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화 (4/1,307)

# 4

“으윽!”

동굴 바로 곁에 있던 고목에 벼락이 떨어졌다. 그리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터져 나온다.

화들짝 놀란 현수는 후다닥 동굴 안으로 몸을 피했다.

또, 그 순간이다.

번쩍 !

콰아아앙!

우지지지직 ! 콰아앙!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은 섬광에 이어 또다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동굴 앞 고목이 반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곤 거대한 동체가 쓰러진다.

동굴 입구 쪽으로 팽개쳐지듯 떨어져 내린 고목이 내는 굉음에 놀란 현수는 조금 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착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전 떨어져 내린 벼락이 안으로 흘러든다고 느낀 때문이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텐트의 폴대에서 방전 현상이 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벼락은 연속해서 세 번이나 더 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그친 듯하다.

계곡의 물이 불어난 듯 폭포에서 나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하나 현수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너무도 굉렬했던 벼락 소리 때문이다.

그렇게 10분쯤 지났다. 그동안 현수는 꼼짝 않고 숨만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비가 와서 그러는지 조금 춥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배낭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벼락 맞을까봐 겁이 난 것이다.

그렇게 이십여 분을 더 떨었다.

“으으! 더럽게 춥네. 안 되겠어.”

현수는 후다닥 내려가서 배낭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옷을 껴입었다. 그래 봐야 얇은 바람막이이다.

팔뚝에 돋은 소름을 쓰다듬던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응? 근데 그건 어디 갔지?”

그러고 보니 저절로 줄어들어서 팔뚝 속으로 파고들까 싶어 겁먹게 했던 팔찌 비슷한 물건이 보이지 않는다.

놀라서 피하는 동안 빠져나간 모양이다. 하여 랜턴을 들어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지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흐음, 어딘가에 빠진 건가? 보이질 않네. 으으, 그나저나 더럽게 춥네. 으으! 추워. 안 되겠다.”

덜덜 떨던 현수는 얼른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너를 켰다. 그리곤 배낭을 뒤적여 팩 소주 두 개를 꺼냈다.

안주는 대강 익힌 소시지였다.

자기 전에 세수하는 것과 이빨 닦는 것은 포기했다. 씻고 자려다 벼락 맞아 죽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제기랄, 비가 왔으니 내일 산행은 더 어렵겠군.”

맨땅도 젖으면 미끄럽다. 산은 더 그렇다. 그렇기에 비 오는 날의 산행은 만전을 기해야 한다.

안 그러면 발목이 접질리거나 삐게 된다. 재수없으면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불운을 겪을 수도 있다.

“으음! 내일은 길을 찾아야 할 텐데…….”

현수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 9시를 넘어 사방이 깜깜해진 후엔 랜턴도 껐다. 자칫 산짐승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할까 싶어서였다.

너무 추워 결국 침낭 속으로 파고들었다. 얼마 후 현수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짹짹! 째째째짹 !

“으음! 끄으으응! 흐어엄 !”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뜬 현수는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하품을 하며 눈곱을 떼어냈다.

불어난 폭포수 인근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도 감았다.

그리곤 아침 식사를 했다. 물론 라면이다.

오후 3시쯤 되어서야 현수는 제대로 된 등산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곤 곧장 하산했다.

* * *

원룸은 여전히 덥다. 서울엔 비가 오지 않은 때문이다.

배낭과 등산화, 코펠과 버너 등을 대강 정리하고 누운 현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휴우!”

내일이면 휴가가 끝나니 회사에 복귀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가 싫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무리 싫어도 가기는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출근을 하면 앞으로 최소 30년 동안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일 아침엔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입사한 회사이던가!

84번의 입사원서를 쓴 끝에 간신히 들어왔다. 그러니 나가면 하늘의 별 따기인 재취업에 성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백수가 된다. 수입이 없어지니 원룸을 비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김포 부모님 댁으로 가면, 너무 좁다.

“제기랄! 내 팔자도 참. 에이, 잠이나 자자.”

현수는 얇은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리고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보름이 지난 지 닷새밖에 되지 않아 그런지 오늘 따라 달빛이 휘영청 밝다.

현수는 마음속으로 양을 천 마리쯤 세다 잠이 들었다. 그리곤 꿈나라로 접어들었다.

“인연자여, 인연자여, 나를 보게나.”

현수가 꿈에서 만난 사람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인이다. 하얀 것 같기도 하고 뿌연 것 같기도 한 담요 비슷한 걸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모자도 달려 있는데 현수도 즐겨 입는 후드 티는 아니다. 거의 종아리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노인은 백인인 것 같다. 살빛이 창백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거의 2m 50㎝ 정도 되는 긴 지팡이를 쥐고 있는데 왠지 장엄한 느낌이 든다.

“인연자여, 인연자여, 어서 나를 보게나.”

나직이 중얼거리는 노인은 슬픈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만 볼 뿐이다.

“저어… 죄송하지만 누구십니까?”

“인연자여, 나는 멀린 아드리안 반 나이젤이라 하네.”

“네? 뭐라고요? 죄송하지만 제대로 못 들었네요. 한 번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현수는 익숙하지 않은데다 길기까지 한 이름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지. 나는 멀린 아드리안 반 나이젤이라 하네.”

“네에, 이름이 길군요.”

“그런가? 그럼 자네 이름은 무엇인가?”

“네, 저는 김현수라 합니다.”

“킴혀언수?”

“킴혀언수가 아니라 김현수예요.”

“흐음, 낯선 형식의 이름이군. 그 이름이 이곳에선 보편적인 것인가?”

“네, 대부분 성이 한 글자이고 이름은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지요. 근데 그건 왜 묻습니까?”

멀린은 현수의 물음에 대답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는 듯 제 할 말만 했다.

“그럼 잉글랜드가 아니군. 여긴 어디인가?”

“네……? 방금 뭐라 말씀하셨는지요?”

“이곳이 지구의 어느 나라인가를 물었네.”

“아……! 여긴 대한민국이라는 곳이에요.”

“대한민국……?”

“네, 영어로는 Republic of Korea라 하지요.”

“흐음, 코리아라…….”

노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언가 기억을 더듬는 듯하다.

현수는 예의 바르게도 노인의 사색을 끊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다음 말을 기다렸을 뿐이다.

“흐음! 할 수 없지.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네? 뭐라고요?”

“아닐세. 방금 한 말은 나 혼자 중얼거린 말이네.”

“아! 그렇군요.”

“그나저나 자네에게 도움을 청하네. 도와줄 수 있겠는가?”

“네에?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고요?”

“그렇다네. 자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네. 도와주겠는가?”

‘아아, 이건 꿈이구나. 하긴, 내가 이렇게 영어를 잘할 리가 없으니…….’

현수는 문득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자각을 했다.

삼류 대학엘 간 것도 영어 때문이다. 국어는 1등급, 수학은 2등급, 과학탐구는 3등급을 얻었다.

이것만 보면 꽤 괜찮은 점수이다.

여기에 영어마저 2∼3등급을 받았다면 소위 준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을 졸업했을 것이다.

한데 어이없게도 영어는 7등급이었다. 나머지 과목이 아니었다면 삼류 대학에도 못 들어갈 뻔했던 것이다.

취직을 위한 필기시험에서 줄줄이 낙방한 것도 거의 모두 영어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외국인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대화를 하고 있다. 이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지금 이 상황이 꿈이라는 결과가 자연스레 도출된 것이다.

노인은 말없는 현수를 잠시 살펴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가? 도와줄 수 있겠는가?”

현수는 노인과 시선을 마주쳤다.

몹시 늙어 나이를 가늠키 어렵다. 그런 노인이 도움을 청한다. 그런데 현재 꿈꾸는 중이다.

무언들 못하겠는가!

“네, 그러죠.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죠?”

“아아! 고맙고 또 고맙네.”

“고맙긴요. 어르신께서 도움을 청하셨는데 기꺼이 도와드려야죠. 말씀만 하십시오.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네. 반드시 보답을 받을 것이네.”

“아이구, 아닙니다. 보답을 바라는 건 아닙니다. 그저 어르신께서 도움을 청하셨으니 당연히 도우려는 마음뿐입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

노인은 잠시 말없이 현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심성이 바른 청년이군. 고맙네. 그럼 이제부터 잠시 잠을 자게. 고요한 밤의 꿈속으로……. 슬립!”

노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간다. 그리곤 잠이 들었다.

현수는 꿈속에서 또 잠을 자는 희한한 경우를 맞이했다.

잠시 후, 현수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죽은 듯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혼이 자신의 육신을 바라보는 바로 그 광경이다.

말을 하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고,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노인은 그런 자신의 육체 주위에서 지팡이로 허공에 그림 비슷한 것을 그리며 무언가 주문을 외우고 있다.

잠시 후, 노인의 손으로부터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동시에 자신의 몸으로 영혼이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고맙네. 노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줘서.”

“저어, 어르신, 어르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나……? 혹시 대마법사 멀린이라고 하면 아는가?”

“네에? 멀린이라면… 혹시 아더왕의 궁정 마법사였다는 그 마법사 멀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허허, 아는구먼. 그래, 예전에 잠시 아더를 도왔지.”

“네에? 영국의 왕 아더… 그러니까 요정으로부터 얻었다는 성검 엑스칼리버(Excalibur)의 주인, 그 아더왕을 도우셨다고요? 진짜요?”

“허허, 놀랐는가?”

“네에, 전 마법사가 실존했다고 생각지 않고 있었거든요.”

“엑스칼리버를 안다니 그 검의 검집이 어떤 효능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아는가?”

“물론이에요. 엑스칼리버의 검집은 주인이 어떤 상처를 입어도 즉시 치유되는 기능이……. 혹시 그게 어르신께서 검집에 새겨 넣으신 마법이었습니까?

“허허! 허허허! 잘 아는구먼. 그건 컴플리트 힐(Complete Heal)이라는 7써클 마법이었네.”

“세상에나! 맙소사! 내가 대마법사 멀린을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아니, 영광입니다. 세, 세상에나, 맙소사!”

현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횡설수설하였다.

“허허허! 그렇겠지. 이 세상엔 마법사가 없었으니.”

“네에? 이 세상엔 없었다니요?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젊은이, 아니, 김현수 군.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네.”

“네에, 그러시겠지요. 영국의 전설인 아더왕은 6세기 경의 인물입니다. 어르신께서는 같은 시기에 활동하셨으니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겠지요.”

현수는 멀린이 귀신, 또는 영혼이라 생각해서 한 말이다. 하나 멀린은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렇지. 자네 말대로 돌아왔지. 원래 내가 있던 이 세상으로 말일세.”

“저어, 죄송하지만, 멀린 대마법사님!”

“흐음! 거기선 나를 멀린이라 불렀지만 지금부턴 아드리안이라 불러주게.”

“네, 아드리안 대마법사님. 천국과 지옥, 그리고 연옥 가운데 어디에 계신가요? 개인적으로 마법사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거든요.”

“허허! 자넨 내가 죽은 걸로 생각하는구먼.”

“네에? 그럼 아직 돌아가신 게 아니란 말씀이세요?”

“허허, 허허허! 잘 듣게. 여긴 지구가 아니라네. 내가 있는 이곳은 카이엔 제국이라는 곳이네.”

“네에? 카이엔 제국이요? 그런 나라도 있나요?”

처음 듣는 명칭에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취직을 위해 일반상식 책을 여러 번 섭렵한 바 있다. 그런데 한 번도 카이엔이란 명칭을 본 바 없기에 물은 것이다.

“흐음!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다간 너무 오래 걸리겠군. 잠시만 기다리게.”

말을 마친 노인은 손을 내밀어 현수의 머리 위에 얹고는 뭔가를 중얼거린다.

3장 대마법사 멀린

대마법사 멀린 아드리안 반 나이젤은 나이 600에 이르러 자신의 마법을 집대성한 마법서를 저술해 냈다.

그리곤 「이실리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카이엔 제국의 말로 표현하자면 ‘위대한 마법사의 생애’라는 뜻이다.

지금 그것에만 기록되어 있는 마법이 실현되는 중이다.

이실리프를 보면 8써클 마스터가 되어야 비로소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이다. 이 마법의 정식 명칭은 위즈덤 트랜스퍼(The Wisdom Transfer Magic)이다. 다시 말해 지식 전이 마법이다.

이것은 시전자의 의도에 따라 전체, 또는 부분의 지식을 상대에게 넣어주거나 상대에게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선별적으로 지식을 이전시켜 주는 마법이다.

멀린 아드리안 반 나이젤은 왕국 간의 전쟁으로 여덟 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보살펴 주지 않아 억척스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흉포한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산에서 목숨 걸고 약초를 캐어 간신히 먹고살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