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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한 그루 나무 (21/118)

21. 한 그루 나무2021.06.10.

루베아가 고민에 잠긴 사이. 글레버 후작은 저도 모르게 란델을 피해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살기 형형한 연녹색 눈이 자신을 향하자 맹수 앞의 피식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16558808187672.jpg‘어떻게……!’

어떻게 란델이 여기에 있는 것인가. 심지어 이런 일을 예상했다는 듯 오스턴 도슬러와 기사단까지 이끌고!

16558808187672.jpg‘루베아인가?’

후작은 합리적인 의심으로 이를 까득 갈며 제 딸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루베아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란델에게 반역을 알린 장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태도였다.

16558808187672.jpg‘그럼 도대체 누가!’

글레버 후작은 혼란스러워하며 얼굴을 엉망으로 일그러트렸다. 그 못지않게 혼란에 빠진 라폴드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16558808187672.jpg“뭐야! 네놈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건데!”

1655880818769.jpg“그건 내가 할 말이지, 라폴드.”

란델이 차디찬 웃음을 흘리며 검을 움직였다. 검 끝으로 라폴드를 겨눈 그가 살벌하게 눈을 번뜩였다.

1655880818769.jpg“감히, 내가 다스리는 땅에. 하급 마족 따위가.”

16558808187672.jpg“……!”

한순간 소름 끼치는 살기가 라폴드와 글레버 후작을 향했다. 라폴드는 시선만으로도 목이 베이는 듯한 기분에 본능적으로 어둠을 일으켰다.

16558808187672.jpg“제기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네놈의 목만 가져가면 되는 일이야!”

키에에엑! 라폴드의 그림자가 파도처럼 일렁이는가 싶더니 그 속에서 마물과 망령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보다 하급 개체인 마물과 망령을 굴복시킨 후, 원할 때 소환하여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마족의 이능이었다.

16558808187672.jpg“하하! 다 죽여버려!”

라폴드는 두려움과 흥분이 점철된 웃음을 터트리고는 란델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손을 길게 내리그어 강철 같은 손톱으로 칼날을 긁었다. 숲은 전투로 인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기사들은 자신들에게 끈덕지게 달라붙는 마물과 망령들을 베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글레버 후작은 오스턴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그를 호위하고 있는 기사에게 가로막혔다.

16558808187672.jpg“크윽……!”

16558808214099.jpg“추합니다, 후작. 저도 돈만 준다면 도덕성은 어느 정도 팔 수 있지만, 인간성을 통째로 팔지는 않거든요.”

16558808187672.jpg“네 이놈, 도슬러!”

오스턴은 결계를 유지하느라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글레버 후작을 향해 비아냥댔다. 글레버 후작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한평생을 북부에서 지낸 가주답게 그의 검은 녹록하지 않았지만, 전황을 뒤바꿀 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키익! 키이익! 미리 반역 사실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한 기사단은 침착하게 마물을 제거해 나갔다. 그에 반해 글레버 후작과 라폴드의 전력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본래는 비틀림으로부터 마물을 추가로 공급받을 예정이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라폴드가 급하게 제 권속들을 전부 소환하긴 했지만 그는 하급 마족. 다른 마족에 비해 다룰 수 있는 마물과 망령의 수가 현저히 적은 편이었다. 라폴드는 제 권속이 하나둘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를 듣고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에 절망감을 느낄 새도 없이 묵직한 바람 소리와 함께 검이 날아들었다. 채앵-!

16558808187672.jpg“……!”

라폴드는 간발의 차로 손톱을 세워 란델의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검날을 막아내는 팔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란델이 스산하게 눈을 빛내며 나직이 속삭였다.

1655880818769.jpg“왜 그러나, 라폴드. 이번에도 도망쳐야지. 도망쳐서 네 그 하찮은 목숨을 하루라도 더 부지해야 할 것 아닌가.”

16558808187672.jpg‘이 개자식……!’

사방에 결계를 쳐놓고는 도망치라니. 더할 나위 없는 조롱이었다. 라폴드는 애써 입꼬리를 말아 올렸으나 죽음이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느낌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란델은 라폴드가 겁에 질렸다는 사실을 다 아는 양 비소했다.

1655880818769.jpg“물론 보내줄 생각도 없지만 말이야.”

서걱!

16558808187672.jpg“크아아악!”

연녹색 눈이 섬뜩하게 빛나는 순간. 라폴드의 손을 튕겨낸 란델이 그대로 검을 길게 내리그어 상대의 팔을 잘라냈다. 라폴드가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칼날 같은 어둠을 미친 듯이 난사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란델의 옷자락조차 베어내지 못한 채 애꿎은 땅바닥만 파헤쳤다. 라폴드의 비명에 힐긋 주위를 일별한 글레버 후작의 얼굴에 찰나의 절망이 스쳐 갔다.

16558808187672.jpg‘끝인가?’

누가 보아도 승패가 명확해진 상황이었다.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리듯 흩어지는 망령. 기사들의 검을 피하지 못해 상처를 입고 쓰러지는 마물. 란델에 의해 나머지 팔 한쪽마저 잃고 바닥을 구르는 라폴드까지. 자신이 필사적으로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16558808187672.jpg‘이렇게…… 죽어야 한다고?’

그럴 수는 없다. 궁지에 몰린 글레버 후작의 눈이 희번득 빛났다. 오스턴을 호위하던 기사의 검을 세게 밀쳐낸 그가 몸을 돌려 마물 사이로 뛰어들었다. 우악스럽게 뻗어나간 손이 잡아챈 것은 제 딸이었다.

16558808214136.jpg“윽!”

16558808187672.jpg“멈춰라!”

실비아의 행방을 추리하느라 정신이 팔린 루베아는 반항할 틈도 없이 후작에게 끌려갔다. 글레버 후작은 손에 쥔 검으로 제 딸의 목을 겨누며 목소리를 높였다.

16558808187672.jpg“내 딸은 이번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 아이를 죽이고 싶은 건 아니겠지! 기사들을 물려, 당장!”

그 경악할 만한 상황에 란델과 기사들이 반사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루베아는 충격과 더불어 목덜미에 바짝 다가와 있는 칼날 때문에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었다. 란델은 이를 뿌득 갈았다.

1655880818769.jpg‘금수만도 못한 인간 같으니.’

라폴드의 움직임을 막느라 정신이 팔려 루베아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란델은 싸늘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1655880818769.jpg“원하는 게 뭐야.”

16558808187672.jpg“내가 빠져나갈 수 있게 말과 이동 마법진을 준비해. 혹시라도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곧장 벨 것이다.”

글레버 후작은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검을 바짝 당겨 쥐었다. 그 바람에 루베아의 목에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것을 본 란델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1655880818769.jpg“……물러나.”

16558808236056.jpg“주군!”

1655880818769.jpg“물러나라고 했다.”

기사들은 결국 후작을 노려보며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루베아는 분함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16558808214136.jpg“……아버지.”

나직한 부름에 글레버 후작의 팔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에 찰나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스쳐 갔다. 하지만 후작에게 등을 보인 채 붙들려 있는 루베아는 그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묘하게 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16558808214136.jpg“아버지께서 제게 늘 하신 말씀이 있었죠.”

16558808187672.jpg-우리의 목숨은 영민을, 그리고 충성을 바친 분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부친의 얼굴은 언제나 견고하고 멋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었음에도 그의 가르침이 머리를 떠나지 않을 만큼.

16558808214136.jpg“저는 제 긍지를 지키겠습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16558808187672.jpg“무슨…….”

글레버 후작은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것인지 무어라 입술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루베아가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크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먼저였다.

1655880818769.jpg“루베……!”

란델이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이어 날카로운 검날이 그녀의 목을 깊이 파고드는 순간.

16558808255444.jpg“주구우우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모든 사람이 한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글레버 후작도, 란델도, 그리고 제 죽음으로 글레버 후작의 손발을 묶으려 했던 루베아도. 시간이 멈춘 듯한 짧은 정적. 숲 저편에서 기겁한 얼굴의 제프리가 튀어나오다가 결계에 부딪치는 것과 동시에. 글레버 후작의 발밑에 쓰러져 있던 마물이 이를 벌리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우드득!

16558808187672.jpg“끄아아악!”

루베아는 코앞까지 닥쳐온 마물의 입에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고, 외려 어깨를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마물의 사체가 후작이 검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물어뜯은 것이었다.

16558808187672.jpg“흐, 아악! 끄으…….”

후작은 몸을 벌레처럼 웅크린 채 몸부림쳤다. 진즉 양손을 잃고 란델과 대치하던 라폴드가 그 광경을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글레버 후작의 손을 물어뜯은 것은 분명 이미 숨이 끊어진 마물이었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을 비롯해 온갖 사특한 것을 다룰 수 있는 마족의 ‘어둠’뿐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마족이라고는 자신뿐일 텐데?

16558808187672.jpg‘대체 누가…….’

라폴드는 무의식중에 소란을 따라 숲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16558808255484.jpg“주군! 주구우운! 이게 다 무슨 일이랍니까!”

제프리는 오스턴의 결계를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며 우는소리를 내고 있었다. 라폴드의 시선은 이어서 제프리의 등 뒤에 서 있는 여자에게 닿았다. 그녀는 제프리와 대조되게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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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8808187672.jpg‘저건……!’

라폴드가 그녀의 눈 중앙에 아른거리는 붉은 기운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뜨는 찰나. 푹-! 상대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린 틈을 놓치지 않은 란델의 검이 라폴드의 심장을 그대로 관통했다. * * * 글레버 후작이 반역을 꾀하려던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간 후작이 대외적으로 내보인 모습만을 알던 이들은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의심했다. 하지만 그 딸인 루베아가 아버지의 반역을 밝히려 했던 쪽지의 내용. 그리고 후작이 딸을 인질로 잡아 제 목숨을 구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퍼진 후로 사람들의 반응은 분노로 바뀌었다.

1655880818769.jpg-이번 반역에 연루되어 있던 하급 마족 라폴드는 죽었다. 또한 반역을 꾀한 주체인 가르넷 글레버를 사형에 처하며, 그 딸인 루베아 글레버는 아비의 죄를 밝히려 애쓴 공을 인정해 처벌을 면한다.

  란델은 글레버 후작의 사형 집행 날짜를 정한 후 그를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 루베아는 처벌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실비아의 주장으로 목의 상처가 나을 때까지 벨포르 성에 머무는 것을 허락받았다.

16558808214136.jpg“……이렇게까지 해주실 필요는 없는데요, 부인.”

16558808277776.jpg“어쨌든 내가 쪽지를 전하지 못한 건 맞잖나. 그 대신이라고 생각해.”

실비아는 태연히 대꾸하며 물기를 짜낸 찬 수건을 루베아의 이마에 얹어주었다.

16558808277776.jpg-란델이…… 알고 있었다고?

  그녀가 루베아의 쪽지를 전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왔을 때는 란델이 이미 글레버 후작을 습격한 후였다. 뒤늦게 도착한 후 몰래 어둠을 일으켜 루베아를 후작의 손아귀에서 빼내긴 했지만. 이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딱히 말할 필요도, 의미도 없었다.

16558808214136.jpg“그나저나 굉장히 능숙하시군요. 이런 일을 자주 해 보신 분처럼 보일 정도로.”

16558808277776.jpg“……착각이야.”

실비아는 잡티 하나 없이 고운 손을 등 뒤로 슬그머니 감추며 얼버무렸다. 다행히도 루베아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찬 수건이 이마에 닿아 있으니 한결 나은지 옅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햇빛이 잘 드는 방에는 잠시간 조용한 평화가 찾아들었다. 실비아는 열 때문에 조금 상기된 루베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16558808277776.jpg“그나저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16558808214136.jpg“저 부인 안 좋아합니다.”

16558808277776.jpg“……애석하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질문도 그게 아니었어.”

실비아는 샐쭉 미간을 구겼다가 다시 표정을 갈무리했다. 루베아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실비아는 그 사실에 안도하며 조용히 물었다.

16558808277776.jpg“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16558808214136.jpg“무엇을 말씀하시는지…….”

16558808277776.jpg“내가 등을 다쳤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16558808214136.jpg“…….”

16558808277776.jpg“그대는 늘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잖아. 그런데 그 모든 걸 한순간에 포기할 마음이 들던가?”

실비아는 아직도 루베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루베아는 자신이 벨포르의 가신이자 북부를 다스리는 이들 중 하나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언제나 꼿꼿이 펴고 다니던 목과 허리가 그 방증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모든 것을, 심지어 목숨마저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실비아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었다. 루베아는 눈을 감은 채로 표정을 슬쩍 구기며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16558808214136.jpg“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이유가 필요한가요? 이상한 질문을 하시네요.”

16558808277776.jpg“……그런가.”

여전히 루베아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기이하게 울렁거렸다. 실비아는 이내 씁쓸한 미소를 띠고는 몸을 일으켰다.

16558808277776.jpg“이만 쉬게. 가보겠네.”

16558808214136.jpg“…….”

루베아는 약효 때문에 잠든 것인지 대답이 없었다. 실비아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하며 방을 나섰다.

1655880818769.jpg“실비아.”

16558808277776.jpg“……란델.”

막 복도를 가로질러 오던 란델이 실비아를 보고는 웃으며 다가왔다.

1655880818769.jpg“방까지 같이 돌아가려고 왔습니다. 글레버 후작 영애는 잠들었습니까?”

하지만 실비아는 말없이 란델의 웃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녀가 이곳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 그의 입가에 떠오른 웃음이 이질적으로 느껴진 탓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6558808277776.jpg“괜찮아요?”

1655880818769.jpg“예? ……아.”

의아하게 눈을 깜박이던 란델은 곧 질문을 이해한 듯 머쓱한 웃음을 띠며 한 손으로 제 뒷덜미를 쓸었다. 그는 여전히 따뜻한 눈을 한 채 실비아의 물음에 답했다.

1655880818769.jpg“괜찮습니다.”

16558808277776.jpg“…….”

1655880818769.jpg“물론 마음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란델이 하는 말에 거짓은 한 점도 섞이지 않았다는 걸. 상처를 받았다는 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말도. 전부 다 오롯한 진실.

16558808277776.jpg‘어떻게.’

당신은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는 걸까. 어떻게 그렇게…… 굳건할 수 있는 걸까. 나와는 다르게. 쿵, 쿵. 고요한 복도에서 심장이 뛰는 소리만이 귓전을 커다랗게 울렸다. 실비아는 조금 멍한 기분으로 란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16558808277776.jpg‘……나무.’

새싹을 닮은 연녹색 눈. 하지만 오늘따라 그 빛깔이 유난히 하늘 아래 우뚝 선 한 그루 나무처럼 보인 탓에. 실비아는 그 후로 한참이나 란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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