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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진실을 알다 (97/325)

97화. 진실을 알다2019.10.04.

맥켄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들키셨습니까?”

“모르겠어.”

하인리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짐작이 아주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맥켄나의 정체를 질문한 후 퀸의 정체를 물었을 때. 당시 나비에는 퀸이 하인리의 부하라 여기는 눈치였지만…… 하인리 본인이 너무 당황해서 제 발로 수상쩍은 반응을 보여버린 탓이다. 별말이 없으니 못 알아차렸구나, 생각했는데. 갑자기 차갑게 대하고 눈도 마주치려 들지 않는다. 시기상, 진실을 알고 화가 났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신경 쓰이실 정도면 그냥 지금 말씀하시지요?”

“넌 매사 그래? 신경 쓰이면 바로 해내?”

“전…… 전하께 상담하지요.”

“그러면 난 뭐라 그러는데?”

“신경 쓰이면 하라고요.”

“그래. 내 말을 실천해야겠다.”

하인리는 한숨을 내쉬고서 일어섰다. 시기의 문제일 뿐, 어차피 고백해야 할 일이기는 했다.

“같이 드레스 고르고 싶었는데……”

“아. 드레스 고르러 갔다 쫓겨나셨습니까?”

하인리의 손이 천천히 의자에 놓인 베개를 쥐자, 맥켄나는 안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 * * 하인리가 떠난 후, 나는 초조하게 방안을 오가며 내 행동을 후회했다. 물론 생각하고 말고 할 틈도 없이 해버린 행동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이었다. 하인리 입장에서는 내가 생각 없이 밀쳤든 생각하고 밀쳤든 밀쳐진 거지. 많이 놀라고 민망했을 터였다. 더욱이 주위에는 다른 사람들도 몇 명 있었으니…… 나는 두 손으로 뺨을 꽉 누르고서 심호흡했다.

‘사과하자.’

“로즈 양.”

“예, 왕비 전하.”

“……전하께 가봐야겠어요. 걸칠 옷을 가져다주겠어요?”

로즈는 내가 부탁하자 안도한 얼굴로 얼른 노란 망토를 가져왔다. 내가 하인리와 싸우기라도 할까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가 나가기 전, 하인리가 먼저 찾아왔다. 시녀 둘을 내보낸 후. 나는 더욱 미안해져서 정색했다. 한밤중인데도 그의 옷차림은 낮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까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서 민망해한 게 분명했다. 우리는 잠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고백할 게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을 하기 전, 이번에도 하인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한밤중에 찾아와서 하는 말이라면 심각한 말이겠지? 나는 괜히 긴장되어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통 짐작이 안 가니, 괜히 긴장되었다.

“제가 퀸입니다.”

“……”

그러나 하인리가 한 말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좀 더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았는데. 이 일로 결혼을 무르자던가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섭섭하다고 말할 거라 여겼다. 그런데 정체를 밝히다니. 놀라서 쳐다보자, 하인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표정 변화가 없으신 걸 보니, 역시 이미 알고 있었군요.”

“!”

“미안합니다, 퀸. 속이려던 게 아니었어요.”

하인리는 거듭 사과하고서 나를 간절히 바라보았다. 지금 자기가 몹시 미안한 마음이라는 걸 알리려는 것처럼. 그리고 실제로도 그는 몹시 안쓰러워 보였다.

“퀸, 우리 일족은 정체에 대해 가족 외에는 알리지 못해요. 그래서 말하지 못했을 뿐, 계속 속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정말이에요.”

나는 고개를 젓고서, 괜찮다고 말하려 했다. 나도 아까 그를 밀어버린 일에 대해 사과해야 했다.

“하인리.”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하인리가 돌연 커다란 새의 모습으로 변하는 바람에, 나는 더 손을 뻗지 못하고 중간에 멈춰버렸다. 갑자기 왜 새로 변한 거지? 어리둥절해 보자니, 새가 된 하인리가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나를 마주 보았다.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귀여운 외모를 무기 삼아 화를 풀게 할 속셈인가. 하인리, 아니, 퀸은 커다란 눈을 그렁그렁하게 뜨고는 온갖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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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단 건가!’

잘생긴 퀸이 내게로 주저하며 걸어와서는 얼굴을 들이밀었을 때. 나는 습관적으로 퀸을 끌어안을 뻔했다. 애초에 내가 제일 걱정했던 건, 퀸이 하인리의 부하인 경우였다. 남편의 부하를 끌어안고 뽀뽀하고 궁둥이를 두드려준 게 되니까. 최악을 가정하고 있어서인가. 하인리가 퀸인 걸 알았을 때도 화가 많이 나지는 않았다. 기밀이라 말하지 못했단 것도 이해는 가고. 하지만…… 난 그를 끌어안을 뻔한 손을 도로 회수하며 돌아서서 말했다.

“화가 난 게 아니에요, 하인리. 정말입니다.”

얼굴에 다시 열이 올라왔다. 지금의 퀸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새의 모습이지만. 이제 난, 저 모습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거벗은 하인리로 변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이걸 알면서도 끌어안아 줄 수는 없었다. 나야 새를 안는 거지만. 그는 벌거벗은 채 나한테…… 안기는 거잖아.

- 구……

“정말이에요. 화가 난 게 아니라……그냥 좀.”

힐긋 보니 퀸은 눈이 그렁그렁해져 있었다. 결국, 마지못해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자, 퀸은 눈을 감고서 내 손에 얼굴을 문질렀다. 너무 사랑스러웠다. 하인리가 이렇게 머리를 비벼도 사랑…… 맙소사! 나는 손을 도로 회수하고서 그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화가 난 게 아니니 괜찮아요. 정말입니다. 돌아가서…… 내가 안 보는 데서 다시 원래 몸으로 돌아오도록 해요.”

- !

하인리가 떠난 후. 나는 거의 30분을 우두커니 앉아 있다 문을 열고 나갔다. 로즈는 마스타스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있다가, 내가 혼자 나오자 놀라 물었다.

“왕비님? 전하는 어쩌시고 혼자 나오세요?”

마스타스도 내 등 뒤를 빠르게 살피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창문으로 가셨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두 사람은 다 황당하단 표정이 되었다. 그 표정은 방 안에 들어간 후 비명으로 바뀌었다.

“앗, 왕비님! 전하의 옷이 여기에……”

“!”

“전하께서 정말 창문으로 가셨나요?!”

멍하던 정신이 찬물이라도 맞은 마냥 확 돌아왔다.

‘하인리가 충격받아서 옷을 안 들고 갔구나!’

나는 벽을 짚고 서 있다가 허둥지둥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하인리의 옷이 죄다 카펫에 흩어져 있었다.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다. 로즈는 얼굴이 벌게져 돌아섰고, 마스타스는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전하께서 벌거벗고 가셨나요……?”

로즈야 그렇다 쳐도, 하인리의 기사인 마스타스조차 하인리가 새로 변할 수 있단 걸 모르는 듯했다. 나는 어색해서 괜히 머리카락을 꼬았다. 난처했다. 이 상황에 대답을 뭐라고 해야 하지? 아니, 그보다 로즈가 목까지 빨개진 걸 보니 망측한 상상을 하는 모양인데. 말려야 하지 않나? 하지만 말린다면 뭐라고? 그냥 옷만 벗겼지 아무 행동도 안 했다고? 옷을 벗긴 다음 내보냈을 뿐이라고? 그러면 내가…… 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은데.

“괘, 괜찮아요.”

“예?”

“우리는 부부니까요.”

“예?!”

“……”

“그…… 물론 왕비님과 전하는 부부지만……”

마스타스가 창문을 힐끗하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벌거벗은 전하를 마주치게 될 사람들은 부부가 아닌데요.”

말을 할수록 나와 하인리가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얼른 다가가 하인리의 옷을 끌어안았다. 그냥 옷이면 시녀들에게 가져다주라 부탁하면 될 텐데. 아무래도 속옷까지 있다 보니 치워달라 부탁할 수 없었다. 옷을 끌어안자 하인리가 자주 뿌리고 다니는 향수 냄새가 났다. 그 순간, 상처받은 퀸의 표정이 떠올랐다. 예전에 내 생일 즈음의 일도. 케이크를 끙끙거리면서 들고 왔는데, 내가 부담스럽다고 하자 울면서 날아갔지. ……하인리가 운 거였어. 그래서 찾아갔을 때 눈가가 붉었던 거고. 하인리…… 마음이 여린 모양인데. 이번에도 울고 있는 건 아닐까? 한 번 그 생각을 하자 걷잡을 수 없이 미안해졌고 걱정되었다. 결국, 나는 머뭇거리다가 마스타스에게 물어보았다.

“마스타스 양. 전하께 오해받아 본 적이 있나요?”

마스타스는 하인리의 기사라 했으니, 평소 모습을 잘 알고 있겠지. 내 질문에 마스타스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무슨 오해 말씀이십니까?”

“화가 난 게 아닌데 화난 거로……”

“전 화가 났는데, 전하께선 전혀 관심 없으신 적은 있습니다.”

“!”

마스타스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서 물었다.

“아. 혹시? 전하께서 왕비님이 화나셨다 오해하고 충격을 받아 창문으로 나가신 건가요?”

“……비슷해요.”

마스타스는 “어……” 하고 눈을 여기저기 굴리다가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벌거벗은 채 충격을 받으신 건지 짐작이 가지만, 아니, 짐작이 가지 않으니 안심하시고요…… 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어, 전하는 잘 웃는데, 어, 잘 웃기만 하십니다.”

“웃기만 한다고?”

“네. 무슨 생각을 하시는진 모르겠지만 웃음으로 생각을 다 감추시거든요. 그래서 전 전하께서 충격받은 모습은 본 적이 없어요.”

마스타스는 내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그런 전하께서, 왕비님이 화났을까 봐 놀라서 벌거벗고 뛰쳐나가실 정도면……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화 난 게 아니라고요.”

하인리는 감성이 풍부하다 생각했는데. 감정을 잘 안 드러낸다고? 내 앞에서만 감정을 잘 드러내는 건가? 뜻밖에 알게 된 이야기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마스타스의 말은 분명 옳았다.

“솔직하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옷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왕비님!”

“전하께 갈 생각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오해를 풀어야겠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옷은 다른 천으로 싸서 가져가시는 게…… 다 보여서요. 그…… 전하 인장이랑 안에 입는 옷이요.”

“!”

  * * *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소비에슈는 라스타의 침대가에서 태교에 도움이 되는 노래를 부르는 중이었다. 라스타는 푹신한 베개에 등을 기대고 누운 채, 소비에슈가 부르는 노랫소리에 계속 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배에 대고 노래를 부르는 황제라니. 일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라스타는 소비에슈의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보고 싶은 충동에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알렌은 자작이란 지위를 위해 자기 아이조차 부정했는데. 그보다 더 높은 지위의 이 남자는 아기를 서출로 만들지 않으려 이렇게 애를 써준다. 태교를 위해 시시때때로 찾아와 배에 말을 걸고, 밤에는 노래를 불러준다. 라스타는 소비에슈가 태교에 힘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폐하는 노래도 잘 부르시네요.”

“배워서.”

“제왕학에 노래도 포함되나요?”

“제왕학이라기 보다는. 사교계 수업.”

“아가가 아빠 목소리를 잘 기억할 거예요.”

소비에슈는 피식 웃고서 라스타의 배를 손으로 부드럽게 토닥였다.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새내기 아버지의 모습을 벗은 소비에슈는 무뚝뚝하게 문을 보며 물었다. 잠시 후, 대기 중이던 하녀 델리스가 다가와 말했다.

“폐하, 카를 후작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소비에슈의 시선이 힐긋 벽시계를 보았다.

“이 시간에?”

“네. 급히 보여드릴 게 있다고……”

“그래. 내 방 응접실로.”

델리스는 “네.” 하고 대답하고 밖으로 나갔다. 소비에슈가 일어서자 라스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벌써 가실 건가요?”

“카를 후작은 웬만한 일로는 오지 않으니까.”

소비에슈는 잠시 다리께로 밀어 놓았던 이불을, 라스타의 목 아래까지 덮어주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카를 후작은 응접실 소파에 앉지도 않은 채, 초조하게 신문을 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소비에슈가 다가가자 카를 후작이 급히 손에 든 신문을 내밀었다.

“이걸 보십시오, 폐하.”

소비에슈는 미간을 찡그리고 신문을 받아들었다. 서왕국 신문이었다. 신문 내용은…… 소비에슈의 표정이 얼었다.

“나비에가…… 내가 라스타에게 이혼을 약속하는 걸 들었다고?”

  * * * 너무 늦은 시각이어서, 나는 다음날까지 급한 마음을 누르고 기다렸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마자, 서둘러 단정하게 옷을 입고 방을 나섰다. 그가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하인리를 찾아간 곳에는 뜻밖에도 오빠가 와 있었다. 오빠는 하인리의 집무실에서 막 나오던 참이었다.

“오빠?”

놀라서 달려가자, 오빠 역시도 눈이 커다래지더니 황급히 내게 달려와 팔을 뻗었다. 얼른 안기자, 오빠는 나를 꽉 끌어안은 채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어깨를 떨기에 올려다보자, 울고 있었다. 오빠는 한참을 그러다가, 맥켄나가 집무실에서 나오자 그제야 나를 놓아주고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으며 웃었다.

“둘만 있을 때 이래야 하는데.”

“오빠……”

“네 이혼 이야기를 듣고 심장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나비에.”

“……”

“하인리 전하와 결혼을 한다 해서, 네가 이혼당할 때 받을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

오빠는 다시 한번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 상태로 한참을 있다가, 맥켄나가 크흠흠 소리를 내자 오빠는 그제야 나를 놓아주며 머쓱하게 웃었다.

“난 내가 여기에 오자마자 오빠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어.”

뒤늦게 약간 섭섭해져서 따지자, 오빠는 손수건을 접어 품에 다시 넣으며 대답했다.

“너한테 폐가 될까 봐 피해 다녔어.”

“그런 게 어디 있어?”

“동대제국에서도 그랬으니까. 네가 이혼할 거란 이야기를 들은 후로 내내 그 생각이었다. 혹시 나 때문에 네가 이혼한 건 아닐까, 내가 가만히 있었더라면 이혼은 안 하지 않았을까……”

맞는 말이었지만, 오빠가 아니었더라도 소비에슈는 나를 내보냈을 것이다. 그는 라스타를 사랑하니까. 라스타를 옆에 앉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날 쫓아내야 하니까. 실제로도 오빠를 추방한 후, 소비에슈는 오빠의 이름을 이용해 나를 쫓아냈고. 나는 그 얘기를 계속하는 대신 일부러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했다.

“날 피해 다니더니. 하인리와는 잘 만나고 있었나 봐?”

“전하께서 결혼식 전에 ‘기사들의 순방’에 이름을 넣어 주시겠다 하셔서.”

“기사들의 순방?”

“서왕국 전통 중 하나인데. 왕의 기사들이 몇 군데 도시를 돌면서 사람들을 돕고 오는 건가 봐.”

아아…… 그래. 그러고 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이때 가장 현명하게 대처한 기사의 명성이 확 올라간다지. 너무 작위적으로 영웅을 만드는 게 아니냐고, 내 부관이 중얼거렸는데.

“……고마운 일이네.”

하인리가 오빠에게 왜 저런 걸 시켰는지 알겠다. 서왕국 내에서 오빠의 평판을 올릴 셈인 모양이었다. 나는 하인리의 옷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오빠도 어색하게 웃으면서 칭찬했다.

“가볍단 소문만 들었는데. 여러모로 많이 배려해주셔서……”

“응.”

“네가 많이 좋으신가 보다.”

“그건……”

그렇다기 보다는…… 하지만 ‘좋다’는 게 꼭 연인 간의 이야기는 아니니까.

“응.”

겸연쩍다. 오빠에게 나중에 만나잔 인사를 한 후, 나는 집무실 안에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하인리는 방 중앙에 멋쩍게 서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열없이 웃었다.

“퀸.”

나를 자기 이름으로 부른 그는 평소처럼 내게 다가오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내가 피하는 바람에, 더 다가와도 괜찮은 건지 확신이 없어 보였다. 그를 보자 여전히 부끄러운 마음이 강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용기를 가지고 그에게 다가갔다. 하인리는 두 손을 꼭 마주 쥐고서 나를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퀸, 저는-”

“정말로 화가 난 게 아니에요.”

“하지만 저를 피했잖습니까. 퀸, 난…… 그대가 절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화가 나서 피한 게 아니에요.”

나는 거듭 말하고서, 자꾸만 돌아서서 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물었다.

“그대를 피한 이유를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될까요?”

하인리는 황급히 말했다.

“네. 제게 화가 난 게 아니라면 솔직하게 말해 주십시오.”

“그대가 놀랄지도 모릅니다.”

“불안하고 신경이 쓰여서 잠도 잘 수 없습니다. 전, 퀸, 그대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습니다.”

하인리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평소보다 동공이 유난히 까맣게 보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그의 옷을 부적처럼 끌어안았다. 진실을 털어놓은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하인리는 내게 진실을 털어놓았다. 내가 화를 낼까 불안해하면서도. 그가 용기를 보인 만큼 나도 용기를 내야 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최대한 무표정하게 고백했다.

“그대가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어요.”

“!”

“그 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려서 곤란합니다.”

“!”

“그래서 눈을 맞출 수 없던 거예요. 자꾸 생각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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