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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234화 (235/258)

Chapter 234 - 234. 심사 (2)

“...”

“...”

응접실 안으로는 묵직한 침묵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 서로 못 본지 꽤 오래된 사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그것 이상으로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그닥 좋게 헤어지지 못했다는 점도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페르시 시스턴 레반틴이 버쩍버쩍 마르는 입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걸 본 상대방도 쭈뼛거리며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지금 이 상황이 어색한 건 그녀만이 아닌 모양이지.

“...고생은 안 했니?”

페르시가 애써 다듬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들었다.

예전에 마탑에서 ‘장인’과 ‘도제’ 사이로 지낼 시절일 때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지던 회화가, 지금은 무진 애를 써야 가능하다.

“...덕분에요.”

온몸에 채워져 있는 구속구를 절그럭거리며, 페이놀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변했다.

이단 심문소에서 그녀의 신병을 해방하는 대가로 상시 착용을 요구한 것들이다.

마기를 억누르는 용도라나.

“스승이, 힘을 많이 써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한 것도 없어.”

스승이라.

페르시가 쓴웃음을 지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이 아이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게 언제인지.

“감사할 게 있다면 그 다우드라는 녀석한테 하렴. 물밑 작업은 그 녀석쪽에서 거의 다 나온 거니까.”

물론 그녀도 한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엘판테 전체 교수진 중에서 유일하게 이단 심문소에 ‘탄원서’를 집어넣은 건 그녀밖에 없었으니까.

비록 악마가 깃든 조각인 건 확실하지만, 선처를 부탁한다고 가장 목소리를 높인 게 본인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악마의 조각을 대놓고 편듬으로서 나올 온갖 종류의 구설수를 모조리 억누른 건 틀림없이 다우드 캠벨의 공이다.

정확히는, 그를 이상할 정도로 편들던 부족 연합의 대족장에게서 나오는 영향력이겠지만.

“...그런가요.”

페이놀이 눈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살짝 내려깐 시선에 우수가 깃든다. 그 남자라면 당연히 그리하겠지, 라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페르시로서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얼굴이었다.

“...페이놀.”

“예?”

“너, 방금 그 표정 뭐니?”

“...예?”

페이놀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기색으로 반문했지만, 페르시로서는 진심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소리였다.

그녀가 알고 있는 페이놀은.

스스로가 상처받기 싫어서 모든 인간을 밀어내던 인상이 특히나 강하게 남아있던 인간이다.

특히, ‘남자’ 관련해서는 거의 길가에 돌멩이보듯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인간이었는데.

지금 이 얼굴은 뭐란 말인가.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모습 아닌가.

‘...아니, 아니, 잠깐만.’

그건 너무 온건한 표현이다.

사랑에 빠진 소녀라기보다, 이건.

‘...잡아먹을 생각 만만인 것 같은데?’

그 인간, 내 거다.

다른 사람한테 절대 넘기지 않을 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가 독점하고, 내가 전부 다 맛 볼거다.

그렇게 선언하는 것 같은, 어떻게 보면 오만함까지 담긴 얼굴.

그런 모습에 페르시가 멍하니 충격을 받고 있자니, 문득 페이놀로부터 다른 말이 날아들었다.

“...그래서, 스승. 염치없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으, 응? 뭐니?”

황망한 목소리로 답변하니, 페이놀이 다시 살풋 웃으며 말했다.

“그 남자, 최근에 또 뭔가 일을 벌이는 모양이더라구요? 학원 전체가 시끌시끌하던데요.”

“...아, 아아-”

페르시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그런 소리를 내뱉었다.

얼굴에는 곧바로 쓴웃음이 걸리고 있었다.

“동아리 만들었대. 근데 그게 뭐라고 지원자가 엄청나게 몰리고 있나 봐. 어떻게 하는 거 하나하나마다 조용하게 넘어가는 법이 없는지. 콘라드 말대로 진짜 폭풍의 눈이란 말이 어울리는-”

“예. 그것 관련해서요.”

말이 길어지려던 페르시의 문장을 툭 자르고 페이놀의 말이 끼어들었다.

급한 일이니 괜히 시간 잡아먹고 싶지 않다는 듯.

“그 남자에게, 돌려주고 싶은 게 있거든요. 한 가지만 부탁드리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는 페이놀의 얼굴에 걸린 웃음이 조금 더 진해지고 있었다.

아까 전에, 페르시가 느꼈던 불안감에 가까운 감정을 더욱 증폭시킬만한 표정이었다.

인원 심사는 총장님께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대관해준 건물 안에서 이루어졌다.

어째서 싱글벙글 웃고 있는 지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당신도 고생 좀 해 봐야죠.”

“...”

“저만 이런 일을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니, 저 진짜로 큰일 날 수도 있는데요. 지금이야 어떻게든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 다 쳐낸거지...”

서류로 어중이떠중이들은 다 걸러내고, 그나마 직접 봐야 문제가 안 생길만한 인원들로만 심사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아직 진짜로 이쪽이 곤란해할만한 ‘거물’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 쪽이 나온다면 솔직히 나도 답이 없거든.

“그렇게 될 것 같으면 제가 막아 드리겠죠?”

그렇게 말한 아탈란테가 더욱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냥 당신이 고통 받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요.”

“...”

“그럼, 고생하세요~”

가볍게 하품하며 자리를 벗어나는 아탈란테를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봤지만, 진심으로 저쪽은 눈썹 하나 까딱하는 기색이 없다.

‘너도 한 번 죽어봐라!’라는 의도가 아주 훤히 보여서 뭐라고 더 대들 수도 없다.

대신, 턱을 쓰다듬으며 창문 바깥을 바라본다.

해가 뉘엇뉘엇 기울어가는 지평선. 그리고 거기까지 전부 다 닿아있는 것 같은 인산인해가 이어서 보인다.

“...흠.”

목을 가다듬는다.

주변에 학원 내부 스태프들이나 엘리야도 있는 마당에 걸쭉한 욕지기를 내뱉을 수는 없었으니 차선책으로 선택한 행동이었다.

“...저게 남은 인원이라고?”

“...”

옆에 서 있던 엘리야가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하루종일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까 이 녀석도 어지간히 지친 모양이다.

아니, 진심으로.

척 봐도 이쪽 벗겨 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 상대하는 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더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하물며 그런 사람들 전부를 예의 바르게, 기분 상하지 않게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는 건 더더욱 스트레스 받는 일이고.

그래서 원활한 대처를 위해 처음에는 한명 한명 심사하다가, 도저히 못 끝낼 것 같아서 네다섯 명씩 한꺼번에 보기로 바꾼 게 바로 얼마 전이다.

“...그럼, 다음 인원들 들어오세요.”

슬슬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머리를 쓸어넘기며 그렇게 말한다.

원래대로는 다음에 누가 들어올지 서류를 보고 간단하게 파악해야겠지만, 거의 반나절 넘게 이어진 오디션은 그런 것조차 하기 힘든 수준까지 나를 내몰고 있었다.

그런 고로.

“...”

이어서 들어오는 상대를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

미리 누군지 파악해두고 하나씩 가려서 받을 걸.

“빅토리아 에바트리체입니다.”

“...페이놀 라이펙입니다.”

그란 이름을 연이어 듣고 있자니, 옆에 앉아있던 엘리야의 입이 떡 벌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그런 일을 겪고도 꾸득꾸득 동아리에 입부 지원 신청을 한 빅토리아부터 이상한데.

같이 들어온 쪽이 이상하다면 더 이상하니까.

“...페이놀 씨?”

“...오랜만이네요, 엘리야 씨.”

엘리야가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꺼내놓은 말에, 페이놀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어떻게 여기에...?”

당신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 아니냐- 라는 뜻이 진하게 담긴 문장이다.

물론 이 녀석 특성상, ‘붉은 악마’를 품고 있는 페이놀에게 감정이 좋을 리가 없겠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이런 말을 들을 만도 한 게.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지만, 이 녀석은 대놓고 얼마 전에 악마 폭주 사태를 일으킨 녀석이다. 같은 악마의 그릇 중에서도 위험도는 궤가 다르지.

당장 온몸에 구속구라도 되는 것마냥 덕지덕지 달고 있는 제어용 법구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금 궤가 다르지.’

조각이 전부 다 모인 그릇이다. ‘계기만 있으면’ 언제든지 적야 사태를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지.

저렇게 병적으로 이것저것 달아놓는 건 오히려 당연한 조치라 그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페이놀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원래대로는 안 되겠지만, 학생으로 지낼 수 있도록 보증을 서주신 분이 계셔서요.”

“...”

페르시군.

이쪽이 비빌 언덕이야 그쪽밖에 없으니 당연한 추론이다.

문제는.

“...학장님까지 동원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동아리 입부 심사를 받으러 온 겁니까?”

어이가 없다는 목소리로 그렇게 질문한다.

“...보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숨이 턱 막히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세도 조금도 흐트러트리지 않고, 올곧은 시선으로 그런 문장을 뚜렷하게 입에 담은 페이놀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인사도 똑바로 못한 것 같은데. 다우드 씨.”

말문이 막힌내게, 문득 페이놀의 문장이 날아왔다.

그 붉은색 머리카락이 살짝 살랑거린다. 녀석이 마른침을 삼키는 게 여기까지 보인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페이놀 라이펙은, 당신에게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부응하기 위해, 앞으로 물심양면 노력하려고 합니다. 부족한, 몸이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 본인도 얼굴을 붉힌 상태로, 고개를 푹 숙이고, 꼬물꼬물거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흘러나온다.

하지만, 마지막에 섞여 나오는 목소리만큼은 뚜렷했다.

“...무슨 짓을 시키셔도, 성심성의껏 하겠습니다.”

“...”

“다른 분들한테 하면 화낼 것 같은 짐승같은 일이라도, 저는 얼마든지-”

“-다음 인원들 입장시켜주세요!”

뭐라고 더 위험한 말이 이어지기 전에 황급하게 말을 자르고 들어간다. 심사는 한 번에 네 다섯 명씩 보니까 아직 인원이 다 입장한 건 아니거든.

얘야.

사람들 다 보는 데 그게 대체 무슨 소리니?

“...하아...”

머리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글쎄.

이렇게 대처하기 힘든 녀석들이 슬슬 들어올 거라곤 생각했지만, 단번에 이런 놈 두 명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페이놀도 그렇고, 빅토리아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지 애초에 의도조차 모르겠다.

남은 두 명은 그나마 좀 상대하기 쉬운 사람들이면 좋겠는데...

“...”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나머지 두 명과 눈이 마주쳤다.

“...”

“...”

“...”

한 명은 엘노어다.

다른 한 명은 황제 폐하고.

“...”

심호흡을 한다.

아니, 진짜로 이 개 씨-

[너무 심한 욕은 하지 마. 약해 보이니까.]

안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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