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자세가 좀2019.08.30.
커다란 상자라지만 보는 것과 들어가 있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멍한 기분으로 양 무릎을 끌어안은 채 ‘지금 난 뭘 하는 중인가’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왕비가 되어 떠나는 게 아니라, 그냥 탈주범의 도주 같은데. 마차는 부드럽게 나아갔지만 의자 아래의 상자는 바퀴와 너무 가까운 위치였다. 마차가 약간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덜커덩 시끄러운 소리가 났고, 몸이 흔들리며 머리가 상자의 윗부분에 부딪쳤다. 그리고는 그 반동으로 튕겨져 나와 이번엔 상자의 아랫부분에 다리나 엉덩이가 부딪쳤다. 그나마 이 자세도 몇 번이나 여기저기 쿵쿵 부딪치다가 가까스로 찾아낸 자세였다. 조금이지만 덜 흔들리고 덜 아픈 자세.
“퀸. 괜찮아요?”
그래도 이따금씩 하인리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날 안심시켜 주었다.
“퀸.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국경을 넘어갈 수 있어요.”
나는 그때마다 대답하는 대신 주먹을 쥐어서 상자 벽을 콩콩 두드렸다. 이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면 분명 이상한 소리가 나올 텐데. 그랬다간 에르기 공작이 대놓고 웃어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처음 하인리가 “괜찮아요?” 하고 물었을 때 “갠찮아요.” 라고 샌 발음으로 대답했다가, 에르기 공작이 시끄러울 정도로 웃어대서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벽을 두드려 대답하는 것조차 에르기 공작에겐 즐거운 듯했다. 이번에도 그가 웃어대는 목소리가 들려서,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인리가 그만 하라며 말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도움도 되지 않았다.
“왜? 너도 웃고 있잖아. 소리를 내느냐 아니냐의 차이지.”
에르기 공작의 이 말에 갑자기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뚝 멈춰 버렸으니까. 하인리가 공작의 말처럼 ‘소리 없이’ 에르기 공작과 말다툼을 하는 게 분명했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고서 눈을 꽉 감았다. 차라리 잠들자. 그 편이 시간이 빨리 가겠어.
* * * 생각보다 내 정신은 무던한 편인가보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서도 ‘잠이 올까?’ 싶었는데. 이상한 기분에 눈을 떠보니, 상자 뚜껑이 열려 있었다. 시선을 돌려 옆을 보자 뚜껑을 잡고 선 하인리가 보였다. 아주 제대로 잠이 든 것이다. 쑥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괜히 웃어 보이자, 하인리는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웃으면서 말했다.
“신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퀸이 눈을 뜨고 날 보는 순간, 너무 벅차서 가슴이 철렁했어요.”
칭찬에도 정도라는 게 있다. 즉, 어느 선까지는 고맙지만 그 선을 넘어가는 순간 듣기가 민망해진다. 방금 하인리의 칭찬은 선을 넘어간 수준이었다. 나는 민망한 기분에 얼른 무릎을 놓고 상체부터 일으켰다.
“아. 천천히 일어나요.”
하인리는 얼른 내가 일어나는 걸 도와주었다.
“한 자세로 오래 있다가 그렇게 빨리 일어나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퀸.”
완전히 일어나자 그는 구겨진 옷을 직접 여기저기 펴주고는, 다시 날 보며 웃었다. 나는 그가 더 민망한 칭찬을 하기 전에 얼른 먼저 질문했다.
“다 도착한 건가요?”
“아니요. 여긴 국경 마을입니다.”
“기사들은……”
“아직 여기까지는 명령이 전달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인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슬쩍 마차 밖을 살폈다.
“곧 도착할테지만요.”
나는 상자 밖으로 완전히 나왔고, 하인리의 손을 잡고 마차를 내려갔다. 에르기 공작은 심각한 얼굴로 마부와 무어라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보자 다시 난잡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하인리가 슬쩍 중간 자리로 끼어드는 바람에 바로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그 사이 나는 마을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위해 여기저기 고개를 돌렸다. 국경 마을들은 모두가 국가 요충지라, 한 번씩은 방문해 본 적이 있었다. 오빠 같은 경우는 완전히 국경 마을로 추방 와 있기도 했고.
‘아. 룩스 쪽인가.’
오빠가 머물렀던 변경 지대는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멀리까지 올 동안 잠들어 있었던 건가?’
황당한 기분에 눈을 깜빡이고 있자니, 말을 다 나눈 건지 에르기 공작이 나와 하인리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저는 여기까지만 동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마웠어요, 에르기 공작.”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왕비님.”
트로비 저택에서는 ‘전 황후’라고 부르며 깝죽거리던 에르기 공작은 이번에는 나를 ‘왕비님’이라고 불렀다. 하인리를 의식한 호칭 같았지만, 그 호칭을 듣자 오히려 내가 더 하인리를 의식하게 되었다. 슬쩍 곁눈질로 보니, 하인리는 가볍게 웃고 있었다.
“아. 짜증나. 저 행복한 얼굴. 진짜 불쾌해.”
에르기 공작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하인리는 태연했다. 그보다…… 하인리와 에르기 공작이 생각보다 친한 모양이구나. 이렇게 격의 없이 대화할 정도라니. 에르기 공작은 혀를 찼지만 다시 말을 이었다.
“좋은 상단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신뢰도는 확실한 상단을 불러 두었습니다. 대기하고 있으니까, 왕비님은 그쪽으로 가서 상단에 합류하시면 됩니다.”
“하인리는……?”
내가 잠든 사이에 자기들끼리 말을 나눈 걸까. 하인리는 놀라지 않고서 내게 말했다.
“같이 가면 수상할 테니 따로 가는 게 좋습니다, 퀸.”
“그대는 다른 상단을 이용할 건가요? 아니면 용병?”
“음…… 그건 아닙니다. 전 혼자 갈 거라서요.”
“위험해요. 함께 가요.”
소비에슈가 하인리를 다시 붙잡으려 들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일국의 왕이 혼자서 국경 밖을 다니겠다니. 이곳은 상시천이 자주 오가는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약이란 모르는 법이다. 상시천 외의 다른 도적들이 있을 지도 몰랐고, 강도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하인리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했다. 에르기 공작도 낄낄 웃으면서 하인리는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하인리는 이상할 정도로 신출귀몰하니 괜찮습니다.”
그래도 위험하지 않냐, 말하고 싶지만…… 하긴. 이미 하인리가 혼자서 윌월에 온 것도 보았지. 최근에는 남들 모르게 동대제국 수도의 황궁에도 들어왔고. 걱정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인리가 정말로 혼자 도망치는 솜씨가 좋다면, 나와 다니는 게 오히려 그를 더 위험하게 하는 걸 테니까.
“그러면, 하인리. 나는 갈게. 왕비님도 조심해서 가시길.”
에르기 공작이 타고 온 마차를 타고 떠난 후. 우리는 걸어서 평범해 보이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하룻밤 묵고 가려는 건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우리를 보자마자 한 여자가 다가오더니 나와 하인리를 번갈아 보며 물었기 때문이다.
“운반해야 한단 사람은 어느 쪽?”
나는 슬쩍 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대답하면서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내 얼굴은 초상화로 그려져서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내가 이혼한 후로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소문은 충분히 퍼졌을 테고, 아무리 국경지대 사람들이라지만 황후의 이혼과 재혼 소식을 모를 리가 없었다. 특히 정보에 민감한 상단이라면. 지금은 긴 망토를 입고 망토에 달린 모자까지 눌러써서 얼굴을 가렸지만, 혹시라도 망토를 벗어보라 하면……
“갑시다.”
그러나 여자는 얼굴을 확인하잔 말도 없이 시원스레 말하고서 먼저 나갔다.
‘그냥 가는 건가?’
당황해서 하인리를 보자, 하인리는 안심하라며 웃었다.
“괜찮아요. 몇번 같이 일해본 적이 있는데, 아, 물론 제가 왕자란 건 몰랐지만요. 여하간 일 하나는 완벽하게 해내거든요.”
하인리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여자를 따라갔다. 하인리는 약간 거리를 둔 채 날 따라와서, 내가 상단 마차에 올라타는 것까지 지켜보았다. 이후 마차가 떠날 때까지도 그는 그 자리에 있었는데, 여자가 나를 부르는 바람에 잠시 다른 쪽을 보았다가 창문을 보자, 순식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머리 위로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여자는 상단의 주인이라 했는데, 눈치를 보니 상단 외 용병 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지만 동시에 입이 무거웠다. 절대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하지 않았으며, 나에 대해서도 일절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그녀에게 들을 수 있던 건 오로지 소문과 이름 모를 그녀의 지인들, 동료들 이야기였다. 그 소문 중엔 당연히 ‘이혼하자마자 재혼한 황후’ 이야기가 있어서 곤혹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그 일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을 직접 들을 수 있던 건 좋았다.
“난 황후폐하의 행동에 찬성하는 쪽입니다.”
“그런가요?”
“뭐, 부하들 중엔 이기적이었다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거야 자기들 일 아니니 그렇게 떠들 수 있는 거거든요.”
“……”
“이혼을 먼저 하자 한 것도 아니고 상의해서 한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당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혼 후 의리? 개뿔이지. 안 그럽니까?”
‘고마워요’ 라고 말할 뻔한 걸 참고서 나를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개뿔입니다.”
“근데 말투 되게 이상하시네.”
“!”
이후로도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주었고, 마차가 잠시 멎을 때마다 우리는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 사이에는, 새로운 마부가 나타나 말을 교체하고 마부석에 올라탔다. 나는 이 상태로 쭉 서왕국의 수도까지 갈 거라 생각하고서, 나중에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서 창문을 열고 밖의 풍경을 구경했다. 소비에슈가 기사들을 풀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잘 빠져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여자가 날 내려준 곳은 서왕국 국경을 넘기 전이었다. 인근 나라의 작은 마을에 날 내려준 그녀는 여기까지 데려다주란 게 자기가 받은 의뢰였다며, 잘 지내라 인사하고는 바람같이 사라져버렸다. 낯선 곳에 홀로 뚝 떨어진 데 놀라 멀뚱히 서있자,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리가 커다란 말을 타고 나타났다.
“언제 왔어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하인리는 마을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에서 나타났다. 즉, 숙박 없이 마차를 달려 온 나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다.
“조금 먼저 왔습니다.”
“전혀 못 봤는데……”
“겹치지 않을 길로 왔거든요.”
내가 대로로 왔으니, 하인리는 지름길로 왔단 건가? 하긴. 하인리는 마차를 타고 온 것 같지 않으니 지름길로 왔을 수도.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자 하인리가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승마 할 줄 알아요?”
* * * 속도의 제한 없이 말을 타는 건 오랜만이었다. 하인리가 승마복까지 준비해 둔 덕에, 나는 말에 타자마자 신이 나서 고삐를 틀어쥐었다.
“퀸, 너무 빠른, 빠르게 달리는 거 아닙니까?”
하인리는 뒤에서 내 허리를 꽉 붙잡으며 더듬더듬 물었다. 바람 때문에 목소리가 계속 끊어지는 듯했다. 앞을 봐야 했기에, 나는 정면을 쳐다본 채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해요.”
귀족 대부분은 몇 가지 의무로 배워야 하는 스포츠가 있는데, 그중 승마도 포함되어 있었다. 황후가 된 후에는 바빠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지만, 원래 나는 승마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황태자비가 되기 전에는 정원에서 혼자 조랑말을 타고 다녔고, 황태자비가 된 후에는 선대 황후께서 선물해주신 아름다운 흑마를 타고 다녔다. 소비에슈 역시 승마를 좋아해서, 우리는 같이……
‘그만 생각하자.’
과거를 생각하면 항상 소비에슈가 나온다. 내 모든 과거에 그가 당연하다는 듯이 같이 있는 탓이다. 나는 억지로 소비에슈에 대한 생각을 옆으로 밀어내다가, 문득 하인리가 너무 조용하단 걸 깨달았다.
‘하인리는 너무 빨리 달리는 걸 싫어하나?’
“하인리?”
나는 놀라서 황급히 그를 불렀다.
“……네.”
다행히 대답은 바로 들려왔다. 어째서인진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좀 잠겨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무서워요? 속도를 늦출까요?”
걱정이 되어 묻자, 하인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내 뒤에 붙어 있는 탓에, 그가 고개를 젓자 그의 가슴이 자연스럽게 내 등에서 살짝 흔들렸다. 그 바람에 뒤늦게 그가 의식되어서 나는 고삐를 더욱 꽉 쥐었다. 간만에 승마를 해보고 싶어서 내가 앞에 타겠다고 한 건데. 의식하고 나니 이 자세는…… 나는 고삐를 더 꽉 틀어잡았다. 내 허리를 단단하게 안고 있는 하인리의 손이 느껴졌다. 그는 내 허리를 한 치의 공간도 없을 정도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하인리.”
“네, 퀸.”
“약간…… 손에서 힘을 빼도……”
“그러면 제가 떨어집니다.”
“……”
“무서워서 그래요.”
하인리는 날 의식하지 않는데, 내가 하인리를 혼자서 의식하는 걸까? 괜히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렇게 붙어 있으니 하인리도 그걸 느낄지 몰라.’
혼자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나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해서 하인리의 손이 아닌 바람을 느끼려 애써 보았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아서, 결국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그런 기색을 눈치챈 걸까. 미약하게 하인리의 등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내가 상자에 쪼그리고 누워 있을 때, 에르기 공작이 타박한 것처럼 그가 소리 없이 웃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자리를 바꾸자고 하자니…… 이것도 좀 자세가 이상해질 게 분명했다. 내가 뒤로 가면, 지금 하인리가 하는 것처럼 내가 그의 등을 꽉 끌어안아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분명…… 닿을 거다. 내 등에 하인리의 단단한 가슴이 그대로 느껴지듯, 반대로 타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자 하인리가 웃으면서 물었다.
“제가 같이 고삐를 쥐겠습니다, 퀸. 그러면 될까요?”
같이 고삐를 쥔다는 건 그가 날 이렇게 꽉 끌어안지 안을 거란 이야기였다.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겠어요. 약간 갑갑해서……”
하인리는 웃으면서 손을 뻗더니, 내가 잡은 고삐 뒤쪽으로 고삐를 잡았다. 내 손 위로 겹친 건 아니었지만, 고삐를 잡는 부위가 길어봐야 얼마나 길겠는가. 위아래로 잡았지만 손이 맞닿았다. 손 뿐이 아니라 팔도 맞닿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서 억지로 정면만 쳐다보았다. 아까는 그가 날 끌어안은 자세였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의 팔 사이에 파묻히듯 안긴 자세였다.
“마차를…… 마차를 타면 좋을 것 같은데.”
“승마 좋아한다면서요.”
“마차도 좋아해요.”
“하지만 말이 속도가 더 빠릅니다, 퀸.”
“말을 한 마리 더 구하면 어떨까요?”
“이런 명마를 당장 구하긴 어려워서…… 말을 구한 다음 출발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퀸. 게다가 조금만 더 가면 서왕국인데, 그쪽엔 이미 맥켄나가 대기하고 있을 거고요.”
난처하단 목소리로 설명한 하인리는 걱정스러운 듯 “왜 그래요? 멀미 날 것 같습니까?”하고 물었다. 차마 자세나 맞닿은 그의 가슴, 팔, 손이 신경 쓰인단 말은 할 수 없어서, 나는 덤덤한 척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래. 곧 서왕국이라니까. 조금만 더 참으면 되겠지. 그의 말처럼, 지금 우리가 탄 말만큼 빠르게 달릴 만한 말을 구하려면 거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터였다.
‘상대는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내가 혼자 의식하면 그게 더 이상해.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우리는 그냥 말을 같이 타고 있을 뿐이야.’
나는 애써 마음을 수습하고서 고삐를 힘주어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