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어떤 로맨스 (1) (106/118)


외전 1. 어떤 로맨스 (1)
20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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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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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죄인처럼 서 있지 말아요. 그렇게 서 있다가는 없던 죄도 뒤집어쓰기 십상이니까.

 
상냥하고도 단호한 말.

자세를 고쳐주는 부드러운 손길.

그것은 갓 수도에 상경해 외톨이나 다름없던 밀레이아 보겐에게는 천금보다 값진 것이었다.

* * *

밀레이아는 세르시아 예커만의 말을 들은 이후,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닌, 외려 너무도 특출 났기 때문에 사람들의 질시를 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움츠리고 있던 어깨와 허리는 절로 펴졌고, 태도 또한 당당해졌다.

수도에 올라온 후 잠시 자취를 감췄던 밝은 미소도 제자리를 찾았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밀레이아는 그 자체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미모’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연고 하나 없는 수도 사교계에서 살아남으려 애썼고, 반년 가량이 지나자 서서히 혼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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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겐 영애, 이번에 아마티에 자작가에서 청혼서를 받으셨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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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과분하게도.”

밀레이아가 너무 자신을 낮추지도, 그렇다고 과도하게 건방져 보이지도 않는 미소를 띤 채 담백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담담한 그녀의 태도와 달리, 그녀 주변의 영애들은 그 대답을 듣고 꺅꺅거리며 들뜬 어조로 재잘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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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아마티에 자작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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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티에 자작 영식께 청혼서를 넣었다가 거절당한 영애들이 한 수레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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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영식께서는 보겐 영애께 마음이 있으셨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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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얼굴로만 보면 지난번에 청혼서를 보냈다던 유페르트 남작 영식이 더 잘생기긴 했지만…….”

누군가 은근한 어조로 운을 뗐다.

밀레이아가 티스푼을 내려놓으며 점잖게 타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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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는 실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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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겐 영애가 너무 아까운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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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솔직히 보겐 영애 정도의 얼굴이 어디 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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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지금 사교계는,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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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영애도 참!”

티파티에 참석한 영애들은 저들끼리 은근한 어조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깔깔대고 웃었다.

밀레이아는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의 이야기에 적당히 호응해주며 찻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찻잔으로 가려진 입매는 웃고 있는 눈가 대조되게 싸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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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후작가는 되어야 해.’

단순히 ‘괜찮은’ 가문 수준이면 안 된다.

밀레이아는 자신이 적어도 백 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수준의 미모를 지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배경은 그 미모에 간신히 맞바꿀 정도로 처참했다.

수도도 아닌 지방의 한미한 귀족가.

지참금을 들려 결혼시켜야 할 여동생만 셋이나 있는 집안의 장녀.

그런 입장이다 보니, 밀레이아는 제 미모를 최대한 활용해 사교계의 화제성을 있는 대로 끌어모으고, 그중 가장 좋은 혼처를 골라 결혼할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수도 사교계에서 이 악물고 반년여를 버텨내서일까.

이제 밀레이아는 어느 정도 수도 귀족들 사이에서 허리를 펴고 다닐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올랐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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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혼이신 분 중에 가장 잘생긴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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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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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레트 백작님!”

불현듯 들려온 대화에 찻잔을 쥔 밀레이아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그러나 워낙에 작은 움직임이었기에 영애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몽롱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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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레트 백작님께서는 정말…… 아름다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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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우신 것과 별개로 옆에 서고 싶지 않을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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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름다우세요, 그분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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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님이야말로 진정한 사교계의 꽃이시죠…….”

사교계의 꽃.

그 호칭은 남녀를 불문하고 명실공히 현 사교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밀레이아는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교계의 꽃이 아니었다.

‘사교계의 꽃’은 아니지만 그만큼 아름답다는 말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없다.

‘사교계의 꽃’이 가지는 화제성과 ‘사교계의 꽃 다음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가지는 화제성에는 땅과 하늘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세상은 첫 번째를 기억하지, 두 번째까지 기억해주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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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떤 새끼야?’

그런 의미에서 밀레이아는 현 사교계의 꽃, 사교계의 백합이라 불리는 알버스 플로레트 백작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미한 가문 출신인 밀레이아가 가진 것이라고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미모뿐인데, 그는 그 알량한 명성마저 그녀에게서 뺏어가는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명성에 걸맞은 콧대라고 해야 할까.

플로레트 백작은 어지간히 영향력이 있는 파티가 아니면 참석하지 않았고, 아직 고위 귀족의 파티에 참석할 만큼의 연을 쌓지 못한 밀레이아는 그를 만나보지 못했다.

단지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무성한 소문만을 접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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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언제나 과장되기 마련이지.’

밀레이아는 입 안 가득 돋아나는 가시를 필사적으로 감추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넌지시 말문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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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백작님을 뵌 적이 없어서 그런데, 그분께서 그렇게 아름다우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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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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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알버스 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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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겐 영애, 그건! 알버스 님의 얼굴을 모르고 살아가는 시간은 인생의 낭비예요!”

그 말에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그들은 질문을 던진 밀레이아가 조금 놀랄 정도로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버스의 아름다움을 피력했다.

그때, 그 자리의 유일한 백작 영애가 밀레이아의 양손을 덥석 잡았다.

그녀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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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어요. 플로레트 백작님께서 이번에 스타니아 후작가의 파티에 참석하실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제 파트너로 함께 가요, 보겐 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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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 그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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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져요, 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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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겐 영애에게도 꼭 플로레트 백작님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세요!”

밀레이아는 말리지는 못할망정 체면까지 다 내려놓고 박수를 쳐대는 영애들의 모습에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과정이 어찌 되었든 권위 있는 파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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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딱 한 번만, 유력 인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된다.

밀레이아는 그 한 번으로 그들의 뇌리에 ‘밀레이아 보겐’이라는 이름을 남길 자신이 있었다.

가히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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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스 플로레트라고 했나?’

그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남성이라 그 미모가 더욱 부각되어 보이는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나란히 서면 분명 제 미모가 더 뛰어나리라, 밀레이아는 확신했다.

그리고 파티 날까지 전투적으로 제 미모를 갈고닦았다.

그렇게 파티 당일.

스타니아 후작가 앞에 내려서는 밀레이아를 발견한 백작 영애가 진심 어린 감탄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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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보겐 영애. 오늘 너무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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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찬이세요. 영애께서도 눈이 부시네요.”

밀레이아는 싱긋 웃으며 화답했다.

그녀가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주변을 힐긋 일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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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스타니아 후작가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마차에서 내리던 이들, 입구에서 초대장을 확인하던 시종까지 모조리 밀레이아를 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그제야 밀레이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자리 잡았다.

그녀는 우아하게 걸음을 옮겨 백작 영애와 함께 파티장으로 향했다.

밀레이아는 파티장에 들어선 순간 탄성을 내뱉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말아 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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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부는 여기 모여 있는 것 같네.’

남작가 출신인 그녀에게 후작가의 파티는 굉장한 충격을 선사했다.

수도에 도착하고 나서 반년.

밀레이아는 그동안 적지 않은 수의 파티에 참석했다.

나름 재산이 많다는 여러 집안에서도 초대를 받았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든 사치품을 합한 가격보다, 지금 이곳의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의 가격이 더 비싸리라 확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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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죽지 말자.’

밀레이아는 애써 심호흡을 하며 허리를 반듯이 폈다.

지은 죄가 없음에도 죄인처럼 서 있다가는 모든 것을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그녀는 그 말을 한 자도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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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기 부모님께서 계시네요. 소개시켜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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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영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백작 영애가 제 부모를 발견하고는 밀레이아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밀레이아는 백작 부부가 소개시켜 준 지인.

그리고 그 지인이 소개시켜준 또 다른 지인들의 틈에 파묻혀 정신없이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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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보겐 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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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적잖이 들었습니다만, 정말 아름다우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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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보다 훨씬…….”

밀레이아는 고위 귀족가의 자제들이 제게 열렬히 관심을 표하자 약간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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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이 정도로 좋은 반응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위 귀족가에서 오는 초대장도 늘어나기 시작할 테고, 그러다 보면 초대장에 섞여 들어오는 청혼서도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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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의 꽃이라는 칭호는 얻지 못했어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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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스 플로레트 백작님께서 드십니다!”

그 말에 소란스러웠던 파티장이 일순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일 뿐이었다.

곧 정적이 찾아들기 이전의 몇 배나 되는 말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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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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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레트 백작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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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오늘 운이 좋구나.”

사람들이 잔뜩 흥분해서 말을 주고받았다.

백작 영애 또한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밀레이아의 팔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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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겐 영애, 저쪽! 저기, 알버스 플로레트 백작님이에요! 금색 머리카락에 금색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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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 잠깐…….”

밀레이아는 막 제게 말을 걸어오는 후작과 이야기를 나누려던 참이었기에 신경질을 참기 위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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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파 너머로 찰나 드러난 얼굴이 시야에 박혀 들었다.

동시에 반사적으로 입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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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그동안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서만 들었던 알버스 플로레트의 외모는 문자 그대로 충격이었다.

밀레이아 역시 보는 사람의 한숨을 자아내는 미인이라 불렸다.

하지만 알버스 플로레트는 그런 그녀의 숨마저 한순간 모조리 빼앗아갔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앞다투어 제게 달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고운 입매가 휘어졌다.

그러자 눈매 역시 입꼬리를 따라 접히며 유려한 선을 그려냈다.

단정히 내려온 금색 머리카락이 샹들리에보다 아름답게 반짝였다.

천사 조각상의 눈에 박혀 있는 다이아몬드도 그의 눈만큼 빛나지는 못하리라.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차이 나는 큰 키.

선이 가늘지만, 보기 좋게 근육이 잡혀 있어 결코 가녀려 보이지는 않는 몸매.

여러 표현이 떠올랐지만, 하나같이 알버스 플로레트의 외모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차라리 절망스러울 정도였다.

밀레이아의 안에서 간신히 움트던 ‘자신감’이 모조리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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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나는,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구나.’

그녀는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애써 치장한 보람도 없이 눈가가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사람들 틈으로 알버스 플로레트와 밀레이아 보겐의 시선이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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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이아가 초면임에도 원망스러운 눈길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알버스는 순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입이 약간 벌어졌다.

그때 누군가 알버스의 팔을 붙잡았다.

아까 밀레이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한 귀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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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백작님께서는 처음 뵙는 것이겠네요. 오늘 파티에 귀한 손님이 오셨답니다!”

귀부인이 알버스를 끌고 발을 옮기자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 길을 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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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시…….”

그렇게 알버스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밀레이아의 앞까지 끌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귀부인은 웃는 얼굴로 그들을 번갈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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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겐 영애, 이쪽은 알버스 플로레트 백작님이세요. 백작님, 이쪽은 밀레이아 보겐 남작 영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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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이아와 알버스는 잠시간 말없이 시선을 맞추었다.

이윽고 먼저 입을 뗀 것은 알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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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뵙겠습니다, 보겐 남작 영애. 알버스 플로레트입니다.”

가까스로 표정을 갈무리한 알버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말없이 알버스의 손을 내려다보는 밀레이아의 시선에 그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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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이아 보겐입니다, 플로레트 백작님.”

억겁 같은 찰나가 지난 후.

밀레이아가 담담한 어조로 대꾸하며 그의 손에 제 손을 올렸다.

그러자 알버스가 상체를 숙여 그녀의 손등에 입술을 가볍게 내렸다.

그것이 밀레이아 보겐과 알버스 플로레트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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