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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 (197)화 (198/258)

Chapter 197 - 197. 마지막 시련

 

 

루미놀 대주교의 하루는 요즘 들어 기분 좋게 시작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원인을 따지자면 전부 한 놈으로 거슬러 가기 마련이고.

 

 

‘...그 빌어먹을 놈...’

 

 

그가 얼마 전 용사 선발 시련에서 보았던 인간을 떠올리며 안 그래도 찌그러져 있는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

 

다우드 캠벨.

 

요즘 그의 삶의 질이 수직 하락하는 데 대단히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이름이다.

 

안 그래도 처리해야 할 서류가 눈앞에 산처럼 쌓여있는데, 도저히 집중하기가 힘들 정도로.

 

 

‘어디서 그런 터무니 없는 놈이 튀어 나왔는지...’

 

 

법황까지 예의 주시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괴상한 인간이라는 건 몰랐다.

 

언제 어느 상황에 쑤셔 박아도 살아나올 것 같은 징글징글한 생존력은 볼 때마다 어이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제 곧 마지막 시련...’

 

 

사실 시련이라고 할 것도 없다.

 

앞선 시련에서 ‘자격’을 증명한 자들에게 성검을 한 번씩 쥐여주는 게 끝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모든 시련 중 가장 위험할 것이 틀림없다.

 

성검.

 

인류사 이래 가장 강력한 성물이라고 불리는 무기.

 

초대 용사가 악마들의 ‘본체’를 공허 지대에 봉인할 때 사용했던 물건이며, 주인의 자격이 없는 자는 만지는 것만으로 목숨을 잃을만큼 극히 위험한 물건이기도 했다.

 

 

“...”

 

 

그 말은, 라나에게도 그 물건을 한 번은 쥐어주어야 한다는 말과도 똑같다.

 

아무리 자신의 딸이 절대 죽지 않는 특이 체질이라지만, 아버지로서 그런 꼴만큼은 보고 싶지 않다.

 

 

“아버지, 계십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쾌활한 목소리가 집무실 바깥에서 울려퍼졌다.

 

루미놀 대주교 역시 저도 모르게 은은한 미소를 지을만한 목소리였다.

 

자신의 딸이다. 그에게 있어선 인생의 의미.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어야 할 목적.

 

 

“어서오렴, 라나-”

 

 

그렇게 인사해주려던 루미놀 대주교의 말이 딱 굳었다.

 

 

“음, 이제 됐습니까, 다우드 씨? 아버님과 독대하게 해달라고 하셔서 데리고 왔습니다만...”

 

”그럼. 고마워, 라나.“

 

”약속대로 나중에 성도의 대인기 초대형 케이크 하나 사주시는 검다. 약속하시지 말임다!“

 

”얼마든지.“

 

 

새삼 자신의 딸이지만 신경도 굵다.

 

어떻게 자신을 그런 꼴에 처하게 만든 사람을 이렇게 태연하게 소개할 수 있단 말인가.

 

루미놀 대주교가 부들부들 떨며서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라나가 집무실 바깥으로 나가고, 남자가 자신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책상 건너편에 허락도 없이 의자를 빼서 털썩 걸터앉는 게 제 집에라도 온 태도다.

 

존중과 예의라고는 개뿔도 없는.

 

 

“반갑습니다, 루미놀 대주교님.”

 

“...내가 지금 여기서 네게 공격용 기적을 쓰지 않아야 할 이유를 말해보지 그러나.”

 

 

“당신이 제게 보낸 암살자들에게서 받아난 자백입니다. 전부 녹취해뒀어요.”

 

“...”

 

“의뢰주가 당신이라는 것. 용사 선발 시련에서 암살을 목적으로 잠입했다는 것. 밝혀지면 난리가 나겠죠?”

 

“...”

 

 

믿기지 않는단 기색으로 그 수정을 집어드니.

 

정말이다.

 

암살자들이, 풀린 눈으로, 계획과 그런 의뢰가 있었다는 ‘증거’까지 전부 실토해내는 모습이 녹화되어 있었다.

 

 

“...”

 

 

루미놀 대주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그들은 모두 훈련받은 프로들이다. 차라리 이런 걸 말하느니 혀를 깨물어서라도 자결을 택한 이들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루미놀 대주교의 눈이, 문득 어떤 것을 포착했다.

 

그 눈에 깃든, 하얀색 기운.

 

초점이 없었지만, 상대를 향한 ‘열망’만큼은 똑바로 느껴진다.

 

마치, 매혹이라도 당한 것처럼.

 

 

“...”

 

 

성황국의 대주교가 일을 믿고 맡길만한 인물들이다.

 

어지간한 정신계 마법은 전부 튕겨낼 수 있는 이들이지. 지급받은 장비도 전부 최상품이었고.

 

 

“...너.”

 

 

그런데도 이런 모습을 보이게 만들 수 있을만큼 강력한 정신계 능력이라면.

 

 

“악마의 권능이라도 썼나?”

 

“글쎄요?”

 

“...”

 

 

법황은. 분명히 이 녀석이 그런 일을 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할 수도 있다’ 였지, 이렇게 자유자재로 써먹을 수 있다는 건 예상 범위에조차도 없었다!

 

 

‘...괴물...!’

 

 

다른 악마의 권능을 ‘통제해서’ 쓸 수 있는 놈이라니, 유사 이래로 그런 놈은 한 놈도 없었다.

 

있었다면 역사책이 뒤바뀔 정도의 격변이 일어났을 게 분명하니까!

 

 

“전 그냥 ‘대화’를 하러 왔을 뿐입니다.”

 

“너랑 할 말 따위는 없-”

 

“있으실 걸요.”

 

 

다우드가 루미놀 대주교의 말을 딱 끊었다.

 

 

“본인이 아끼는 딸 앞에서 스스로의 치부가 낱낱이 까발려지기 싫으면.”

 

“...”

 

“저한테 암살자를 보내신 게 전부도 아니잖아요. 그 위치까지 올라가면서 말 못하게 더러운 일도 여러 번 하셨을 것 같은데. 성황국이란 나라가 원래 그렇잖아?”

 

 

루미놀 대주교로서는, 몸을 빳빳하게 긴장시킬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너.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글쎄요?”

 

 

다우드가 심드렁하게 반문했다.

 

여전히, 태연자약한 태도였다.

 

 

“지금부터 당신의 태도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두 명의 영혼이 있었다.

 

소울 링커 안에 있는 영혼들은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계기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대면’할 수 있다.

 

지금처럼 루미놀 대주교의 얼굴을 새하얗게 질리게 만든 다우드 캠벨의 모습을 보고 서로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을 마주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단 소리지.

 

협박을 통해 상황을 유리하게 주도하기. 저 남자가 몇 번인가 보여주었던 모습이다.

 

다만, 지금은.

 

그때와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무슨 일인가. ”

 

 

발카서스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착잡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심상 세계에서 이렇게 둘이 만나는 건 처음이지만, 그럼에도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무슨 화제가 돌지는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년왕, 우리 한 번 솔직하게 툭 까놓고 말해봅시다.”

 

 

실제로, 칼리반이 한숨을 내쉬며 꺼내든 화제는 그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쟤 저 정도로 썩어있던 놈이었던가요?”

 

“...”

 

 

발카서스가 대답하지 않고 표정을 찌푸렸다.

 

그 시선은 식은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 루미놀 대주교에게 가서 꽂혀있었다.

 

이어서 무표정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다우드 캠벨에게도.

 

 

“...”

 

 

대다수의 시간을 소울 링커 안쪽에 잠들어 있는 입장이라 전부 다 알고 있지는 못 하지만, 그럼에도 요 근래 저 남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진 그럭저럭 맥락을 꿰고 있다.

 

타천의 인장이란 걸 회색 악마에게 부탁하여 종족값이 점점 인간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왕국을 구해줬던 이다. 내 염원을 들어준다고 했던 이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에게 처음으로 ‘거둬지던’ 날.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고, 발카서스 자신이 못 다한 복수를 완수시켜주겠노라고 그에게 다짐했던 날.

 

그 때, 그에게 뭐라고 했었더라.

 

 

“...”

 

 

자신과, 닮았다고 했었다.

 

자신과 닮은 이이기에 그런 선의를 베풀고 싶다 했었다.

 

그런 심성을 가진 이가.

 

그 정도로 인간적인 이가.

 

지금 저런 모습으로 변한 건.

 

그에게도 결코 유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진 않는 모습이었다.

 

 

“딸 가지고 협박해서 말을 듣게 만들다니. 상대가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방법이 너무하지 않아요?”

 

“...”

 

“지금 저건 그렇다 치고, 그 타티아나라는 여자한테 한 짓만 생각해 봐도 그래요.”

 

“...타티아나 사제장은 부정 못할 악행을 저지른 이야. 그건 확실하지.”

 

“그럼, 더더욱이. 그쪽이랑 저 녀석이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서는 안 될 것 아닙니까.”

 

“...”

 

“제가 봤을 땐, 지금 저 녀석 그쪽이랑 별로 다를 것도 없어요.”

 

 

발카서스가 입을 다물자, 칼리반이 다시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놈, 변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요.”

 

 

그런 말이 툭 떨어졌다.

 

“저 녀석은 항상 커다란 덩이로 사건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죠. 뭐든 미리 다가올 결과부터 생각해서 계획을 짜두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라면 앞뒤 안 가리고 들이받고.”

 

“...원래도 그러긴 했었지.”

 

“그래도 최소한의 선은 지켰어요.”

 

 

발카서스의 말에, 칼리반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박했다.

 

 

“지금 그것만 이룰 수 있으면 뭐든 써먹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사고방식이 변하고 있단 소리입니다.”

 

“...허면, 어쩌자는 이야긴가.”

 

 

본인도 이미 자각하고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걸 강행하고 있는 것도 본인이기도 하고.

 

 

“선의의 함정이네.”

 

 

발카서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런 자기 파괴적인 희생을 스스로에게도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해.”

 

 

멍청한 남자 같으니.

 

다른 이들은 전부 구하려고 들면서, 정적 거기에 본인이 매몰되는 건 신경 안 쓰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본인에게서 ‘닮았다’라고 표현된 적 있는 사람이기에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자신을 모시던 모든 백성을 눈앞에서 장례를 치룬 인간답게, ‘어째서’ 저렇게까지 하는 것인지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거의 무서워하는 것에 가깝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남자, 이전에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을 잃은 기억이 분명히 있다.

 

마음 깊은 곳에, 머릿속 뿌리 깊은 곳에 틀어박혀, 행동 기제를 정해질 정도로 심한 트라우마로 남아있겠지.

 

그런 이유로 나오는 행동이라면, 뭐라고 한들 본인의 고집을 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요, 방법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발카서스의 앞으로, 다시 칼리반의 말이 떨어졌다.

 

 

“본인이 한 소리를 지켜야겠죠.”

 

“,,,음?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 말을 듣자마자, 칼리반의 얼굴 위로 씩 웃는 미소가 번졌다.

 

 

“지가 엘리야한테도 한 번 말했거든요. 만약 자기가 선 넘는 것 같으면 정신 차리게 바로잡아 달라고.”

 

“...”

 

“저희가 할 일은, 그 계기를 만드는 겁니다.”

 

“...”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는데.

 

어쩐지 즐거워 보인다.

 

다우드 캠벨을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써먹을 방법은?”

 

“그동안 쟤가 좀 답답했죠, 사실.”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여자들한테 휘둘리고.

 

그런 주제에 저쪽은 불완전하고 위험하다면서 자기가 지키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가 얼마나 다치고 부서지든 신경도 안 쓰고.

 

그러니.

 

이쯤해서 보여줘야 할 건 딱 한 가지다.

 

 

“제가 봤을 때, 그냥 역지사지면 충분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그게.”

 

“본인이 남을 지키고 싶어하는 것만큼 남이 자신이 다치는 걸 싫어한다는 걸 제대로 주지시켜주면 되는 겁니다.”

 

 

그런 말이 이어서 흘러나왔다.

 

 

“본인이 여자들에게 어느 정도로 ‘사랑 받는지’ 보여준다면 될 겁니다.”

 

“...”

 

“항상 혼자서만 모든 일을 다 처리해도 되지 않는단 걸요.”

 

 

문장이야 그럴 듯 한데.

 

어째 불길한 예감밖에 안 든다.

 

 

“당신은 한 가지만 해주시면 됩니다.”

 

“뭐지?”

 

“제가 말하는 악마의 그릇들한테 연락해주세요. 한 놈은, 그...”

 

 

칼리반이 잠시 누군가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아마 죄책감 때문에 지금쯤 제정신이 아닐 테지만. 당신의 금술이라면 영체 상대로도 어떻게든 닿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 확실히 그건 어떻게든 가능하긴 하다.

 

소울 링커에서 다우드와 소통하지 않고 잠들어 있는 기간 동안 그의 금술 실력은 원래보다도 더욱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본인’을 거치지 않고도 독자적으로 영체 상태로도 사념을 전달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으니까.

 

문제는.

 

이런 일을 왜 하냐는 건데.

 

 

“걱정 말고 저한테 맡겨주세요.”

 

 

씩 웃는 얼굴로, 이런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대. 이런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발카서스가 가늘게 뜬 눈으로 입을 열었다.

 

 

“어쩐지, 그쪽이랑 닮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

 

“발상의 괴상함이나, 웃는 모습에 묻어 나오는 음험함이나, 지금 완전히 그쪽이랑 똑같은데...”

 

 

칼리반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대단히 심한 욕이라도 들었다는 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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