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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
독자 제위께
안녕하신지요?
전능의 팔찌는 전작인 신화창조가 지지부진할 때 심기일전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글입니다.
온갖 과학적 근거 자료와 각종 사료, 그리고 확인된 군사 무기 체계뿐만 아니라 다방면의 통계 자료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뒤져가며 써야 하는 신화창조와는 달리 조금 자유스런 글을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문득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공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어찌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구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마법사!
그것도 상당히 고위 마법사가 된다면 나는 이 세상을 어찌 살까 생각해 보니 흐뭇하더군요.
처음엔 유치한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투명 마법을 써서 여탕을 기웃거리는 것 등이겠지요. 그러다 마법으로 세상을 좀 더 평화롭고 정의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세상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첨단 과학 기술 문화를 어찌 경험하고 느끼는지를 쓰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습니다.
전능의 팔찌를 가진 주인공은 이전의 판타지 소설처럼 궁정의 암투나 대규모 전투 같은 걸 별로 하지 않게 됩니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모아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느낌을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현대로 되돌아와서는 작은 부분부터 점차 큰 부분까지 다시 한 번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전능의 팔찌는 그냥 많고 많은 퓨전 소설 가운데 평범한 하나가 되지 않게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단순한 읽을거리로 남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와 부조리, 그리고 온갖 불편부당한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거나 부당한 일이 있다면 당연히 고쳐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국민의 역량은 높지만 위정자들의 역량은 기대 이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법은 멀지만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세상을 살아보니 우리나라의 법은 힘 있고 돈 있는 자들만을 위한 법입니다. 그래서 마법이라는 주먹으로 못된 짓 하는 힘 있는 놈들을 깨부수는 글을 쓰려 합니다.
응원해 주십시오. 금과옥조는 못 되더라도 여러분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글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성하에…….
김현석 배상
1장 태백산맥에서 길을 잃다
“헉헉! 헉헉! 여긴 대체 어디지?”
현수는 흘러내리는 구슬땀을 소매로 닦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시선은 그리 멀지 않은 산봉우리들로 향해 있다.
짐작이 맞는다면 촛대봉, 향로봉, 미륵봉, 양터봉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봉우리들일 것이다.
원수 같은 저것들을 찾아내느라 헤맨 것만 벌써 세 시간째이다. 그래서 간신히 이들이 보이는 곳을 찾기는 했다.
그런데 어떤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제대로 가늠을 해야 오늘 안에 산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찌는 듯이 더웠던 8월이 아니다.
초여름부터 북적이던 피서지의 인파가 99%쯤 사라졌을 9월 하고도 4일이다.
그리고 이곳은 태백산맥의 주능선인 덕항산(1,072m, 강원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서 갈라진 곳에 위치한 이름 모를 산의 등성이이다.
피서철이 끝나서 그런지 현수는 오늘 하루 단 한 명의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물론 산행 중 길을 잃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을 헤맸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어젯밤 마신 술 때문인지도 모른다.
준비해 왔던 술은 알코올 도수가 제법 높은 양주였다. 그것도 작은 병이 아니라 큰 병이다.
그런데 그걸 다 마셨다. 홧김에, 그리고 시름에 잠겨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한 병을 다 비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입에서 심한 술 냄새가 났다.
라이터를 당기고 숨을 내쉬면 어쩌면 불이 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다.
그리곤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몇 시간쯤 잔 것 같다.
하나 결코 숙면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술을 마시는 동안 해가 떨어졌다.
산이라 그런지 금방 어두워졌다. 경험 많은 등산가도 텐트를 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텐트를 요 겸 이불 삼아 대충 둘둘 말고 잤다.
그러니 어찌 숙면을 취할 수 있었겠는가!
땅바닥에 박힌 돌덩이들 때문에도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게다가 모기들이 엄청나게 달려들어 회식을 했다.
그래서 몇 시간을 잤지만 피로를 몰아낼 만큼, 술기운을 날려 버릴 만큼 깊은 잠은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강렬한 햇빛을 이기지 못해 눈을 떴지만 비몽사몽인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거듬거듬 텐트를 걷었다.
아무래도 무작정 출발한 것이 문제가 된 듯하다.
출발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길을 잃었고, 오전 내내 이 계곡 저 계곡을 헤맸다.
그러다 오전 10시쯤 허기진 속을 채우기 위해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속에서 받질 않는 모양이다.
더부룩하고 불편하다.
먹은 지 두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그런 걸 보면 혹시 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도 불지 않아 덥기는 엄청 덥다.
구슬땀이 흘러내려 앞섶을 흠뻑 적셔놓았다. 손수건으로 닦아내기엔 너무 많은 양이라 닦는 것도 포기했다.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치려는데 문득 매미 울음소리가 강렬해진다.
맴, 맴, 맴, 맴, 맴……!
“매미는 왜 이렇게 시끄럽게 우는 걸까?”
못해도 이륙 중인 비행기 소리인 100데시벨쯤 되는 듯하다. 이쯤 되면 소음 공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휴, 시끄러워! 야, 이 빌어먹을 매미새끼들아! 여긴 대체 어디냐? 맴맴거리지만 말고 나와서 말 좀 해봐! 길 좀 가르쳐 주란 말이야!”
현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 시끄럽던 매미 울음이 잠시 멈춘다. 하나 그도 잠시뿐, 10초도 지나지 않아 매미들의 합창은 또다시 시작되었다.
맴, 맴, 맴, 맴, 맴……!
“에이, 빌어먹을 놈의 매미들! 니들은 지치지도 않냐?”
투덜거린 현수는 곁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수통의 뚜껑을 열어 한 모금 마셨다.
갖고 왔던 생수는 벌써 다 마셔서 계곡물을 담아둔 것이다.
어쩌면 오염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체에 해로울 수 있고, 물속의 기생충을 몸 안으로 불러들이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근데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숨을 내쉴 때마다 술 냄새가 나는 상황이다.
모르긴 해도 속에 있던 알코올이 기화되어 입 밖으로 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기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캬아! 시원은 하네.”
입가에 묻은 물을 소매로 문질러 닦았다.
그리곤 새삼 사방을 둘러보았다.
우거진 초목들이 저마다의 생명력을 내뿜고 있다.
이제 가을이 되면 낙엽이 되어버릴 잎사귀들이 맹렬한 기세로 광합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구에 다가올 추운 겨울을 대비해 착실하면서도 악착같이 준비를 하는 중이다.
“으음, 나무들도 이러는데 난 뭐지? 휴우!”
나직이 중얼거린 현수는 한숨을 쉬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 때문에 답답한 것이다.
“제기랄, 학교 선생들, 그리고 학원 선생들. 뭐? 공부만 열심히 하면 이다음에 잘살 확률이 높으니 죽어라 공부하라고? 그래서 정신 차려서 했잖아. 근데 이게 뭐야? 에이, 쓰벌! 퉤에에!”
현수는 있지도 않은 가래침을 뱉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갑갑한 심사가 풀릴 것만 같다는 본능 때문이다.
현수는 도급 순위로만 따지자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천지건설(주)의 자재과 신입사원이다.
입사한 지는 8개월 되었다. 이제 겨우 맡은 업무를 당황하지 않고 처리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된 셈이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현수는 84번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
간신히 그걸 통과해도 필기시험, 또는 면접에서 탈락되곤 하였다. 이는 현수가 다닌 학교와 전공 때문일 것이다.
현수는 서울 소재 삼류 대학 수학과 4년을 졸업했다.
수학이 좋아서 이걸 전공한 건 물론 아니다. 고등학생 때 이미 수학이라면 질색할 정도로 질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학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수능 점수 때문이다.
현수의 점수는 서울 명문대는 들어갈 수 없지만 지방에 있는 괜찮은 대학에는 들어갈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가정 형편상 지방 대학은 가기가 어려웠다.
서울에 비해 등록금은 싸겠지만 하숙비 내지는 기숙사비, 또는 왕복 교통비 등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대학 중에서 고르라고 했다. 그것도 가급적 집에서 가까우면 좋겠다고 하셨다.
교통비 때문일 것이다. 하여 담임과 상의한 끝에 1지망과 2지망, 그리고 3지망 원서를 냈다.
그리곤 다 떨어졌다. 2, 3지망은 대기 번호도 못 받았지만 1지망에서 196번이라는 번호를 받기는 했다.
결국엔 다 떨어졌구나 싶어 낙망했다. 그런데 등록 마감 마지막 날 기적적으로 연락이 왔다.
하여 하루 만에 부랴부랴 등록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수가 마지막 대기자였다. 결국 꼴찌로 입학한 셈이다.
어쨌거나 대학에서 4년 동안 수학을 배웠다.
집합론, 정수론, 선형대수, 현대대수학, 해석학, 위상수학, 해석기하, 벡터해석, 미분기하학, 확률과 통계, 이산수학, 논리학 등을 배웠다.
고등학교 때의 수학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상당히 많이 다른 것들이다.
어쨌거나 4년 내내 머리에 쥐나는 줄 알고 살았다.
가정 형편상 유급을 하면 부모님을 뵐 낯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 기를 쓰고 어떻게든 학점을 따려 노력했다. 덕분에 뇌에 부하가 심하게 걸린 기분 속에서 살았다.
4년 동안 남들 다 하는 연애 한 번 못했다.
유급만은 결코 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졸업 후 어떻게 해서 간신히 서류 전형을 통과하여 면접을 볼라 치면 면접관들의 질문은 모두 같았다.
“흐음! 수학을 전공하셨군요. 우리 회사는 김현수 씨가 전공한 수학과는 별 연관이 없는데 어떤 동기로 입사를 지원하셨습니까?”
현수는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꿰어 맞히려 노력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그게 떨어졌다는 뜻이라는 것을.
천지건설(주)에 입사한 것은 시험을 봤는데 그 점수가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아서가 아니다.
또한 전 학년 평점이 훌륭해서도 아니다. 간신히 C를 넘겼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벌인 천지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천지건설(주)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군대 후임을 잘 둔 덕이다.
현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군에 입대했다.
아버지가 혹시라도 직업을 잃게 되면 등록금을 대줄 수 없으니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현수 아버지는 귀금속 세공 공장에서 일을 한다.
사실 공장이라 하기엔 규모가 작다. 그래서 공방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이곳은 분업화되어 있는데 광(연마), 조립, 주물 주조, 사출, 조각, 도금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 밖에 원본기사도 있다. 원본기사의 경우엔 기능장 정도의 경력을 인정받으면 많은 급료를 받게 된다.
현수의 아버지는 이 가운데 기계를 이용하여 보석을 깎아내는 보석연마사이다. 많은 급료를 받지 못하는 직종이다.
그나마 언제 잘릴지 모른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얼마라도 돈을 버는 동안 학교를 다니라고 했던 것이다.
아무튼 가정 형편상 알바는 필수였다.
등록금은 부모님이 대주시지만 용돈은 없다. 그러니 책값, 교통비 등은 자신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입학으로부터 졸업까지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엔 약국 알바를 했다.
처방전 접수하고 전산 입력만 하는 업무였다.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월급날을 제대로 지켜주지 않았다.
하여 집 근처 여자 대학교 앞 카페로 일자리를 옮겼다.
이곳에 4년 정도 붙박이로 붙어 있었던 것은 제 날짜에 또박또박 페이를 지급해 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배울 것이 많다 생각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수가 처음 이곳에서 알바를 시작했을 땐 홀 서빙이 주 임무였다. 그러다 차츰 주방 쪽으로 접근했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 몸은 더 고될지 모르지만 고픈 배를 어느 정도는 달랠 수 있을 것이란 얄팍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 2년 동안 감자와 양파 껍질을 벗겼고, 설거지를 했으며, 걸레질을 했다. 화장실 청소도 했다.
성실성을 인정한 주방장은 주방 보조 자리가 비자 현수를 추천했다. 덕분에 페이도 올라갔고, 간단한 요리까지 배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토스트나 샌드위치를 능숙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빵 굽는 기술까지 배워 마늘빵, 모카빵, 바게트, 소보로 등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히야신스(Hyacinth)’란 이름을 가진 카페의 사장은 현수가 졸업 때까지 계속 알바하기를 바랐다.
주방장 보조, 바리스타 보조, 설거지, 홀 서빙, 청소 등 일인 다역을 하는데다 성실하고, 붙임성이 좋았던 때문이다.
나중엔 사장의 배려로 운전면허증을 땄다.
장사가 잘되어 옆 가게가 비자 그것을 얻어 확장한 이후 손님들의 차를 주차장에 넣었다 빼주는 것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