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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화. 부정 (161/325)

161화. 부정2020.05.15.

“문제가 생긴 것 같아.”

한밤중에 집무실로 부르더니. 얼굴을 보자마자 하는 소리가 이랬다. 맥켄나는 떨떠름해서 물었다.

“무슨 문젠데 이 밤중에 그러십니까?”

“마법사 감소 현상에 관한 문제.”

맥켄나는 고개를 기웃했다.

“문제가 생길 구석이 있습니까?”

마법사들의 마력을 뺏는 건 알고 보면 쉬운 이치였다. 하지만 조건을 맞추기가 상당히 까다로워서, 보통은 그 쉬운 이치를 깨닫지 못했다. 하인리 역시 그 조건을 알게 된 건 어린 시절의 우연하고 끔찍한 사고 때문이지 않던가.

“마력 목걸이.”

“아.”

맥켄나가 작게 탄식했다. 하인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한 건 아니야. 하지만 그 목걸이 외엔 문제 될 구석이 없어.”

“그렇지요.”

맥켄나는 하인리의 말에 동의하며 물었다.

“그러면 제가 그쪽으로 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올까요?”

상황을 알아보러 간 김에 좀 푹 쉬고 와도 괜찮을 것이다. 요즘 열심히 일했으니까. 맥켄나는 자신이 떠올린 묘안에 감탄하며 거듭 자원했다.

“이 일을 해결하는 데 저만한 사람이 없지요. 제가 가서 목걸이가 문제가 되었는지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폐하.”

“넌 일해야지, 맥켄나.”

“…….”

“농담이고. 네가 가면 너무 눈에 띄어. 화살에 맞아서 다친 적도 있잖아.”

걱정과 진담 사이의 애매한 말을 던진 하인리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눈에 잘 안 띄고 무난한 애가 좋은데…….”

“까마귀는 어떨까요? 덩치도 작고 재빠릅니다.”

“괜찮겠군. 그럼 까마귀를 보내서 상황을 알아봐. 만약 정말 그 목걸이 때문에 들킬 것 같으면, 무슨 수를 써서든 회수해 오고.”

“예.”

“운반이 어렵다 싶으면 차라리 파기해 버리라 해.”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볼일이 끝났는지, 하인리는 맥켄나의 어깨를 몇 번 두드리고서 몸을 돌렸다. 맥켄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하인리의 뒤를 따라갔다. 오늘은 그도 일정이 다 끝났다. 이 길로 집에 돌아가 한숨 푹 자고 꿈속에서 하인리에게 좀 이것저것 따져볼 셈이었다. 그런데 하인리가 나가다 말고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냥 문고리만 돌리면 되는데. 손을 바닥에 떨군 채 문고리를 뚫어져라 쳐다만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폐하?”

맥켄나가 다가가며 묻자, 하인리는 그제야 ‘아아’ 하고 말을 질질 끌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그뿐. 대답은 없었다. 맥켄나는 하인리가 보고 있던 문고리를 쳐다보았다. 뭐기에 저러시지? 문고리를 보자마자 맥켄나도 대번에 ‘어?’ 소리를 했다. 문고리가 하얗게 얼어 있었다.

“이게 뭘까요?”

문고리는 척 보기에도 얼었단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하얘졌고, 위로 얼음이 0.7cm는 솟은 것 같았다. 누군가 문고리만 얼린 것이다.

“얼음 계열 마법사……!”

맥켄나는 한 박자 늦게 놀라 중얼거렸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마법사뿐이었다. 그리고 맥켄나가 알기로, 현재 궁전 안에 들어와 있는 얼음 계열 마법사는 한 명도 없었다. 사실 서왕국에 소속된 마법사 자체가 거의 없었지만.

“폐하, 누군가 우릴 염탐하나 봅니다! 동대제국일까요? 동대제국에서 스파이를 심어 둔 걸까요?”

맥켄나가 허둥지둥하며 물었다. 그러나 하인리의 표정은 태연했다. 하인리는 별말 없이 문고리 위에 손만 올렸다. 그의 손이 닿자 하얗게 언 문고리에서 얼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 * * 까마귀. 목걸이. 들킨다. 이 세 개가 핵심 단어인가…….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무슨 이야기예요?’ 하고 물으면서 들어갔어야 했어. 갑자기 대화가 끝나는 바람에 얼결에 그 자리에서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는 안 됐는데. 결국 근처를 서성거리다가 침대로 돌아와 옆을 보고 누웠다. 하지만 여전히 하인리가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가 정말 마력 감소 현상과 관계가 있을까? 목걸이, 까마귀를 가지고 마력 감소 현상을 떠올리는 게 너무 이상한가? 만약 하인리가 그런 현상과 관계가 있으면……? 있으면 또 어떻게 하지? 자신이 쓸모없어졌다며 울던 에벨리가 떠올랐다. 그때 문 손잡이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달칵, 하는 소리가 혈관을 툭 두드리고 지나갔다. 황급히 눈을 감고 이불을 끌어당겼다. 나지막한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이불을 잡은 손에서 고동이 느껴졌다. 인기척이 얼굴 가까이로 다가왔다.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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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귓가에 속삭여오는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평소의 내 하인리와 다를 바 없었다.

“좋은 꿈 꿔요.”

누근한 목소리가 이불보다 포근했다. 볼에 녹녹한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이불을 끌어 올려준 그가 옆에 조심히 눕는 게 느껴졌다. 옆자리가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커다란 팔이 내 몸을 끌어당겼다. 하인리의 단단한 가슴이 등에 닿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이어서 목덜미에 그의 이마가 닿았다. 나를 끌어안은 자세 그대로, 하인리는 잠에 빠져들었다. 고르지 못하던 숨이 점차 차분해졌다. 나는 이불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 내 몸을 감싼 그의 팔 위에 내 팔을 겹쳤다. 하인리가 마법사들의 마력을 빼앗고 있다 해서, 내가 그를 탓할 수만은 없겠지. 그는 동대제국에 경쟁 심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실제로 경쟁 국가의 황제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그는 서대제국 사람이고 서대제국 황제이니, 그가 서대제국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동했다 해서 그를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마법 아카데미 학생들은 전 세계에서 오지만 자국인 동대제국인의 비중이 가장 높고, 실제로 아카데미 졸업생의 대부분이 동대제국으로 흡수되고 있으니……. 하지만 나는 동대제국 사람이었다. 내 부모님과 가문, 친척, 조상, 친구 모두 동대제국에 있었다. 하인리가 자기 나라를 사랑하듯, 나도 내 나라를 사랑한다. 하인리를 사랑하는 만큼 서대제국을 사랑할 생각이고, 동대제국 국민들을 사랑했듯 서대제국 국민들을 사랑할 생각이고, 동대제국과 서대제국이 하나의 이득을 두고 싸운다면 서대제국 쪽에 유리하도록 힘을 실을 각오도 되어 있다. 하지만 서대제국을 사랑하기 위해 동대제국을 밟을 수는 없었다. 마력 감소 현상의 범인이 하인리가 맞다면, 그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그러니 내가 동대제국 출신이란 걸 알면서도 동대제국에 해를 꾀할 방법을 계속 찾고 있었겠지. 그래. 이성적으로 그를 탓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그를 원망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니…… 제발 그대가 아니기를. * *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배고파’였다. 하인리가 구워준 빵을 먹고 싶었다. 바삭하고 얇은 그 빵. 빵을 먹고 싶단 충동이 가라앉은 다음에야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내 안에서 우선순위는 허기인 건가……. 예상못한 스스로의 실체에 충격을 받아 있자니, 하인리가 ‘퀸’ 하고 작게 불렀다. 얼른 상체를 일으켜세우고 보자, 하인리가 음식용 수레를 끌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벌써 일어났어요?”

“퀸이 요즘 통 음식을 못 먹는 것 같아서요. 평소 잘 먹던 위주로 만들어 봤습니다.”

“이거 냄새…….”

“아. 혹시 별로입니까? 어떤 음식은 냄새도 맡기 싫어진다던데.”

나는 고개를 젓고 얼른 음식용 수레 앞으로 걸어갔다. 수레 위 접시에 놓인 연노랑 천을 걷자, 그 안쪽으로 오믈렛과 야채 수프, 그리고 내가 먹고 싶어 하던 얇게 구운 빵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곧장 빵에 손이 나갔다. 빵을 뜯어 수프에 찍어 입에 넣고 씹자, 열흘 가까이 말라붙었던 미각이 이제야 활동을 시작했다.

“맛있어요.”

“그렇게 허겁지겁 먹으니까 내가 미안해지잖아요, 퀸.”

“맛있는데?”

“먹고 싶었는데 못 먹은 것 같아서 그래요.”

“이상하게 이게 계속 먹고 싶었어요.”

빵을 다시 입안에 넣으면서 남은 덩어리를 가리켰다. 한 접시를 다 비운 후에야 내 체면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바보같이! 혼자 말없이 빵만 먹다니. 그나마 하인리의 빵까지 가져다 먹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 생각을 하자마자, 하인리가 자기 몫으로 구운 빵까지 내밀었다.

“화이트 몬드에 대한 건 어떻게 되었나요?”

급한 허기가 가라앉은 후에야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질문할 수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이불로 얼굴을 감싸고 발을 구르고 있었지만,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사실은 어제 맥켄나와 나누던 대화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에게서 ‘그대의 나라를 침략하고 싶어 준비했어요’라는 대답이 나올까 봐 두려웠다.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질문은 잠시 미뤄두자. 화이트 몬드에 대한 것도 정말로 결과가 궁금하긴 하고. 내가 도착했을 땐 그곳 왕은 이미 떠난 후였으니까. 왕이 뭐라고 하고 갔을까?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그쪽도 전쟁은 하고 싶지 않은 듯한데…….

“왕이 항구를 다시 빌려줄 수 있다고 합니다.”

“잘되었네요?”

“그게. 좀 애매합니다.”

“왜 그러나요?”

“항구를 빌려주기 전에, 절대 항구 사용을 빌미로 침략하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어달라 했거든요. 그리고 협정서를 월대륙 연합 쪽에 공증받고 싶답니다.”

“그러면 항구를 이전처럼 빌려주겠다는 건가요? 다를 바 없이?”

“네.”

“위험에 대한 반격은 가능하단 내용이 있나요?”

“네.”

그래도 좀 포괄적인데. ‘항구를 사용하지 않을 땐 이 조약의 효력은 발휘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조항도 넣었나? 먼저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쪽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서. 하지만 이 조항을 넣으면, 화이트 몬드 측에서는 ‘항구를 사용하지 않는 도중엔 침략하겠단 거냐?’고 받아들이겠지.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복잡하게 가느니 쉽게 나을 것 같은데…….”

중얼거리던 하인리는 갑자기 내 쪽을 쳐다보더니, 슬며시 말을 바꿨다.

“일단 더 생각해 봐야지요.”

  * * * 나비에와 하인리가 애매하게 서로의 눈치를 보는 그 시각. 크리스타의 아버지인 즈멘시아 노공작은 자신의 집 서재에 서 있었다. 그의 뒤쪽에는 노공작의 가신이 불편하게 방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가신은 나비에 황후가 불임일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소문이 도는 와중에, 노공작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걸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다. 황후 쪽에 붙기로 한 것도 아니면서 아무 반응이 없다 보니, 속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케트런 후작가는 당장 손을 보태긴 어려울 겁니다. 후작부인이 후작의 추문 사건 이후 완전히 입장을 바꿨거든요. 후작과 전 왕비 사이의 의리보단 자기 아이들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면서, 후작에게 가만히 있으라 다그치는 모양이었습니다.”

가신이 초조하게 말했다.

“저희도 빨리 입장을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복수를 하거나 아예 갈아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자 말없이 책 껍데기만 바라보던 즈멘시아 노공작이, 거친 쇠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불임 문제는 함정일 가능성이 크다.”

“황후가 불임이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불임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임신했을지도 모르지. 당당하게 그 일로 함정을 팔 정도면.”

가신의 눈이 커다래졌다.

“하지만 그 소문을 시작한 건 나비에 황후가 아니라 케트런 후작 아닙니까? 게다가 나비에 황후는 후계자 이야기만 나와도 정색하고서 말을 돌린다 했습니다.”

“동대제국을 주무르던 황후가 표정 관리 하나 못 할 것 같으냐?”

“아.”

“게다가 그 능구렁이 같은 황제가 소문을 계속 방치하고 있어. 원하는 게 있단 거다.”

“그렇군요.”

가신은 난처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어쩌지요?”

“우선은 자리를 지켜야지. 입을 다물고.”

즈멘시아 노공작은 무겁게 말을 하고서 천천히 몸을 돌려, 서재 책상 위에 놓인 액자를 보았다. 액자 안에는 어린 크리스타가 그의 무릎에 앉은 채 활짝 웃고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노공작이 힘없이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일단 내 딸부터 보고 싶구나. 아직도 크리스타는 연락을 받아주지 않느냐?”

“예. 공작님께서 나서서 변호해주지 않은 게 많이 화나신 모양입니다.”

생기가 빠져버린 고목나무처럼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노공작은 책상에 놓인 액자를 들어 올렸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

  * * * 로테슈 자작은 척박한 변경 지대인 파르메 지방을 장거리 조사의 시작 지점으로 잡았다. 파르메는 대규모 도적 떼인 상시천이 한창 활동했던 곳이었다. 최근에는 활동이 뜸하지만, 이스쿠아 자작 부부가 아이를 잃어버렸을 시기에는 활동이 왕성했다. 이스쿠아 자작 부부가 동대제국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건 아니지만, 상시천의 습격에 휘말렸다 했으니, 아이가 이쪽으로 흘러들어왔을 가능성은 있었다. 그렇게 로테슈 자작은 자신의 딸과 남의 딸을 추적하며 몹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라스타에게 했던 말은 과장이 아니어서, 요즘 그는 알렌이 어떻게 지내는지조차 몰랐다. 가끔 맹한 성격의 알렌이 뭘 어쩌고 있을지 걱정되었지만, 자작은 잘 지내고 있을 거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알렌은 아이가 태어난 후로 집 안에 틀어박혀 아이를 돌보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

‘멍청한 놈. 후계자도 될 수 없는 서자 따위, 뭐 그리 예쁘다고.’

그렇게 지낸 지 여러 날. 로테슈 자작은 이스쿠아 자작 부부의 친딸에 대한 소식을 한 가닥 잡았다. 그 아이가 데로즈 고아원에 갔을지도 모른단 이야기였다. 아이는 양부모 둘을 거친 후 고아원으로 흘러갔다 했다. 르베티를 찾기 위해서 온갖 소식을 다 뒤적거리다가 얻어걸린 소식으로, 그가 지금 당장 원하는 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고아원을 찾아갔다. 이스쿠아 자작의 친딸보단 르베티가 훨씬 중요했지만, 로테슈 자작은 미신적인 기대에 빠져있었다. 르베티를 찾다가 이스쿠아 자작 부부의 딸의 흔적을 발견했으니, 이스쿠아 자작 부부의 딸을 찾다 보면 자신의 딸의 흔적도 발견할 수 있을 거란 기대였다.

“보자…… 연령대가 어떻게 된다고요? 신체 특징이라거나 그런 게 없나요? 성격은 특징을 말해주셔도 별 도움이 안 되니 꼭 몰라도 괜찮습니다. 도적 떼에 휘말려서 올 정도면 성격이 확 변해 있을 확률이 높거든요. 게다가 아이들 성격은 계속 변해가니까요. 음. 신체적 특징도 모르시는구나.”

원장이 이스쿠아 자작 부부가 딸을 잃어버린 시기부터의 기록을 훑는 동안, 로테슈 자작은 원장실 벽에 걸린 나비에 전 황후의 초상화를 묘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고아원. 나비에 황후가 후원하던 고아원이었다. 나비에 황후의 돈으로 라스타가 생색을 낸 고아원이기도 했다. 그런 고아원에 오게 되자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비에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은 라스타가, 과연 여기에서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아 다행이네요.”

그때 원장이 탄성을 뱉으며 생긋 웃더니, 살피던 서류를 로테슈 자작 쪽으로 돌려 내밀었다.

“그 시기에 우리 고아원에 들어온 여자아이는 둘뿐이거든요.”

“둘이요?”

“인원이 다 찬 상태여서 더 이상 받지 않으려 했는데, 사정이 딱해서 어쩔 수 없이 추가로 받은 두 명이에요.”

로테슈 자작은 황급히 원장이 내민 서류를 보았다. 어린아이를 그린 작은 초상화 두 장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그중 한 명의 초상화 아래에는 놀랍게도 ‘퇴거’라고 적혀 있었다.

“이 아이는…….”

“두 명이 들어왔다 말씀드렸잖아요. 그중에 한 아이는 다행히 친부모가 찾으러 와서 5년 전에 나갔답니다. 그러니 이쪽 아이만 확인해보시면 될 거예요.”

손가락으로 아무 표시가 없는 아이를 가리킨 원장이 활짝 웃으며 밝게 웃었다.

“우리 원의 자랑이죠. 에벨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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