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7화 (7/1,307)

# 7

“그럼 우리 약속된 거죠?”

“네, 그, 그럼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말을 하는 동안 회사에 당도한 둘은 가벼운 시선 교환으로 주말 약속을 확정 짓고는 각자의 자리로 갔다.

곽 대리는 휴가를 마치고 온 현수를 위해 상당히 많은 일감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하여 하루 종일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이 업체 저 업체를 방문해야만 했다.

* * *

“어휴! 피곤해.”

문을 열고 들어선 현수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시원하게 냉각된 캔 맥주가 보인다.

원래는 물을 마시려 했는데 금방 마음이 바뀐다.

딱 !

꿀꺽! 꿀꺽!

“캬아아! 시원하다. 아흠, 이제야 살 것 같네. 휴우!”

오늘 하루 몹시도 더웠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더워 세상이 사우나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이 동네 저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 밀고 당기기를 했다. 그래서 몹시 지친 느낌이다.

며칠 쉬었다 와서 그러는지 더 피곤한 것 같다.

누우면 바로 잠들 것만 같은 피곤함에 도착 즉시 씻지도 말고 자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목구멍을 통과하자 모든 시름이 날아가는 느낌이다.

또한 하루의 노고가 단번에 풀리는 느낌이다.

옷을 갈아입고 찬물로 샤워했다.

그러는 동안 콧노래를 불렀다.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강 대리와 데이트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오늘 저녁 식사는 곽 대리의 일장 훈시를 들으며 돼지갈비로 때웠으니 더 먹을 것은 없다.

현수는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는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닦아냈다.

“흐음, 어디 보자.”

컴퓨터가 부팅되자 현수는 가장 먼저 증시 현황을 살폈다.

취직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받은 월급의 50%는 반드시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고 충고하셨다.

그리고 나머지 50%로 살아보라 하였다. 아직 당신이 돈을 벌고 있으니 효도 자금은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하나 어찌 그럴 수 있는가!

현수는 수령액의 20% 정도를 효도 자금으로 송금한다.

남은 30%로 생활비와 제세공과금을 내고, 그래도 남는 돈을 용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물론 쥐꼬리만큼 남는다.

따라서 비싼 술집에선 제 돈 내곤 술 마실 수 없다. 두어 번만 마셔도 한 달 용돈이 후딱 날아가기 때문이다.

대신 마트에서 캔 맥주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이러면 좋은 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술집보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사는 게 훨씬 싸지 않은가!

둘째, 마시고 싶으면 아무 때나 마실 수 있다.

냉장고 문 열 기운만 있으면 된다.

셋째, 귀찮게 슈퍼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비가 쏟아지는 밤, 팬티 바람으로 있다가 갑작스레 술 생각이 날 때가 있다.

하여 벗어놨던 옷 전부 다시 걸치고 슬리퍼 직직 끌면서 슈퍼를 가본 사람들만 이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잘 안다.

올 땐 왜 그렇게 비닐봉지에 담긴 맥주가 무거운지 손가락도 아프다.

“이런 빌어먹을……! 왜 또 내 거만 떨어진 거야?”

요즘 코스피 지수는 매일 조금씩 오른다. 그런데 현수가 유망하다 판단하여 사들이는 종목들은 반대로 떨어지고 있다.

하여 누군가의 조언대로 아주 견실한 기업, 그러니까 망하고 싶어도 쉽게 망할 수 없는 거대 기업의 주식을 사들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들이고 나면 오르던 주가가 떨어진다.

그러다 원금마저 날릴까 싶어 매도하고 다른 종목을 사면 팔았던 것들이 상한가로 치솟는다.

그럴 때마다 열을 받는다.

하여 주식을 때려치우려는 마음을 여러 번 먹었다.

하나 어디서 고수익을 올리겠는가!

은행 예금 금리는 물가 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은행에 돈을 저금해 놓으면 이자가 붙기는 하지만 그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그렇다 하여 선물거래를 할 수도 없다. 거래를 위한 증거금만 1,500만 원이 필요한데 그만한 돈이 없기 때문이다.

“에이, 이걸 확 팔아, 말아? 그냥 팔까? 아냐. 팔고 나면 또 상한가를 칠지도 몰라. 마음 같아서는 확 팔아버리고 싶지만 징크스가 있어서 참는다. 알았어?”

현수는 모니터 화면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여기저기 웹서핑을 하다가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었다.

이제 눈을 좀 붙여야 한다. 그래야 내일 하루를 버틸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강 정리를 마친 현수는 침대에 누워 얇은 이불을 덮었다. 그리곤 고요히 눈을 감는다.

그때 문득 드는 상념이 있었다.

“살기 위해서 회사를 다니는 거야, 아님 회사를 다니기 위해 사는 거야? 아! 증말 싫다. 목구멍이 포도청만 아니면 확 때려치우는데. 에이, 쓰버럴! 잠이나 자자.”

눈을 감은 현수는 불과 3분 만에 잠이 들었다. 참 건강한 청년이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사람은 손끝이나 발끝을 통해 열을 방산하는 시스템이 작동되면 체내의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서서히 졸리게 된다. 그러다 잠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냉한 체질인 사람, 다시 말해 손끝이나 발끝이 차가운 사람들은 열을 방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면증에 걸리기 쉬운 것이다.

아무튼 현수는 정상적이다. 그렇기에 잠이 들면서 서서히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약 1도 정도 체온이 내려가자 왼쪽 손목 부위에 낮엔 보이지 않던 팔찌 비슷한 것이 나타났다.

은백색인 이것엔 아홉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중 두 구멍엔 붉고 검은 보석이 각각 박혀 있다.

“인연자여! 이계의 인연자여!”

“으응? 누구? 아! 멀린 대마법사님이시군요.”

“내가 자네에게 도움을 청했고, 자네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하였네. 안 그런가?”

“네, 그랬습니다. 도와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맙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게나.”

“네, 알겠습니다.”

“자네 혹시 마나를 아는가?”

“마나요? 혹시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그 마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자네가 말하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마나는 마법의 근원이 되는 것이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건 제가 아는 겁니다.”

현수는 심심할 때 읽었던 판타지 소설들을 떠올리고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멀린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그럼 이제부터 자네에게 마나심법을 가르쳐 주겠네. 내가 하는 말을 잘 기억하게.”

“네? 마나심법이요? 알겠습니다.”

대답은 이렇게 하였지만 현수는 내심 웃었다.

‘헐! 요즘엔 꿈도 연속극처럼 꾸는군. 그나저나 이거 재밌다. 이걸 확 소설로 써봐? 요즘 작가 되기 쉬운 세상이라고 했는데. 하여간 잘 들어보자.’

“마법이란 우주의 근원으로부터…….”

멀린의 설명이 이어졌다. 모든 설명이 끝난 후 현수는 멀린이 시키는 대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곤 가르쳐 주는 대로 마나를 느끼기 위해 애를 썼다. 하나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이런 현수를 바라보던 멀린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곤 손가락을 튕기며 무언가 주문 비슷한 것을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현수의 손목에 채워져 있던 팔찌의 검은 보석에서 빛이 났다.

그 순간 현수는 명문혈로부터 척추를 따라 무언가가 찌르르한 느낌을 주면서 몸 전체로 번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깜짝 놀라 눈을 뜨려는 순간 멀린의 제지가 있었다. 그리곤 또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매일 밤 잠이 들면 멀린이 꿈에 나타났다.

그리곤 마나심법이 능숙해지도록 자세도 교정해 주고 자세한 설명도 하는 나날이 지났다.

현수는 나날이 재미있었다. 밤마다 한바탕 연속극이 방영되는데 어찌 재미있지 않겠는가!

전에는 꿈을 꾸고 나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는데 이번엔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하여 가끔 A4 용지에 지난밤에 배웠던 것들을 끼적거려 보기도 했다.

써놓고 나면 그럴듯하다. 하여 꿈치고는 참 대단한 꿈을 꾸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이어지는 꿈의 내용에 매우 신기해했다.

어쨌거나 현수는 하룻밤 자고 일어난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꿈속과 현실 사이에 시간차가 있기 때문이다.

현수의 하룻밤 꿈은 실제 시간으로 따지면 약 50일에 해당된다. 꿈속에 타임 딜레이 마법을 건 것이다.

멀린이 이 방법을 취한 것은 현수가 실제 마법을 익히려 할 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멀린은 지구를 방문한 적이 있기에 마나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현수가 1써클을 이루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하 1년으로 잡았다. 만약 재능이 없다면 3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특단의 조치로 꿈속의 시간을 조절하는 타임 딜레이 인 드림(Time Delay in Dream) 마법을 건 것이다.

이는 온 우주를 통틀어 오로지 멀린만이 시전할 수 있는 신개념 마법이다.

어쨌거나 시간이 흘러 예정대로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강연희 대리와 덕항산 산행을 다녀왔다.

이틀을 자고 일요일에 귀경했는데, 물론 각기 다른 방에서 잠이 들었다. 여행 중에도 연속극은 이어졌다.

마지막 날 밤, 드디어 써클 형성에 성공했다. 현수가 지구엔 단 한 명도 없는 1써클 마법사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현수는 자신의 팔목에 채워진 팔찌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전능의 팔찌는 평상시엔 보이지 않지만 팔뚝에 마나를 모으면 눈에 보이게 된다.

은백색인 이것엔 현재 두 개의 보석이 박혀 있다.

빨간 것은 통역 마법이 구현되도록 하는 마법진에 마나를 공급해 주는 최상급 마나석이다. 그래서 현수가 멀린과 아무런 장애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일반적으로 언어를 익혀 대화를 시도했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어찌 며칠 배운 언어로 심오한 내용이 담긴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검은 보석은 마나가 희박한 곳에서도 마나를 느낄 수 있도록 돕는 한편 1써클 통역 마법인 랭귀지 인터프리테이션이 원활히 발휘되도록 마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무튼 현수는 이제 우주인과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머지 일곱 개의 구멍과 상성이 맞는 보석처럼 생긴 최상급 마나석은 따로 준비되어 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선 먼저 1써클을 이뤄야 한다.

최소한 1써클이 되어야 전능의 팔찌에 걸려 있는 아공간을 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1써클 마나만으로도 열 수 있는 아공간은 6써클 마법 크리에이트 스페이스(Create Space)로 만든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최소 6써클은 넘어야 이것을 사용할 수 있지만 특별히 1써클로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했다.

강제로 공간을 왜곡시켜 만든 이것의 크기는 마차 열 대 분량의 물품을 넣을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것의 안쪽엔 여러 물품이 넣어져 있다.

보존 마법이 걸려 1,000년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 음식과 물이 있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굶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카이엔 제국에서 사용하는 금화와 은화들이 있다. 그리고 작지만 길쭉한 상자 하나가 있다.

이것엔 일곱 개의 보석이 담겨 있다.

그중 노란색은 하부 지름이 약 1㎝ 정도 되는 것이다.

이것을 전능의 팔찌에 끼우면 또 다른 아공간을 열 수 있게 된다.

9써클 마법 크리에이트 코스모스(Create Cosmos)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크기를 가진 아공간이 그것이다.

규모를 가늠하자면 약 20만㎦ 정도 된다. 이것은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체를 1㎞ 깊이로 파낸 것과 같다.

실로 광대하며 광활한 크기의 공간이다.

이것의 안에는 멀린 아드리안 반 나이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우선 멀린이 저술한 희대의 역작이자 인세에 없었던 절세의 마법서 「이실리프(Yisilipe)」가 있다.

이것의 표지엔 허락된 자만 펼쳐 볼 수 있다는 경고문이 쓰여 있다. 또한 보호 마법이 걸려 있다.

물에 젖지도 않고 불속에 넣어도 타지 않는다. 당연히 물리적인 훼손이 불가능하다.

금강석보다도 더한 경도가 부여된 때문이다.

만일 허가를 받지 않은 자가 이것을 강제로 열려고 하면 라이트닝 퍼니쉬먼트(Lightning Punishment)가 발현된다.

이것은 9써클 궁극 마법이다.

온 우주를 통틀어 어느 누구도 결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초강력 살상 마법이다.

설사 폴리모프를 풀고 본신으로 돌아간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무방비라면 라이트닝 퍼니쉬먼트를 비켜가진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발현되면 이실리프로부터 100m 내의 모든 존재는 소멸된다. 좁은 공간 속에서 수만 번이나 벼락이 치는데 어찌 생물체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뭣도 모르고 이실리프에 손을 대는 순간 본인은 물론이고 동료들까지 잿더미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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