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9 - 199. 마지막 시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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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번 재상이 심각한 눈으로 페이놀을 내려다보았다.
“당신, 정말로 괜찮은가요?”
“...예.”
페이놀이 애써 꾸며낸 미소로 얼굴을 두르며 말했다.
붉은 악마에 의해 강제로 ‘살아난’ 이후로, 인생의 절반가량을 감정을 꾸며내면서 살아난 덕분에 대단히 자연스러운 작업이었다.
물론 그런 연기력으로도, 지금 그녀가 겪고 있는 ‘현상’을 억누르고 있지는 못 했다.
몸 근처에서 그녀가 억누르지 못한 붉은색 화염이 간헐적으로 주변으로 쏟아져 나온다.
마력을 다루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인간답게 그렇게 쏟아져 내리는 화염을 곧바로 지워버리고는 있지만, 페이놀은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마기.
페이놀이 그릇으로서 품고 있는 악마의 조각들이, 그녀의 몸 바깥으로 줄기줄기 새어 나오는 것이다.
통제가 점점 힘들어 지고 있다.
‘...이렇게 갑자기?’
페이놀이 숨을 헐떡이며 심장에서 요동치는 기운을 쓸어내리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다우드 캠벨과 호감도를 쌓아올리며, 악마의 힘에 대한 ‘통제권’은 점점 확대되는 중이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언젠가는 그녀가 악마의 기운을 다스려 영면에 들어갈 수 있을거란 희망을 품을 정도로.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조각들이 그녀의 몸 바깥으로 튀어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느낌이다. 마치 뭔가에 ‘반응’하여 날뛰는 것처럼.
‘뭐 때문에...?’
짐작 가는 이유가 단 하나도 없다.
처음 그에게 내걸었던 한달이란 제한 시간이 다한 것도 아니고, 그를 향해 품은 그녀의 마음이 가라앉은 것도 아니다.
“...용사 선발 시련이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될 겁니다.”
페이놀이 힘겹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남자가, 그때만 지나면 어떻게든 해준다고 했으니까요.”
마지막 시련이 시작되기 직전에, 페이놀이 전달받은 말이 그런 것이었다.
조금 힘들어지더라도, 최대한 버텨봐라.
그러면, 자신이 그녀를 구하러 올 테니.
“...페이놀.”
그 말을 들은 재상이 진지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이것부터 드세요.”
그렇게 말하며 재상이 내민 물건을 본 페이놀의 눈이 동그래졌다.
‘환단...?’
동방에서 쓴다고 들은 기억이 있는 약의 형태다.
약재를 둥그렇게 말아 구슬 모양으로 뭉쳐놓은 것.
적어도 대륙에서 보기는 쉽지 않은 형태다.
“...음.”
아무튼 재상이 내미는 것이니 그녀를 해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페이놀이 그걸 꿀꺽 삼켰다.
“...어?”
그러자마자, 자신의 전신을 괴롭히던 통각이 순간적으로 싹 가시는 느낌이 찾아들었다.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세상에 악마의 기운을 억누를 수 있는 약이 존재하다니?
“...이런 약이... 어떻게 존재합니까?”
“그 언령술사에게서 받아온 것입니다. 이쯤이면 슬슬 필요할 것이라 하더군요. 본인도 두 번은 못 만들 만큼 귀한 것이니 조심히 다루라는 말도 덧붙이면서요.”
하지만.
그게 어디서 받아온 것인지를 듣자마자 페이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재상님.”
페이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를 받아준 것,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무슨 이야긴가요, 당신?”
“제가 품고 있는 게 뭔지 아시면서도 이단 심문소 휘하에 받아들이셨죠.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설리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말씀만큼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페이놀이 진지하게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각자와 연을 맺어두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선각자라는 인간은.
검은 죽음의 덩어리 같은 여자다.
페이놀이 그쪽을 볼 때마다 느끼는 바로는 그것 외의 다른 건 떠오르지 않는다.
“악마 숭배자들의 수장이니 어련하겠어요.”
“...”
사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뭔가 ‘미래’에 대해 알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 설리번 이상으로, 그쪽은 이 ‘세계’에 대해 수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느낌이다.
이쪽 분야에서 페이놀이 느끼기로는 최고봉인 다우드 캠벨에게 비견될 정도로.
“하지만, 이게 당장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잖습니까.”
그렇게 말한 설리번이 아까 그녀가 복용한 환단 여러 개를 더 내려놓았다.
“다우드에게... 계획이 있다고 한다면 저도 그쪽을 믿습니다.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남자니까요.”
설리번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장은 당신에게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대로 가면 정말로 큰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
페이놀이 불안한 눈동자로 자신의 앞에 놓인 환단을 내려다보았다.
그 여자와 얽힌 것이라고 하니, 역시 꺼림칙하다.
하지만.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 마지막 시련.’
지금 당장은.
별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페이놀이 한숨을 내쉬며 환단으로 손을 가져갔다.
●
“...저기, 칼리반.”
[음?]
이번에도 천연덕스럽게 대답이 돌아왔다.
“뭔가 꾸미고 있는 건 알겠는데요.”
[응.]
“...”
이젠 감추려는 기색조차 없다.
이쯤 되면 거의 두통이 느껴질 정도다.
“...대체 무슨 짓을 하시려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의 창을 노려본다.
< System Message >
[ ‘붉은 악마’의 그릇이 지척에 있습니다! ]
[ ‘자색 악마’의 그릇이 지척에 있습니다! ]
[ ‘하얀 악마’의 그릇이 지척에 있습니다! ]
[ ‘푸른 악마’의 그릇이 지척에 있습니다! ]
[ ‘ ̶̘͛͑̊̇̆́̃͋̏̆͘͝͠C̵̡̹̖̙̭͖̈́̓̐̈́͐¾̸̧̥̬͈͇̹̘͕̠̮̩̙̎ð̸̞͖̋¾̶͕̻́̊̇î̸̙̪͎̥͎͍̲͔̔̈́̀̃͗́̚̚͠͠͝͠ ̷̨̨̣̭̭͓̱̼͚̮̼̭̟̱̾̄͑̈́̋͝’의 그릇이 지척에 있습니다! ]
첫 줄까지는 이해한다.
당사자인 페이놀이 바로 근처에 와 있으니까.
“...”
그런데, 다른 것들은 뭐냐고.
타천의 인장이 반응하지 않는 걸 보니 직접적으로 ‘마기’가 뿜어져 나오진 않는 모양이다. 그럼 최소한 당장 폭주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다고 그게 안심해도 된다는 소린 아니지만.
“당신 진짜 제정신이에요?”
이만한 숫자의 악마의 그릇이 한 곳에 모이는 것부터가 이미 재앙 수준이다.
폭주할 가능성이 그렇게 낮은 인간들도 아닌데, 한 개만 폭주해도 상황이 작살날 마당에 이만한 인간들을 한 군데에 모아놓으면...!
[폭주 안 해.]
“...예?”
[그릇들이 폭주하는 이유의 대다수가 너 때문이잖아. 그렇지?]
“...”
[너 때문에 감정의 격류가 왔다 갔다 해서 이성 잃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
그렇기는... 하지.
그런데 그게 대체 왜?
[그러니까 이번엔 한꺼번에 다 모아놔도 폭주 안 해. 내가 그렇게 만들어 놨어.]
“...뭔데 그렇게 자신만만해요?”
[됐고. 한 번 믿어봐.]
“...”
[너처럼 미리 전부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계획을 짜진 못 하는데. 나름 제국에서 제일 칼밥 좀 먹었다는 놈들을 10년도 넘게 굴려본 사람이 나다. 확실하다고 하면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뭐라고 더 태클을 거는 것도 웃기긴 하다.
애초에, 이만한 숫자를 모았을 때 일이 잘못 굴러갈 경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휩쓸리게 된다.
저기, 성검을 수여받기 직전의 상태로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는 엘리야까지 포함된단 소리다.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일단 엘리야에게 성검을 쥐어준다면, 이렇게 굴러가는 상황의 대다수는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가장 경계하던 건 그놈인데...’
선각자가 엘리야가 성검에게 인정받기 전에 끼어드는 게
문제는.
[ 기프트 관련 인물 알람 ]
▼ 페이놀 라이펙
[ 신뢰 3단계 ]
[ 관련 이벤트 발생까지 D-1 ]
“...”
다시 봐도 이상하단 말이지.
왜 내일이냐?
원래대로는 오늘 안으로 터졌어야 정상인데?
‘...뭐, 나쁜 일은 아니지.’
뭐가 어찌되었던 엘리야에게 성검만 쥐어주면 이번 챕터는 그걸로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검+엘리야는 누누이 말했지만, 나중에 회색 악마와도 비빌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지는 조합이다.
처음으로 만나는 순간부터 위력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지.
[아주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네?]
“그럼요.”
성검은 곧 현 세대 용사의 것. 다른 녀석들이 손에 댈 수 있을 리가 없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세라 세계관에서 엘리야를 제외하고는 용사라는 칭호 근처에라도 다가갈 수 있는 녀석은 어디에도 없다.
이 세계에 빙의한 나를 포함한 경우라도 그렇지.
[그래서. 저게 성검이냐?]
“예.”
그렇게 답하며, 루미놀 대주교가 긴장된 얼굴로 가져오는 ‘바위’를 바라본다.
[...바위?]
“성검은 만지기만 해도 자격이 없는 인간은 죽으니까요.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중상을 입거나.”
칼리반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답해준다.
“그러니까 성검이 꽂혀있는 바위채로 운반해서 움직이는 겁니다.”
[...그래서 저 사람들이 다 대기하고 있는 거냐?]
칼리반이 가리킨 쪽을 보자,
농담이 아니라 죽지만 않으면 살려낼 수 있는 수준의 사제 병단이 그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검을 운반해 온 루미놀 주교까지 포함해서.
대단히 긴장된 기색으로 바위를 운반하고 있는 인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저쪽 입장에서야 성검과 잘못 접촉했다가 경을 친 인간들을 수두룩하게 봐 왔을 테니까.
[...말도 안 되는 보물이긴 하네.]
바위 위에 꽂혀있는 성검을 보자마자, 칼리반이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단순히 검의 모양만 놓고 봤을 땐 그런 말을 납득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 어디 창고에서 잡동사니 한 가운데에 섞여있어도 위화감이 없을 만한 비주얼이니까.
물론, 그런 외양은 다 속임수다.
‘...저거, 이 세계관 최강의 공격 아이템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 흔한 장식 하나 없는 낡아빠진 검을 바라본다.
이전에 유리아에게 씌워준 별철과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다만, 그것과 비교해도 그 순도가 말이 안 되는 별철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저 검의 ‘존재감’이 남다르다는 건 인정할 것이다.
마치 세상에서 혼자 ‘단절’되어 고고하게 흐르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지.
그리고, 저걸 관찰하는 사람이.
어떤 종류든, ‘이능’을 눈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실력자라면 저걸 보자마자 신음부터 흘릴 것이다.
저 검은, 모든 종류의 ‘이능’을 흩어버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신성. 법력. 마력. 저주. 그 외의 모든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이능. 하나도 빠짐 없이, 전부 다.
‘모든 기운’을 전부 끊어낸다는 건, 전 차원의 위상에서 가장 윗줄에 서 있는 악마에게도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과 동일하다.
그들이 다루는 ‘마기’조차 흩어내고, 그것으로 이루어진 본체에까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니까.
“뭐, 일단 두고 보자구요.”
그렇게 말하며, 엘리야에게 앞서 성검을 ‘잡아볼’ 기회가 주어진 라나를 관찰한다.
나와 엘리야 페어를 제외하고는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은 녀석이다. 충분히 아 자리에 불려올 만 하지.
물론, 성검을 잡자마자.
온몸이 ‘터져나가긴’ 했지만.
마치 몸 안에 있는 폭탄이라도 폭발한 듯, 그 몸이 순식간에 부풀어올라 터져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루미놀 대주교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게 눈에 들어온다.
[...와우.]
그걸 본 칼리반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마 물건을 그냥 잡자마자 저 꼴로 사람이 ‘분쇄’되는 걸 보는 건 이 사람으로서도 놀라운 모양이었다.
[고작 주인이 아닌 놈이 자길 잡았다고 저 꼴로 만든다고? 성검이라는게?]
“악마 전원의 피를 묻혔다는 소리도 나오는 물건이니까요. 마검같은 특성을 가져도 이상할 건 없지 싶어요.”
[말은 쉽다...]
그런 말을 하는 사이, 터져나간 라나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늘 그렇듯 이렇게 한 번 죽고도 별 신경도 안 쓰는 모습이었다.
“으음... 역시 전 아닌 모양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모습을 본 칼리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로 괜찮겠냐? 엘리야가 저 모습이 안 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만에 하나 정말 잘못되더라도, 저 뒤에 있는 의료진들이 큰 탈 안 생기게 보살펴 줄 겁니다. 저도 목숨을 걸고 지킬 거구요.”
[그렇다고 하면 일단 지켜보긴 하겠다만...]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엘리야가 천천히 접근해서 바위 위로 타고 올라갔다.
긴장된 눈으로 성검을 훑는게 느껴진다.
“...좋아.”
이내, 그렇게 말한 녀석이 성검의 손잡이로 손을 가져갔다.
라나는 어차피 뭘 해도 안 죽으니까 단 번에 만졌다지만, 엘리야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걸 어루만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자신을 소개하듯이.
천천히.
그 손가락이, 성검의 손잡이에 맞닿는다.
“...”
분명히.
아까 전, 라나처럼 몸이 터지거나 할 기색은 안 보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전혀, 아무런 것도.
“...뭐야?”
누군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
그리고.
그걸 본 내 피가 싸늘하게 식는다.
식은땀이 흐른다. 시야가 호흡이 가빠진다.
아니.
아니.
아니.
웃기지 마.
이럴 리가 없는데.
[...이거, 무슨 상황인데?]
“...거부당했어요.”
[뭐?]
“성검이... 저 녀석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판단했다구요.”
신음처럼 그리 대답한다.
라나처럼 즉사하지 않은 것만 봐도, 그 ‘자격’은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용사가 되어도 충분한 인간이란 뜻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하지만.
그럼에도.
성검은 지금, 엘리야가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다.
원래대로면 뿜어져 나왔을 밝은 빛이 없는 것이 그 증거다.
“...”
이건.
성검이.
엘리야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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