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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157)화 (158/258)

Chapter 157 - 157. 오랜만이죠?

 

 

“...하여 용사 선발의 룰은 다음과 같이 진행될 겁니다.”

 

 

넘겨받은 서류를 읽고 있자니, 아탈란테가 그런 말을 던져왔다.

 

 

“시작으로는 엘판테, 다음으로는 투쟁의 용광로, 마지막으로 성검이 비치되어 있는 성황국의 대신전까지 거치는 일정입니다. 각 아카데미에서 후보들은 그 아카데미에서 준비한 시련들을 통과하게 될 거 구요.”

 

아탈란테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내가 기억하는 선발의 진행과 같았으니까.

 

 

“각국에서 입후보한 대상은 두 명씩, 그리고 그들을 보조하는 수행원이 하나씩 따라 붙습니다. 전승대로죠.”

 

 

전승, 이라는 거창한 말이 붙는 이유라면 역대 모든 용사들은 한 번도 혼자서 활동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그들 옆에는 그들을 보조하는 인간이 고정적으로 있었으니까.

 

물론 많은 역할이 부여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용사가 활동할 수 있도록 부차적인 활동만 수행하는 정도.

 

게임으로 따지면 플레이어의 펫 같은 느낌이랄까.

 

원작에서는 용사 파티의 누군가가 맡아야 할 역할이지만, 지금은 내가 꿰찬 자리다.

 

 

“법황이 직접 행차하지는 않지만... 참관으로는 성황국의 대주교, 부족 연합의 족장 한 명, 그리고 엘판테에서는 황제 폐하가 직접 행차하십니다.”

 

“...폐하가 직접이요?”

 

 

아무리 봐도 급이 안 맞는데.

 

대주교에 족장이면 이쪽에서는 명목상으로는 설리번 재상이 참관해야 급이 맞다. 그런데 황제가 직접 온다는 건.

 

 

“...그분께서도 정치적으로 위험을 감수하시는 거죠.”

 

 

총장님이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본인의 영향력이 사실상 재상보다 아래라는 걸 공적인 자리에서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

 

 

그래. 본편 진행을 생각해봐도 황제는 항상 재상에게 밀려 별다른 영향력을 떨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걸 공적으로 드러내는 수치를 감수하면서까지 여기에 참관하는 이유가 뭔지가 중요한 거지.

 

 

“...혹시 저 때문입니까?”

 

“당신은 눈치가 빨라서 좋다니까요.”

 

 

아탈란테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수긍했다.

 

 

“...어떤 방식으로 그러시는 건 진 모르겠지만, 폐하께선 당신에게 지대한 기대를 걸고 계신 모양입니다. 그런 억지를 부려서라도 당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시는 걸 보니.”

 

“...”

 

 

황제는, 누누이 말했지만 메인 시나리오에서 핵심축을 맡는 인간 중 한 명이다.

 

그것도 엘노어의 인격이 최종 보스로 각성하는 챕터에서 말이야.

 

엘노어의 정신을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버팀목은 어릴 때부터 친분이 있던 베아트릭스와 황제 두 명이다.

 

기드온도 나중에 그렇게 자신을 배척한 ‘진의’를 알게 된 이후론 관계가 회복되지만, 적어도 당장은 그렇지.

 

 

“...실망시켜 드려서는 안 되겠군요.”

 

 

그러니 되도록 그쪽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게 좋을 것이다.

 

자신도 있다. 아무튼 용사 선발의 진행은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본 바로는 게임 안의 흐름과 크게 엇나간 게 없었으니까.

 

다만.

 

유일하게 마음에 안 드는 점이라면.

 

 

“...성황국에서 어깃장을 놓을 가능성은?”

 

“무조건 아니겠습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오는 아탈란테에 대답에 한숨을 내쉰다.

 

세라스를 투입 시킨 것만 봐도, 그쪽은 ‘내 성장’에 대해 무진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용사 선발같은 초대형 행사에 내 이름이 낀다면 그 양반들이 수작을 안 부릴 리가 있나.

 

 

“예상되는 공격 수단이라도 있습니까?”

 

“아마... 당신의 ‘정통성’을 의심하려고 하겠죠. 당신은 제가 어떻게든 무리해서 급조하다시피 끼워 넣은 인간이니까요. 용사 선발이란 대행사에 참여하기에는 검증이 덜 되었다고 주장할 겁니다.”

 

 

그거라면 막을 방법도 별로 없는 공격법이다.

 

솔직히 내가 이미 학생 수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위업을 여러 번 세웠다만, 결국 ‘악마’와 ‘용사’ 관련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건 성황국이다. 그쪽에서 까라면 누구든 까야하지.

 

아탈란테가 한숨을 폭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물며 루미놀 대주교는 성황국 뿐만 아니라 전 대륙적으로 신앙의 증명으로 ‘기적’을 여러차례 선보인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이 직접 그런 정통성을 의심한다면 선발에 당신이 참가하는 건 꽤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거 좀 골치 아프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서류를 팔락팔락 넘긴다.

 

루미놀 대주교. 중년 남성. 기색은 평화로운 얼굴이지만 법황놈 수하 아니랄까 봐 얼굴에서부터 흑막의 기운이 펄펄 풍긴다.

 

확실히, 아탈란테의 말대로 사제로서는 높은 경지에 닿은 인간인지, 고인물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고급 스킬로 취급당할 만한 기적을 여러 개 부렸다는 기록이 여러 개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특기로 부리는 기적은...

 

 

“...”

 

 

그 항목을 보자마자.

 

내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뭡니까, 그 음흉한 웃음은.”

 

“보니까, 오히려 이 사람이 안 오면 더 문제가 되겠는데요.”

 

“...예?”

 

“제 입장에선 이 사람이 더 좋거든요.”

 

 

수작질을 거기만 부리라는 법 있나.

 

그쪽에서 작업을 치려고 보내는 인간 말이야.

 

공교롭게도.

 

나도 수작질을 부리기 딱 좋은 타입의 인간이다.

 

 

 

 

엘판테는 황립 아카데미란 이름에 걸맞게 항상 소란스러운 장소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 학원 전체에 들끓는이 소란스러움은 보통이 아니다.

 

옆에 서 있는 엘리야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용사 후보들을 일렬로 죽 세워놓고

 

제국 최고의 명절인 만월제와 추수제와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 수준의 인파가 주변에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우와, 이거 장난 아니네요.”

 

“긴장되냐?”

 

“이만한 사람을 두고 긴장이 어떻게 안 돼요.”

 

 

진짜 커다란 행사라는 게 느껴지긴 한다.

 

고작 며칠도 되지 않아서 이 거대한 아카데미 전체에 ‘시련’으로 이용될 온갖 시설을 뚝딱뚝딱 설치한 걸 보니 참으로 그렇다.

 

 

‘...다들 신나 있네.’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악마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을 곧이 곧대로 밝힐 수는 없으니까, 지금 이 행사는 대외적으론 ‘용사 후보 중 1위’를 겨루는 국가 대항전 같은 느낌으로 홍보된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거의 스포츠 경기 비슷한 느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손으로 온기가 팍 파고 들어온다.

 

흠칫해서 돌아보니 엘리야다.

 

눈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트린 표정으로, 양손을 내 손 위에 포개고 있다.

 

 

“긴장되니까, 잡아주세요.”

 

“...뭐?”

 

“선생님하고 이렇게 손잡고 있으면 안심되거든요.”

 

“...”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만월제 축제 때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엘노어의 손을 이렇게 잡은 적이 있던가.

 

차이점이라면 그때는 내가 먼저 엘노어의 손을 잡았고.

 

지금은 이 녀석이 내 손을 낚아채듯이 잡았다는 것에 있다.

 

이쪽이, 거기에 비하면 훨씬 저돌적이란 말과도 비슷하겠지.

 

 

‘...하나하나 다 대조된단 말이야.’

 

 

누가 숙명의 적수 아니랄까봐, 이런 사소한 점에서까지 그런 게 티가 나나.

 

 

“...안 되나요?”

 

 

내가 말없이 녀석을 쳐다보자, 엘리야가 그런 말을 던졌다.

 

얼굴이야 배시시 웃고 있지만.

 

이어서 살짝 긴장된 목소리로 물어보는 걸 보면 본인도 꽤 용기 내서 한 짓인가 보다.

 

 

“...사람들 앞에 나가기 전까지만.”

 

“...에헤헤.”

 

 

녀석이 실없는 웃음소리를 내며 아예 내 팔 한쪽을 와락 끌어안았다.

 

거기까지 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 이미 허락한 김에 그냥 내버려 둔다.

 

 

[...죽...여줘...]

 

“...”

 

 

이 인간은 또 왜 이래.

 

 

[내 여동생이 다른 남정네한테 아양떠는 모습을 직관해야 한다니, 이런 개 씹...]

 

‘...엘리야가 아까워서 괴로운 겁니까?’

 

[그냥 생리적으로 토할 것 같아...]

 

‘...’

 

 

몸도 없는 양반이 뭐라는 지 모르겠다.

 

사실 오빠 입장에서 여동생이 그러고 있는 거 보면 공감이 가긴 한다.

 

약간 애완용 망둥어가 꽃치장하고 애교 부린다고 몸 비트는 걸 보는 그런 느낌에 가깝지 않을-

 

 

“...이상한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 선생님?”

 

“...”

 

 

얘도 눈치가 좀 귀신 같다.

 

일부러 관심을 꺾기 위해서라도 화제를 전환한다.

 

 

“그런데, 너 용사 되려는 이유가 오빠 때문이라고 안 했냐?”

 

“그랬죠?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꺼내세요?”

 

“아니, 생각해보면 이루려는 목표에 비해 수단이 너무 어마어마하잖아.”

 

 

그냥 오빠를 찾고자 한다면 용사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정보를 수집하는 게 정상 아닌가.

 

 

“...음. 그건 이미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봤는데요.”

 

 

엘리야가 살풋 웃었다.

 

다만.

 

언제나처럼 꽃이 피는 것처럼 상쾌한 웃음이 아니라, 살짝 자조마저 섞여있는 그런 씁쓸한 웃음이다.

 

 

“...제가 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안 되더라구요. 뭐든 간에.”

 

“...”

 

“엘판테에 온 것도 오빠가 여길 다녔으니까 그 흔적이라도 조금은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입학한 건데, 별 성과도 없었구...”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엔, 짙은 피로와 얕은 절망이 깃들어 있었다.

 

내가 여기저기 바쁘게 쏘다니는 동안, 아마 이 녀석도 고충이 많았겠지. 남는 시간은 거의 다 오빠의 흔적을 찾는데 투자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니까, 할 거면 대외적인 수단에 기대는 것밖에 안 남아서요, 이제.”

 

“대외적인 수단?”

 

“용사라면, 유명한 거잖아요. 전 대륙에 퍼질 정도로. 굳이 제가 찾지 않더라도 오빠가 날 찾아올 수 있을 정도면, 그래도 소식은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다시 배시시 웃는 녀석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본다.

 

사실, 허황된 말이다.

 

아마 이 녀석같은 개인적인 이유로 용사 선발 같은 위험한 행사에 목숨 걸고 나올 인간은 별로 없지 않을까.

 

다들 어마어마한 사명이나 신념, 적어도 국가 단위의 권익을 걸고 선발에 출전하겠지.

 

 

“...”

 

다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절박하단 소리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동기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를 만큼.

 

유일하게 남은 피붙이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단 소리겠지.

 

소울 링커 안에서 칼리반이 침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인간, 아닌 척 해도 엘리야가 이런 소리를 말할 때면 늘 입을 다문다.

 

그 끝에 가서 발견하게 될 건, 결국 자신의 죽음이니까.

 

 

“...”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다.

 

내가 하는 건, 그때 이 녀석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쳐 주는 거고.

 

따라서.

 

 

“...그거라면 생각보다 일찍 하게 될 수도 있을 걸.”

 

 

언제나의 루틴이다.

 

내 특기는, ‘압축’이다. 원래대로는 한참 뒤에나 얻을 수 있는 성과를 훨씬 앞으로 당겨오는 것.

 

그러니까.

 

 

“예?”

 

“너, 유명해질 거야. 당장 오늘만 지나가도.”

 

 

진행은, 빠를수록 좋다는 말이다.

 

적어도 지금 이 ‘개최식’ 이후로, 엘리야는 전 대륙에 얼굴이 팔릴 유명 인사가 될 것이다.

 

적어도 이 녀석이 원하는 일을 막힘 없이 할 수 있을 정도의 권위를 줄 정도로.

 

 

“...?”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물음표를 박은 엘리야에게 피식 웃어주며, 연단 위로 걸음을 옮긴다.

 

 

[제국, 엘판테 소속, 용사 후보 1번 입장합니다!]

 

 

진짜 스포츠 경기 같네. 사회자 비슷한 것까지 배치되어 있다.

 

청코너에서 입장하는 선수를 소개 중인 느낌의 멘트를 들으며 연단 위로 올라선다.

 

 

‘...어마어마하네.’

 

 

이 행사를 참관하기 위해 각국의 대표로 나온 사람들이 각각 사방에 베일을 쳐둔 좌석에 앉아있다.

 

여기 있는 인간들이 모두 각국을 대표해서 나온 인사들이다. 말 한마디로 대륙의 판세가 뒤바뀔 수도 있는 인간들.

 

 

“...”

 

 

그중에서도, 가장 정중앙에 놓인 좌석을 슬쩍 바라본다.

 

제국의 현 황제. 세실리아 11세.

 

끝까지 침묵을 지키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지만.

 

그 시선이, 말없이 나에게 짧게 박혔다가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

 

 

그리고.

 

짧지만, 깊은 접촉이라는 것 또한 분명히 알겠다.

 

확실히 느껴지는 사실 하나.

 

이 사람, 진짜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날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거다.

 

 

“잘 왔다. 엘리야 크리사낙스. 다우드 캠벨.”

 

 

익숙한 목소리에 오른쪽을 돌아본다.

 

부족 연합에서 나온 족장 쪽이지.

 

우타드 한-차이. 용사 파티의 일원인 루카 한-차이의 아버지.

 

이 사람이 대표로 파견된 모양이다.

 

 

“다른 후보들도 곧 입장할 테니, 잠시만 기다리는 게-”

 

“미안하지만, 족장님. 이들을 이 자리에 마냥 대기시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태클 안 걸면 섭하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그런 말이 나온 쪽을 돌아본다.

 

루미놀 대주교.

 

성황국을 대표해서 나온 인간이다.

 

베일 안에서 자신의 성물을 쓰다듬으며 내 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대주교? 제국에서 선발한 용사 후보에 불만이라도 있다는 뜻인가?”

 

“아, 오해 마시길. 후보 쪽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말한 루미놀 대주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수행원’ 쪽에는, 불경한 기운이 감지되는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루미놀 대주교. 근거 없는 의심은 삼가게.”

 

“근거 없는 의심이 아닙니다.”

 

 

이어서.

 

대주교의 성물이 신성한 빛을 내뿜었다.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관중들이 웅성거릴 정도로.

 

 

“당장, ‘이분’께서 제가 어째서 그런 기운을 느꼈는 지 증언해주실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내 앞으로, 공간이 찢어지는 포탈이 열렸다.

 

단순히 공간이동용이 아니다.

 

차원과 차원 사이에 잠깐이나마 ‘틈’을 낸 거지.

 

이어서.

 

그 안쪽에서, 좌중을 압도하는 존재감의 ‘뭔가’가 걸어나온다.

 

 

“...”

 

“...”

 

 

그리고 그 모습에.

 

주변이, 순식간에

 

원형의 관객석은 까마득하게 펼쳐진 인파가 전부 채우고 있음에도, 모두가 숨죽이며 포탈을 바라보고 있다.

 

이면계에서 여기까지 직통으로 이어진 포탈. 그리고 그 안쪽에서 걸어나온 건, 틀림없이 헤일로와 신성한 날개를 가진 ‘천사’다.

 

 

“...천사?”

 

“말도 안 돼, 저건 그냥 신화나 자료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잖아...!”

 

 

확실히.

 

내가 서류에서 읽은 이 사람의 특기는.

 

‘천사 소환’이다.

 

 

“천상의 의지를 대변하는 이께서”

 

 

확실히, 그렇지.

 

성황국 쪽에서는 내가 악마에 깊은 수준으로 접촉하고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천사를 불러내서 그런 사실을 ‘증언’하게 한다면, 내 위치는 그야말로 시궁창에 처박히지. 사형까지 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굳이 선발 과정에서 쳐내지 않고 이렇게 행사가 시작되고 내가 대중들 앞에 노출되는 것까지 기다린 건, 그만큼 깊숙하게 나에게 상처를 입히려고 극적인 연출을 기다린 거다.

 

악취미가 짝이 없지.

 

 

“천상의 의지를 섬기는 신실한 이여.”

 

 

천사의 목소리가 주변으로 묵직하게 깔렸다.

 

듣는 이들 대부분이 입을 틀어먹고, 심지어 어떤 녀석들은 감동해서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쉴만큼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담긴 목소리다.

 

신화의 증명이, 지금 이 자리에 강림했다.

 

 

“그대의 부름을 받고 이 자리에 찾아왔-”

 

 

그렇게 말을 이어가던 천사의 목소리가.

 

내 모습을 보자마자 뚝 끊겼다.

 

 

“...”

 

 

표정이 멍해진다.

 

네가 대체 왜 여기 있냐는 표정이다.

 

마치, 나와 이 사람이 구면인 것처럼.

 

 

“...신의 대행자시여?”

 

 

루미놀 대주교가 그런 말을 꺼냈지만.

 

천사님은 요지부동이다. 안색까지 살짝 파래지며 내 모습을 보고 있다.

 

 

“...”

 

 

그거 아냐.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봤을 때.

 

이 사람 선에서 소환해낼 수 있는 위계는, 딱 역천사 정도지.

 

그리고.

 

이 엘판테에서 ‘역천사’를 소환한다면.

 

튀어나올 천사는 단 한 명밖에 없다.

 

나도 익숙한, 이면계에서 대단히 드문 ‘여자’ 천사.

 

 

< System Log >

 

[ 대상 ‘역천사 A1101’이 당신을 상종도 못할 쓰레기로 인식합니다! ]

[ 부정적인 영향이 각인됩니다! ]

[ 수령 가능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 스킬: 악의 지배가 발동됩니다. 대상에게 사용 가능한 명령권 1회를 얻습니다! ]

 

 

이 사람은.

 

분명히, 예전에 나한테 이런 게 박힌 적이 있다.

 

예전에 하얀 악마를 통해서 이 사람을 협박해 별철을 뜯어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거든.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사람한테 사용가능한 ‘명령권’이 하나 틀어박혀 있단 거지.

 

 

“역천사님.”

 

 

내 말에.

 

역천사님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 눈동자가 파들파들 떨린다. 방금전까지 위엄 있는 모습으로 말을 이어가려던 것과는 천지차이인 모습이다.

 

그 모습에, 씩 웃으며 한 마디를 더 얹는다.

 

 

“오랜만이죠? 저희.”

 

“...”

 

 

천사님의 표정까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스킬을 킨다.

 

 

[ ‘스킬: 악의 지배’를 발동합니다. ]

[ 대상 ‘역천사 A1101’에게 명령권을 발휘합니다! ]

[ 대상은 당신의 말에 절대 복종합니다! ]

 

 

그래.

 

절대 복종이라.

 

그거 다행이네.

 

내가 지금부터 이쪽에 시킬 건, 그 수준의 강제력이 아니면 절대 못 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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