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10 - 210. 속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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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본부의 최심부.
법황이 기거하는 방.
최측근 중에서도 극소수를 제외하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에서, 법황이 은은하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전부 계획대로 가고 있어.”
그런 문장의 건너편에는, 가면을 쓴 여자가 다리를 배배 꼰 상태로 앉아있었다.
“예정대로 붉은 악마의 폭주, 근처 지대의 테라포밍, 그리고 ‘열쇠’의 움직임까지 전부 흘러가고 있다.”
테이블 중앙에 박혀있는 수정구를 통해 영상을 쭉 지켜보던 법황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 안쪽에서는 붉은 악마가 일으킨 불기둥 근처에 있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아마 제국의 그 반쪽짜리 드라칸Drakhan과 ‘사자심’도 저쪽을 노리고 있겠지만...”
아마 지금 이렇게 보이는 영상도 그쪽과 함께 시청하고 있을 확률이 높지.
저 남자를 노리는 쪽은 한두 명이 아니니까.
“가장 ‘유용’하게 써먹을 건 틀림없이 우리가 아니겠나.”
특히.
본인이 그리고 있는 ‘낙원 계획’을 위해서는, 모든 악마를 통제할 수단을 쥐고 있는 저 남자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괜히 ‘세계의 열쇠’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뭐, 결국 먼저 손대는 쪽이 이득 볼 거라는 건 동의해.”
법황이 그렇게 생각하며 수정구 안의 다우드를 노려보고 있자니, 언령술사가 심드렁한 어투로 말을 받았다.
“저쪽도 참 속 시꺼먼 인간들에게 사랑 많이 받는 운명이라니까. 안 그래?”
“...”
법황 본인도 속이 시꺼멓다고 돌려서 욕하는 문장이었지만, 법황은 코웃음만 칠뿐 별다른 말을 얹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다른 쪽이 더 신경 쓰였으니까.
“너희들의 수장은 아까부터 뭐가 문제인거지?”
법황의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가 토커를 향해 날아갔다.
이번에도, 선각자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법황이 늘어놓는 말에 별다른 관심도 안 가진 게 틀림없는 모습이었다.
뭔가에 토라진 것처럼, 정말 아무래도 좋다는 것처럼.
“아, 이쪽은 신경 쓰지 마. 그냥 바람 맞아서 삐진 것뿐이니까.”
“...뭐?”
“저기 있는 남자한테 데이트 신청했는데, 그거 거절당해서 기분이 나쁘대.”
“...”
법황이 잠시 할 말을 잃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십대 소녀한테서나 나올 변명을 주워섬기고 있다.
실제로 여태 말없이 듣던 선각자도 어이가 없었는지 이내 뭐라고 입을 여는 모습이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토커.”
“부정은 안 하네.”
“...”
다시 입을 다무는 선각자를 보고, 법황이 믿기지 않는단 기색으로 토커와 선각자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아니.
진짜로?
악마 숭배자들의 수장이란 작자가?
“...그쪽은 신경 끄고.”
선각자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토커의 말대로, 끝까지 부정은 안 하는 모습이었다.
“네 말대로 여기까진 전부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어. 이제 남은 건 저 남자가 붉은 악마를 제압하는 것뿐이야.”
그런 말이 이어졌다.
“갈색을 제외한 전원의 마기를 타천의 인장이 먹어치우면, 그때서부터가 진짜니까.”
완전히 저쪽을 지지하는 것으로 입지를 정리한 부족 연합을 제외한다면, 이제 그때부터가 누가 저 남자를 ‘차지하냐’로 본격적으로 판이 굴러갈 예정이었다.
모든 악마의 마기를 한 번씩 삼킨 다우드 캠벨은.
전 대륙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것이 분명하니까.
“...1회에 불과하겠지만.”
선각자의 시선이 다우드 캠벨의 가슴팍에서 빛나는 인장에 가서 꽂혔다.
“전능에 가장 가까운 인간이 될 거야.”
그 가치는, 틀림없이 대체불가능하다.
그 가치와 ‘위험성’ 모두.
본인은 똑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겠지만.
“...하지만, 글쎄.”
법황의 눈이 이어서 가늘어졌다.
“지금 저 상황을 정말 해결할 수는 있는 건가?”
조각 세 개가 모인 그릇이 절찬리에 폭주하는 와중이고, 그 마기에 의해 세계 전체가 실시간으로 변동하고 있다.
가만히 내버려둔다면, 정말로 물질계 전체를 통째로 판데모니엄과 똑같은 모습으로 바꿔버리겠지.
방금 용사 후보가 보였듯, 어지간히 강력한 이라도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 수준의 마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는 와중이다.
그 중심지에 있는 붉은 악마의 그릇에서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멀어 버릴만한 마기를 내뿜고 있었다.
“...회색이 아닌데도 이 정도라고.”
법황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본체와 접촉하지도 않은 악마. 그리고 그 중에서도 최강도 아닌 그저 일곱 악마 중 하나. 심지어 ‘본체’는 되찾지도 않은, 아직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존재.
그런 것 중 하나라도, 이런 위력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애초에 근처에 다른 인간들이 있는데도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단 것 자체가,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거란 확신이 있으니 나오는 행동이렸다.
그런데 저걸 상대해서, 이긴다고?
“이길 걸.”
하지만.
선각자가 단호하게 그런 대답을 내렸다.
재고의 여지도 없다는 기색으로.
“어떻게든 해. 이번에도 분명히 살아남아.”
그 눈동자가, 이어서 가라앉은 기색으로 음험하게 빛났다.
“저 남자를 제대로 죽일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거든. 그리고 빨간 놈은 그 축에 못 껴.”
“...”
확신으로 가득찬 기색으로 흘러나오는 말에 법황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영상 속에서 다우드가 뭔가를 꺼내드는 모습이 문득 그의 시선 끝에 걸렸다.
“...흉갑?”
법황이 다우드가 손에 쥐고 있는 장비를 보고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기억을 좀 뒤져보자면, 예전에 제국쪽에 있던 어떤 인간들이 쓰던 물건이다.
가디언이라고 했던가.
“한 번이라도 그릇을 ‘죽인’ 적이 있는 놈은, 꽤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되지.”
법황이 중얼거린 말에, 선각자가 한 마디 더 얹었다.
“한 번 적야 사태를 진입했던 가디언이라면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특별한 상황?”
“너라면 알아볼 것 아니야?”
선각자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거, 안에 영혼을 담아 성물 처리한 물건이야. 특수한 효과 뭐라도 있을 걸?”
“...아니, 그래도.”
법황이 표정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성물을 똑바로 사용하려면 꽤 능력이 검증된 사제가 있어야 할 거다.”
그리고, 성황국 안에서 그럴만한 역량이 있는 인간이라면 법황의 지시로 저 지역에 접근도 하지 않을 게 분명한 상황이다.
아무튼, 저 남자를 중심으로 패권국들끼리의 ‘쟁탈전’이 격화될 예정이다. 인력은 하나라도 아끼는 편이 좋겠지.
그렇다면 저건 그냥 빛 좋은 개살구다. 도저히 써먹을 수가 없는-
“글쎄.”
선각자가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런 것도 준비 안 해두고 저런 걸 가져왔을 남자는 아닐 것 같은데?”
그 말과 동시에.
수정구 안으로, 다른 목소리 두 개가 연이어 울려퍼졌다.
[와하하하! 다우드 씨, 지금 대위기 아닙니까!]
[얘, 얘야?! 위험하니까 물러서렴!]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확인한 법황의 표정이, 이내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루미놀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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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작이네.”
“동의하지.”
엘리야와 엘노어가 신음처럼 내뱉은 중얼거림에, 라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뭐가 말입니까?”
“아, 그쪽은 많이 못 봤죠?”
엘리야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답했다.
“...저 사람이 저 지랄하는 건 별로 안 익숙하시겠네요.”
“...”
“무슨 일만 터지면 저렇게 미친 짓을 못 해서 안달이거든. 저 인간.”
“...다 들린다.”
사람을 무슨 기행투성이 미친 인간처럼 말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담아 투덜거렸지만.
“아니라고 해 보던가.”
오히려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
“제가 선생님 좋아하긴 하는데, 이건 부정할 수가 없단 말이죠. 일상 생활 가능하세요, 진짜?”
“...기회는 딱 한 번 뿐이야. 실수없이 해내야 돼.”
“저 봐, 저. 불리하니까 말 돌린다.”
엘리야의 핀잔을 무시하며, 날 ‘집어던질’ 준비를 마친 리루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자신 있으시죠?”
“...그냥 저 안쪽으로 집어 던지는 것뿐인데. 자신 있고 자시고도 없어.”
리루가 두통이 올라온다는 표정으로 그런 대답을 돌려줬다.
내가 이쪽에 주문한 건, 저 불기둥 안쪽에 있는 페이놀한테 똑바로 닿도록 나를 집어던지는 거다.
아, 아쉽네. 엘판테에 있는 내 투석기만 있으면 이런 걸 할 필요도 없-
“또 미친 생각하는 표정이네...”
“...루미놀 대주교님. 사전에 약속드린 ‘성물 발동’은 정확한 타이밍에 부탁드립니다.”
또 날아다는 타박에 애써 말을 돌리니, 루미놀 대주교가 표정을 꿈틀거리며 답했다.
“...알겠다.”
“성공하면 약속대로 당신이 인간 말종인건 따님한테 알려드리지 않을-”
“그건 알겠고.”
다급하게 말을 끊은 루미놀 대주교가, 이내 표정을 찌푸리며 옆쪽을 돌아보았다.
“...저걸 어떻게 막는단 거지?”
그쪽에는.
눈이 아플 정도로 새빨갛게 타들어가고 있는 ‘뭔가’가, 불기둥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맥동하고 있는 것만으로 주변 모든 것들을 침묵시키고 있는, 압도적인 존재감.
심지어 그런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와중에도,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마기는 계속해서 더 커지기만 하고 있다.
“...싸울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안 들긴 하네요.”
엘리야가 성검을 쥔 손을 살짝 떨며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악마란 것들, 이렇게나 강력한 거였어요?”
“그래도, 막을 거야.”
피식 웃으며 답하자, 루미놀 대주교가 표정을 더욱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말했잖아요.”
손짓으로 리루를 준비시키며, 간단하게 답한다.
“먹는다고.”
이어서.
손가락을 튕긴다.
사전에 미리 말을 맞춰둔 ‘신호’였고, 그에 맞춰 리루가 격렬하게 나를 집어던졌다.
몸이 화살처럼 튕겨나가는 와중에, 천천히 페이놀의 반응을 살핀다.
여태 주변에서 누가 뭘 지지고 볶든, 계속해서 하늘에만 고정되어 있던 붉은색으로 물든 홍채가.
처음으로, ‘나’를 바라본다.
“...”
이어서, 온몸이 오싹해질 수준의 적의가 몰아친다.
여태 아무 반응도 안 보이던 녀석이, 처음으로 팔을 움직여서 나를 가리켰으니까.
내가 뭘 하려는진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그게 자신에게 위해가 될 수도 있단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거대한 화염이 주변으로 폭발하듯이 펼쳐진다.
아직까진 나를 태우려기 보단 단순히 밀어내려는 의도가 강하게 느껴지는 움직임이다.
역시.
이 녀석, 생각보다 온순하다.
“...”
그래.
그렇게밖에 표현할 말이 없지.
제국 최악의 재앙이라는 적야 사태를 일으켰다는 인간치고는, 지금까지 보인 행보 자체가 너무 온순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내가 찌르고 들어가려는 것도 그쪽이고.
“발카서스.”
[알겠네.]
그리고 나를 본격적으로 ‘태우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이렇게 밀어내려고만 하는 것이라면.
발카서스의 금술만 써먹어도 충분히 대처 가능하다.
몸에 새겨진 금술의 획이 빛난다. 효과 범위 안에 들어온 건 설사 마기라도 잠시나마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술식이 발동된다.
덕분에, 나를 향해 솟구쳐오르던 화염이 일순 정지한다. 리루가 나를 집어던진 물리 에너지를 별로 손해보지 않고 녀석의 몸까지 접근할 수 있단 소리다.
“...”
표정이 살짝 비틀리는 페이놀의 앞에, 도달하고.
녀석의 팔을 ‘메달리듯이’ 붙잡는다.
녀석이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며 손을 슬쩍 비틀었다.
금술로 이 녀석의 행동을 한 차례 돌파했다지만, 그건 솔직히 현재 상황에서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이 녀석 입장에서는 아마 날파리가 날아들어서, 쫒아내려고 손을 휘둘렀더니 그게 팔에 턱 앉은 느낌일 테니까. 그 정도의 수준 차가 난다.
여기까지 접근해도, 내가 이 녀석에게 위해를 가할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팔에 앉은 날파리를 보고 불쾌감을 느낀 사람이, 그걸 곧바로 터트려 죽이려고 할 수는 있지.
“...씹.”
주변으로 험악한 기세로 넘실거리기 시작하는 화염을 보고, 위기감 깃든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시간이 별로 없다. 할 일을 빠르게 해야지.
품 안에 고히 담긴 사자 흉갑을 만지작거린다.
목표는, 이걸 페이놀의 ‘심장’에 꽂아넣는 것.
그러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행동은...
“...”
입을 쩍 벌린다.
그리고.
“왑.”
날 향해 뻗어진, 페이놀의 팔을.
입으로 앙, 하고 문다.
고기를 베어물듯이. 뜯어먹으려는 것처럼.
“...아니.”
엘리야가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먹는다는 게 저런 뜻이었어?”
“...”
녀석의 중얼거림에 동의하는 것 같은 침묵이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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