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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게 사랑받는 운명입니다-252화 (253/258)

Chapter 252 - 252. 감금

마탑의 집행관을 만난 다음 날.

달력을 보고 있으니 그대로 두통이 몰려온다.

[3일 남았네?]

“그러게요.”

실제로, 학예회 날이라고 붉은 동그라미를 쳐둔 날까진 이제 겨우 3일 남짓하게 남았다.

‘...사실 이제 남은 것도 별로 없긴 한데.’

리루는 아마 엮일 건수가 끝났고, 유리아 쪽도 어제 잘 처리한 데다가, 세라스와 빅토리아도 잠잠하다. 아마 학예회 당일까지는 둘 다 튀는 행동은 안 할 것처럼 보이거든.

‘...3개면 충분하다라.’

마탑의 집행관이 말했던 내 어머니라는 양반의 말을 떠올린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대화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핵심만큼은 날카롭게 짚고 있었지.

[그 말, 믿을 거야?]

“...글쎄요. 아무튼 마기를 모아야 하는 건 사실이니까요.”

어차피 마기는 순차적으로 모이니, 세 개면 충분한지 어떤지는 모은 다음에 확인하면 될 노릇이다.

굳이 ‘적색’과 ‘갈색’이라고 콕 집어서 말한 건 좀 걸리지만.

< System Log >

[ 대상 ‘붉은 악마’의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 [ 대상 ‘페이놀 라이펙’의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 [ 대상들 또한 당신의 ‘욕구의 파장’에 영향을 받습니다! ] [ 계획하던 일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노력에 착수합니다! ]

“...”

마치 예전에 이런 창이 떠오른 것과 연결되는 느낌 아닌가.

다른 쪽이 다 얌전한 당장도, 여기는 뭔가를 꾸미고 있을 게 분명하거든.

[...그런데 그거보단 어째 다른 걸 더 신경 쓰는 기색인데?]

“예?”

[네 말대로 그 빨간 녀석은 당장 널 벗겨 먹으려고 작정하고 있을 게 뻔한데, 어쩐지 그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닌 느낌이라.]

“...”

그거야 그렇다.

가장 커다란 걱정거리는 다른 곳에 있으니까.

“...칼리반.”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엘노어, 대체 어디에서 뭘 하고 있죠?”

[...그러게?]

칼리반도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기색으로 동의했다.

가장 시끌벅적하게 날 볶아야 할 사람이 지금 가장 조용하다.

물론 좋은 느낌은 아니다. 폭풍전야 같은 느낌이라서.

“...이미 저번에 한 번 저를 그대로 벗겨먹으려다 미수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대체 뭘 준비해올지...”

상상만 해도 무섭다는 기색으로 몸을 떨고 있자니, 칼리반도 동의한다는 기색이 듬뿍 담긴 침묵을 흘렸다.

[...재밌겠다.]

“...”

[대체 니가 얼마나 험한 꼴을 당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아닌가 보다.

이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성격 파탄자 같으니.

“...그런데, 주변이 왜 이렇게 어수선하죠?”

실제로, 건물 전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신입생 기숙사도 아니고, 이제 고학군이라고 나름 꽤 좋은 방으로 옮겼음에도 주변이 시끌시끌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황립’ 아카데미 엘판테다. 황제의 권위에 직접 대들 수 있는 미친 인간이 니콜라스 백작같은 미치광이를 제외하고 또 있을 리가-

-이, 이런 식으로 들어오시면 저희도 곤란합니다! 학칙을 준수해주세요, 후작님!

-아하하핫!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폐하가 직접 오시더라도 절 나무라진 않으실 겁니다!

-있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있자니, 이내 내 방이 벌컥 열렸다.

“반갑습니다, 다우드 캠벨!”

“...”

보거트 후작이다.

내가 쳐죽인 니콜라스 백작이 속한 장로회의 수장.

지금 당장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을 꼽으라면 상위 3명 안에는 꼭 들어갈 얼굴에 표정을 찡그리고 있자니, 보거트 후작이 아랑곳하지 않고 방 안으로 뚜벅뚜벅 들어왔다.

“이야, 엘판테도 제가 다닐 때랑 달라진 게 전혀 없네요! ”

“...왜 오셨습니까.”

피곤하기 짝이 없다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보거트 후작이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이며 쾌활하게 말을 이었다.

“경고와 사과를 겸하러 왔습니다!”

“...”

이 사람하고 얽혀서 피곤하지 않은 적이 없다지만, 오늘은 특히 더 심하다.

뭐라고 더 말을 잇기도 힘들다는 기색으로 간신히 입을 연다.

“용건만 말하시고 썩-”

“마탑의 기술을 이용한 니콜라스의 ‘부활’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루어질 겁니다.”

“...”

웃음기가 사라진 보거트 후작의 말에, 내 표정도 덩달아 진지해진다.

“내전 발발은 딱 그때 기점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을 겁니다. 뭘 계획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빨리하시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

“그래서, 이게 ‘경고’였고.”

보거트 후작이 다시 웃음기가 돌아온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병신이 민폐를 끼친 점은 참으로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제발 좀 스스로가 역겨운 걸 알라고 몇 차례 말하긴 했는데, 워낙 빡대가리라 제대로 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요!”

후작쯤 되는 인간이 이런 직설적인 단어를 뱉는걸 볼 줄은 몰랐다.

다른 것도 아니고 광대 그 자체 같은 인간에게.

“그러니 뭐든 부탁하시는 건 한 가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이 인간.

나랑은 적대 관계라는 걸 자각은 하고 있는건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힘겹게 말을 받는다.

“...부탁은 됐고,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애초에 이쪽을 순순히 믿을 수 있냐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이쪽에게 뭔가를 받는 건 그림부터가 굉장히 이상하다.

장로회와 반목하며 묘하게 서로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황제와 재상님과 노골적으로 가까운 게 내 포지션이다. 그런 내가 이쪽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아주 족보가 개판이 된다.

하지만, 그래도.

물어볼 것 하나 정도는 있지.

“빅토리아 에바트리체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들었습니다.”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내 든다.

“...그쪽에게 원하는 게 뭡니까? 뭘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는 겁니까?”

바로 얼마 전에 니콜라스의 목을 날려버리면서 확실하게 곱씹은 사실 한 가지.

제국 안에서, 아인종을 ‘청소’하던 녀석들은 그야말로 상종도 못할 쓰레기들이다.

그런 녀석들의 수장과 빅토리아가 왜 손잡고 있는지 못내 궁금했거든.

“아, 그거요? 별것 아니에요.”

보거트 후작이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어지는 말과는 대치를 이루고 있는 표정이 분명했다.

“저는 솜씨좋은 암살자가 필요했고, 그쪽은 가장 바라는 걸 받기로 했고.”

“뭘 받기로 했길래 빅토리아가 당신같은 인간과 협력-”

“제가 죽기로 했습니다.”

“...예?”

“제 목을 주기로 했다구요.”

느닷없이 날아온 말에 멍하니 상대방을 바라본다.

[...뭐?]

소울 링커 안에 들어있는 칼리반조차 멍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꺼낼 정도로 느닷없는 문장이다.

“덤으로 니콜라스의 목도 함께 주기로 했습니다만, 그쪽은 당신이 먼저 날려버렸으니 좀 유야무야된 감이 없잖아 있죠.”

“...”

“뭐, 제 아래에 있는 것들 중에는 워낙 독한 것들이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그쪽일 진짜 되살리려고도 하겠습니다만.”

“목을 준다는 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걸 지금 저한테 믿으라는-”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보거트 후작이 자신의 옷깃을 확 걷었다.

그리고 그 팔에 새겨져 있는 ‘인장’을 발견하자마자, 말문이 턱 막힌다.

“아, 알아보십니까? 그럼 설명할 필요도 없겠군요.”

“...”

크림슨 팩트Crimson Pact. 진홍빛 계약.

세라 안에 존재하는 흑마술류 스킬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물건이다.

그거야, 이걸 새겨넣으면서 한 ‘계약’은, 본인의 영혼을 담보로 걸고 맹세하는 것이니까.

“저와의 계약을 이행하는 대가로, 제 목을 걸었습니다. 이 정도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믿어주시겠습니까?”

“...”

말문이 턱 막힌 상태로 보거트 후작을 바라본다.

“...하지만.”

어째서?

이걸 새겨넣은 순간부터, 이 녀석은 이미 시한부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죽는 건 이미 확정이지.

“뭐, 어차피 가게 될 거 화끈하게 가고 싶어서요. 그랜드 어쌔신을 하나 더 영입해서 ‘균형추’를 맞추는 것도 그만큼 중요했고.”

“...균형추라고요?”

“빅토리아 에바트리체는 조만간 당신에게 드릴 겁니다. 잘 써먹어 주세요.”

아까 전에 이어, 다시 말문이 턱 막힌다.

이 인간, 대체 뭔 소릴 하는 거야?

“대륙 최고의 암살자 두 명을 동시에 끼고 있다면... 그리고 그걸 부리는 게 당신이라면. 꽤 효율적으로 써먹어 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 정도는 해야 서로 좀 형편이 맞을 거라서.”

“...보거트 후작님.”

“제국 군사 관련 집단의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게 저희 장로회입니다.”

그런 말이, 내 문장을 자르며 툭 떨어졌다.

“대륙 최강의 군사력을 가장 많이 장악하고 있는 게, 바로 우리라구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시무시한 게 저희랍니다?”

“...”

“힘내주세요, 다우드 캠벨.”

여전히, 웃는 얼굴로.

보거트 후작이 선전포고에 가까운 문장을 내놓았다.

“며칠은 버텨주셔야, 저도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거든요.”

“...”

표정을 굳히며 가만히 서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던 보거트 후작이, 싱긋 웃으며 머리를 숙였다.

정중하기 짝이 없는 동작이다. 진심으로 ‘적수’에게 예우를 표하는 것처럼.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 바깥으로 나서기 전, 보거트 후작이 문득 걸음을 멈춰 서며 그런 말을 꺼내 들었다.

“마탑과 접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

“어머니와 관련된 모든 시간을 소중히 추억으로 남기십시오, 다우드 캠벨.”

“...예?”

“그게 제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충고일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보거트 후작과 시선을 마주친다.

여전히, 눈매는 초승달처럼 휘어있다.

하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나중에 후회하면 그것만큼 뼈 아픈 게 없거든요. 경험담이에요?”

어쩐지, 애수를 품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내 방에서 훌쩍 떠나가는 보거트 후작을 말없이 바라본다.

[...진짜 종잡을 수가 없는 인간이네.]

“...동의합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내가 학예회에서 하려는 일을, 더욱 더 확실하고 깔끔하게 끝내야 한다는 것.

“좋아요.”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킨다.

“...완벽을 기하도록, 계획을 조금 다듬어 볼까요.”

오늘은 되도록 아무도 만나지 말아야겠다.

혼자서 생각을 좀 오래해야 할 것 같으니.

그렇게 다짐한 게 고작 몇 시간 전이다.

내 생각대로면, 적어도 오늘만큼은 묵직한 분위기에서 방금 부딪힌 살벌한 안건을 두고 머리가 부서져라 고민했어야 하는데.

나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설명.”

내가 들어도 놀랄 만큼 살벌하게 싸늘한 목소리에, 눈앞에 있는 두 명이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근처로 보이는 건, 그러니까.

푹신한 침대, 분홍색으로 이루어진 물체가 사방으로 보인다.

커튼, 그 외에 프릴이 잔뜩 달린 온갖 여성스러운 물품들로 잔뜩 치장된 방.

그리고 눈앞에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하는 인간이 두 명.

날 여기로 ‘납치’해온 인간들이다.

“...그, 그게...”

“...으, 음...”

“...”

뭐라고 말도 못하고 더듬거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혈압이 오른다.

아니, 설명해달라고.

지금 그것만큼 나한테 간절한 게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쪽 벽면에 큼지막하게 써져 있는 글자를 바라본다.

[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

...뭘 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는 건지, 제발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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