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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230화 (231/258)

Chapter 230 - 230. 동아리 (2)

동아리를 만드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냥 동아리를 만드는 것보다는 최대한 ‘눈에 안 띄는’ 동아리를 만들어야 하는 게 문제지.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들이랑 엮일 일이 없는 유령 동아리인 게 좋다. 그냥 만들어두기만 하고 신경 끄는 게 딱 좋은 수준으로.

어차피 학칙 상 필수 사항으로 지정되어 있는 거니까, 그쪽에 위배되지 않기만 하면 되는거잖아?

“...그래서, 동아리 이름이 뭐라고?”

그런 점에서.

일단 당장은 이것부터 물어보는 게 좋을 것이다.

“퇴마부요!”

“...”

싱글싱글 웃으며 그런 말을 내뱉는 엘리야를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애초에 동아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꺼낸 게 이 녀석이고, 동아리를 구성하려면 최소 인원수가 두 명 이상이다보니 이 녀석을 끼워서 동아리를 만들자고는 했지만.

아이디어가 좀 너무 파멸적인 것 아니니?

“...그게 정말로 좋은 생각일까?”

“아니, 선생님이 되도록 다른 사람은 아무도 안 들어오고 싶을 만한 집단으로 만들자면서요?”

“...”

“목적에 엄청 충실한 동아리 아닌가요?”

동의는 할 만 하다.

물론 예전에 만난 비즐라를 비롯하여 ‘퇴마사’라는 직종 자체는 버젓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퇴마’라는 단어는 ‘악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대부분이니까.

악마라고 하면 일단 경기부터 일으키고 보는 대륙이다. 그런 이름이라면 정신 멀쩡하게 박힌 학생은 얼씬도 안 할 이름이 맞겠지.

문제는.

“엘판테에서 그걸 허락해 줄까?”

“허락 안 하면 어떻게 할 건데요. 나 용산데?”

“...”

“전 대륙에서 유일하게 악마를 때려잡을 수 있는 인간이 이런 동아리를 만들겠다는데, 대체 누가 태클을 걸 수 있는데요?”

그것도 그런가.

다른 놈이라면 터무니 없는 요청이라면서 기각했겠지만, 요청하는 주체가 이 녀석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좀 든다.

“그래서, 여기가 동아리 건물이고?”

“네.”

콧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본다.

폐건물 느낌이 물씬 나는 낡은 교사.

예전에 유리아가 살던 곳을 연상시킬 정도로 외딴 곳에 덩그러니 있는 을씨년스러운 건물이다.

가까이서 보고 있으니까 귀신이 나온대도 믿을 정도다.

엘리야가 동아리 건물이라면서 본인이 직접 고른 곳이다.

“...용케도 이런 데를 찾았네.”

사람이 안 모일만한 동아리로 하자는 데에서는 어떻게든 합의를 봤지만, 이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며 헛웃음을 흘리고 있자니, 옆에서 엘리야가 음음- 하면서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아무도 안 오겠죠.”

“...”

“저랑, 선생님, 단 둘이서, 방해꾼 없이, 계속 방과 후마다 여기서 마주치겠네요?”

우후, 우후후- 같은 웃음 소리를 흘리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몸에 소름이 돋아난다.

“그냥 구색만 맞추려고 만들어둔 동아리니까. 그렇게까지는-”

“어, 모르셨어요?”

“뭘?”

“동아리, 설립하고 나면 강제로 출석해야 하는 기간이 있어요. 등록만 해두고 안 나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 있는 규칙이거든요.”

“...”

“선생님도 아무튼 그 기간만큼은 준수하셔야 할 걸요?”

그러니까, 그거 바꿔 말하면.

동아리가 정식으로 인정받고 나면, 강제로 수업을 듣고난 이후에는 정해진 시간만큼 이 녀석과 단둘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군.

“...”

어.

그거 맞나?

뭔가 살짝 지뢰를 밟았다는 느낌이 든다.

“자, 자, 그러지 말고 들어가실까요, 선생님.”

“야, 잠깐, 밀지 말고-”

그렇게 말하며 폐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내부는 생각보다 안락하게 꾸며져 있었다.

“…?”

아니, 안락하다고 해야할까.

겉보기랑 다르게 안쪽은 너무 잘 꾸며져 있어서 문제다.

트리스탄 공작령에서 고위 귀족의 생활 공간을 보고 나온 입장에서도 빡빡하게 꾸며진 가구들, 정성스럽게 발라진 벽지와 바닥재들. 여기저기에 장식되어 있는 러브러브 하트 장식과 분홍색 조명들.

완전히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모습의 바깥과 달리, 이쪽은 화사한 느낌마저 든다.

허니문을 떠난 신혼 부부에게나 어울릴법한 방이겠지.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침대.

그냥 침대도 아니고. 크고,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원목을 써서 만들어진데다가, 최고급 실크로 이루어진 이불이 이쁘게 정리되어 있는 침대.

딱 두 명이 누우면 적당할 사이즈의.

“누워보실래요, 선생님?”

“...왜?”

“침대잖아요. 누우라고 있는 건데.”

아니.

싫어.

왜 백주대낮부터 침대에 누워야 되냐고.

그것도 그렇게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네 앞에서.

“어허, 제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뒀는데 시도도 안 해보실거에요?”

“...”

“그러지 마시고, 자, 자...”

엘리야가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내게 접근한다.

“...야, 잠깐만. 잠깐만 멈춰. 우리 이야기로 풀자.”

“네. 이야기 해요. 같이 누워서.”

“그게 아니라…!”

숨소리가 거칠다. 눈동자도 살짝 풀려있다. 마치 이 때만을 기다렸다는 기색이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뒷걸음질을 칠만큼 거기 응축되어 있는, 그러니까.

‘욕망’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다행히 거기에 대고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들기도 전에, 다른 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날아들었다.

“안에 계십니까-”

“...”

건물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엘리야가 걸음을 우뚝 멈췄다.

이어서 칫, 하고 녀석이 혀를 차는 소리가 똑똑하게 들려온다.

“...이상하네. 아무도 못 오게 확실하게 조치해뒀을텐데...”

“...”

너 임마.

대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며 식은땀을 주륵주륵 흘리는 사이, 엘리야가 내키지 않는단 걸음걸이로 건물 입구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건너편에 있는 인간들의 얼굴을 본 엘리야의 얼굴이 급속도로 썩어들어갔다.

“...여기서 뭐해요, 리루.”

엘리야가 사납게 꺼내든 말에, 문 건너편에 서있던 리루와 세라스가 동시에 헛기침을 하면서 딴청을 피웠다.

“...아니, 그냥 지나가는 길인데.”

“...뭐, 나도.”

“...”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는 표정이 엘리야의 얼굴에 걸렸지만, 리루가 오히려 당당한 기색으로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목소리가 들리길래 와봤을 뿐이야.”

“...누가 이야기해줬어요? 동아리 만든다는 거.”

엘리야가 푹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다 아는 사이끼리 이러지 말자는 듯이.

돌아오는 리루의 대답도 거기에 대한 응수겠지.

“아무도 이야기 안 해줬는데. 그냥 쫒아왔지.”

“...예?”

“너 말이야, 나 몰래 저 남자한테 계속 비비고 있었잖아. 얼마 전에는 그 공작령에도 다녀오고.”

리루가 볼 멘 목소리로 그런 문장을 던져왔다.

“그래서 둘이 뭐 하나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어. 그게 다야.”

“...그거 스토킹이잖아요, 리루.”

“그게 뭔데?”

“...”

당당하게 돌아오는 대답에, 엘리야가 뭐라고 설명하기도 힘들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이어서 녀석의 시선이 천천히 옆에 있던 세라스에게 돌아갔다.

“...그럼 이쪽은요?”

“난 그냥 한참 전부터 다우드 선배님의 행적은 다 수집하고 있었는데?”

“...”

“여기 있는 야만인이랑은 정보 수집 능력이 비교도 안 된다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 생활에는 어떤 걸 하시는 지, 혼자 남아있을 땐 무슨 일을 하시는 지도-”

“...네, 거기까진 안 알려주셔도 될 것 같아요, 세라스 씨.”

엘리야의 그런 대답이 떨어지는 사이, 내 얼굴도 점점 창백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것들아.

대체 내 사생활은…?

보장해줄 생각은 있는 거니…?

“...여긴 이제부터 동아리 건물로 쓸 거에요. 권한이 없는 사람은 나가주시는 게-”

“어-? 정말-? 동아리 건물이었어-?”

“우와- 우리 둘 다 지금 무소속인데- 무슨 동아리인지 이야기나 좀 들어보고 싶은 걸-?”

“...”

리루와 세라스가 연이어 국어책 읽듯이 꺼내놓는 말에, 엘리야의 얼굴로 핏줄이 살짝 올라왔다.

방해하지 말라는 듯 그 표정이 사납게 꿈틀거린다.

“...여긴 퇴마분데요, 당신들.”

“그래서?”

“이름 그대로라구요. 퇴. 마. 부. 악마를 물리치는 동아리.”

당신네들 오지 말라고 지어놓은 동아리라는 듯이 엘리야가 이를 부드득 갈며 말했다. 안광이 흉흉하게 빛나는 게 무력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모습이다.

아예 얼굴에 철판을 깔고 대치하고 있던 리루와 세라스도 잠시 주춤하면서 물러설만큼 사나운 기색이었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두 명이 동시에 입을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알아.”

“아는 사람들이 여길 왜 와요! 당신들 다 그쪽이랑 관계 있잖아!”

“퇴치당하는 역할로 해주던가, 그럼.”

“...”

“동아리에 들어가려면 무, 무슨 일이든 할 테니까…!”

리루와 세라스가 연이어 꺼내놓는 말에, 엘리야가 얼굴을 죽 쓸어내렸다.

인내심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기색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쭉 지켜보고 있던 내쪽에서 먼저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있는데.”

“응?”

“네?”

생각해보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김칫국 마시고 있는 것 아닌가?

“...동아리 입부 가능 여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닌데?”

애초에, 그럴 권한은 우리가 아닌 고문 교수에게 있다.

특히 부원이 10명도 안 되는 신생 초 소규모 동아리라면 더더욱.

“...”

그러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녀석들이 서로를 멍하니 마주보았다.

피곤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던 페르시 학장이, 내가 내민 동아리의 기획서를 쭉 읽어보았다. 우리들 동아리의 고문을 맡은 사람이 이쪽이라서.

진지한 표정으로 그 종이를 쭉 훑어보던 페르시가, 이내 싱긋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세라스와 리루가 동시에 움찔했다.

“...어, 저희들의 동아리 입부가 왜 불가능한지-”

“그쪽 입부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동아리 창설은 생각보다 가벼운 문제가 아니에요. 전통과 절차 모두 엄격하게 관리되니까요.”

페르시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학교 안에서 지원금도 나오고, 학생 성적에도 반영되는 활동인데. 장난처럼 그냥 받아들여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전문성’과 ‘실적’을 동시에 인증해야 해요. 오래된 동아리는 정치 파벌로서도 기능할 때도 많아서 황가가 직접 관리하는 경우도 있다구요?”

“...”

나를 포함한 주변 여성진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멍해졌다.

설마하니 그렇게까지 빡빡하게 괸리할 줄은 몰랐다는 기색이다.

특히 자신이 끼어있다면 반드시 통과될 거라며 자신만만했던 엘리야가 가장 당황한 모습이고.

“...어, 그래도, 저와 선생님 정도의 실적이면...”

“능력에 대한 이야기라면, 솔직히 ‘퇴마’ 관련해선 저도 할 말이 없긴 합니다. 악마 관련해서는 교수진들 중에서도 그쪽보다 더 대항력이 있는 사람이 있을 지도 의문이구요. 하지만.”

아주 간단하고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처럼, 페르시가 쏘아붙이듯 말했다.

“인정을 해주는 게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러구요. 이런 활동이라면 아마 월터 교수님이 ‘연구 가치가 있다’라고 입증해주셔야 창설이 가능하겠네요.”

“...”

“퇴마부라면 퇴마 관련되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증명하셔야죠. 아까도 말했지만, 전문성과 실적이 모두 필요합니다.”

“...어, 그거야 이미 저번 적야 사태 때-”

“아뇨, 여기 있는 ‘전원’이 함께 해낸 작업물이 있어야 해요.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 내는 거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할 겁니다.”

페르시가 한숨처럼 그런 말을 흘렸다.

“전원이 참여해서, ‘퇴마’ 관련해서 신성학부 학장님을 납득시킬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 지금 당장 있으신가요?”

“...”

있을 리가 없지.

모두가 조용히 침묵했다.

그런 침묵은 학장실을 나올 때까지 주욱 이어졌다.

“...어떻게 하죠? 다른 동아리를 찾아봐야 하나?”

엘리야가 꺼내든 그런 말에, 내가 조용히 도리질을 쳤다.

할 수 있으면 동아리 하나 만들어서 거기 조용히 짱박히는 게 가장 좋다. 내가 기억하는 세라 내부의 동아리 시스템은 어딜 택해도 지금 내 상황에선 손해밖에 없을 테니까.

다만.

페르시가 말한 조건은, 아마 월터가 납득할만큼 ‘퇴마’ 관련해서는 획기적인 결과물을 보여줘야지만 동아리 창설이 인정된다는 뜻이렸다.

통상적인 악마 관련된 지식말고, 뭔가 그쪽도 감탄할만한 퇴마 방식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월터 교수를 설득할만큼 인상적인 ‘결과물’을 내놓을 방법이라면…

“...”

내가 말없이 리루와 세라스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조금 길게.

“...”

“...”

침묵이 조금 길어지자.

리루와 세라스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왜 그런 시선으로 보는 거야?”

“아니.”

살짝 떨리는 리루의 목소리에, 피식 웃으며 말한다.

“너희들, 동아리에 입부하려면 뭐든지 한다고 했었지?”

“...”

“뭐든지, 한다고?”

“...”

“분명 너희들 입으로 그랬었지?”

리루와 세라스의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했다.

괜히 그런 말을 했다는 후회가 막심하게 담긴 분위기가 틀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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