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그래도 4써클 이상은 써본 적이 없다. 그걸 사용하면 무적임은 물론이고, 신으로 추앙받게 됨을 알기 때문이다.
하여 주로 1∼2써클 마법만을 사용하며 유람하였다.
이때 사용했던 유희명이 바로 멀린이다.
그러다가 카이엔과 비슷한 성품을 지닌 아더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건국된 나라가 영국이다.
아더 역시 왕이 된 이후 카이엔처럼 작위를 주려 하였다. 하나 멀린은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음을 깨닫고 있었다.
하여 카이엔 제국의 바세론 산맥으로 되돌아온 멀린은 심기일전하여 마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기존에 없던 새로운 마법들이 상당히 많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마법의 창시자쯤 된 것이다.
그럼에도 10써클 리절렉션은 요원하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멀린은 두어 번 하산하여 세상을 둘러보았다. 그러는 동안 나이 600이 되어 저술한 것이 이실리프이다.
심혈을 기울였기에 이것을 만드는 데 30년 정도 걸렸다.
이것을 만드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멀린은 자신의 마법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었다.
어쨌거나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니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프리실라와 두 아들이 죽은 지 500년 가까이 되었다.
따라서 이젠 리절렉션 마법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이루려던 바를 이룰 수 없게 되었다.
뼈까지 진토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인간으로서의 욕구들이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그의 나이 662세가 되었을 때 아드리안 후작가로부터 긴급한 연락이 왔다.
* * *
멀린 아드리안 반 나이젤 후작이 자리를 비운 동안 후작가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아드리안의 후손 가운데 하나가 드래곤 레어를 발견하면서 막대한 금은보화와 신병이기들을 얻은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최연소의 나이에 소드마스터가 된 검신 라플로니안의 검법서를 얻었다.
알고 보니 검신으로 추앙받은 라플로니안은 이미 마나의 품으로 돌아간 블랙 드래곤의 유희명이었다.
멀린 아드리안 후작의 마법이 터무니없이 강한 이유는 극도의 효율성 때문이다.
기존 마법과 달리 시전되는 마나의 배열이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다시 말해 현란한 수식어는 빼고 본론만 직접 말하는 것처럼 용건만 간단한 마법이 바로 멀린의 마법이다.
그렇기에 적은 마나로도 시전되는 마법이 많고 위력이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아드리안가에 지극히 강력한 검법서까지 부가되었으니 어찌 발전하지 않겠는가!
멀린이 아더와 지구를 유람하는 동안 카이엔 제국은 인근의 두 제국에 의해 침공을 받았다.
라이셔 제국과 크로완 제국이 바로 그 나라들이다.
그들이 연합하여 공격한 이유는 무역 불균형으로 인한 재정 손실 때문이었다.
카이엔 제국은 비옥한 농토가 많아 곡물의 수확량이 엄청나다. 반면 라이샤 제국은 오래전 빙하가 땅거죽을 휩쓸고 지나가 농사에 적합하지 않다.
크로완 제국의 경우는 한때 바다였던 땅이 융기한 곳인지라 염분이 많아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태반이다.
그러다 보니 식량이 부족하다.
따라서 이들 두 나라는 매년 카이엔 제국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곡물을 수입했다.
이렇게 하여 자금이 풍부하여지니 카이엔 제국은 점점 번성했고, 문물도 발전되어 갔다.
필요한 것은 거의 모두 자급자족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광산도 많아 필요한 자원은 국내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수출은 있으되 수입은 없는 나라인 것이다.
팔기만 하고 아무것도 사지 않으니 두 제국의 금은보화는 모두 카이엔 제국 쪽으로 흘러들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재화를 주느니 차라리 공격하여 농토를 반분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 두 제국의 뜻이었다.
전화에 휩싸인 카이엔 제국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였다. 너무 오랜 태평성대를 지냈는지라 군사력이 약해진 탓이다.
그냥 놔두면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멸망당할 상황이었다.
이때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인물이 있었다. 아드리안 후작가의 가주 애버튼 아드리안 반 나이젤이 그이다.
강력한 마법으로 수많은 전공을 쌓은 애버튼은 결정적인 순간 어쌔신의 공격으로부터 황제의 목숨을 구했다.
뿐만 아니라 두 제국의 황태자를 생포하는 공을 세웠다.
그 결과 전쟁은 끝났고, 라이셔와 크로완 제국은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내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애버튼 아드리안이 전쟁을 끝낸 것이다.
덕분에 후작가는 공작가로 승차되었다가 곧바로 대공가로 격상되는 경사를 맞았다.
그래서 나이젤은 더 이상 카이엔 제국의 영지가 아니다.
주변에 있던 다섯 개의 영지까지 흡수하여 아드리안 공국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 아드리안 공국은 위로는 카이엔 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좌측으로는 카이엔 제국으로부터 제후국 대우를 받는 미판테 왕국과 쿠르스 왕국을 두고 있다.
남쪽과 동쪽은 바다와 접해 있다.
어쨌거나 아드리안 공국은 주변 영지를 흡수한 덕에 웬만한 왕국과 크기가 비슷하다.
아드리안의 수정구에 긴급 지원을 요청한 사람은 현재의 공왕인 아민 폰 아드리안이다.
서쪽의 두 왕국과 남쪽 바다 건너에 있는 엘라이 왕국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요청이다.
아드리안 공국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카이엔 제국은 현재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또다시 무역 불균형으로 인한 두 제국과의 전쟁 중에 있기 때문이다.
두 제국은 또다시 황태자들이 잡혀가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기로 연합했다.
아니면 돈이 없어 쫄딱 망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민 폰 아드리안 공왕은 1년 정도는 버틸 힘이 있으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견뎌낼 수 없다고 하였다.
전 같으면 한걸음에 달려가서 10써클에 버금갈 위력을 지닌 마법으로 침략군 전체를 전멸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멀린 아드리안 반 나이젤도 사람이다.
9써클 대마법사이지만 사람인 이상 늙으면 죽는 법.
현재의 나이 662세이다.
언데드의 군주인 리치라면 몰라도 마법사라 할지라도 사람이 살아 있을 나이는 결코 아니다.
세 번의 신체 재구성으로 각기 200년의 수명 연장 효과를 보았지만 그 효력이 끝나가고 있다.
그래서 20대의 외모가 점차 늙어가고 있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쇠약해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아드리안은 자신만의 공간인 바세론 산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레어에 각종 마법진을 그려놓았다.
아직 못 이룬 10써클을 어떻게든 이뤄보려는 최후의 발악이라면 발악일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후손이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레어 밖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체내의 마나가 흩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라면 아드리안 공국에 당도할 때쯤이면 한 줌 마나도 없는 평범한 노인이 될 것이다.
이는 워프 마법을 실현시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현재로선 허울만 대마법사인 상황이다.
마음만 급할 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으니 얼마나 다급한 심정이겠는가!
프리실라와 두 아들이 병마에 고통받다 죽을 때에도 자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려는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그런 기분을 알기에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일찌감치 마탑을 세우고 후배들을 양성했다면 그들에게 명령만 내리면 될 일이다.
하나 아드리안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성품이다. 그렇기에 단 하나의 제자도 없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제자를 키워 그로 하여금 위기를 모면케 할 방법도 없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만들어진 것이 현수의 눈앞에 툭 떨어졌던 것이다.
아드리안은 통신을 받자 자신의 거처에 5써클 타임 딜레이(Time Delay) 마법을 걸었다.
외부와의 시간 비가 180대 1이 되게 하는 마법이다.
그렇게 하여 아드리안의 레어에서 6개월이 밖에서는 겨우 하루가 되었다.
그리곤 심혈을 기울여 하나의 아티팩트를 만들어냈다.
「전능의 팔찌[The Omnipotent Bracelet]」라 이름 붙인 바로 그것이다.
* * *
“흐아아암! 으응?”
깊은 잠에서 깨어난 현수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려다 멈췄다. 꿈속의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이다.
꿈을 꾸기는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젯밤의 꿈은 생생하다 못해 현실처럼 느껴진다.
“차암, 별일이네. 헉……! 이러다 늦겠다.”
시계를 본 현수는 헐레벌떡 일어나 욕실로 갔다. 불과 10분 후 현수는 늘 그렇듯 아침을 굶은 채 출근길에 나섰다.
현수가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은 전철역 근처이다.
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눈에 번쩍 뜨이는 인물이 있다. 업무지원팀 강연희 대리이다.
늘씬한 교구를 투피스로 감싼 그녀는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군중 속에서도 군계일학처럼 빛났다.
그런 그녀가 곧장 현수 쪽으로 다가온다. 하긴 목적지가 같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 강 대리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어머, 김현수 씨군요. 호호, 휴가 갔다는 말 들었는데, 잘 다녀오셨어요?”
“네에, 그냥 그렇게…….”
“어디 좋은 데 다녀오셨어요?”
나란히 걷게 되자 연희가 묻는다. 마땅히 할 말이 없어 의례적으로 묻는 물음일 것이다.
“네에, 조금 답답해서 태백산맥 중 덕항산이란 곳을 다녀왔습니다.”
“어머! 덕항산, 저도 그 산 알아요. 경치도 괜찮고 동굴도 여럿 있는 산이죠?”
“네, 맞습니다.”
“좋았겠어요. 아이, 부러워라.”
“네……?”
“피서철이 끝나서 사람들이 없었을 거 아니에요.”
“네, 그렇죠.”
“이번 휴가 때 전 친구들과 해운대엘 다녀왔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많던지……. 그래서 저도 내년부터는 휴가철 다 지난 다음에 휴가를 가려고 해요.”
“아……. 그렇군요.”
현수는 인파로 바글바글거리던 해운대를 촬영한 뉴스 장면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그 좋은 델 혼자 가시면 어떻게 해요?”
“네……?”
“호호, 현수 씨, 다음 주에도 덕항산 어때요? 말 나온 김에 거기 한번 또 가고 싶은데…….”
강 대리는 자신 때문에 현수가 박진영 대리로부터 어떤 견제를 받았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이다.
아무튼 가지런하고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환히 웃는 미인의 청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현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해맑은 미소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혀를 찼다.
‘헐……! 내가 원래 이렇게 마음이 약했나? 제길,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쩝. 근데 내가 어디가 어때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되게 기분 나쁜 말이네. 제기랄!’
현수는 느물느물한 표정을 짓던 박 대리의 얼굴이 떠오르자 입맛이 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 대리가 입을 연다.
“호호, 그럼 우리 언제 출발해요? 덕항산은 멀어서 당일치기는 조금 그런데……. 토요일에 출발했다가 일요일에 올까요? 아님 아예 금요일 밤에 출발할까요?”
말을 마치는 순간 바람이 불어 생머리가 흩날리자 향긋한 샴푸 냄새가 풍긴다.
현수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향기가 좋아서이기도 하다. 하나 뇌를 때리는 충격적인 상념 때문이다.
4장 꿈속에서 마법 익히기
‘뭐야? 난 남자로도 치지 않는다는 거야? 헐……!’
남자와 단둘이 숙박하는 여행을 가자는 말을 너무도 서슴없이 한다. 하여 강 대리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이런 심사를 짐작한다는 듯 생긋 웃음 짓는다.
“왜요? 가서 자고 오자고 하니까 이상해요?”
“네……? 아, 아니에요.”
“호호, 전 김현수 씨를 믿어요. 절대 늑대로 돌변하거나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요. 그러니 가서 자고 와도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설마 현수 씨도 늑대로 변하거나 그래요?”
“네에? 아, 아니요. 제가 그럴 리가요. 하하, 저 이래 봬도 참 순진한 늑대, 아니, 참 착한 사람입니다.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죠? 호호, 거 봐요. 제가 사람 하난 잘 보거든요. 김현수 씬 역시 믿음직스럽고 신뢰가 가는 사람이에요.”
‘뭐야? 좋은 대학 나온 걸로 아는데 어휘력이 이것밖에 안 되나? 믿음직스럽다는 거나 신뢰가 간다는 거나 그게 그거 아닌가?’
현수의 표정을 본 강 대리가 한마디한다.
“어머나……! 어떻게 해요? 말이 빠져서 그만 이빨이 헛나왔네요. 호호호! 조크였어요.”
“끄으응……!”
어르고 뺨을 친다는 느낌이다.
현수는 희롱당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 밝게 웃는 미인의 얼굴은 그런 걸 싹 잊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호호! 생각해 보니 금요일 저녁이 좋을 거 같아요. 제 차로 가요. 운전은 김현수 씨가 해주실 거죠?”
강 대리는 빨간색 경차가 있다. 그럼에도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전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그걸 이용하려면 금요일에 같이 퇴근해야 한다. 그리곤 강 대리의 짐을 싣고 자신의 집으로 간다.
거기서 산행을 위한 자신의 짐을 싣고 출발하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 강 대리가 또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