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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5화 (5/1,307)

# 5

그러던 어느 날, 산에 올랐다가 심각한 부상을 당한 마법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심한 상처로 실혈이 심한 상태였다.

5써클 마법사 브리앙은 마탑의 명령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어린아이들을 잡아 시험 재료로 쓰던 흑마법사를 발견하였다.

그를 공격하여 아이들을 구하려다 반격을 당해 절벽 위에서 떨어진 뒤 빈사지경에 처했던 것이다.

아드리안은 서둘러 입고 있던 넝마 같은 옷을 찢어 붕대를 만들었다. 그리곤 지혈에 효능이 있는 약초를 붙이고 그것으로 상처를 감았다.

다행히 지혈은 되었지만 브리앙은 깨어나지 않았다. 부상 정도가 너무 심한 때문이다.

또한 너무나 많은 실혈을 한 때문이었다.

하여 원기 회복에 좋은 약초를 찾아 그것을 먹였다.

아드리안의 정성 덕분에 정신을 차린 마법사 브리앙은 도움을 청했다. 하여 어린 아드리안은 온 힘을 다하여 브리앙을 부축했다.

간신히 부축하여 자신의 오두막에 당도한 아드리안은 정성 들여 구완을 하였다. 하지만 써클 붕괴 현상이 빚어진 브리앙은 불과 1년 반 만에 생애를 마쳤다.

그가 죽었을 때 아드리안은 1써클 마법사였다. 브리앙이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마법을 가르쳐 준 덕이다.

유품을 정리하던 아드리안은 브리앙의 마법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적지 않은 돈과 마법서가 들어 있었다.

아드리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오두막에서 마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70년이 흘렀을 때에 비로소 5써클이 되었다.

빠르고 쉬운 길을 가르쳐 줄 스승이 없어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다. 그때의 나이가 80이었다.

아드리안은 더 이상의 마법을 원했지만 마법서가 없었다.

하여 마탑을 찾았다. 한때 브리앙이 몸담았던 곳이다.

당시의 마탑주 헬리온은 7써클에 이른 자로 권력과 재물에 욕심이 많은 자였다.

그는 6써클 마법서 한 권에 10만 골드를 요구했다.

여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60만 골드가 있어야 6써클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7써클 마법서는 일곱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권당 50만 골드씩 달라고 했다. 350만 골드를 요구한 것이다.

그럼 8써클 마법서는 얼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권당 200만 골드씩 1,600만 골드를 내란다.

내친김에 9써클 마법서의 가격을 물어보았다.

9써클은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권당 3,000만 골드씩 9,000만 골드를 내라고 했다.

6∼9써클에 이르는 마법서를 모두 사느니 차라리 왕국 하나를 통째로 사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아드리안은 비싸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하곤 마법서를 얻는 다른 방법을 물었다.

그랬더니 6써클 마법서 한 권을 얻으려면 마탑 화장실 청소를 100년 동안 하라고 했다.

알고 보니 영광의 탑이라 불리는 마탑이 소속없는 마법사라고 냉대하고 조롱한 것이다.

분노한 아드리안은 노구를 이끌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의 마법 주머니엔 보존 마법이 걸린 음식이 잔뜩 들어 있었다.

50년 정도 시간이 흘러 나이 132세가 되었을 때 아드리안은 7써클의 깨달음을 얻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성취한 것이다.

덕분에 아드리안의 마법은 다른 마법과 상당히 달랐다. 마나를 배열하는 순서도, 시동어의 길이도 매우 짧았다.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인가를 따진 때문이다.

아무튼 깨달음을 얻는 순간 아드리안은 신체가 재구성되는 기연을 만났다.

덕분에 이십대 후반처럼 보이게 되었다.

세상으로 나온 아드리안은 드래곤이 유희하듯 용병 등록을 하곤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청년을 발견하였다. 카이엔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알렉산더 폰 카이엔이 바로 그였다.

아드리안은 그를 도와 카이엔 제국이 성립되도록 도왔다. 그래서 얻은 이름이 멀린 아드리안 반 나이젤이다.

작위를 제수받으면서 봉토로 받은 나이젤의 영주 멀린 아드리안이라는 뜻이다.

아드리안은 대공 또는 공작이 될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황제의 목숨을 세 번이나 구해냈다. 그것도 거의 죽을 뻔한 상황에서 구해낸 것이다.

따라서 누가 뭐라 해도 가장 빛나는 전공을 세운 개국공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평민 출신이라 후작에 머물렀다.

그가 세운 공을 아는지라 황제는 거듭해서 대공, 또는 공작의 작위를 주려 했으나 그때마다 정중히 사양하였다.

하여 제국엔 두 개의 공작가와 세 개의 후작가가 존재하게 되었다.

계급상 공작이 후작보다 상위에 있다. 하나 어느 누구도 아드리안 후작의 비위를 거스르진 못했다.

먼저 7써클에 이르러 똑같이 후작위를 제수받은 마탑주 헬리온 드 스타이발조차 멀린의 앞에선 설설 기었다.

같은 7써클이라도 아드리안의 마법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독자적인 마법으로 일가를 이룬 결과이다.

다시 말해 같은 7써클 마법이라도 헬리온에 비해 아드리안이 펼치는 것은 세 배의 위력을 보였다.

미안해진 황제는 아드리안에게 반지 하나를 하사했다.

제국에 대한 반역만 아니라면 어떠한 죄라도 사면받을 수 있는 절대사면 반지였다.

이는 본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아드리안이 요구하면 누구든, 어떤 죄를 지었든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횟수의 제한도 없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효력이다.

다시 말해 ‘제국의 모든 죄수를 풀어주시오’라고 요구하면 반역죄를 지은 자를 제외하곤 모두 풀어줘야 하는 것이다.

이 반지는 후손, 또는 후계자에게 넘겨질 수 있으며, 카이엔 제국이 존재하는 한 영구한 효력을 지닌다.

아무튼 아드리안은 봉토 나이젤로 돌아가 영지 개발에 힘쓰는 한편 상위 마법을 개발하기 위한 박차를 가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탑에는 7써클 이상의 마법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을 알게 된 뒤 아드리안은 헬리온에게 정중한 내용의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언제고 얼굴을 마주치는 날이 있으면 그날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이다.

이것을 받고 헬리온 드 스타이발 후작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연구를 빌미로 마탑에 처박혀 있었다.

걸리기만 하면 뼈도 못 추릴 게 분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피폐하고 낙후된 영지 나이젤을 위해 애쓰는 동안 이웃 영지의 카세리온 백작이 가족과 함께 방문하였다.

이 당시 아드리안은 영지 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얻기 위한 아티팩트 제작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최대 50m쯤 몸을 피할 수 있게 하는 블링크 마법이 새겨진 반지가 있다.

홀드 퍼슨(Hold Person) 마법이 새겨진 반지도 있다. 이것이 시전되면 대상은 약 5분 정도 발을 뗄 수 없게 된다.

두 시간 정도 효력이 유지되는 아이스 포그(Ice Fog)를 만들어내는 목걸이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일정한 범위에 작은 폭발을 일으키는 파이어 버스트(Fire Burst)가 시전되는 마법검들을 제작하였다.

주로 위급한 순간을 모면하도록 돕는 것들이 많았다.

실제로 이것들은 흉포한 몬스터들을 만났을 때 도움이 된다. 하여 만드는 족족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갔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주로 3써클 마법이 시전된다는 것이다.

사실 드래곤을 만나지 않는 이상 이것보다 상위 마법은 별로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딱 하나, 고위 마법이 새겨진 반지를 제작한 바 있다.

무려 8써클에 해당되는 앱솔루트 배리어를 다섯 번 발현시킬 수 있는 반지가 그것이다.

이는 초대 황제의 생일날 아드리안이 선물로 만들어준 것이다. 현재 카이엔 제국 황실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아티팩트란 마법사가 아닌 사람이라도 특별한 마법을 펼칠 수 있도록 해주는 마법 기물을 뜻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투명 망토 역시 아티팩트이다.

그리고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 역시 아티팩트의 일종이다.

어쨌거나 아드리안 후작이 만드는 아티팩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것들 가운데 하나를 살 겸, 부쩍 살기 좋아졌다는 나이젤 영지를 구경할 겸 카세리온 백작 일가가 방문한 것이다.

백작에게는 혼기를 훌쩍 넘긴 딸이 하나 있었다.

프리실라 에미앙 드 카세리온이 그녀이다.

눈이 높아 웬만한 사내는 발톱에 낀 때만큼도 여기지 않던 프리실라이지만 아드리안을 보곤 한눈에 반해 버렸다.

키 크고 잘생긴데다, 돈도 잘 벌고 고위 귀족이다. 게다가 허우대 멀쩡하고 능력까지 있는 마법사이다.

그러니 어찌 반하지 않겠는가!

하나 겉모습만 20대이지 나이 130이 넘은 아드리안에게 있어 연애란 사치스럽고 거치적거리는 감정일 뿐이었다.

하여 아무리 접근해도 넘어가지 않자 프리실라는 급기야 꾀를 냈다. 아버지 카세이론 백작과 멀린 후작이 마시는 술에 ‘실프의 눈물’이라는 최음제를 탄 것이다.

사내끼리 마시는 술에 최음제가 섞여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게다가 카세리온 백작과의 관계는 돈독 그 자체이다.

그날 아드리안은 술에 취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겼다. 물론 프리실라의 적극적인 유혹이 있었던 때문이다.

카세리온 백작이야 부인과 같이 있었으니 별 탈 없었다.

다음날 아침, 아드리안은 같은 침대에 있던 프리실라를 보고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둘은 결혼을 했다. 곧 임신을 하였고, 차례로 세 아들을 두어 단란한 한때를 보냈다. 일생 중 가장 행복한 때였다.

영지 발전의 틀이 잡히자 아드리안은 다시 마법에 몰두하였다. 대륙 최고의 마법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하나 집안일 때문에 자주 연구에 방해를 받았다.

결국 성을 떠나 바세론 산맥의 험준한 산속으로 들어갔다. 프리실라가 울며불며 말렸지만 그곳에서 딱 1년 간만 연구하고 오겠다는데 말릴 수도 없었다.

남편의 마법에 대한 열정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속에 머무는 동안 나이젤 영지에 전염병이 돌았다. 그 결과 프리실라와 두 아들을 잃었다.

아들들도 마법을 익히긴 했으나 발병되면 하루 만에 죽음에 이르는 급성 전염병을 어찌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도 평화스런 시기였기에 이웃 영지의 공격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때이다. 하긴 누가 있어 대륙 최고의 대마법사가 다스리는 영지를 공격하겠는가!

제아무리 기사가 많아도 8써클 마법 블레이즈 템페스트1)와 버금갈 파이어 스톰2) 한 방이면 대충 전장이 정리된다.

그런데 아드리안은 이런 파이어 스톰을 연속해서 30회 이상 시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면 기사단 50개 정도는 찜 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아드리안은 연구에 방해받지 않으려 통신 수정구를 가져가지 않았다.

하여 프리실라와 두 아들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

일 년 후, 하산한 아드리안은 아내와 아들의 무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어쩌겠는가!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은 이미 매장이 끝난 상태였다.

한동안 시름에 잠겨 있던 아드리안은 다시 바세론 산맥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8써클이 아니라 죽은 아내와 아들들을 다시 살려내는 리절렉션3)을 익히는 것이 목표였다.

이는 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10써클 마법이다.

그리고 10써클은 인간이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뿐만 아니라 마법의 조종이라 할 드래곤조차 이 수준에 올랐다는 기록이 없다.

아드리안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익히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병마에 시달리다 죽어버린 프리실라와 두 아들을 위해 남은 여생을 걸기로 한 것이다.

아드리안은 큰아들에게 작위를 물려주었다. 그리곤 급한 일이 있으면 알리라고 통신 수정구를 남기고 떠났다.

20년이 지났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아드리안은 8써클을 거쳐 9써클에 도달하여 두 번의 신체 재구성이란 기연을 만났다.

덕분에 이십대 초반의 용모를 갖게 되었다. 아울러 엘프도 부럽지 않을 긴 수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 10써클은 요원했다.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낙담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숨을 쉬던 중 문득 기분 전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여 로브를 걸친 채 대륙을 활보해 보았다.

그런데 한마디로 표현해 보자면 재미가 없었다.

드래곤을 제외하곤 아드리안을 쩔쩔매게 할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흑마법사 여럿을 작살냈다.

스승이라면 스승인 브리앙 마법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를 물어 보이는 족족 죽여 버린 것이다.

아드리안 덕분에 세상엔 흑마법사를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99%쯤 제거한 탓이다.

물론 그들의 마법서들 역시 모두 재가 되어버렸다.

아무튼 그러던 중 천재적인 발상으로 게이트 오브 디멘션(Gate of Dimension)이란 마법의 공식을 완성시켰다.

이는 다른 차원으로 오갈 수 있는 마법이다.

그리하여 아드리안은 여러 차원을 두루 다녀보았다.

그의 방문지 가운데에는 지구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구 역사로 6세기 경이다.

지구는 마나의 양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은 곳이다.

하여 9써클 마법을 시전해도 겨우 4써클의 위력밖에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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