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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226화 (227/258)

Chapter 226 - 226. 수확제 (2)

연회장의 2층에 위치한 테라스는 생각보다 인적이 적은 모양이다.

1층에서 자기들끼리 소개하고 뭐하고 하느라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지.

그러니까, 지금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똑똑히 눈에 들어온단 의미다.

“...우와.”

연회장 안으로 입장하는 황제를 보고 있으니 그런 탄성이 절로 흘러나온다.

저 사람이 진짜로 오긴 하는구나.

트리스탄 공작가의 위상이 높다는 건 알겠지만, 제국의 지배자 본인이 출두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황제는 공작가를 이만큼이나 아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관계는 이만큼이나 돈독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랑 반목하고 있는 장로회랑 설리번 재상은 긴장 좀 단단히 하십시오.

대충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겠지.

“...”

바꿔 말하면.

이런 식으로 도발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할 만큼, 지금 제국 내부의 상황이 팽팽하다는 거다.

상호확증파괴 비슷한 느낌이지. 우리는 이만큼이나 강력한 전력을 들고 있으니 함부로 시비 걸지 말라는.

‘...그래봤자 터지지만.’

5 챕터, 제국 대분란.

장로회, 재상파, 황제파가 얽혀서 셋이 한꺼번에 얽혀 굴러가는 국가 단위의 내전이다.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심각해지기 시작하는 구간이지.

‘최종 보스’로서 엘노어가 각성하기 시작하는 챕터니까.

인격이 회색 악마에게 잠식당해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아버지인 기드온도 죽고, 설리번도 죽고.

황제는...

‘플레이어의 선택 여부에 따라 생사도 갈리던가?’

하지만 아무튼 좋은 꼴은 못 보는 건 그쪽도 마찬가지다.

그런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노력해야겠지.

[그런데,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예?’

[그 악마라는 거,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느낌은 아니지 않냐?]

문득, 소울 링커 안에서 그런 질문이 날아왔다.

[대부분이 너한테 집착하느라 주변에 민폐 끼치는 게 대부분이었잖아. 본인들이 뭔가 대놓고 악행을 저지르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아, 그거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건 내가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다.

‘얼마 전에 제 모습 보셨죠, 칼리반?’

엘노어가 머리 한 대 후려쳐서 정신 차리게 만들기 직전까지의 상태의 나 말이지.

[음?]

‘제가 소중하게 여긴다 생각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거의 벌레 다루듯 하던 거요.’

목표를 달성할 ‘수단’으로만 사람을 취급하던 것 말이야.

대표적인 예로, 사자 흉갑에 인챈트 시킨 타티아나가 있다.

“...”

미안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한다.

아직 흉갑 안에 있을 테니까, 조만간 한 번 얼굴 보고 원래대로 돌려놔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이어간다.

‘악마들도 그거랑 똑같아요.’

[뭐?]

‘집착하는 대상인 저와 본인들이 깃든 그릇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이 그쪽 입장에선 벌레나 다름없거든요.’

[...]

그쪽은, 인간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벌레 비슷한 것으로 여겨서 무관심할 뿐이지.

당황하여 입을 다무는 칼리반에게 말을 이어간다.

‘지금이야 본인들이 그릇 안에 갇혀 있어서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겠지만... 바깥에 나온다면 무슨 꼴이 펼쳐질지는 뻔해요.’

누누이 말했지만.

악마가 괜히 악마가 아니다.

나도 타천의 인장으로 종족이 변경되면서 잠시 그네들의 ‘사고 방식’을 살짝 닮게 되자마자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보면 명명백백하지.

붉은 악마가 적야 사태를 일으켜서 뭘 하려고 했는지 떠올린다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페이놀 하나 때문에, 세계 전체를 불태워서 자기 마음대로 재창조 하려고 했지 않았나.

악마들에겐, 이 세계 자체가 본인의 관심사를 제외한 전부를 자기 입맛대로 뜯어고쳐도 되는 장난감 비슷한 것이란 소리다.

‘그러니까, 악마는 풀려나면 안 돼요. 적절한 수단을 갖추기 전까지는.’

내 말을 들은 칼리반이 한참을 침묵하다 신음처럼 문장을 꺼내들었다.

[...걔네 전 차원에서 최강이라며. 무슨 수단을 갖춰야 그쪽이 나와도 안전하다는 거야.]

뭐, 대표적인 예로는 당장 성검을 쥔 엘리야가 있지.

막 장비한 시점이니 악마 본체와 생사결을 벌인다거나 하는 짓은 못하겠지만, 그 녀석은 물질계에서 아마 ‘용’과 더불어 악마에게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리고, 다른 것으로는.

“...”

내 가슴팍을 내려다 보며 피식 웃는다. 인장이 있는 위치다.

내 ‘입맛’대로 그쪽을 통제할 수단이라면, 역시 이게 제일 낫지.

‘그런 게 있어요. 아직 다 모으진 못해서 불완전하긴 한데.’

[...뭔 소리야?]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문득,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우드 캠벨!”

절로 얼굴 근육이 꿈틀거린다.

익숙하긴 했지만 결코 반가운 목소리는 아니었으니까.

“...후작님.”

한숨과 함께 그런 인사말을 상대방에게 꺼내 든다.

보거트 후작. 사자심.

장로회의 수장.

이 인간이 황제와 같은 자리에 있는 시점에서, 이미 평화로운 분위기는 물 건너갔다.

당장 시스템 메시지로 오늘 뭔가 일이 터질 거라는 걸 경고 받은 상황에서, 가장 큰 원인은 이 녀석일 가능성이 높거든.

“반갑습니다! 역시 오셨군요!”

“...”

녀석이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조용히 목례한다.

이쪽의 인사에 순순히 응해주기 싫다는 의사 표현이다. 친하게 지낼 생각 없다는 뜻이지.

그걸 모를 인간이 아님에도 그냥 빙글빙글 웃으면서 손을 쓱 거둔다.

“트리스탄 공녀 없이 혼자입니까!”

마치, 당연하게 엘노어는 나와 함께 있을 거라고 확신한 것 같은 말이다.

“...예, 뭐.”

“특별한 일이라도 꾸미는 모양입니다? 두 분 사이를 생각하면 이런 곳에 따로 올 이유가 없을 텐데요!”

“...”

인상을 찌푸리며 상대방을 노려본다.

항상 생각하는 건데.

이 녀석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거의 선각자와 마주 서서 보고 있을 때만큼의 불쾌감이 올라올 때가 많다.

나에 대해서든, 내가 모르는 ‘다른 것’에 대해서든 뭐든지 잘 알고 있다는 것 같은 태도 때문에 그렇겠지.

분명히.

이어지는 말만 봐도 그러할 것이다.

“그럼 빨리 움직이셔야겠습니다.”

“...예?”

“공녀가 애써 준비한 이벤트를 불청객 때문에 망칠 수는 없으실 테니까요!”

이 녀석이 그런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문득, 눈앞으로 창 하나가 떠올랐다.

< System Message >

[ ‘하얀 악마’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 [ ‘타천의 인장’이 반응합니다! ]

눈이 휘둥그레 떠진다.

주변으로 흰색 마기가 확 올라온다.

이전에도 한 번 본 기억이 있다.

내가 한 번 써먹어 봤으니까 확실히 기억하지.

하얀 악마의 권능은 ‘유혹’이다. 근처에 있는 모든 지성체를 자신의 통제권에 놓을 수 있는 능력.

확 올라온 마기의 영향권 안에 놓여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멍해졌다.

모두가 일순간 동작을 멈춘다. 연주를 이어가던 악단과 더불어 모두가 대화를 멈추니, 방금 전까지 시끌시끌하던 연회장 안으로 소름 끼치는 정적이 내려왔다.

“...!”

급하게 난간으로 몸을 내밀어 확인하니, 이 하얀 마력의 근원지인 유리아가 보인다.

테이블에 앉아, 치켜뜬 눈으로 황제를 노려보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황제에게 그 눈이 정확하게 꽂혀있다.

그리고 그 손은.

정확하게 단절자의 검자루 위에 올라가 있었다.

‘저 녀석...!’

지금 뭐 하는 거냐.

유리아가 이 자리에 있었던 건 알았는데, 설마하니 이 정도로 사고를 칠 줄은 몰랐다!

“아마 폐하 안쪽에 있는 것에 반응한 거겠죠.”

재빠르게 상황을 살피는 내쪽으로, 보거트 후작의 그런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지금 무슨...!”

“폐하 안에 뭐가 깃들어 있는진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평소의 장난기가 훅 빠져나간 목소리가 나에게 떨어졌다.

평소처럼 미소가 깃든 표정은 여전하지만, 항상 빙글빙글 웃고 다녀서 거의 실눈처럼 보이는 표정엔 더 없이 진지한 기색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 다른 이들과 달리 마기에도 영향을 안 받으시는 거겠죠. 다른 사람들 다 정신 못 차리시는 와중에 혼자서만 멀쩡하시잖아요?”

“...”

보거트 후작을 말없이 노려본다.

“오해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꾸민 일은 아닙니다.”

이어서, 내 쪽으로 그런 말이 툭 떨어졌다.

“악마들끼리 마주친다면 자연스럽게 한 번은 생길 일이었어요. 특히 폐하 안에 있는 게 당신에게 특히나 적대적인 ‘갈색’이라면.”

“...당신, 지금 대체 무슨 소릴-”

“설명해드리고 싶지만, 지금 그런 것에 신경 쓰셔도 괜찮으십니까?”

보거트 후작이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테라스 아래를 가리켰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진짜로 사고 터집니다?”

그쪽에는.

하얀색 마기에 온몸이 감싸인 채, 검자루에 손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유리아가 있었다.

“...”

이를 부득 갈며 보거트 후작을 바라본다.

“...후작님.”

“예?”

“저희, 한 번 나중에 진득하게 대화를 나눠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

보거트 후작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밉상스러운 얼굴을 잠시 노려보며, 속으로 짜증이 가득한 한숨을 내쉰다.

어디든 사건 사고를 따라다니는 내 개 같은 팔자야.

“...인생.”

그런 말과 함께, 곧바로 내가 테라스 아래로 뛰어내렸다.

테라스 아래로 뛰어내리며 계획을 정리한다.

[어떻게 하려고?]

‘...해야 할 일을 합니다.’

[뭐?]

‘아까도 말했잖아요. 악마에게는 적절한 수단이 있다고.’

그렇게 말하며 내 가슴에 박힌 인장을 바라본다.

솔직히,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이론적으로는 될 거라 생각한다만, 진짜 해본 적은 없어서 확신은 없거든.

무엇보다.

“...”

한숨을 내쉬며 여전히 어리둥절한 기색의 황제를 바라본다.

저런 ‘관객’이 있는 상황에서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거든.

하지만.

‘...뒷감당은.’

미안하지만, 내가 아버지를 통해 불러둔 사람에게 떠넘겨야 할 확률이 높다.

< Skill Info >

[ 타천의 인장 – 개改 ]

[ 일정 기간을 두고, 악마와 직접적인 '접촉'이 가능해집니다! ]

써먹을 건 이거다.

이거 때문에 회색 악마에게 죽도록 쥐어짜이긴 했다만, 덕분에 이런 상황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건 감사하게 여겨야겠지.

악마를 직접적으로 ‘만질 수’ 있다는 건, 내 생각 이상으로 더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요건이 될 것이다.

“...”

심호흡을 하며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이 녀석을 통제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 아이템이 될 물건이다.

이전에 시스템창에서 이 녀석이 ‘요주의 인물’이라는 정보를 얻어둔 시점부터 미리 준비해둔 거지.

“...흡-”

테라스 아래로 내려와 착지하자마자, 근처에 깔려있는 하얀 마기가 요동친다. 정신에 안개가 낀 것처럼 일순 격한 ‘파장’이 의식을 뒤덮지만.

[ ‘스킬: 판데모니엄의 왕’을 발동합니다! ] [ ‘하얀 마기’에 저항합니다! ]

나한테는, 이것에 잠시나자 저항할 수단이 있다.

일순 근처에 있는 마기가 휙 몰려나며, 내 앞으로 길을 트듯이 양쪽으로 갈라진다. 그 사이로 재빠르게 유리아 쪽으로 다가간다.

별철 서클릿은... 차고 있나. 다행이다.

세 발자국 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반쪽으로 쪼개지진 않겠지.

“...”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보인다.

유리아의 어깨 위로 올라와 있는 하얀 악마가.

이 녀석의 의식을 짓누르고, 자기 멋대로 유리아의 몸을 움직이고 있는 이 녀석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로, 표독스럽게 황제 쪽을 노려보고 있다.

“...”

그래.

예상은 했다만, 진짜로 이 녀석은 좀 심하구나.

그릇의 ‘자주권’을 가장 신경 안 쓰는 건 자색 악마라지만, 솔직히 건수가 있을 때마다 가장 크게 터트려 주는 건 이 녀석이다.

덕분에 매번 그런 상황에 휘말리는 유리아가 죄책감에 휩싸여서 점점 더 우울해지고 있지 않은가.

적야 사태 이후로도 내가 몇 번인가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루시엔 씨가 미안해서 내 얼굴도 못 보고 있다고 전해준 게 몇 번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애를 그 꼴로 만들어놓고.

이제는 황제한테 칼침을 놓으려는 초대형 사고까지 저지르려 한다는 거지.

“...”

솔직한 감상으로는.

‘...열 받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열 받는다.

대체 애한테 얼마나 민폐를 끼쳐야 적성이 풀리는 걸까, 이 허여멀건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유리아에게 터벅터벅 다가가 그 어깨에 손을 얹는다.

“하양아.”

[...!]

하얀 악마가 눈을 크게 뜨며 곧바로 단절자가 검집에서 뽑혀 나오려 했지만, 그러기 전에 내가 녀석의 손목을 잡고 검집을 검에 다시 집어넣는다.

그와 동시에.

품속에 준비해뒀던 물건을 전광석화처럼 꺼내 든다.

“계속 사고치고 다니면-”

몇 번 사용해본 물건이라 익숙하다. 곧바로 그걸 하얀 악마에게 ‘씌운다’.

회색 악마한테 쥐어짜이면서 악마와 접촉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벌을 줄 수밖에 없어요.”

일단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기는 한데.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 내 얼굴엔 핏줄이 잔뜩 올라와 있을 것이다.

그만큼 열받았단 소리고, 이 녀석한테 저지를 짓에 대한 일에도 ‘죄책감’은 굉장히 옅어져 있단 의미다.

[...]

하얀 악마가 멍한 표정으로, 나와 내가 방금 녀석에게 ‘씌운’ 물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

자신이 방금 뭐에 당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기색이다.

얼빠진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그렇지.

[...어?]

목에 개목걸이를 찬 하얀 악마가.

멍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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