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닮고 싶다2019.05.27.
“그런가요.”
하인리가 굳이 오해를 풀지 않는 것이다. 맥케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커다래진 눈동자가 하인리의 옆모습을 훑었다. 전하께서 왜 저러시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릴테앙 대공은 하인리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누군지도 모르고서, 그저 제대로 아부했단 생각에 껄껄 흐뭇하게 웃어댔다. 하인리는 대공과 헤어질 때까지도 그의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다.
“좋아하는 분이 누구란 건 말하지 않더라도, 오해는 왜 안 풀어주신 겁니까?”
결국, 맥켄나는 둘만 있게 되자 하인리에게 대놓고 물었다. 호기심이 턱 끝까지 치솟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인리는 끝까지 갑갑하게 채운 웃옷 단추를 한 손으로 풀면서 피식 웃었다.
“누구 좋으라고.”
“일단…… 제가 좋겠죠. 호기심이 풀리니까.”
“그 외에는?”
“글쎄요.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릴테앙 대공에게도 좋았겠지요. 전하 앞에서 헛소리를 조금이라도 덜했을 테니까요.”
이미 충분히 했지만요, 맥켄나가 작게 덧붙였다. 하인리는 단추를 다 풀고서 윗옷을 한 손으로 벗어 툭 던지듯 옆에 놓았다. 맥켄나는 옷을 가져다가 섬세하게 접으면서 하인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인리는 왕자였고 맥켄나 역시 서출이지만 왕의 피를 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궁정 밖을 하도 많이 돌아다녀서, 직접 이런 일을 하는 게 익숙했다.
“네 조언을 잘 생각해 봤거든.”
“예?”
“왜 오해를 안 풀었냐며. 네 조언을 따른 거라고.”
“……제가 그런 조언을 했던가요?”
“전쟁으로 데려온 왕비를 환영하는 국민은 없다며.”
“그랬……죠. 그런 말은 했지요.”
맥켄나는 어리둥절해서 하인리를 쳐다보았다. 그 말이 릴테앙 대공의 오해를 풀지 않은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단 걸까? 하인리는 바지만 입은 채 침대 위에 걸터앉으며 웃었다.
“우리는 전쟁을 할 거잖아?”
“그렇지요.”
“퀸 때문에 결심한 전쟁은 아니야. 적어도 계기는 절대 아니었지.”
“전쟁의 계기는 절대 아니시지요.”
맥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맥케나는 동대제국에 있을 무렵, 하인리가 나비에 황후에게 반해서 전쟁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매일같이 지도와 전법서만 펼쳐놓고 끙끙대던 인간이, 몇 달간 편지를 물고 꽁지가 빠져라 날라다니는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착각이었지만.
“하지만 내가 퀸을 사랑한단 이야기가 퍼지면 사람들은 무조건 퀸을 전쟁과 관련 지어서 생각할 거야. 퀸을 전쟁의 원흉이라 여기고 원망하겠지.”
“음.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런 식으로 퀸이 얽히게 하고 싶진 않아. 네 말이 맞아. 전쟁의 계기라며 씹히는 건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지.”
맥케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제가 드린 말씀은 맞지만…… 좀 어감이 달라진 것 같은데요?”
“넌 똑똑해, 맥켄나.”
“해석이 너무 자유로우십니다, 전하.”
“맥켄나?”
“……예.”
“난 그 여자를 방패로 내세워서 퀸을 가십거리가 되지 않게 할 거야.”
맥켄나는 혀를 내둘렀다. 무슨 뜻으로 저러는지 이해는 갔지만, 좀 걱정스러웠다. 하인리는 오래전부터 동대제국과의 전쟁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퀸- 나비에 황후를 만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진심으로. 아주 강렬하게. 하지만 맥켄나는 하인리가 이다음으로 무엇을 계획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황후를 억지로 옆에 데려다 둘 생각도 아닌 듯한데. 전쟁 상대를, 그것도 친구라 여겼던 전쟁 상대를 그 자존심 강한 황후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맥켄나. 동대제국을 무너뜨리고 나면, 퀸을 모욕한 그자의 입에 돌을 채워 넣을 거야.”
“돌……”
“돌을 넣고 꿰맨 다음 퀸 앞에 무릎 꿇고 빌게 해야지.”
즐거운 상상을 하듯 웃는 하인리를 보며 맥켄나는 혀를 찼다.
“뭐 그것도 괜찮겠지만, 전하. 그보다는…… 모국을 공격한 나라의 왕을 나비에 황후님이 받아들이실지부터 걱정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그래?”
“예. 사랑이고 뭐고 우정부터 박살 날 것 같습니다만……”
“……”
“‘옆나라 왕자’로도 마음을 못 얻으셔 놓고서는. ‘적국 왕’으로 마음을 어떻게 얻으시려고요?”
“새는 구애할 때 춤을 추잖아, 맥켄나. 우리는 새잖아.”
“구애의 춤이라도 추시려고요……?”
“안 통할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표정으로 하인리가 진지하게 물었다. 맥켄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턱에 힘을 주고서 거짓말했다.
“통할 겁니다. 잘 춰보세요.”
* * * 서서히 봄기운이 싹트기 시작하고 있었다. 바람은 코끝에서 여전히 차가웠으나 시리지 않았다. 나는 창문을 열고서 카프멘 대공이 주고 간 륍트의 책을 읽고 있었다. 카프멘이 주고 간 책들도 이젠 거의 다 읽었고, 이건 세 권 남은 책 중 하나였다. 아직도 나는 륍트와의 거래가 없던 일이 된 게 아쉬웠다. 일이 잘 되었다면 두 대륙 사이에서 무역의 요충지 역할을 할 수 있어 큰 이득이 났을 텐데…… 물론 그것도 무역이 잘 풀렸을 때 가능한 일이지만.
‘슬슬 대관식에 참석한 사절단도 돌아오겠지.’
릴테앙 대공의 입을 통해서지만 하인리가 무사히 왕좌에 올랐단 소식은 듣고 싶다. 나뭇가지에 끄트머리만 살짝 올라온 초록색 몽우리를 쳐다보다가 나는 손을 뻗어 창문 손잡이를 잡았다. 봄기운이 조금 돈다지만 오래 창문을 열어두기엔 아직 추웠다. 그러나 창문을 닫기 전, 파란 새가 쏜살같이 내 앞으로 날아왔다. 새는 들여보내 달라는 듯 창가를 빙글빙글 돌더니 창틀에 앉았다.
“퀸의 친구구나!”
하인리 왕자가 기르는 또 다른 새였다. 기뻐서 외치자 새는 뒤뚱거리면서 창문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창문을 반만 닫은 뒤 새에게 물그릇을 챙겨 주다가 깜짝 놀랐다. 새가 작은 반지를 목걸이처럼 꿰어 목에 걸고 있었다.
‘저걸 왜 걸고 왔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반지는 건드리지 않고, 새의 다리에서 편지만 빼내 읽었다. 답은 편지에 적혀 있었다. - 반지는 퀸에게 보내는 선물. - 퀸이 나의 왕비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퀸을 보고 제 눈이 너무 높아졌어요. - 안 오셔서 섭섭. 하인리 섭섭. 쪽지가 작다 보니 문장이 짧게 끊어져 있었다. 그 탓일까. 약간 유치한 것 같으면서도 귀여웠다. 이젠 한 나라의 왕이니 그만큼 존중해야 하는데, 그런 걸 알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마지막에 3인칭으로 쓴 건 라스타를 따라 한 건가? 배를 잡고 웃어대자 파란 새가 머리를 기웃거리면서 나를 희한하단 듯이 쳐다보았다.
“네 주인은 정말로 재미있는 사람이야.”
파란 새에게 말해주자, 새는 풍성한 눈썹을 들어 올리며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파란 새가 고개를 숙여 주었으므로, 나는 손쉽게 녀석의 목에 걸린 반지 목걸이를 빼냈다. 거기서 반지만 빼서 목걸이는 도로 걸어준 다음, 반지를 자세히 살폈다. 반지에는 서왕국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처음 두 번째 손가락에 끼워 봤을 땐 조금 작았지만, 네 번째 손가락에 끼우자 딱 맞았다. 나는 반지를 도로 빼서 보석함 한 자리에 잘 넣은 후, 편지지를 꺼내 책상 앞에 앉았다. 간만에 참지 못하고 웃어대서일까. 기분이 좋았다. 나는 편지지를 잡고 한참을 망설였다. 나도 하인리 왕자, 아니, 하인리에게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형의 죽음과 대관식, 새롭게 정비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로 바쁠 텐데. 이 모든 걸 잊고 정신없이 웃게 해주고 싶었다.
“……”
하지만 난 남을 웃기는 데에는 재주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쥐어짜도 그에게 웃음을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냥 진심으로 조언했다. - 현명하고 지혜로운 여자는 많습니다. 좋은 왕비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쓰고 나니 너무 형식적인 대답으로 여겨졌다. 친구가 아니라 그냥 옆나라 황후의 편지 같았다. 사절단을 통해서 보내도 될 만한 그런 편지.
“이건 아니야. 그렇지?”
파란 새에게 묻자, 새가 커피잔을 기웃거리다 말고 흠칫해서 짹 소리를 냈다. 나는 한참 망설이다가 좀 더 개인적인 일을 아래에 적어넣었다. - 나는 데뷔탕트 무도회를 준비하는 중. 좋아. 이러면 좀 편안한 대화 같은 느낌이 나겠지.
“어때? 친근해 보이니?”
파란 새에게 편지를 보여주며 묻자, 파란 새는 흠칫해서 나와 편지지를 빠르게 훑었다.
“친구끼리 주고받는 말 같지?”
다시 묻자, 파란 새는 잠시 부리를 꼭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 *
“도저히 못 고르겠어.”
라스타는 디자이너의 도안을 모아둔 스케치북을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이 사람 옷도 다 예뻐. 왜 다들 이렇게 재주가 좋지?”
데뷔탕트 무도회 날이 거의 다가왔는데. 아직도 그녀는 르베티의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로테슈 자작이 이틀 전부터 채근했지만, 도무지 라스타는 르베티의 드레스를 고르기 힘들었다.
“예쁘면 안 돼. 그렇지만 너무 소홀한 티가 나도 안 되는데……”
라스타는 중얼거리면서 스케치북을 다시 넘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스타에게 명단이 오는 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사교계에서 이름난 디자이너들인 데다, 데뷔탕트 드레스는 원래 화사하고 화려하기로 유명했다. 당연히 예쁘지 않은 걸 찾기 어려웠다.
“아니면 그냥 남들이 다 입을 만한 무난한 거로 할까?”
비슷비슷한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아주 볼만할 터였다.
‘비슷한 드레스?’
그때, 라스타의 머릿속에 예전 일이 떠올랐다. 황후와 드레스가 겹쳤다가 대대적으로 모욕을 받았던 그 일. 그 불쾌한 일이 라스타의 머릿속에 묘안으로 만들어졌다.
‘르베티에게 나와 똑같은 옷을 입히면 되잖아?’
그러면 사람들이 수군거리겠지. 이전에는 황후의 지위가 높기에 자기가 따라 한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르베티를 상대로는 달랐다. 사교계의 유명인사는 라스타였고 르베티는 작은 영지의 딸이었다. 드레스가 같으면 르베티가 따라 한 게 될 터였다. 물론 르베티도 로테슈 자작도, 데뷔탕트 드레스를 협박으로 뜯어냈단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라스타는 입꼬리를 올리고서 하녀를 불러 지시했다.
“라스타가 골라둔 드레스 있지?”
“예, 라스타 님.”
“똑같은 건데 치수가 좀 더 작은 거로 마련해 줘. 여기, 이거 이 치수에 맞춰서.”
라스타는 르베티의 신체 치수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미리 로테슈 자작에게 받아두었던 종이였다. 라스타가 협박을 당하는 걸 몰랐지만, 누군가의 데뷔탕트 드레스를 골라주고 있던 건 아는지라 하녀는 깜짝 놀라 물었다.
“라스타 님과 같은 드레스를 맞춰 주시려고요?”
“응. 도무지 뭘 골라야 할지 몰라서.”
“하지만…… 드레스가 같으면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라스타가 고른 드레스가 가장 예뻐서. 덜 예쁜 걸 주자니 미안하잖아.”
“라스타 님…… 왜 이렇게 착하세요.”
하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라스타는 나비에 황후가 짓는 것처럼 입 끝을 맴도는 미소를 부드럽게 지었다. * * * 데뷔탕트 무도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무도회 자체는 신년제 때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오늘은 사교계에 새로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하는 날이니만큼 분위기 자체가 아주 활기찼다. 태어나서 가장 화려하게 차려입었을 영애와 영식들의 옷차림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당분간은 무도회마다 저렇게 입고 다니겠지요.”
“한 일이 년쯤 지나면 조금씩 레이스와 보석이 줄어들기 시작할 테지만요.”
시녀들도 앳된 티가 남은 영애와 영식들이 귀여운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황제인 소비에슈가 일이 바빠 참석하지 않았기에 분위기가 더 가볍기도 했다.
“저기 르베티 양이 있네요.”
몇 번 얼굴을 보았기 때문인지, 로라가 반갑게 르베티를 가리키며 말했다. 르베티는 새롭게 데뷔하는 소녀와 소년들 틈에 섞여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을 곱슬곱슬하게 말고서 노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병아리처럼 귀여웠다. 슬쩍 내 쪽을 보기에 손을 흔들어주자, 르베티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발을 총총 굴러댔다.
“저 아이는 정말로 황후 폐하가 좋은가 봅니다.”
엘리자 백작 부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씁쓸한 기분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아이의 뒷조사를 하는 사람이 나란 게 떠오른 탓이다. 음악이 시작되자 영애와 영식들이 서로 짝을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홀 안을 살폈다. 데뷔탕트 무도회이기에 참석한 이들은 데뷔탕트를 치르는 사람들, 데뷔탕트를 맞은 친척이나 지인이 있는 사람들, 사교계에 관심이 많아서 새로운 얼굴을 먼저 확인해 보고 싶은 사람들 등이 대다수였다. 사교계의 명사이자 바람둥이로 유명한 에르기 공작은 오지 않았다. 너무 어린 영애들은 관심이 안 가는 모양이었다. 의외인 건 라스타 역시 보이지 않는단 점이었다.
‘르베티 때문에 안 온 건가?’
의아하게 여기면서 나는 하인이 가져다준 작은 케이크 조각을 베어 물었다. 입안에서 달콤한 생크림과 땅콩 향이 났다. 그러나 몇 번 입에 넣고서 케이크를 씹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자, 라스타가 뒤늦게 입장한 듯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서 있었다. 문제는 라스타가 입은 옷이…… 시선이 저절로 르베티가 입은 옷으로 향했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라스타가 입은 노란 드레스와 르베티가 입은 노란색 드레스는 거의 흡사했다. 르베티는 영문 모른 채 영식과 손을 잡고 춤을 추느라 바빴다.
“저게 또-!”
로라가 이를 갈며 씩씩거렸다.
“저 따라쟁이, 이번엔 르베티 옷을 따라 입었나 봐요.!”
음악이 끝난 뒤에야 르베티는 라스타를 발견했고, 라스타가 입은 드레스를 발견했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욱 커다래졌다. 사람들이 수군거리자 르베티는 아까와 다른 의미로 얼굴이 빨개졌다. 그걸 보자 안 됐단 생각이 들었다. 내 편견 때문일까. 똑같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지만 라스타는 고의로만 보였다. 르베티가 울상을 짓고, 또래 귀족들이 르베티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보다 못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르베티 쪽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놀라서 옆으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 걸치고 있던 망토를 벗어 르베티의 어깨에 매 주자, 르베티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 옷이 유행인가 보구나. 이러면 좀 다르려나?”
웃으면서 일부러 그렇게 말하자 르베티는 눈가가 그렁그렁해졌다. 안도하는 소리와 내 기지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내 칭찬을 들으려 한 일이 아니기에, 나는 르베티를 다독인 다음 내가 앉아 있던 곳으로 데려갔다. 그러면서 힐긋 라스타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또 같은 드레스를 입고 나온 걸까? 저 애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라스타는 의외로 르베티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힐긋거리며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바쁘게 적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