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1 - 161. 첫 번째 시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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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각각 엘리야 크리사낙스 씨와 그 수행원 다우드 캠벨 씨임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나 레이 델비움임다!”
라나 레이 델비움이라는 인간에 대해서 말해보자.
일각에서는 엘리야 여동생이라고 부르는 세라의 DLC 주인공.
목을 살짝 뒤덮는 스포티한 검은색 머리 위로 삐죽 튀어나온 바보 털 하나가 인상적인 여학생이지.
보시다시피 자신의 경쟁 상대인 나와 엘리야를 마주쳤음에도 뭔가 견제를 하거나 적대적인 자세로 나오기는커녕 평화롭게 통성명이나 할 만큼 평화로운 성격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특성을 말하자면.
이 녀석, 불사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에요?”
“말 그대론데.”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 대다수에서 유추할 수 있는 거지만, 세이비어 라이징 본편은 개발진이 유저들한테 집단 린치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난이도를 자랑한다.
그리고 DLC인 [성황국 정벌]은 세라 본편보다도 더 악랄한 난이도로 책정된 컨텐츠다. 진짜로 첫 출시 때 전 인터넷 커뮤니티가 다 터져나갔을 정도로.
오죽하면, 제작진이 스토리를 원활하게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인 이 녀석에게 치트키에 가까운 능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결정했을까.
“어, 맞슴다. 저 죽어도 안 죽슴다!”
“...”
싱글싱글 웃으며 그런 말을 꺼내놓는 라나의 모습에 엘리야가 그대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렸을 때부터 신성력 과부하라는 말은 많이 들었슴다. 그래서 아픈 것도 못 느끼고, 몸이 완전히 조각나더라도 금방 재생해버림다!”
“...”
“축복받은 체질을 타고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함다. 덕분에 성황국을 위해 제 몸을 이런저런 연구에 써먹을 수도 있고 말임다!”
“...그거.”
축복 맞아요?
그런 말이 엘리야의 성대 아래에서 들끓고 있는 게 눈에 뻔히 보인다.
나라가 자기 몸에 생체 실험을 했다는 데도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다행이라고 말하는 녀석한테 차마 그런 모진 말을 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성황국, 그 중에서도 법황이 겉으로 드러나는 자애로운 이미지와 다르게 후레자식이라는 건 이미 아는 사실이니까 차치하고서라도.
‘...축복받은 체질 자체는 맞지.’
사제들 중에서도 타고난 신성력이 미쳐 돌아가서 단순히 그걸 부려 기적이나 가호를 만드는 것 외에도 ‘특수 능력’을 얻는 인간들이 종종 있다.
용사 파티에서는 사제 역할을 맡고 있는 트리샤가 가장 비슷한 부류다. 신성력 과부하로 남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
그런 신성력의 성질을 가장 극대화 시켜서 만든 게 호문쿨루스다. 유리아와 루시엔, 그레이하운처 자매. 성녀와 액막이.
그쪽의 ‘특질’은 나중 챕터에 가서나 밝혀지지만, 둘 다 끔찍하게 강력하다는 건 이견이 없다.
특히 하얀 악마가 깃든 동생 쪽의 경우는 더더욱.
“...그런데, 수행원은요?”
“그러니까...”
엘리야가 혼자만 있는 라나를 보고 그런 질문을 꺼내들자, 녀석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긁적거리다 입을 열었다.
“...없음다!”
“...예...?”
엘리야가 아까보다 두 배는 더 황당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용사 후보 – 수행원은 이 선발 과정의 가장 기본적인 골자다. 그런데 그것조차 없다고 하니까 대체 뭔 소린가 싶겠지만.
“중간에 저 혼자 던전을 돌파하려고 하다가 그대로 헤어졌음다!”
“...수행원이랑 함께 던전의 최심부에 도달해야 기록을 인정해주는 거 아니었나요?”
“그런 규칙이 있었음까?!”
“...”
이쯤이면 엘리야도 깨달았겠지만.
라나의 가장 중요한 두 번째 특성.
얘 바보다.
누가 봐도 알고 쉬울 정도로 올곧고 화끈하게 단순 무식한 바보다.
심각할 정도로.
“이야- 다우드 씨와 엘리야 씨는 좋은 사람들임다. 하마터면 그것도 모르고 혼자 최심부까지 돌진해버렸을 검다.”
“...”
“헛수고를 할뻔한 걸 도와주셨으니, 뭐든 하나 도와드리겠슴다! 맡겨만 주십쇼!”
“저기, 저희 지금 선발 안에서 경쟁하는 건 알고 계신 거죠...?”
엘리야가 이제 거의 머리가 아프다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 들었지만.
“괜찮슴다!”
“...”
“은혜를 입었으면 갚으라고 배웠슴다. 경쟁보다는 사람다운 원칙이 먼저임다!”
눈부시다.
참으로 눈이 시릴 만큼 올곧고 정의로운 기백이다.
괜히 용사 후보가 아니라는 것처럼.
“...”
대체 어쩌자고 이런 사람을 이용해 먹으려고 하냐는 시선이 엘리야한테서 날아왔다.
"..."
그리고 이번 만큼은 나도 동의한다.
아무리 필요한 일이라지만 이 녀석한테 안 좋은 일을 하는 건 나도 죄의식에 잠을 못 이룰만큼 끔찍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하긴 할 모양이네. 어떻게 속일 거냐?]
소울 링커 안에서 그런 목소리가 날아들었지만.
한숨을 내쉬며 부정한다.
‘아니요. 저도 양심이 있지, 이런 애를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속여 넘깁니까.’
[있었어...?]
‘...’
잠시 침묵하다가 답한다.
‘아무튼 안 속일 겁니다.’
[너 드디어 사람 되려고 마음 먹-]
‘쓰레기 짓은 할 거지만요.’
[...]
내가 언제 뒤통수 치고 사기 친다고 했나.
이런 녀석이 상대라면 그냥 정정당당하게 나가면 그만이다.
애초에 본인이 아무거나 하나 부탁한다고 하지 않았나. 거기서 이어지는 거지.
[야, 아무리 처음부터 쓰레기짓을 할 거라고 듣고 오긴 했지만 이건 좀... 이런 애한테 미움을 사서 엘리야를 강화 시킨다고?]
‘얘랑 사이 안 좋아지는 게 아닌데요.’
라나는, 그러니까.
미움을 사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인간이다.
감정 회로 중에서 '분노'니 '증오'니 그런 게 아예 삭제되어 있는 느낌이지. 상대가 아무리 쓰레기라도 그냥 헛헛거리면서 웃어 넘긴다.
[...음? 그러면 네 목숨의 위협은 누가 하는데? 그게 있어야 엘리야가 강화 된다며?]
‘이 녀석한테 쓰레기짓을 하면 이 악물고 달려들 놈이 반드시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날 엿 먹이려고 한 녀석은 나도 똑같이 엿 먹인다.
간단한 이치지.
“...”
물론.
이게 내 인간성의 바닥을 긁는 짓거리가 되긴 할 거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라나...!
“라나, 그럼 부탁 하나만 해도 괜찮을까요?”
그런 죄책감을 억누르며, 웃는 얼굴과 함께 입을 연다.
“네, 뭐든지 부탁드림다!”
뭐든지.
뭐든지라.
그래. 말 한 번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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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드 한-차이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잔에 담긴 홍차를 입에 머금었다.
전사의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이런 달짝지근한 음료나 다과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지만, 아무튼 성황국이나 제국에서는 익히 즐기는 문화라고 들었다.
그가 부족 연합을 대표해 용사 선발에 파견된 건 그가 이런 전통을 존중할 줄 아는 융통성을 가졌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루미놀 대주교?”
그런 그조차도 가끔은 그냥 받아들이기에 너무 황당한 이야기가 날아오기 마련이다.
“제국 측의 후보를 함께 손을 잡고 견제하지 않으시겠냐는 말씀입니다.”
“...”
“정확히는, 그 다우드라는 학생 한정이지만요.”
우타드가 거의 현기증을 느끼며 눈가 근처를 쓸어내렸다.
성황국 측에서 그 다우드란 인간을 대단히 견제하고 싶어 한다는 건 이전의 그 천사 소동 때부터 눈에 띄는 사안이었지만, 설마 이렇게 노골적으로 접근해올 줄은 몰랐다.
“...아무런 은유나 암시 없이 직설적으로 접근하는 건 좋아합니다, 루미놀 대주교. 부족 연합의 방식이니까요.”
우타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사안이라면 적어도 이유 정도는 들어야겠습니다. 그렇게 까지 그 학생을 적대하는 이유가 뭡니까?”
"개인적인 이유로는, 저는 일단 그 학생이 싫습니다."
"..."
진짜 개인적인 이유네.
우타드가 멍하니 있자니, 루미놀 대주교가 빠른 어투로 주욱 쏘아붙였다.
"불경하고, 문란하며, 품위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는 주제에, 가증스럽게도 '신성학부'에 들어오다니요. 그 가식과 위선은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판단하시는 근거를 여쭤도?"
"그런 건 그냥 보면 알 수 있는 겁니다, 우타드 족장. 비천한 인간들은 그 냄새를 숨기지를 못 하니까요."
아, 그래.
이 남자, 심각한 계급주의자였지.
남작가 출신, 기껏해야 자작가 출신인 다우드를 업신 여기는 건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렸다.
"뭐, 그런 개인적인 것 외에 다른 이유를 들자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루미놀 대주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제국은 세 패권국 중 가장 강력한 세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저희 성황국과 부족 연합은 각각 ‘종교적 권위’와 ‘기술력’으로 그쪽에 대항하고 있는 처지죠.”
루미놀 대주교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만약 ‘용사’라는 정통성 마저 넘어간다면... 저희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입니다. 대륙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균형이 깨져나가겠죠.”
그래.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가는 말이다.
하지만.
“...그쪽을 견제한다고 해도 성황국에서 얻는 게 무엇입니까. 다우드란 남자는 단순히 후보의 수행원에 불과한 데요.”
그런 연유로 차라리 엘리야를 견제한다고 하면 이해라도 간다.
애초에 용사 후보 본인이 아니라 그 수행원을 이렇게까지 경계하는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법황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저는 그저 그분의 명을 따를 뿐이죠.”
“...”
우타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신전 안에 앉아있는 그 능구렁이의 이야기라면 그도 익히 알고 있다.
그 정도 되는 인간이 다우드 캠벨이라는 학생 한 명에게 그 정도 관심을 쏟고 있는 건 몰랐지만.
“만약 저희를 도와 그쪽 인간을 견제한다면, 용사 선발 이후로 그 권한을 통해 반드시 공고한 동맹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건 모두 제공하도록 하죠.”
“...마치 이미 성검의 주인이 될 자가 결정된 것처럼 말하십니다.”
“저희 쪽에는 반드시 성검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인재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대주교의 얼굴에, 아주 살짝이지만 인간적인 미소가 걸렸다.
“살짝 둔감한 면도 있지만... 강인하고, 따뜻하고, 무엇보다 누구보다도 용감한 아이죠.”
자랑스러움과 따뜻함이 혼재된, 이런 자리에까지 올라온 정치인에겐 대단히 찾아보기 힘든 표정이렸다.
“...소중한 제 딸아이기도 합니다.”
“...”
그거까진 말 안 해줘도 될 것 같은데.
갑자기 왠 딸 자랑.
루미놀 레이 델비움.
이번 성황국의 용사 후보로 참가한 라나 레이 델비움의 아버지.
이 남자는, 명백한 딸 바보였다.
“대, 대주교님!”
그런 말이 흘러나오는 사이.
누군가가 우타드와 루미놀이 있는 대담실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복장을 보아하니 성황국의 인물이다.
루미놀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거의 정상 회담 수준의 권위를 자랑하는 자리에 이런 몰상식한 행동이라니.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고서는 반드시 나중에 문책을-
“따님이 지금, 지금...!”
“...지금?”
“다우드 캠벨에게 ‘방패’로 쓰이고 있습니다!”
“...”
“...”
회의실 안에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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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스 에바트리체는 뚱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느닷없이 호출이 날아와서 뭔가 했더니, 전혀 상상도 못 할 인간 두 명이 방 안에 앉아있었다.
일단, 첫째로는.
‘...제국의 재상?’
설리번 악시온 페트로누스.
국무를 살피느라 공사다망할 인간이 대체 여기엔 어쩐 일이란 말인가.
제국의 모든 인간을 싫어하는 그녀로서는 보자마자 얼굴이 찌푸려지는 인선이었지만.
그것 이상으로 황당한 놈은 따로 있었다.
“...당신,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솔직히 엘판테에 잠입한 이후로는 뭔가 어영부영 늘어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아직 법황의 명령을 준수하는 암살자다.
다우드 캠벨을 죽이는 일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성황국 전체의 안녕과 이익을 바라는 마음은 여전히 변치 않았단 소리다.
그런 면에서.
“이름이, 그러니까...”
“한스.”
“...”
정말 성의 없는 가명이다.
성황국 정보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녀석한테 그런 신원을 줬단 말인가.
“뭐, 선화륜旋火輪이라고 말해봐야 이쪽 대륙 사람들은 알아 듣지도 못 하잖아? 그러니까 그냥 한스로 퉁쳐.”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요.”
세라스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용사 후보가 선발 도중에 뭐 하는 겁니까. 법황님께서 무리해서라도 당신의 신분을 세탁하신 걸 텐데요.”
선화륜, 가명 한스라고 불린 남자가 씩 웃었다.
“우와, 그 꼬맹이가 법황이라는 건 들을 때마다 적응이 안 돼. 빈민가에서 굶어 죽기 직전인 게 엊그제 같았는데.”
“...”
생긴 건 이제 20대 초에 불과한 인간이 법황을 꼬맹이라고 얕잡아 부르는 모습이지만.
세라스도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인간은, 인간의 형태를 띄고는 있지만 거의 반신半神의 영역에 들어간 괴물이라는 걸.
“뭐, 질문에 대답하자면.”
껄렁하게 대답하는 걸 보면 전혀 안 그렇게 보이지만.
“내 목적은 용사 선발 같은 게 아니야. ‘세계의 열쇠’를 쥔 놈을 지키러 온 거지.”
“...그게 무슨 소리-”
“애초에 그쪽이 일 어영부영 처리하니까 내가 파견된 거다?”
“뭐?”
“그랜드 어쌔신쯤 됐으면 다우드란 놈한테 칼 꽂는 건 어렵지도 않을 텐데 뭘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대체.”
“...”
토커가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쪽이 적당~히 다우드란 녀석 빈사 상태로 만들어 놨으면 ‘사건의 흐름’이 여기까지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 아니야. 녀석이 용사 선발에 참여할 일도 없었을 거고. 그럼 내가 그놈을 지킬 일도 없었을 거고. 그래서 법황 꼬맹이하고 우리 대장하고 이해 관계가 일치해서 나를 보낸 거지?”
“...무슨 소립니까.”
“당장 그놈이 죽어버리는 건 꼬맹이도 바라는 일이 아니거든. 우리 대장도. 심지어는 저 녀석도.”
그렇게 말한 토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눈을 감고 조용히 고개만 숙이고 있는 재상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 ‘봉인된 악마’?”
“...”
제국의 재상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어올렸다.
“...한 번만 더 그런 이름으로 부르면 협력은 파기하겠습니다, 언령술사. 임시 동맹이라는 걸 항상 잊지 마시길.”
설리번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황금색 눈동자엔 번들거리는 살의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저는 ‘이전 세계’에서 당신이 그 남자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어요. ‘이번 세계’에서도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어디에도 없죠.”
“흐음.”
“당신과, 당신의 그 같잖은 선각자도. 언젠가는 그 남자 곁에서 떨어져야 할 겁니다. 다우드의 안위를 위해서.”
“오호.”
“안 그러면 제가 당신들을 죽일 거니까요.”
말 하나하나에서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문장이었지만.
토커는 실소만 흘리며 말을 받았다.
“너무하네. 애초에 도와달라고 법황 꼬맹이한테 먼저 접촉해서 구조 신호를 보낸 건 그쪽이잖아?”
“...”
세라스의 표정이 더더욱 기괴해졌다.
제국의 재상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위정자 중 하나가.
고작 그런 인간 하나를 위해 치열하게 패권 경쟁 중인 타국의 수뇌부에 접촉했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재상이 침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여기가 ‘첫 번째 분기점’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지금 이 자리엔, 전부 다 모여있다.
악마의 그릇들.
그리고, 놈들의 모든 ‘숙원’이 향하는 품고 있는 인간.
그리고, 그중에서도.
이 자리에서 모든 비틀림을 만들어 내는 근본적인 원인.
“자색. 아니, 세라스 에바트리체. 유리아 그레이하운처라는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
자색은 또 뭐란 말인가.
하여튼 질문을 받았으니 답은 한다.
“...호문쿨루스. 성하께서 꾸미는 낙원 계획의 열쇠인 성녀와 액막이 중 액막이를 담당하는 쪽. 그 녀석이 왜?”
“오늘 이 자리에 그 여자가 있습니다.”
“...?”
있을 수도 있지.
그래서 그게 뭐 어떻-
“그리고, 오늘.”
그런 생각을 하는 세라스에게.
설리번의 말이 담담하게 이어졌다.
“그 여자 때문에 다우드 캠벨이 죽습니다.”
마치.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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