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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214화 (215/258)

Chapter 214 - 214. 공략 (4)

처음보는 천장...은 아니다.

애초에 눈앞으로 보이는 게 천장도 아니고.

“...”

눈을 찌푸린 상태로 별이 반짝거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붉은색 기운이 걷혀나간 멀쩡한 광경이다.

페이놀의 심상 세계 안쪽에 있다가 의식이 급격하게 끌려나오자마자 본 게 이거라면, 가리키고 있는 상황은 명확하다.

‘...클리어.’

성검의 힘을 개방한 엘리야가 페이놀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단 말이지.

“선생님. 선생님?! 정신이 드셨어요?!”

“...지금 정신이 없어질 것 같은데.”

그리고 몸을 일으키자마자, 주변에서 확 튀어나온 엘리야가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그런 말을 내뱉었다.

시야가 덜덜 거리면서 흔들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세게 흔드는 모양이다. 어지러워.

“...그보다.”

시선을 내려, 엘리야의 검집에 꽂혀있는 성검을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다르게, 검 전체에 은은한 빛이 깃들어 있는 모습이다.

“너, 그거 인정은 제대로 받았냐?”

“...어떻게든 받은 것 같은데요.”

엘리야가 피식 웃으며 성검을 내려다보았다.

“안쪽에 계신 분이랑도 어떻게든 대화도 가능해졌고.”

“...안쪽에 뭐가 있어?”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소린데.

게임 안에서 성검이 천사의 가호를 받은 물건이란 소리는 있었지만, 안쪽에 인격체가 있는 뭔가가 갓들어 있다는 건 나도 전혀 관련된 걸 들은 적이 없다.

“...있어요. 좀 소름끼치는 분이.”

“...”

진심으로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검을 노려보는 엘리야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는다.

뭔데 그래?

“...아무튼, 뭐. 축하한다.”

그쪽 화제는 흘려내고, 미소를 지으며 엘리야에게 말한다.

“이제 어엿한 용사네. 다른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겠어.”

“...제일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말이죠.”

의미심장한 기색으로 떨어지는 엘리야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본다.

“...저, 선생님.”

“응?”

“저, 사실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되게 많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엘리야의 시선이 내 손목에 걸려 있는 소울 링커에 가서 꽂혔다.

“...우리 오빠, 그 안쪽에 있죠?”

“...”

쓴웃음을 머금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 정도로 확신을 담아 물어보면 발뺌할 수도 없다. 당장 이 녀석 눈앞에서 가디언의 사자 흉갑을 써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엘리야의 얼굴로 복잡미묘한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기색의 침묵이 한참을 이어졌다.

“...설명, 해주실 거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조용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지금은 안 돼.”

내 말에, 엘리야가 조용히 미소지었다.

어쩐지 서글픈 기색이 담겨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판단했다면, 이유가 있겠죠.”

“...”

“기다릴게요. 선생님이라면 절대 저한테 해를 끼치려고 그런 짓을 하실 분이 아니니까.”

묵직한 신뢰다.

듣는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에 대한 믿음이 가득한 문장.

[...왜 지금은 안 되는데?]

‘...아직은 아니에요.’

칼리반의 말에 씁쓸하게 답한다.

아마 당신이 죽었다는 건 이 녀석도 당연히 짐작하고 있을 거고. 그걸 안 이상 문제는 ‘왜’ 죽었냐로 이야기가 빠지게 되는데.

그건 황제와 트리스탄 공작가와도 밀접하게 엮여서 굴러가는 이야기다.

당장 여기서 풀어봤자 해결될 이야기도 아니고, 엘리야에게 악영향만 미칠 가능성이 높다.

“...”

다만.

멀지 않은 미래라고 말한 건 진심이다.

그건 당장 다음 챕터인 ‘제국 대분란’에서도 핵심을 꿰차는 이야기니까.

“...아무튼!”

엘리야가 활짝 웃으며 나를 일으켜세웠다.

“해냈어요, 선생님. 악마를 제압했다구요!”

< System Message >

[ ‘4 챕터 – 적야’를 클리어하셨습니다! ] [ 보상으로 ‘타천의 인장’의 기능이 추가로 개방됩니다! ] [ 보상으로 각 지역의 수뇌부와 관련된 특수 이벤트가 추가로 개방됩니다! ]

그리고 그 말의 증거처럼 눈앞으로 떠오르는 창을 보자마자 실소가 또 떠오른다.

이래저래 이런저런 탈이 있었지만, 아무튼 결국에는 또 살아남았단 소리다.

이번에도 어떻게든 해냈다.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창에 항상 세트처럼 붙어서 따라오는 게 있을 텐데...

< System Message >

[ 메인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 [ ‘타천의 인장’에 ‘붉은 악마’의 기운이 추가됩니다! ]

그렇지.

시스템창에 붙어서 따라나오는 것들을 찬찬히 훑어본다.

< System Message >

[ 대상 ‘붉은 악마’의 호감도가 개방됩니다! ] [ ‘악마’의 호감도를 자력으로 갱신하셨습니다. ‘타천의 인장’의 추가 기능 개방 조건이 충족됩니다! ]

< Skill Info >

[ 타천의 인장 – 개改 ]

[ 일정 기간을 두고, 악마와 직접적인 '접촉'이 가능해집니다! ]

< !NEW! >

[ 당신의 영향으로, 이제 대상들이 ‘그릇’들과 보다 직접적인 소통이 원활해집니다! ] [ 그 영향으로 모든 그릇들에게 특수한 능력이 개방됩니다! ]

“...”

이건 좀... 묘하네.

이전까지의 보상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확실히 도움될 거란 느낌이 있었다면, 이건 솔직히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느낌이다.

물론 악마란 것들 대부분이 나한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란 건 알겠는데, 이것들이 한 번 수틀렸다간 어떤 꼴이 됐는진 이미 투쟁의 용광로에서 엘노어의 모습으로 똑똑히 본 바 있다.

지금은 회색 말고 다른 악마들이 터진 경우는 없다지만, 앞으로 안 그럴 보장은 또 없거든?

[...그러니까, 여자친구님들 비위 안 상하도록 동시에 문어발 걸치면서 호감도 관리해야 한다는 거잖아. 지금까지 하던거랑 크게 다를 바 없는 거 아니야?]

“...”

그렇게 들어보니까, 대체 지금까지 그걸 어떻게 해내고 있었냐는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긴 있다.

‘예전에는 그래도 따로 관리하는 느낌이 좀 있었거든요.’

적어도 내가 미친 문어발을 걸치고 있다는 걸 전원이 다 알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전부 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는 소리다.

다행히 그걸 들키자마자 날 조각내겠다고 달려들지는 않아서 다행이기는 한데.

‘...관리는 예전보다 훨씬 힘들어지겠죠.’

아마 이제는 전원이 ‘경쟁자’들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으니까.

흔히 말하는, 캣파이트가 극심하게 격화될 거란 의미다.

“...”

악마 단위 캣파이트라.

저번에 재상님하고 엘노어하고 부딪힐 뻔했을 때 뭔 지랄이 날 뻔했는지 생각한다면.

그것 참 지옥 같네.

여러 의미로.

“다우드!”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내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달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전부 다 악마의 그릇들이다. 엘노어, 리루, 유리아, 세라스.

‘...그러고 보니까, 신기하네요.’

[뭐가?]

‘이번에 악마들이 순순히 협력해서 사고를 안 쳤다는게요.’

이번 적야 사태를 이렇게 나름 쉽게 진압할 수 있었던 건, 이 사람이 불러모은 그릇들이 서로 사고 안 치고 ‘협력’해서 나를 도와준 덕분이 제일 크다.

그게 아니었으면 솔직히 중간에 어떻게 됐을 진 나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중요한 위기 국면에서 반쯤 나 몰라라 식으로 일이 진행돼서.

[뭐, 확실한 보상이 있으니까. 아무리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라도 침을 질질 흘리며 탐낼 게 있으면 사이가 좋은 척이라도 할 수 있거든.]

“...예?”

[까먹은 건 아닐 것 아니야.]

칼리반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초야권 준다고 한 거, 안 까먹었지?]

“...”

아.

맞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눈앞으로 다가오는 여자들을 바라본다.

그제서야 각각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전원이 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딱 한 명만 빼고.

“...그러면, 다우드.”

엘노어가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답지않게 긴장했다는 기색이다.

다들 못마땅한 기색으로 주변에서 노려보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약속, 잊지는 않았겠지?”

“...”

우리.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제발.

언제나 이런 대형 사고가 지나간 뒤라면, 사실 그 뒤에 내가 밟은 루틴도 이제 어느 정도 정형화된 느낌이다.

아탈란테몬. 뒤처리 해줘.

“...”

“...”

총장실에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아탈란테의 시선을 애써 받아넘긴다.

아니, 나도 이번에는 고생 좀 했으니까. 그래도 좀 당당하게 이런 걸 요구해도 되지 않나.

“...인정해드리겠습니다.”

아탈란테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설리번 재상에, 황궁에, 이번에는 용사 선발에 악마 사태까지... 쉴틈도 없긴 하셨습니다. 이번 학기는 틀림없이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당신 기준으로도요. 그나마 곧 방학인게 다행일까요.”

아탈란테가 서류를 뒤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용사 선발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에는 최종적으로 엘리야 크리사낙스 학생으로 결정될 모양이고... 사태의 후처리도 제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처리해야 할 건 몇 가지 더 남아 계십니다. 이것만큼은 본인의 의사를 직접 들어야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으로 전달된 서류를 한 가지 받아본다.

내용을 요약하면.

페이놀의 처우에 대한 것이다.

“...신기할 정도더군요.”

아탈란테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따지고보면 대형 사고를 친 존재입니다. 당신이 이번에도 또 묘기를 부려서 어떻게든 사상자 없이 틀어막긴 했지만, 농담이 아니라 대륙 단위의 재앙으로 번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태였어요.”

“...”

“그런 사태를 일으킬뻔한 주원인이니 원래대로는 그대로 즉결 처형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아탈란테가 안경을 고쳐쓰며 고개를 들었다.

“그 신변을 보호해달라고 굉장히 격렬하게 달려드는 집단들이 몇 있더군요. 특히 부족 연합이.”

“...”

“악마 관련 사태를 일으킬뻔한 당사자를 비호해줌으로써 그네들이 뒤집어 쓸 리스크가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조차 안 될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까지 한다는 건...”

아탈란테가 나를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조작한 일이죠, 다우드?”

“예.”

순순히 인정한다.

이전에 부족 연합의 대족장님에게 한 번 빚을 지워둔 걸 지금 써먹는 거다.

정확하게, 이거 말이지.

< System Log >

[ ‘부족 연합’과의 특수 상호작용이 추가됩니다! ] [ 1회에 한해 대상에게 ‘특수 지원’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 [ ‘특수 지원’은 분야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제한에 가까운 요청을 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일으킬 수 있으니, 신중하게 사용하십시오! ]

이전에 3 챕터를 클리어하면서 받아뒀던 보상.

난 이걸, 페이놀을 살리는 데 써먹을 거다.

“제가 찜해둔 여자입니다.”

“...”

“해치게 둘 것 같습니까?”

당당하게 말하는 내 모습에, 아탈란테가 죽을 것 같다는 기색으로 이마를 감싸쥐었다.

다른 문장이 흘러나온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풀려나긴 할 겁니다. 다만.”

상대방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났다.

“...책임질 자신은 있으십니까?”

“없더라도 할 겁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요.”

이 녀석의 과거와 얽힌 일은, 지금부터 반드시 반드시 천천히 풀어가야할 문제니까.

‘...극후반 진행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고.’

페이놀은, 스토리 후반부 핵심 집단인 마탑과 연을 두고 있는 녀석이다.

이 녀석에게 맺힌 한을 풀어내는 건 그쪽과 관련된 후반부의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것과도 직결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것보다도.

“제가 행복하게 해줄겁니다.”

“...행복하게요?”

“약속했거든요.”

붉은 악마에게 남겨둔 말은 빈말이 아니다.

그런 말까지 팍팍 뿌려뒀으면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나.

내 말을 들은 아탈란테의 얼굴로 미소가 걸렸다.

흡사 속이 꽉 찬 아이를 보고 흡족해 하는 부모를 보는 것 같은 기색이다.

“똑바로 책임을 질 생각이라면 다행입니다만.”

아탈란테가 한숨을 내쉬며 다른 서류를 내밀었다.

“...이건 뭡니까, 다우드?”

“...”

그걸 보자마자 내 표정이 싹 굳는다.

식은땀도 이어서 흘러나온다.

“뭔데 그러십니까. 아까보다도 훨씬 심각해 보이시는데.”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문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본인들끼리 내기를 한 모양입니다.”

“내기요?”

“제일 저한테 도움이 된 사람이 제, 그... 처음을 가져가겠다고 하던데요.”

“...”

혼란스러운 절망이 아탈란테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교육자로서 자기 학생들이 이런 파멸적인 내기를 했다는 사실에 절망해야 할지, 아니면 거기에 휩쓸린 내 처지에 절망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이런 놈들이 전 차원 단위로도 최강의 존재들이란 사실에 절망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날아온 게 이겁니까?”

“...”

“첫 경험은 본가에서 같이 하자고?”

“...그런 모양인데요.”

그렇게 답하며 아탈란테가 내민 서류를 내려다본다.

초대장이다. 트리스탄 공작령의 가문 본가로 부르는.

이번 방학은 그쪽에서 체류해달라길 청하는 내용이다.

물론 말이 청이지, 이걸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즉.

이번 방학은, 엘노어 집에서 보내야 한다.

“...”

아.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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