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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240화 (241/258)

Chapter 240 - 240. 야밤의 밀회 (2)

[뭐,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빅토리아 에바트리체가 드물게 잔뜩 찌푸린 얼굴로 수정구 너머에 있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방금 말한 것을 듣고도 이런 식으로 가벼운 대답이 돌아온다면 아마 누구나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뭘 또 예상하고 있었다는 반응이야.”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놓자, 수정구 건너편에 있는 보거트 후작이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아마 저는 그냥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이는 쪽을 추천 드리긴 합니다만.]

“...뭐?”

[당신이 아직 그쪽이랑 얽혀본 적이 없어서 모르시나 본데, ‘악마’ 관련 주제로 얽힌 시점에서 이미 지셨는데요?]

“...”

느물거리며 흘러나오는 문장에, 빅토리아의 얼굴이 아까 전보다 훨씬 더 찌그러졌다.

“...나는 누굴 죽이는 경쟁에선 져 본 적이 없어.”

[글쎄요.]

그렇게 말하는 보거트 후작의 얼굴은 평소처럼 생글거리는 모습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건 거의 비웃음에 가까운 기색이었다.

[그럼 이번이 처음이 되시겠네요. 그쪽이 무조건 더 빠를 테니까.]

빅토리아의 표정이 더욱 더 찌그러지는 사이, 부연 설명이 따라붙었다.

[...사전적인 의미의 ‘죽음’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긴 합니다만.]

“...무슨 소리야?”

[그걸 당신한테 설명해주면 제가 제국 형법에 의해 처벌 당합니다.]

“...?”

[아, 실례. 당신은 수인족의 성년식을 치르지 않아서 어린아이던가요? 나이 상으로나 제국법 상으로는 성인이었죠?]

"...무슨 소린 지 모르겠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빅토리아가, 이내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진짜로 내가 그쪽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큰일이야. 성황국이나 제국 양쪽에게 분명히 영향이 갈 테니까.”

전해 듣기로, 세라스가 법황의 최측근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적어도 빅토리아는 그런 후폭풍에 클라이언트가 휩쓸리지 않도록 배려할 정도로의 프로 의식은 가지고 있었다.

“보고는 똑바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

[아뇨, 후기는 필요 없습니다.]

보거트 후작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저는 남의 사생활을 존중할 수 있을 정도의 품격은 있는 사람이라서요.]

“...?”

아까부터 대체 이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나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할 일은 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두 말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만만한 상대는 아니야.’

언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적개심과는 별개로, 상대방에 대한 역량 평가는 냉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상대방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대륙에서 단 둘뿐인 암살자의 정점이다. 어떤 이점을 끌고 와도 죽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역시 탐색이겠지.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분명히 옆동이었던가.’

그렇게 생각한 빅토리아가, 곧바로 세라스의 개인실 위치를 떠올리며 나갈 채비를 갖췄다.

창문을 타고 나가, 마치 날개 달린 새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움직인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디딜 때마다 그녀의 자그마한 몸이 수 m씩 공중을 유영할 만큼 무시무시한 체공 거리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따라오는 소음은 거의 없는 수준이다.

“...”

그리고, 이런 짓을 하고 있다 보면.

그만 떠올려 버리고 만다.

이런 것들을 누가 가르쳐줬는지. 누구와 함께 훈련했는지.

어린 시절 언니와 같이 살았던 그 우거진 숲. 같이 살았던 친구들. 그리고 또-

‘...아니.’

이제는, 전부 과거의 일이다.

애초에 고향이 전부 사라진 것은, 그 빌어먹을 여자의 실수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한 빅토리아가 이를 부득 갈았다.

‘...그런 주제에 제국의 인간에게 헤롱거린다고.’

바로 얼마 전에, 그 다우드란 남자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은 기색으로 아양을 떨던 기색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녀 본인이 다우드 캠벨이란 인간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아무리 좋게 말해줘도 ‘의뢰 목표’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악마의 그릇이니, 조각이니, 그쪽이 세계의 열쇠니, 뭐 그런 설명을 의뢰인인 보거트 후작에게서 잔뜩 전해 들었다. 아마 자신 또한 몸 안에 그 조각인지 뭔지를 품고 있다던가.

그것 이상으로, 그녀의 과거를 피범벅으로 만든 ‘제국의 인간’ 중 한 명이라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증오했으면 증오했지, 좋아할 이유는 눈을 씻고 봐도 없을 인간.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옆 동 건물이 금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리 먼 곳에 있는 곳도 아닌 데 이런 무시무시한 몸놀림으로 찾아왔으니 금방인 게 당연하다.

세라스의 개인실을 포착한 그녀가, 이내 곧바로 그쪽 근처에 있는 나무로 몸을 튕기듯이 날려보냈다.

이번에도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 사뿐하게 착지한 이후로, 눈을 감고 방 안의 ‘기척’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그랜드 어쌔신의 초감각은 단순히 오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 그것만으로도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안쪽의 장면이 그녀에게 전달된다.

“...?”

그래서.

빅토리아는 곧바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전달되는’ 광경은, 틀림없이 그녀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안에 있는 것은 세라스가 아니라 한 명 더. 기척을 보니 남자. 아마 그녀도 아는 인간. 분명히-

‘다우드 캠벨?’

그런 이름을 떠올린 그녀가, 여전히 멍한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야, 저 두 명이 지금 하고 있는 짓이 대단히 이상했으니까.

마치 박치기를 하는 것 같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마까지 부딪힐 거리에서, 마치 호흡을 교환하는 것처럼 입술을 맞ㅊ-

‘...어.’

빅토리아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어, 어, 어어어어-?!’

그런 비명이, 그녀 안쪽에서 가열차게 울려 퍼졌다.

‘저, 저 놈들 지금 뭐하는 거야-?!’

물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눈은 거기서 끝까지 때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사실, 페이놀 라이펙에게는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이단 심문소 소속의 심문관, 마탑의 마법사, 그리고 아카데미에 와서는 거의 외톨이.

동급생과 엮일 기회조차 거의 없던 것도 있는 데다가, 이전에 일으킨 적야 사태 때문에 여기저기에 원한관계를 품고 있는 인간들도 제법 많다.

마탑에 적을 둘 때 사제 관계로 엮인 페르시가 있긴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교류가 없던 것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조금 데면데면한 관계다.

그렇다면.

웃긴 얘기지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사람은 ‘이쪽’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그 남자와 가까워지는 건 반대야.]

머릿속으로 붉은 악마의 새침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모르긴 몰라도 팔짱을 끼고, 코웃음을 치며, 고압적인 눈빛으로 깔보는 모습이 절로 연상되는 기색이다.

[딱 한 번 만나봤는데도 알겠어. 보통 난봉꾼이 아니라고. 너한테 잘 해주는 건 너라서 잘 해주는 게 아니라 자기 근처에 있는 여자라면 누구한테나 똑같이-]

그런 평가를 가만히 듣고 있던 페이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간에 끼어들었다.

“너도 막상 다우드 씨랑 만나고 나서는 흐물흐물 녹았잖아?”

[...]

아니, 애초에.

평가 자체가 좀 묘하다.

난봉꾼이라고 물어뜯을거면 속이 음흉하다거나 속내가 뻔히 보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접근해야지, ‘좋은 사람인 건 알지만 너한테만 잘 해주는 게 아니다’라니?

“너, 분명히 처음에는 분명히 흉계를 꾸미고 있을 흑막 타입이니까 다우드 씨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건 좀 추하다고 생각-”

[-시끄러워.]

페이놀이 낄낄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원래대로는 이런 식으로 악마와 대화를 나누는 건 최대한 기피하고 있던 일이다. 틈만 나면 저쪽이 자신의 정신에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해서 말이야.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엄마처럼 사사건건 간섭하려 드는 게 얼마나 귀찮았는지 모른다.

“...”

사실, 모든 감각을 차단해버리는 걸 그런 ‘과보호’로 퉁쳐도 될만한 일인가 싶긴 하지만.

어차피 다우드에게 한 번 구원받은 몸이니 과거에 연연하는 것도 웃긴 일이겠지.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도 온몸을 칭칭 묶고 있는 구속구가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 느낌이다. 온갖 종류의 술식으로 악마의 마기를 억누르니 오히려 인격 대 인격으로만 이쪽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그리고 그렇게 되니까.

오히려 친근함이 느껴질 정도다. 친구가 없는 그녀에게 있어선 좋은 말벗이 되어줄 정도로.

아마 이어지는 말을 가볍게 꺼낸 것만 봐도 그런 사실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이번 기회에 너도 다우드 씨랑 좀 면면을 터두고 친해지면 좋지 않을까?”

지금, 늦은 밤에 다우드의 ‘기척’을 쫒아가는 와중이다.

그 남자의 위치를 확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마력을 다루는 데 있어 천부적인 페이놀에게 있어 사람 한 명의 ‘마력 파장’을 기억해뒀다가 추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늦은 밤의 밀회라...’

적어도 그녀가 다우드에게 제안할 ‘승부’의 내용과는 제법 운치가 맞아 떨어지는 상황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쿡쿡 웃고 있자니.

[...필요 없어.]

안쪽에서 퉁명스러운 대답이 흘러나왔다.

여전히,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다량 함유된 모습이라. 페이놀이 곧바로 짓궂게 웃으며 뭐라고 덧붙이려고 했지만.

[애초에 그 남자, 곧 큰일을 당할걸.]

“...뭐?”

[인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인간 단위에서 악마랑 그렇게 깊숙이 얽혀서 좋은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필연이야.]

그런 말이 길게 뽑혀나온 한숨과 함께 이어졌다.

조만간 다우드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거라고 아주 확신에 가득 차 있는 문장이었지만, 페이놀은 거기에 뭐라고 대답하는 대신 고개만 갸웃했다.

[...듣기는 했어?]

“들었어. 그런데 무시한 것뿐이야.”

[...]

“애초에 다우드 씨가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도 아니고, 다른 인간들한테 선수를 뺏기기는 싫어. 그러니까 나도 많이... ‘노력’할 거야.”

[노력이라고.]

“응.”

페이놀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날 한 번 구해줬으니, 나도 한 번 구해드려야지. 그게 인지상정 아닐까?”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녀의 모든 걸 바쳐서라도.

[...맘대로 해라.]

같은 정신을 공유하는 사이다. 설득한다고 들어먹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겠지.

붉은 악마가 코웃음을 치며 답하는 말에, 페이놀이 싱긋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제안할 승부라는 건 뭔데?]

하지만 같은 정신을 공유하는 사이라도, 전부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녀가 끝까지 말하지 않으면 방금 질문한 것처럼 모르는 게 생길 수밖에 없다.

“비-밀-”

[...]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시작하면 틀림없이 좋아할 거고.”

[좀 불안한데...]

그런 말을 나누는 사이, 페이놀의 몸은 다우드의 파장이 느껴지는 장소에 코앞까지 당도한 상태였다. 가깝다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본인 방이 아니네?’

이 시간에 다른 사람의 방에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페이놀이 노크를 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곧바로 동작을 멈췄지만.

뭔가, 서로 격렬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를테면, 살과 살이.

신음소리 비슷한 것도 좀 들리고.

“...”

[...]

페이놀과 붉은 악마가 동시에 침묵했다.

이런 소리에서 연상되는 건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어라.”

꽤 오랫동안 침묵하던 페이놀이, 이내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가 나랑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나?”

[...비슷한 생각?]

“그러니까, 제안한 승부 내용 말이야.”

붉은 악마가 일순 뒷골을 잡을만큼 진심이 담긴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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