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2 - 242. 야밤의 밀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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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에바트리체의 정신은 아주 깊은 곳으로 침전하고 있었다.
예전에 배운 것 중 하나다. 진짜로 화를 낼 만한 상황이라면 오히려 가장 냉정하게 굴어야 할 상황이라고.
그걸 가르쳐준 인간은 지금 자길 화나게 한 인간 옆에서 헤벌쭉한 얼굴로 헤롱거리고 있긴 하지만, 알 바는 아니다.
“...”
손에 쥔 쌍수 단검을 단단히 틀어쥐며 깊게 심호흡한다.
감정을 지운다. 감각을 극대화한다.
파문 하나 일어나지 않는 잔잔한 호수가 연상될 정도로 이성을 차갑게 굳힌다.
그리고 그렇게 날카롭게 벼려진 정신이 꽂힐 곳은, 이전에도 그녀가 몇 번이고 공공연하게 죽인다고 말하고 다녔던 빌어먹을 언니다.
그리고, 지금 그 대상은.
“...헤.”
“...”
얼빠진 모습으로 실성한 것 같은 웃음을 흘리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비웃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만큼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다.
아닌 게 아니라, 빅토리아가 느끼는 감정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우습게 보는 거야?’
욱하는 심정이 속으로부터 그대로 분출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언니가 항상 자신을 앞서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노골적인 살의를 뒤집어 쓰고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건 그녀로서도 역정이 치솟을만한 반응이지 않나.
아마 다우드 본인이 들었다면 그건 딱히 널 무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은 진짜 칼을 찔러넣어도 저 상태일거라고 변명했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설명을 해줄 틈도 뭣도 없었다.
‘-나를, 버려놓고서-’
저도 모르게 그런 문장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눈에 서늘한 불꽃이 깃든다.
장대에 꽂혀있는 시체들, 그 사이에서 낡은 장난감을 끌어안고 울고 있던 과거의 이미지가 치솟아 오른다.
하염없이.
하염없이, 그런 지옥도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언니, 언니, 언제, 언제 오는 거야...?
누군가와, 관련된 기억들.
“...”
빅토리아의 눈동자에 깃든 색깔이 더욱 탁하게 변한다.
바닥에 늘러붙은 검댕처럼, 끈적하게, 음울한 감정이 양손에 담긴다.
암살이 아니라, 상대방을 갈기갈기 찢어놓기 위한 게 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증오가 양손에 담긴다.
그랜드 어쌔신이란 칭호는, 성인聖人의 경지에 오른 대륙 최강자들조차 까딱 잘못하면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자들에게만 수여되는 칭호다. 저런 얼빠진 상태라면 같은 경지에 있다고 해도 순식간에 도살당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다리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된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가 세라스의 목에 있는 경동맥을 베어버릴 만치 강력한 힘이 그쪽에 응축된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몸이 튕겨나가기 직전에.
문득, 그녀의 시야에 이상한 게 들어왔다.
마기.
회색이 섞인 하얀색.
두 개의 색깔이, 마치 ‘뒤섞인’ 것처럼.
“...어.”
왜 그런 얼빠진 목소리를 냈는진 빅토리아 본인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
그녀의 손에 쥐어져있던 단검이 스르륵 떨어졌다.
이어서, 그녀의 숨이 가빠졌다.
마치, 환희에 빠진 것처럼 열락에 가득 찬 숨소리였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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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stem Message >
[ ‘타천의 인장’에 깃든 두 가지 형태의 마기를 합성합니다! ]
[ 합성 굴림... ] [ 성공! ] [ ‘욕구의 파장’이 인장으로부터 발산됩니다! ]
< Side Effect! >
[ 합성 성공 효과로 각기 다른 두 마기에 다른 성질이 부여됩니다! ] [ ‘회색 마기’의 효과로 영향을 받는 대상의 모든 저항력을 대폭 약화시킵니다! 모든 형태의 방어 능력치가 두 단계 하락합니다! ] [ ‘하얀 악마’의 효과로 ‘매혹’ 효과가 적용됩니다! 일시적으로 대상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욕망을 대폭 증대시킵니다! ]
< System Message >
[ ‘인장’에 깃든 모든 마기가 소진되었습니다. 관련된 ‘색깔’ 관련 능력은 재충전 전까지 사용 불가능합니다! ]
“...”
눈앞으로 줄줄이 떠오르는 창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눈으로는 내 인장에서 흘러나온 마기에 영향을 받은 빅토리아를 주의깊게 살핀다.
먹혔나?
애가 무기까지 떨어트리고, 무엇보다 갑자기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빅토리아가 멍한 시선으로 머리를 감싸쥐는 걸 바라본다.
[뭐야. 뭐 한 거야?]
‘...이건 저도 딱히 노리고 한 건 아닌데요.’
인장은 내가 접촉한 악마들의 마기를 다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난 최근에 회색 악마와 하얀 악마 둘 모두와 꽤... ‘끈적한’ 접촉을 한 바 있거든.
각기 다른 색깔의 마기가 둘 다 저장되어 있단 소리다.
시간을 정지시키는 회색 악마와 대상을 매혹시키는 하얀 악마의 마기를 동시에 쓰면 어떤 식으로든 확실한 제압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망설임 없이 다 쏟아부은 거지만.
하지만, 이렇게 ‘추가적인 효과’까지 붙어서 나오는 건 나도 예상 못 했는데 말이야.
< Tip! >
[ 당신이 행한 일로 인해 타천의 인장에 특별한 기능이 추가됩니다! ]
[ ‘타천의 인장’에 ‘마기 합성’ 특성이 추가됩니다. ]
[ 각기 다른 두 가지 이상의 마기를 합성하면 본래 효과에 더해 특별한 현상이 추가로 일어납니다! ]
[ 다음 능력을 올린다면 효과가 강화됩니다. ]
- 스킬: 판데모니엄의 왕
그런 내 말에 반응하기라도 한 건지, 눈앞으로 그런 창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이건 또...’
당장 내 목표는 회색 악마의 말대로 스펙을 끌어올리는 데 주안점이 잡혀있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축을 담당하는 건 바로 악마 관련된 타천의 인장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지 못한 식으로 날아오는 추가 기능은 내 입장에선 반길 수밖에 없는 요소다.
< System Message >
[ 대상 ‘빅토리아’가 당신이 자아낸 ‘욕구의 파장’에 대단히 강한 영향을 받습니다! ] [ 대상이 가진 ‘근원적인 욕망’이 극대화됩니다! ]
물론, 그건 그거고.
당장 이런 창이 눈앞에 떠오를 정도로 빅토리아가 이 뭔지 모를 것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긴 하다.
원래대로면 그냥 정신이 좀 흐려지고 멍해지는 걸로 끝났어야 할 걸, 몇 초고 몇 분이고 계속 혼이 나간 것처럼 망부석마냥 서 있기만 하니까.
“...”
시험 삼아, 녀석의 눈앞에 손을 휘휘 흔들어본다.
너무 반응이 없어서 불안해서 한 일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곧바로 반응이 돌아오기는 했다.
멍한 눈으로 자기 앞에서 휘적휘적 움직이는 손을 바라보던 빅토리아가, 이내 달려들 듯이 내 손을 확 덮친 것이다.
“...!”
물어 뜯기라도 하는 것처럼 달려들길래, 식겁하면서 손을 떼려고 했지만.
충분히 떨어지기 전에, 빅토리아가 내 손을 콱 붙잡는다.
기계식 바이스에라도 낀 것처럼 강하게 붙들린 느낌. 이대로 공격이라도 하나 싶었지만, 그걸 붙잡은 상태로 그저 가만히 있다. 자신도 본능적으로 그런 느낌이다.
마치.
뭔가 자신에게서 ‘가까워졌다가’ 곧바로 ‘멀어지려고’하니 자기도 모르게 그걸 멈춘 것처럼.
“...싫어...”
이어서, 그런 말이 중얼거리듯이 흘러나온다.
분명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린 아니다. 눈에 초점도 안 잡혀있고, 목소리에서도 지성이 느껴지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 손을 붙잡고 있는 빅토리아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필사적인’ 느낌은 대단히 유효하다.
이어지는 문장도 아마 그런 맥락이었겠지.
“떠나지 마... 나, 나를, 호, 혼자 두지 마...”
눈물 어린 목소리로, 그런 문장을 더듬더듬 내뱉는다.
“뭐, 뭐든지 할게, 떠나지 마...”
그런 말과 함께.
녀석이 양손으로 붙잡은 손을.
핥았다.
“...”
순간적으로 뇌가 정지하는 느낌이 엄습했지만, 손을 빼기에는 이 녀석이 내 손을 붙잡고 있는 기색이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굳어있는 사이, 빅토리아가 그 조그마한 혀를 빼들고, 잔뜩 녹아내린 눈동자로, 끈적하고 천천히 자신의 타액을 내 손에 바른다. 복종의 의사를 표하듯이.
멍하니, 느릿하게, 아양 떨 듯이. 애교 부리는 것처럼.
눈물 맺힌 눈으로, 가쁘게 숨을 내쉬며 내 손을 열심히 핥는다.
그리고 이 정체불명의 상황에 내 뇌가 정지해 있는 사이.
두 번째 목소리가 근처에서 엄습한다.
“...에, 에헤에-”
“...”
제정신이 아닌 빅토리아와 비교해도 지성이 완전히 날아갔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한 상태의 세라스가, 뒤에서 내 다른 쪽 팔을 붙들었다.
“...기분 좋은 일, 하고 계시네요- 선배님-”
“...”
너 술 마셨냐.
매일 선술집에 처박혀 병나발 부는 아저씨와 비슷한 바이브를 온몸에서 뿜어내는 것과 소름끼칠 정도로 닮았다.
“저도, 끼워주세요, 헤에-”
그런 말과 함께.
빅토리아가 물고 있지 않은 다른 쪽 손을 녀석이 가져간다.
앙, 물 듯이 입에 물더니, 이네 마치 사탕을 빠는 것처럼 쭙쭙 빤다.
그러니까.
빅토리아가 뭔가 애달프게, 어떻게 보면 거의 에로틱하게 느껴질 만치 정성들여 핥고 있다면, 이 녀석은 그냥 순전히 본인만의 애정 표현으로서 이런 걸 하는 느낌이다.
마치 애완동물이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그런 느낌으로.
느낌은 완전히 다르지만, 이 녀석도 지금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에 충실하고 있다는 건 아주 잘 알겠다.
찰박거리는 물소리만이 방 안에 천천히 울려퍼진다.
자매가, 옆에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손가락을 열심히 빨고 있다.
“...”
아니, 뭔데 대체.
이건 대체 언제까지 유지되는 건데?
이러다가 둘한테 악영향이라도 가는 것 아니야?
< System Message >
[ ‘욕구의 파장’은 5분 정도 지속됩니다! ] [ 관련된 효과는 지속 시간이 다 경과하면 일체의 부작용 없이 사라집니다! ]
그런 내 말에 반응하듯, 다시 떠오르는 창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니까.
당장 이 녀석들에게 돌아가는 악영향은 없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둘 다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는 거군.
그건 다행인 일이다.
그냥 내가 할 일은 이 자리에 서서 이 녀석들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손이나 빨려주면 될 일이지.
“...”
문장으로 되새겨보니 진짜 기묘해도 이만치 기묘한 상황은 나도 겪어본 적이 없다.
이게 대체 뭔가 싶긴 하지만.
‘...넘기는 덴 성공한 것 같죠?’
적어도, 이런 이상한 방법으로나마 이 둘이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지는 걸 막는 덴 성공한 것 같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게 틀림 없-
[그래, 이 변태 새끼야.]
‘...’
[한번 아니라고 해보지 그래.]
아니.
내가 이렇게 되라고 명령한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객관적으로 지금 내 꼬라지가 그런 말에 반박하기 대단히 힘든 상황이라는 건 나도 동의한다만.
< System Message >
[ 대상 ‘붉은 악마’의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 [ 대상 ‘페이놀 라이펙’의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 [ 대상들 또한 당신의 ‘욕구의 파장’에 영향을 받습니다! ] [ 계획하던 일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노력에 착수합니다! ]
“...”
뭔 소린지는 모르겠고, 이 녀석들이 갑자기 왜 내 앞에 떠오르는지도 모르겠지만.
별로 좋은 느낌이 드는 창이 아닌 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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