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 어떤 로맨스 (2) (107/118)


외전 1. 어떤 로맨스 (2)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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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밀레이아 보겐 남작 영애에게.」

밀레이아가 예상했듯, 그녀에게 서서히 고위 귀족들 위주로 열리는 파티의 초대장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건 분명 잘된 일이었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참석한 파티였고.

덕분에 밀레이아의 선택지는 이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이 넓어졌으니까.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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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겐 영애.”

저를 볼 때마다 부득불 한 번씩은 말을 붙이러 오는 알버스 플로레트가 없었다면.

지금의 상황이 두 배는 더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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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레트 백작님.”

밀레이아는 애써 웃음을 띠며 알버스에게 가볍게 마주 묵례했다.

하지만 그녀의 속은 썩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파삭 구겨지려는 얼굴을 가까스로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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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파티에 거의 모습을 안 보인다는 사람이, 요즘은 왜 이렇게 꼬박꼬박 참석하는 건데?’

듣기로는 사교계에서 가장 얼굴 보기 힘든 인사가 플로레트 백작이라고 했다.

그의 인기와 명성이 드높은 것과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파티나 춤추는 것에 흥미가 없는지 열 번의 파티 중에 여덟 번은 참석하지 않는다고.

그나마 친한 지인의 부탁이 있을 때나 간간이 얼굴을 비춘다고 했다.

하지만 밀레이아는 스타니아 후작가에서의 파티 이후 참석하는 모든 파티에서 알버스 플로레트를 마주할 수 있었다.

심지어 ‘알버스 플로레트’가 참석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남작가, 자작가의 파티에까지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니.

사람들은 다들 그가 무슨 바람이 든 것이냐며 신기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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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

물론 밀레이아는 알버스 플로레트의 이유 따위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파티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성을 모조리 빼앗아가고,

그녀와 마주칠 때마다 꼭 인사를 하러 와 한 번은 그와 비교당하게 하는 것이 괘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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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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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바레스의 사교계에서는 신사가 숙녀의 손등에 입맞춤하며 인사하지 않는 걸 대단한 무례로 여겼다.

간혹 친분이 두터워 그러한 체면치레를 생략하거나,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는 의미가 없었지만.

밀레이아와 알버스는 양쪽 다 해당하지 않았다.

적어도 겉보기로는 그랬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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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바른 개새끼…….’

묵례만 하고 모른 척 슬쩍 빠져나가려던 밀레이아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알버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알버스가 더없이 귀한 물건을 다루듯 조심조심 그녀의 손을 받치고 장갑 위에 살짝 입을 맞춘 후 손을 놓아주었다.

집에 돌아가면 장갑을 찢어서 불쏘시개로 써야지.

밀레이아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가볍게 예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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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는 트레시드 후작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즐거운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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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영애!”

밀레이아는 책잡히지 않을 정도로만 인사를 남기고 곧장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런 그녀를 다급한 목소리가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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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러는 거야, 진짜.’

밀레이아는 필사적으로 욕설을 참아내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정작 그녀를 부른 알버스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떨구며 시선을 회피했다.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미처 다 감추지 못하고 떨떠름한 음성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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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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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몇 번이고 망설이던 알버스가 끝내 무언가를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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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괜찮으시다면 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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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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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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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고요.”

그러나 밀레이아는 그의 말이 채 내뱉어지기도 전에 단호하게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

알버스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는 잠시간 혼이 빠진 듯이 굴다가 밀레이아가 발걸음을 떼기 직전 가까스로 정신을 되찾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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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아무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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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님께서 하실 말씀이 무엇이었든, 저는 불편한 사람과 뭔가를 함께할 수 있을 정도로 사교성 넘치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그럼 이만.”

그 말을 끝으로, 밀레이아는 알버스에게 더 대화를 이을 틈을 주지 않고 몸을 돌려버렸다.

그녀는 행여 그가 쫓아올까 봐 사람들 틈을 빠르게 헤치고 지나가며 입술을 깨물었다.

밀레이아는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한 눈치를 지니고 있었다.

반은 타고난 것이었고, 나머지 반은 이 살벌한 수도 사교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르다 보니 자연히 터득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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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조금 전 알버스의 태도는, 그녀에게 춤 신청을 하기 전 얼굴을 붉히고 머뭇거리는 영식들과 똑같았다.

그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바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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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싫어.’

하지만 밀레이아는 그 분홍빛 감정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누군가는 알버스 플로레트가 관심을 보이면 기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물론 알버스 플로레트는 누가 뭐라고 해도 현 엘바레스의 일등 신랑감이다.

이른 나이에 백작위를 물려받아 가주가 되었고,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조기 졸업한 이답게 벌써 차기 왕의 측근 중 하나로 낙점받은 자.

거기에 더없이 훌륭한 외모와 인품까지.

알버스 플로레트는 어찌 보면 밀레이아가 세운 기준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이였다.

그러나 밀레이아는 아직도 알버스 플로레트를 처음 마주한 순간, 제가 가진 일말의 장점마저 송두리째 빼앗기는 듯했던 느낌을 잊을 수 없었다.

목적이 분명한 결혼이라고는 하나 밀레이아 역시 사람이었다.

정략결혼이라도 결혼 상대와 되도록 사이좋은 부부로 지내고 싶은데.

차마 알버스 플로레트를 앞에 두고 하하 호호 웃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는 더더욱 없을 것 같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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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저 사람이 아니라도 선택지는 많아.’

밀레이아는 애써 입술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그녀의 시야에 목표했던 인물의 모습이 들어왔다.

밀레이아가 한껏 미소를 지어 보이며 상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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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시드 후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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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보겐 영애. 여기서 또 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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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제가 트레시드 가문과 뭔가 연이 있나 봐요. 어제는 트레시드 후작 영식을 뵈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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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하.”

나이 지긋한 후작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밀레이아를 맞이했다.

그녀는 일부러 살가운 웃음을 띤 채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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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서를 받을 만큼의 가능성이 있는 상대 중에서는 트레시드 후작 영식이 제일 나아 보이니까…….’

좋은 인상을 심어서 나쁠 건 없지.

어차피 귀족의 결혼에는 각 가문 가주의 승인도 필요하니까.

다행히 밀레이아의 그런 전략이 잘 먹혀든 것인지, 트레시드 후작이 만면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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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기쁘군. 나 역시 그랬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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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입니다, 후작님. 그런데 혹시 오늘 영식은 참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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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와 이렇게 자주 마주칠 수 있다니……. 정말 우리가 인연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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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때 트레시드 후작이 어딘가 음습한 눈길로 그녀를 훑어 내렸다.

뒷덜미를 타고 소름이 삐죽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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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새끼.’

잘못 걸렸다.

그런 생각이 직감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밀레이아의 불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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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죄송합니다, 보겐 영애. 저는 다른 분과 선약이 되어 있어서…….”

그저께까지만 해도 밀레이아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허둥댔던 영식이 어색하게 묵례하고 몸을 돌려 사라졌다.

밀레이아는 태연하게 그를 배웅했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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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늙어빠진 변태 새끼가 진짜……!’

밀레이아는 트레시드 후작 영식을 노리고 후작에게 접근한 것이었으나.

후작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호감 표현이라고 받아들인 것인지 끊임없이 밀레이아에게 질척거렸다.

심지어는 그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밀레이아 보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인성과 별개로, 트레시드 후작가는 수도의 유력한 고위 귀족가 중 하나였다.

그것도 가주가 직접 호감을 품고 있다고 명시한 여자에게 간 크게 들이댈 영식, 혹은 귀족은 많지 않았다.

밀레이아의 방 테이블에 산더미처럼 쌓였던 청혼서는 어느덧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밀레이아는 심호흡을 하고 시선을 돌려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여인들은 묘하게 안쓰럽다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고, 남자들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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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돌아가야겠어.’

피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당분간은 파티 참석을 줄이는 편이 나아 보였다.

이대로라면 파티에 참석해봤자 그녀의 꼴만 우스워질 테고, 트레시드 후작을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은 파티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트레시드 후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밀레이아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파티의 주최자에게만 인사를 남기고 빠르게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재수가 없는 이는 앞으로 넘어져도 뒤통수가 깨진다고 했던가.

밀레이아의 지금 처지가 딱 그 말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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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보겐 영애. 내가 올 줄 알고 마중이라도 나온 건가? 역시 운명이로군.”

밀레이아는 파티장을 벗어나 모퉁이를 돌자마자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는 트레시드 후작을 발견했다.

그녀는 차라리 창문을 열고 뛰어내릴까 싶었다.

팔 한쪽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 변태와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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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자.’

하지만 밀레이아는 눈을 꾹 감고 화를 다스렸다.

머릿속에 그녀가 책임져야 할 가족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이윽고 눈을 떴을 때, 밀레이아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미소라고 부를 법한 것을 입가에 걸고 있었다.

그녀가 예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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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오늘은 후작님과 인연이 아닌 것 같네요. 몸이 영 좋지 않아 돌아가 보려던 참이었거든요.”

그러나 슬프게도 후작은 끈질겼다.

그가 놀란 얼굴로 밀레이아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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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그 몸으로 혼자 집까지 어떻게 돌아가겠나. 내가 바래다주겠네. 내 마차를 타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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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 아니요. 그렇게 폐를 끼칠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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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라니. 어디 우리가 남인가.”

후작이 밀레이아의 손목을 잡아당겨 그녀와 가까이 섰다.

손목에 머물러 있던 손이 슬그머니 팔을 타고 올라와 어깨에 다다랐다.

후작이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여 밀레이아의 귓가에 훅 바람을 흘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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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가족이 될 사이인데, 이 김에 자네와 좀 더 밀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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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새끼가 돌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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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컥!”

순간 온몸에 돋아난 소름을 이겨내지 못한 밀레이아가 후작의 사타구니를 세게 걷어찼다.

그의 입에서 짧고 굵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털썩!

후작이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바닥에 엎어졌다.

하지만 밀레이아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아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들고 그것으로 후작의 뒤통수를 퍽퍽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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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늙은이가!”

퍽!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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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에! 수작질이야! 네 아들이 나랑 동갑인 건 아냐, 이 머리카락이랑 양심이 같이 빠진 새끼야!”

퍽!

밀레이아는 그 외에도 수도의 귀족이라면 차마 들어보지도 못했을 욕설을 내뱉으며 후작을 두들겨 팼다.

결국 후작은 눈을 까뒤집은 채 복도에서 꼴사납게 기절했다.

밀레이아가 입바람을 후 불고는 구두를 다시 신었다.

혀를 쯧 차며 손목을 돌리는 모양새가 틀림없는 불량배의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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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래도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있으니까 여기서 끝냈지, 보겐 영지의 인간이었으면 그냥 고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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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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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간…… 을…….”

손목에 이어 고개를 돌려 근육을 풀어주던 밀레이아의 몸이 우뚝 멈추었다.

덩달아 말 역시 부자연스럽게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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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밀레이아는 고개를 뒤로 돌리던 자세 그대로, 시야가 뒤집힌 채 눈을 깜박였다.

그러나 눈을 아무리 깜박여보아도, 복도 끝에서 이쪽으로 한 손을 뻗은 채 멍하니 굳어 있는 알버스 플로레트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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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뭣 됐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밀레이아의 얼굴에서 혈색이 모조리 빠져나갔다.

그녀는 열두 시가 되면 마법이 풀린다는 어느 동화 속 주인공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전력으로 도망쳤다.

그 바람에 후작의 뒤통수에서 배어난 피가 묻은 구두만이 복도를 아무렇게나 나뒹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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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무슨.”

덩달아 홀로 남겨진 알버스의 정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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