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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172)화 (173/258)

Chapter 172 - 172. 연극 (2)

 

 

세이비어 라이징 본편에서는 유리아의 과거에 대해 짤막하게 한 두줄로 언급되고 넘어가는 게 전부다.

 

‘성황국에서 길러낸 인조 생명체다’ 정도로.

 

하지만, 녀석이 처음으로 단절자를 잡고 폭주를 일으켰을 때 이 저택이 쑥대밭이 된다는 사실만큼은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유리아가 지금까지도 그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도.

 

가끔씩 루시엔한테서 전해들은 바도 있다. 지금도 그 일 때문에 악몽을 꾼다고.

 

그런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간신히 표정을 깨트리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속으로 짜증과 분노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지만, 아무튼 난 지금 최대한 눈에 띄면 안 되는 상태니까.

 

배역을

 

 

“여기 저택 사용인들은 전부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저 저주받은 것들은 동생과 언니를 가리지 않고 결국 ‘희생양’으로 사용될 거라는 것 말이죠.”

 

“...”

 

“성하께서 약속하신 이상향을 위해 필수적인 것들이니 말입니다.”

 

“...”

 

“당신도 여기까지 흘러들어올 정도면 알고 있죠? ‘낙원 계획’ 말이에요.”

 

 

낙원 계획이라고 함은, 성황국 안에서 설파하는 교리의 최종 목적이나 다름없는 단어다.

 

어떤 싸움도, 어떤 분쟁도 없이, 모두가 평화롭고 영원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이상향.

 

그걸 지상 위에 강림시키는 게 성황국과 법황의 목표다.

 

그리고 법황의 그 목표가 시나리오를 어떤 방향으로 굴려 나가게 될지는 이미 알고 있다.

 

 

‘...6챕터.’

 

 

성황국의 성역 공략 퀘스트.

 

최종 하이라이트로는 거짓된 신 토벌전.

 

메인 퀘스트 난이도가 지랄 같기로 유명한 세라에서도 전체 유저풀의 80퍼센트가 갈려나가는 걸로 유명한 구간.

 

호문쿨루스 자매와 이런저런 인연을 차곡차곡 쌓아두지 않았다면 최종 챕터보다 클리어 난이도가 더러워지는 경우가 빈번하니까 그렇겠지.

 

루시엔과 유리아의 호감도를 충분히 쌓아놓지 않았다면, 그 둘이 법황에게 ‘희생’되는 이벤트를 강제로 관람해야 한다.

 

“...”

 

 

문제는.

 

그렇게 나중에 본인들의 ‘대의’라는 명목하에 희생시킬 인간에게, 왜 역겹다느니 괴물이라느니 하는 단어를 붙이냐는 거다.

 

최소한의 측은지심이라도 없는 건가?

 

 

“...표정을 보아하니 납득하기 힘들어 보이시네요.”

 

“...”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지만, 호문쿨루스는 애초에 ”

 

“...”

 

 

슬슬 짜증을 참기가 힘들어진다.

 

조만간 유리아가 단절자 잡는 순간 어차피 다 죽을 놈들이란 걸 알고 있는데도 그렇다.

 

성황국이 원래도 겉으로 보이는 성스러운 분위기랑 다르게 좀 음침한 면이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있잖습니까.”

 

 

뭐라고 한 마디 쏘아붙이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차에, 옆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 기다리게 했군요. 죄송합니다!”

 

 

복도 건너편에서 후다닥 달려오는 유리아다.

 

그리고.

 

 

“이런, 아가씨.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

 

 

녀석이 나타나기가 무섭게 표정을 싹 바꾸고 빙글빙글 웃는 사용인을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노려본다.

 

 

‘...이게 사람 새끼들이야?’

 

 

음습한 것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지들이 만들어 내서 나중에 희생시킬 예정인 어린애한테 이렇게까지 굴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놈들을 죽였다고 미래에 혼자 가슴 부여잡고 슬퍼하는 유리아의 모습을 생각하니, 관자놀이에 통증이 생길 정도의 분노가 잠깐 머리를 물들인다.

 

 

“...아쉽게도 성하의 집무실에는 여전히 들어가면 안 되는 모양입니다.”

 

 

간신히 터져 나오려는 격노를 억누르고 있자니, 유리아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조만간 안쪽에 있는 내용을 저한테 알려준다고 하니, 시종 씨도 그때 함께 들어가도록 하죠.”

 

“그럼요, 아가씨. 조만간 알게 될 거랍니다.”

 

“...”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녀석의 속내를 생각했을 때, 이 문이 개방되는 건 절대로 유리아에게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눈앞으로 느닷없이 창 하나가 떠올랐다.

 

 

[ System Message ]

 

[ 현재 진행중인 이벤트 ‘달콤한 연극’의 진행 상황이 갱신됩니다. ]

 

[ 대상 ‘유리아’에게 일어날 비극을 막으세요! ]

 

“...”

 

 

그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결국 진행 하나 보네요? 그것도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엘리야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눈앞으로 전달된 서류를 훑어보았다.

 

용사 선발의 두 번째 시련이 곧 진행될 것이며, 그 장소와 진행 방식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느닷없이 아탈란테에게 단독으로 총장실까지 불려 와서 대체 무슨 말을 들으려나 싶긴 했는데, 생각보다 더 안 좋은 소식이다.

 

 

“여태까지 최대한 틀어막고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이제 한계에 봉착한 모양입니다.”

 

 

아탈란테가 한숨과 함께 말을 받았다.

 

성황국과 부족 연합, 그리고 제국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진행하는 행사다.

 

아무리 각국 수뇌부들이 합의 하에 그 진행을 미루고 있었지만, 그래도 패권국들 전부가 공조해서 하는 행사라면 보는 눈 때문이라도 강제로 해야 할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제로 그런 걸 미루고 있던 ‘진짜 이유’는 오직 단 하나 뿐이었으니까.

 

 

“...부족 연합과 성황국 모두 선발의 재개에 동의한 건 다우드가 의식을 되찾은 걸 확인한 이후입니다.”

 

“...”

 

“기억을 여전히 되찾지 못 한 상태라는 건 극히 일부의 인원만 알고 있는 기밀이니까, 그쪽 입장에선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는 거죠.”

 

 

숨 쉬는 것만으로도 ‘악마의 그릇’에 대한 통제권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이 여기저기에 휘둘리기 쉬운 상태라는 건 밝힐 이유가 없는 정보다.

 

즉, 그쪽 입장에선 무슨 결함이 있는 진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튼 정신을 차렸으니 이대로 선발을 진행한다는 입장이겠지.

 

엘리야가 머리가 지끈거리는 감각에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애초에 다우드의 상태에 따라 선발 전체의 일정이 변동된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 하겠다.

 

 

“...주체는 용사 선발인데, 왜 용사 후보들보다 저한테 붙어있는 수행원인 선생님한테 더 관심이 많은 느낌인가요?”

 

“어쩔 수 없습니다. 제국의 황제, 부족 연합의 대족장, 심지어는 성황국의 법황마저 이상할 정도로 그 남자의 동태를 자세히 살피는 느낌이니까요.”

 

“...”

 

 

엘리야가 잔뜩 찌푸려진 표정으로 턱을 문질렀다.

 

부족 연합의 대족장의 경우는 알겠다. 가장 투명한 종류의 관심이겠지. 당장 그 딸인 리루가 딱 봐도 알 수 있을만큼 직관적인 호의를 다우드에게 품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황제와 법황은 도대체 왜?

 

 

“그런데, 그래서 지금 다우드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아탈란테가 조심스럽게 꺼낸 질문에, 엘리야가 저도 모르게 속으로 마른 침을 삼켰다.

 

아니, 음.

 

질문의 의도는 기억까지 날아간 상황에서 두 번째 시련에 참여나 할 수 있겠냐는 걱정의 의도겠지만.

 

지금 무방비한 그쪽을 어떻게든 한 입이라도 떠먹으려고 수라장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실직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 얼마 전에도 세라스라는 사람과 리루가 다우드 때문에 한 판 크게 붙었다가 엘노어한테 대판 작살이 났다고 들었다.

 

거기에 엘리야 본인도 택도 없는 거짓말을 얹었다는 사실은 더더욱.

 

 

“...나쁘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엘리야가 간신히 웃음을 쥐어 짜내며 꺼낸 말에, 아탈란테의 눈초리가 슬쩍 가늘어졌다.

 

 

“정말입니까?”

 

“...”

 

 

뭔가 이미 알고 묻는 것 같은 모습이다.

 

엘리야가 간신히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속으로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자니, 아탈란테가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뜬 상태로 입을 열었다.

 

 

“이전에도 그 남자 있는 기숙사에서 세라스 학생과 리루 학생이 대판 싸움을 벌였다고 들었는데요.”

 

“...”

 

“...물론 그치들의 특성상 다우드만 보면 눈이 뒤집히는 건 이해를 하겠지만, 그 남자의 현재 상태를 좀 감안해야 합니다.”

 

 

아탈란테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원래의 그 뻔뻔하게 느껴질만큼 심줄 굵은 다우드 캠벨이 아니라, 지금은 대단히 깨끗한 백지 상태의 인공 영혼입니다. 충격에 비뚤어지거나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는 아무도 몰라요.”

 

“...예에...”

 

“제가 봤을 땐 지금도 정신이 상당히 위험한 상태일 겁니다. 괜히 거기서 더 충격을 주거나 하면... 심각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아탈란테의 말에 엘리야의 이마에서 실제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나왔다.

 

어떻게든 입을 열어 변명을 꺼내 든다.

 

 

“에, 에이,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다들 그래도 한 번 크게 혼났으면 적절한 선은 지킬 텐데요.”

 

“...”

 

“저, 정말이라니까요? 저번에 학생회장님 때문에 크게 박살난 이후로는, 리루랑 세라스라는 사람도 얌전해졌다고 들었어요!”

 

 

못 미덥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탈란테에게 그렇게 말하려던 엘리야갸, 곧바로 입을 딱 다물었다.

 

 

“...어라?”

 

 

그녀가 느닷없이 몸에 돌기 시작하는 활력에 이상하다는 목소리를 흘렸다.

 

물론 매일매일 단련을 거듭하고 있는 입장에서 몸상태는 항상 최상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

 

이전에도 그랬지만, 다우드가 ‘목숨의 위협’을 느낄 때마다 항상 이런 감각이 찾아들었던가.

 

 

“...!”

 

“왜 그러십니까?”

 

표정을 굳히며 일어서는 엘리야의 모습을 본 아탈란테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지만, 엘리야가 뭐라 길게 설명하기도 힘들다는 기색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서, 선생님이 위험할 지도 몰라요!”

 

“...네? 그게 무슨...”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당장 선생님을 보러 가야해요!”

 

“...”

 

 

다행인 점은, 아탈란테도 다우드의 신변에 커다란 관심이 있는 건 마찬가지인 인간이란 거겠지.

 

이런 엉망진창인 설명에도 뭐라 더 캐묻는 대신에, 그녀가 곧바로 엘리야의 뒷덜미를 붙들고 급하게 술식을 작성했다.

 

 

“...아마 지금쯤이라면 기숙사에 있을 겁니다.”

 

 

공간 이동. 좌표는 다우드의 개인실 바로 앞.

 

온몸을 감싸는 빛무리가 가시고 나자, 엘리야가 급하게 다우드의 방문 근처를 훑어보았다.

 

별다른 이상은 없어보인다. 다만, 그 앞에 턱을 감싸고 다우드의 개인실을 바라보는 여자 한 명만 있을뿐.

 

그쪽을 본 엘리야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나?”

 

 

라나 레이 델비움.

 

이전에 다우드에게 묶여 ‘미끼’로 써먹혔던 불사자다.

 

그런데, 이 사람이 여기엔 무슨 볼 일이란 말인가?

 

 

“으음, 엘리야 씨? 오랜만임다!”

 

“...오랜만인건 오랜만인건데, 라나가 여기엔 어쩐 일이세요?”

 

“에, 아뇨, 다우드 씨한테 인사를 드리러 왔더니 어쩐지 시끌시끌해서 말임다. 웬 여성분들이 이렇게나 많이 와서 같이 시간 좀 보내자고 아우성이었지 말임다.”

 

“...”

 

“다우드 씨는 내가 이만큼이나 많은 사람들한테 손을 댔냐며 괴로워하는 기색이셨음다.”

 

 

엘리야가 옆에서 날아오는 아탈란테의 따가운 시선을 애써 피했다.

 

‘괜찮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라고 귓가에 고함을 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다우드 씨가 약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한테 여쭈셨지 말입니다. 혹시 저한테도 손을 댄 적이 있냐고.”

 

“...”

 

 

불길한 감정이 엘리야와 아탈란테에게 동시에 치솟아올랐다.

 

 

“...그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저야 그냥 저번 시련 때 다우드 씨가 저한테 했던 짓을 복기시켜드리며 즐거운 추억을 하나하나 회상했지 말임다.”

 

“...”

 

“그 정도로 잔인하고 살벌하고 비도덕적인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상남자 같은 분은 처음 본다고 말입니다. 정말로 그렇지 않슴까?”

 

“...”

 

 

엘리야와 아탈란테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충격에 비뚤어지거나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는 아무도 몰라요.

 

 

분명히.

 

바로 아까 전에 그런 말을 나눴었지.

 

그리고 다우드가 라나에게 저지른 일은, 누가 보아도 상상을 초월하는 쓰레기 짓이다.

 

 

“...저 뭔가 하면 안 될 짓이라도 한 검까?”

 

 

멍하니 되묻는 라나의 말이 복도에 울리는 사이, 아탈란테가 급하게 다우드의 방문을 열어젖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방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마치 거사를 치루러 가는 입장에서 각오를 다지려는 것처럼.

 

 

“...”

 

 

얼굴이 흙빛이 된 아탈란테가 방 안을 재빠르게 둘러보았다.

 

뭐라도 좋으니 지금 그 남자의 상태를 확인할만한 단서를 찾으려는 행동이었고,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다우드의 개인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조그마한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

 

 

“...뭐라고 적혀있어요?”

 

 

엘리야가 긴장된 목소리로 꺼낸 질문에, 아탈란테가 대답 없이 거기 적혀있는 문장을 노려보았다.

 

몇 분이 지나고.

 

거기서 더 몇 분이 지나고.

 

아탈란테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가만히 주변에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엘리야가 이내 후다닥 따라붙어 그 쪽지를 확인했다.

 

 

[저 같은 건 없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모두들 안녕.]

 

“...”

 

“...”

 

 

일동이 침묵에 휩싸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탈란테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남자한테 달라붙었던 여자들, 전부 다 끌어모으세요. 한시가 급합니다.”

 

 

이어서.

 

 

“...저한테 다 죽기 싫으면, 이 남자 당장 찾아오세요--!!”

 

 

그런 비명 같은 외침이 아탈란테의 입에서 벽력같이 떨어졌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