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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169)화 (170/258)

Chapter 169 - 169. 고양이 싸움

 

 

[오, 오오... 밥상을 차려줘도 못 먹던 리루가 이런 성장을...!]

 

 

등 뒤에서 푸른 녀석이 뭐라뭐라 지껄이는 말이 들렸지만.

 

 

‘...애초에 이거 니가 시킨 거잖아.’

 

 

그런 투덜거림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럴 때일수록 다른 여자들보다 한술 더 떠야 한다!’ 라면서 그녀를 계속 부추기던 건 등 뒤에 있던 푸른 녀석이다.

 

물론 여기까지 저지른 건 다우드의 태도가 생각보다 너무... ‘유순’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

 

 

그런데.

 

그래서.

 

이렇게 이 녀석을 깔아뭉개고 좋을 대로 내뱉은 건 좋은데.

 

 

[...그런데 뭐하고 계세요, 리루?]

 

 

등 뒤에서 푸른 녀석이 그런 말을 내뱉을 때까지, 리루는 다우드를 깔아뭉갠 상태로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머릿속으로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 다음엔 뭘 해야 하지? 어, 어떻게 하지-?!’

 

 

리루가 팽글팽글 돌아가는 눈동자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아니, 자기도 뭘 교육받아 봤어야 알지.

 

아이를 낳느니 어쩌니 하긴 했는데, 정작 그 과정에 대해선 그녀도 까막눈이다...!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에요, 리루?]

 

‘지, 진짜 모른다고! 할멈도 이건 안 가르쳐줬어!’

[...]

 

 

등 뒤에 둥둥 떠 있는 푸른 녀석이 어이가 없다는 녀석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게 절절히 느껴진다.

 

그런 식으로 한참을 쏘아보다가, 이내 한숨을 폭 쉬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뭐, 그쪽이 강한 척만 할 줄 아는 쑥맥이라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말이죠.]

 

‘어, 어떻게 하지?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물러서야 하나?!’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세요, 리루.]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냐고?!

 

그런 비명이 리루의 속에서 터져 나왔다.

 

 

‘...무라도 베고 어쩌고, 슬슬 그냥 물러서야...’

 

 

애초에, 지금도 선을 많이 넘은 감이 있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겠다고 말한 자신의 의지는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리루가 그렇게 생각하며 긴장된 표정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

 

“...”

 

 

다우드가.

 

눈을 질끈 감았다.

 

딱히 그녀를 밀쳐내는 제스쳐가 아닌 건 분명했다.

 

그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각오’했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

 

 

‘...어, 어라.’

 

 

이거.

 

이거 말인데.

 

 

‘해, 해도 되는 거지? 이 녀석이 허락한 거지?! 이거 다 합의 하에 하는 거다?!’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요, 리루?]

 

 

뒤에서 다시 뭐라뭐라 지껄이고 있었지만, 이번엔 적어도 한 발자국 더 나가도 된다는 당위성이 성립이 된 상황이다.

정정당당, 한거다. 아무튼 그렇다!

 

 

‘...이, 이럴 때는, 일단...’

 

 

리루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다우드의 상의로 손을 가져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떠오르는 것부터 한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단추를 똑똑 따는 소리가 방 안에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외투, 조끼, 그리고 마지막으로 셔츠.

 

전부, 열어젖힌다.

 

단련된 남자의 상반신이 그녀의 눈앞에 훤히 펼쳐졌다.

 

 

“...우, 우와...”

 

 

차마 억누르지 못한 그런 탄성이 새어 나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한 거 보는 사춘기 남자애 같은데요?]

 

 

묘하게 구체적인 감상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저도 모르게 선명하게 새겨진 근육들을 손으로 쓸어본다.

 

손가락 끝에 닿은 다우드가 움찔거리는 게 피부 마디마디로 전부 전달된다.

 

그리고, 살갗 위를 기어다니듯 움직이는 손가락이 이 남자의 가슴팍을 스쳐 지나가자.

 

심장 고동이 느껴졌다.

 

크게, 아주 분명하게.

 

 

“...”

 

“...”

 

 

리루가 크게 뜬 눈으로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다우드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이 녀석도.

 

자신만 긴장하는 게 아니라, 이 녀석도 긴장하고 있다.

 

이 녀석도 처음이니까.

 

주변에 여자란 여자는 그렇게 늘어놓고 다니던 녀석도, 맨정신으로 ‘여기까지’ 온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그리고.

 

지금 자신이, 그걸 ‘독점’하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읍.”

 

 

심장이 덜컥, 하고 내려앉는다.

 

온몸의 온도가 몇 십 도는 올라간 것 같다.

 

아까 전부터 전신과 아랫배에 도는 찌릿 거리는 감각이 몇 배는 더 증폭된다.

 

 

“...”

 

 

얼굴을 내려, 그 가슴팍에 입을 맞춘다.

 

저도 모르게 행한 일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한 모양이다.

 

손을 닿는 정도로는 그냥 움찔거리기만 하던 녀석이, 깜짝 놀라 공기를 한 움큼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리루가 아까 전에 지었던 사나운 웃음을 다시 얼굴에 걸 만큼, ‘귀여운’ 반응이었다.

 

 

“야.”

 

“...”

 

 

대답이 없다.

 

하지만, 리루가 크게 심호흡을 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다우드 캠벨.”

 

“...네.”

 

“계속한다?”

 

“...”

 

“저항할 거면 지금이 마지막인데?”

 

“...”

 

 

여전히, 대답이 없다.

 

이에 리루가 얼굴에 걸고 있는 미소가 더욱 더 큼직해졌다.

 

그와 동시에, 등뒤에서 환호성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다, 간다...!]

 

“...”

 

[이전에는 손 한번 못댔던 우리가, 다른 녀석들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것만 구경했었던 우리가...! 간다...! 제일 앞서 나간다고...!]

 

“...”

 

 

이 녀석, 방금 전에 자신한테 너무 흥분한 것 아니냐고 뭐라 하지 않았었나.

 

본인이 왜 상태가 더 심각한지 모르겠다.

 

 

“...그러면.”

 

 

아무튼, 여기까지 온 이상 멈출 수도 없다.

 

리루가 시선을 슬쩍 내려 다우드의 하의를 내려다보았다.

 

 

“...계속 간다?”

 

“...”

 

 

여전히, 대답이 없다.

 

리루가 마른 침을 꿀꺽 넘겼다.

 

사실 남자의 상반신이야 그녀도 어떻게든 몇 번이고 접한 적 있지만.

 

여기부터는 틀림없이 미지의 영역이다.

 

일생 살면서 그림으로건 말로건 어떤 매체로도 접하지 못한, 인체의 신비가 응축된 곳이다.

 

 

‘...가자! 이전이랑은 달라...!’

 

 

그런 생각을 떠올린 리루가 굳은 의지를 품고 손을 다우드의 하반신 쪽으로 가져갔다.

 

아무튼,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지금, 이 위대한 탐구로부터 그녀를 막을 수 있는 건 지금 아무것도 없다...!

 

 

“이 음탕한 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리루가 누군가에게 걷어차여서 날아가기 전까진.

 

 

-!

 

 

다우드의 숙소 옆쪽 창문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날렵하게 숙소 안으로 날아들었다.

 

이어서 체술에 대단히 숙련되었다는 게 눈에 띌 정도로 날렵한 발차기가 물 흐르듯 연계되었다.

 

거기에 얻어맞은 리루가 억 소리도 내지 못하고 벽에 날아가 박혀버릴만큼.

 

 

“뭐, 뭐, 뭐하는 짓이야-?! 기억 잃은 환자를 제멋대로 덮치다니, 제국 놈들은 다 이렇게 양심이 없냐!”

 

 

흘러내리듯 요동치는 새하얀 백발. 양손에 쥐고 있는 단검. 전신에 쫙 달라붙는 정장에 가까운 학생복.

 

상반신을 훤하게 열어젖힌 상태로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던 다우드가 멍하니 그렇게 난입한 인간을 바라보았다.

 

 

“그보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그렇게 말하며 침대로 후다닥 뛰어오는 인간을 바라본다.

 

그도 아는 인간이다.

 

분명히 이름이...

 

 

“...세라스 씨?”

 

“아, 알고 계시네요?!”

 

“...예?”

 

 

그럼 쓰러졌을 때 병실 앞까지 찾아온 사람의 이름도 기억 못할 건 뭐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세라스가 쭈뼛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뇨, 저는 다른 여자들에 비하면 만난 기간이 한참 짧으니까. 설마 그 정도로 주의 깊게 보고 있으실 줄은 몰랐는데요...”

 

“...”

 

“주변에 다른 분들이 워낙 많으니까...”

 

“...”

 

 

다우드가 어지럽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체 주변에 여자가 얼마나 많았으면 이렇게 대놓고 ‘나는 기억 못 할 줄 알았다’ 같은 말이 튀어나온단 말인가.

 

 

“...”

 

 

아니, 기다려 봐.

 

설마.

 

설마 싶긴 한데.

 

 

“...저, 세라스 씨.”

 

“네?”

 

“저, 세라스 씨에게도 무슨 짓을 했나요?”

 

“...”

 

 

세라스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그게,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걸 밝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엄청 간절해 보이는데.’

 

 

거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다우드의 얼굴을 본 세라스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튼, 이 남자는 그녀의 ‘현 암살 목표’기는 하지만 이래저래 걸리는 점이 많은 남자다.

 

당장 구해주려고 뛰어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

 

뭔가 아예 잡아떼면 더 우울해질 것 같은 모습이니까, 적당히 두루뭉술하게 설명해주는 것 정도는 상관없겠지.

 

 

“제가, 그, 선배님한테... 안 좋은 짓을 하려고 했었는데.”

 

“...예? 안 좋은 짓이요? 저, 세라스 씨한테 원한을 살만한 짓을...!”

 

“서, 선배님이 저한테 뭔가 안 좋은 짓을 하셨다는 게 아니라! 그냥 주변에 선배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서...!”

 

 

다우드의 입이 쩍 벌어졌다.

 

대체 뭘 하고 다녔길래, 아예 제삼자에게 사주해서 자신을 해하려는 인간들까지 있었단 말인가...!

 

그 표정을 본 세라스가 다급하게 설명을 이어붙였다.

 

 

“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손사래를 치며 다우드의 침대 쪽으로 다가간 세라스가 이내 동작을 딱 멈췄다.

 

이어서 황급하게 양손으로 두 눈을 가렸지만, 손가락 틈새로 눈은 훤하게 나온 괴상한 모습이다.

 

그거야.

 

창문 사이로 새어들어온 달빛이 방금 전에 리루가 벗겨놓은 그의 상반신을 비춰주고 있었으니.

 

 

“...우, 우와...”

 

“...”

 

 

아까 전에 리루도 이러지 않았던가.

 

그의 상반신을 보면 이런 말을 내뱉는 건 무슨 관례라도 되는 건가.

 

다우드가 멍한 표정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자니.

 

 

“...음탕한 년이니 뭐니 하더니. 정신 못 차리는 건 너도 똑같잖아.”

 

 

벽에 처박혔던 리루가 그 안에서 성큼성큼 걸어나오고 있었다.

 

어두운 방 안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을만큼 안광이 형형하게 빛나는 모양새였다.

 

세라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분명히, 일격에 급소를 걷어찼을 것이다. 몸에도 상대방이 순식간에 졸도할만큼 데미지가 들어갔다는 확신이 생기는 감각이 있었고.

 

그런데, 왜 이렇게 멀쩡하지?

 

 

‘...보통 놈이 아닌가 본데?’

 

 

그랜드 어쌔신의 체술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정규 기사는 우습게 상대할만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걸 직통으로 맞고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이다.

 

어지간한 강자 레벨은 아니란 거지.

 

 

“...그리고 말이야.”

 

 

리루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덕분에 핏줄이 올라온 이마가 달빛 아래에 슬쩍 드러났다. 대단히 열받은 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느닷없이 난입할 정도면, 너도 남의 뒤를 허락도 없이 밟은 건 똑같은 거 아니냐? 계속 이 녀석을 지켜보고 있었던 게 아니면 이렇게 끼어드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데.”

 

“...”

 

 

그거야 그렇지.

 

암살 대상의 관찰이라는 목적 아래에 이뤄지는 행동이긴 하지만, 아무튼 세라스가 다우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어디서 깨끗한 척이야, 깨끗한 척은. 이 관음증 환자가.”

 

“...강간미수녀한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진 않은데.”

 

“...합의 하에 이뤄진 행동이었어.”

 

“선 넘을 작정이었다는 건 부정도 안 하네, 이 미친년이. 양심이란 게 있긴 해?”

 

“...”

 

“합의했다는 것도 그냥 선배님이 봐주는 걸 니 마음대로 망상한 것 아니야?”

 

 

세라스의 말에, 리루의 이마에 핏줄 한 개가 더 올라왔다.

 

 

“...다짜고짜 사람 걷어차는 것 보니까, 아무래도 너도 일을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쪽에 익숙한 모양인데.”

 

 

그녀가 볼살을 푸들푸들 떨며 말을 이었다.

 

 

“옥상으로 따라 나와, 이 년아.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

 

 

뭔가.

 

뭔가 일이 커지고 있다.

 

다우드가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두 명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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