 절대적인 게 아니라구요, 칼리반.”

 

 

푸른 악마도 한 번 입증해준 이야기다. 악마에게는 시간축이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흘러간다고.

 

마치 ‘미래’를 알고 있는 언행을 여러 차례 보여준 적이 있으니 설득력도 생긴다.

 

 

[...그러면.]

 

 

칼리반이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재상이 미래에서 오기라도 했다는 거냐?]

 

“...지엽적으로 말하면 그런 말도 맞는데요. 그보다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답한다.

 

 

“뭔가가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반복된다고? 뭐가?]

 

“세계가요.”

 

[...?]

 

 

소울 링커 안에서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기색의 침묵이 날아왔지만, 난 이것 이상으로 더 나은 설명을 찾을 수가 없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가설로 세운 이 세계의 ‘진실’은 그 정도로 축약하는 게 제일 적당하다.

 

 

“뭐, 저도 확실하게 파악한 건 아니라서요. 당장은 그냥 미래에서 뭐가 왔다는 정도로 이해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뭔가 니가 나한테 뭘 가르치는 느낌이라 열 받는데?]

 

 

가르치긴 무슨.

 

당장은 나도 그냥 어렴풋이 느낌만 받고 있을 뿐이다.

 

내 경험과 기억을 반추해도 결코 이렇게 될 리가 없는 현상들이 발생하는 건, 시간축이 뒤틀려서 일어나는 문제들이라고.

 

다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요.”

 

 

그런 현상의 ‘원인’이 되는 존재가 뭔지는 알겠다.

 

당장 내 주변에 존재 자체만으로 시공을 뒤틀어버리는 괴악한 녀석이 하나 있지 않은가.

 

 

[...회색 악마.]

 

“예.”

 

 

미래에서 뭐가 오고, 세계가 반복되고, 뭐가 어찌되었건.

 

전부 그 녀석이 연관되어 있다.

 

애초에 이 세계관에서, 그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도 그 녀석밖에 없고.

 

 

“...”

 

 

글쎄.

 

그럼 대체 그런 짓을 ‘왜’ 저질렀냐가 또 핵심적인 화두로 부상한다.

 

대체 미래에 무슨 일이 있길래, 지금 시점의 나만 보면 악마들이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고, 회색 악마는 시간축을 통째로 뒤틀어버렸단 말인가.

 

‘나’를 중심으로, 나중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모르겠다.’

 

 

현재로선 단서가 너무 부족하다.

 

일단은 당면한 문제에 집중해야겠지.

 

 

“...그럼에도 그 재상님 문제는 그대로인데요.”

 

 

그럼 그런 가설 내부에서도, 결국 문제점이 하나 생겨난다.

 

적어도 그런 가설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결국 어떤 경로로든 ‘악마’와 얽힌 것들 뿐이다.

 

선각자는 악마 숭배자들의 수장. 회색 악마나 푸른 악마는 애초에 악마 본인들.

 

그러면, 그 재상님은.

 

도대체 어디와 무슨 연결점이 있어서 그런 현상에 포함되어 있단 말인가.

 

그런 주제를 중심으로 상념에 골똘이 빠져있자니, 문득 귓가를 다른 이의 목소리가 간지럽혔다.

 

 

“여기 있었군요.”

 

“아, 총장님. 기다리다가 목이 빠지는 줄 알았-”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그대로 자리에 딱딱하게 굳는다.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아탈란테가 아니었으니까.

 

황금색의 눈동자를 마주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기립한다.

 

 

“...재상 각하?”

 

“데리러 왔습니다, 다우드 캠벨.”

 

“...저, 각하, 이런 건 사용인을 보내셔도 충분-”

 

“그럴 수가 있나요.”

 

 

살풋 웃은 재상님이, 이내 성큼성큼 다가와 내 팔을 잡아챘다.

 

자연스럽게 양팔을 서로 고리처럼 걸어버린다. 겨드랑이까지 꽉 붙여서 완전히 밀착한 형태다.

 

 

“당신을 맞이하는 건데요, 다우드.”

 

“...저, 재상님.”

 

 

일단 한 가지 확실한 점.

 

이런 꼴로 회관에 입장했다간 엘노어 그대로 폭주한다. 게임 오버 직행길이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제 신분에 너무 과한 처사인 것 같습니다. 약간 거리를 두시는 게-”

 

“...떨어지라구요?”

 

 

하지만.

 

설리번의 목소리에 온도가 확 내려갔다는 걸 깨닫자마자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아, 이거 말 잘못했다. 그런 느낌이 절로 뻗쳐오른다.

 

 

“이번에도, 당신과 떨어지라구요?”

 

“...”

 

 

이어서 등골에 흐르는 냉기도 잊어버릴만한 문장이 머릿속을 두들긴다.

 

 

‘...이번에도라고?’

 

 

이 사람.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지.

 

그리고.

 

그 눈동자를 마주치자마자.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이 사람과 악마와의 ‘연결 고리’가 뭔지.

 

 

< System Message >

 

[ ‘타천의 인장’이 미약하게 반응합니다! ]

[ 대상 =Removed object=에 반응합니다! ]

 

 

이 정도로 가까이 밀착해서, 그 눈동자에 넘실거리는 ‘기운’은, 틀림없이 나도 알고 있는 분위기니까.

 

이 사람, ‘그릇’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내가 마주쳐 온 악마의 그릇과는 전혀 다른 형태지.

 

 

[무슨 소리야?]

 

‘...그릇이긴 한데.’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반문하는 칼리반에게 식은땀을 흘리며 말한다.

 

 

‘악마의 조각이 없어요.’

 

[...뭐?]

 

‘조각이 없고, 권능만 남아있어요. 마치...’

 

 

뒷말은 차마 잇지 못한다.

 

다만, 칼리반이 그 문장을 끝마쳐준다.

 

 

[...본인이 악마 ‘그 자체’인 것처럼?]

 

“...”

 

 

정확하게, 그런 느낌이다.

 

대체, 뭐야.

 

그런 느낌에 식은땀을 흘리며 재상님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럼.”

 

 

설리번이 싱긋 웃었다.

 

 

“들어갈까요?”

 

 

재상님이, 황금색 눈동자로 미려한 곡선을 그리며 그렇게 말했다.

 

아름다운 웃음이었다.

 

악마의 유혹처럼 느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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