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2화 (12/1,307)

# 12

뭘 잘하는지 잘 안다는 말은 순 뻥인 듯하다.

아무튼 웨이터가 알 수 없는 메뉴들을 쭉 대자 중간중간 선택을 한다. 어떤 음식인지는 나와 봐야 알 것 같다.

마늘과 올리브 오일을 곁들인 소고기 콩소메, 다진 해산물로 채운 가지 크림소스의 라비올리가 주문되었다.

그리고 겨자 크림소스로 맛을 낸 바다가재와 오렌지 소스로 맛을 낸 구운 바나나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 또 뭔가를 주문했는데 그건 알아듣지 못했다.

‘콩소메8)는 뭐고 라비올리9)는 또 뭐지? 그리고 뭔 놈의 음식을 이렇게 많이 시키는 거야? 종류도 많네.’

강 대리가 주문하는 동안 현수는 어색한 시선으로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옷을 걸친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여유로워 보인다.

이런 데서 식사를 할 정도면 잘사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부러웠다. 그런 그들이 이쪽 테이블을 보고 있다.

아름다운 강연희 대리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주문을 받은 웨이터가 갔다.

“기대하세요. 아주 맛있을 거예요. 여기 셰프 솜씨가 아주 좋다고 소문이 났거든요.”

“네, 덕분에 오늘 제 입이 호강하려나 봅니다.”

사실이다. 현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집안이 부유한 것도 아니다.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한 이런 식당은 아마 평생토록 단 한 번도 오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했다.

“저어, 잠시 화장실 좀…….”

“네, 다녀오세요.”

음식을 먹기 전이니 손도 씻고 매무새도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테이블 곁에 서 있다. 현수는 다가감을 멈춘 채 잠시 기다렸다.

그때 강 대리의 음성이 들린다.

“죄송한데요, 저 일행 있어요.”

“……!”

사내가 뭐라 이야기하는데 등지고 있어 그런지 잘 들리지 않는다. 이때 강 대리가 또 말을 한다.

“네, 제 약혼자와 왔어요. 지금 화장실에 갔거든요? 그러니 이만 물러나 주시면 좋겠네요.”

보아하니 누군가 강 대리의 미모에 반해 치근거리는 모양이다. 어찌 기사도를 발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연희 씨, 이분, 아는 분이야?”

“어머, 현수 씨! 보세요. 제가 일행이 있다고 했잖아요.”

연희의 시선을 받은 사내는 현수를 힐끔 바라보고는 낮은 침음을 낸다.

“으음.”

몸을 돌려 현수를 바라보는 사내는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인다. 걸친 옷하며 구두, 장신구 등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잘사는 집 자식으로 보인다.

“허험, 약혼녀와 식사를 해야 하니 더 이상의 용무가 없다면 비켜주셨으면 합니다.”

말을 마친 현수는 당당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사내는 잠시 째려보는 듯하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물러선다.

“저, 잘했죠?”

“호호, 네에. 눈치가 참 빠르셔요.”

“근데 누구예요?”

“삼화기업이라는 회사 회장의 막내아들이래요. 저보고 시간있으면 통일로로 해서 파주 쪽으로 드라이브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현수는 문득 떠오르는 어휘가 있었다.

“야타족이군요.”

“야타족이요? 그게 뭐죠?”

“그건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근데 저 친구, 차가 뭐라고 하던가요?”

“람보 뭐라고 하던데……. 으음, 람보로 시작하는 자동차가 뭐가 있죠?”

“아마 람보르기니를 말하는 걸 겁니다.”

“맞아요, 람보르기니. 그거 좋은 건가요?”

“이탈리아의 스포츠카 제조 회사에서 만든 겁니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비콜로레라는 모델의 가격은 약 3억 5천만 원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3억 5천만 원이요?”

“네. 조금 비싼 차죠.”

“조금 비싼 게 아니라 아주 비싼 차군요. 근데 그런 걸로 유혹하면 제가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나 봐요.”

“근데 실수했군요. 강 대리님은 람보르기니가 뭐하는 건지도 몰랐으니까요.”

“네, 전 처음엔 드라이브 가서 람보르기니라는 음식을 먹자는 걸로 알아들었어요.”

“네에? 람보르기니를 먹어요? 하하! 하하하!”

현수가 조금 큰 소리로 웃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그중엔 삼화기업 회장의 막내아들이라는 야타족도 있었다.

“근데 조금 전에 말했던 야타족이 뭐예요?”

“야타족이란 조금 괜찮은 차를 타고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여성을 보았을 때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자고 꼬시는 족속들을 칭하는 말이에요. ‘야, 타!’ 그러면 그런 차에 타는 골빈 여자들이 좀 있거든요.”

“그래요? 근데 차를 타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좋은 차에 태워준다는 건데 그게 이상한 건가요?”

“그냥 그러면 좋은데 그게 성적 만족을 위해 여자들을 태우려는 것이라는 게 문제지요.”

“아, 그렇군요. 알았어요. 야타족이 뭔지. 흥!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이 절 만만하게 본 모양이네요.”

“아마 그건 아닐 겁니다.”

“아니라뇨? 그걸 김현수 씨가 어떻게 알죠?”

“강 대리님이 어디 보통 미인이십니까? 그러니 마음에 들어서 연애하자고 온 걸 겁니다.”

“아무튼 조금 전엔 잘하셨어요. 어때요? 잠깐이지만 제 약혼자가 되어보신 소감이?”

“으음! 하늘을 나는 기분이랄까? 아니,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었습니다.”

“좋았단 뜻이죠?”

“물론입니다. 하하하!”

둘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쳤다. 강 대리의 말대로 음식은 맛이 매우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진한 향기를 뿜는 에스프레소를 사이에 두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질문이 시작되었다.

그간 왜 몸 아프다는 걸 숨겼느냐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곤 요양하러 언제 출발할 것이며, 어디로 갈 것인지, 언제 돌아올 것인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다 나으면 산행을 또 할 수 있는지도 물었다.

현수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요양 준비를 하는 데 며칠 걸릴 것이며, 갖춰지는 대로 떠날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강원도에 머문다 하였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영원한 이별을 하는 느낌이 든다.

사실 연희에겐 서너 달이 되겠지만 현수에겐 45년 내지는 60년이나 되는 장구한 세월이기 때문이다.

헤어지기 전 현수는 무례한 부탁 하나를 해도 되느냐고 했다. 이에 연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게 무어냐고 물었다.

하여 사진 한 장을 요구했다.

연희는 그게 왜 필요하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현수의 이메일 주소를 물었다. 지금은 가진 것이 없으니 집에 가는 대로 전송해 준다는 것이다.

커피까지 다 마신 둘은 산책하듯 호텔 정원을 걸었다. 그리곤 헤어졌다.

원룸으로 돌아온 현수는 연희가 보낸 이메일을 열었다. 거기엔 무려 200여 장이나 되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산행을 가서 찍은 것도 많고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도 많았다.

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있었다.

현수 씨!

그간 함께하는 산행이 늘 즐겁고 행복했어요.

같이 있으면 믿음직스럽고 기분이 좋았거든요.

빨리 다 나으셔서 또다시 같이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연희는 어서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답니다.^^

동봉한 사진을 보면서 저를 잊지 마셔요.

―현수 씨를 00하는 연희가.

이날 현수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00 때문이다.

사랑, 좋아, 애모, 연모 같은 단어가 들어갈 수도 있지만 미워, 증오, 싫어 같은 반대 의미의 단어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현수는 USB에 연희의 사진 파일을 담아 사진관을 찾았다. 그리곤 그것들을 각기 열 장씩 인화했다.

45년 동안 오매불망 바라볼 요량이다.

일요일 오전, 현수는 회사의 자재 창고로 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니 안이 휑하다. 최근 들어 공사 현장 여럿이 개설되었기에 안에 있는 것들 대부분을 반출해 간 까닭이다.

잠시 후, 마트의 배달 차량이 줄지어 들어온다. 워낙 양이 많아 파레트에 올려왔다고 한다.

현수는 익숙한 솜씨로 지게차를 운전하여 모든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일일이 수량 확인을 하였고, 인수했다는 사인을 해주자 모두 돌아갔다.

현수는 음식물 중 상하기 쉬운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등만 골라 아공간에 밀어 넣었다.

미리 당부한 대로 한 번에 먹을 양만큼씩 세심하게 진공 포장되어 있어 기분이 좋았다.

7장 지구 유일의 5써클 마법사

일련의 작업이 마쳐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예약한 트레일러 네 대가 창고 앞마당으로 들어선다.

이것엔 현수가 보증금을 지불한 40피트 컨테이너가 실려 있다. 12m×2.3m×2.3m짜리이다.

20개씩 든 라면을 박스로 채워 넣을 경우 3,840상자, 즉 76,800개를 담을 수 있다. 한 사람이 하루에 라면 세 개씩 먹을 경우 70년 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어쨌거나 상하기 쉬운 것들은 이미 아공간에 넣었다.

워낙 양이 많아 미어터질 지경이 될 때까지 넣었다. 그리고도 컨테이너 네 개가 가득 찼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현수가 덕항산 인근 공터에 내린 것은 오후 2시경이다. 트레일러는 컨테이너들만 내려놓고 사라졌다.

짐을 다 내리면 와서 빈 컨테이너를 가져가기로 했다.

혼자 남겨진 현수는 동굴로 가서 고기 종류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서둘러 되돌아와 다른 음식물들을 옮겼다.

두 번을 왕복했더니 기진맥진이다. 저녁나절 여관을 찾았다. 그리곤 씻지도 않고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현수는 동굴까지 네 번이나 더 왕복했다.

등산로도 없는 곳이다. 하여 다리에 알이 배기는 것 같고 쥐까지 났다. 그럼에도 아직 옮길 것이 많이 남았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서야 간신히 모두 옮겼다.

현수는 트레일러 기사들에게 전화해서 컨테이너를 가져가라고 하였다.

동굴로 되돌아온 현수는 서둘러 앱솔루트 배리어 마법을 구현시켰다. 그리곤 타임 딜레이 마법 또한 구현시켰다.

이렇게 하면 음식이 상하는 속도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밖에서 하루면 상하는 음식을 결계 안에 넣어둘 경우 180일이 지나야 상하게 된다.

그래도 아공간에 넣어둔 고기 종류는 꺼내지 않았다. 그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집기류 정리다.

침대를 놓고 간이 화장실까지 자리를 잡았다.

쏟아낸 용변은 며칠에 한 번씩 앱솔루트 배리어를 해제한 뒤 처리해야 할 것이다.

현수는 제 방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챙겨왔다. 옷은 물론이고 거울도 떼어 왔 왔다. 심지어 걸레도 가져왔다.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현수의 원룸은 현재 휑하니 비어 있다. 덩치 큰 장롱 같은 걸 빼면 거의 모든 것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거울 등은 마땅히 걸 만한 곳이 없기에 일단은 바닥에 두었다.

현수는 모든 것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곤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멀린의 음성이 들린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였음에도 많이 창노해진 듯한 음성이다.

“모든 준비가 갖춰졌는가?”

“네, 아드리안 대마법사님!”

“좋네, 이제부터 수업을 시작하겠네.”

“그런데 마법사님, 음성이 왜 이런지요? 혹시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닌지요?”

“그런 건 알 필요 없네. 우선 메모리 마법을 가르쳐 주겠네. 잘 듣고 이것을 익히게. 완전해졌다 싶으면 그때 다시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게.”

“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저쪽에서 말해주기 싫으면 못 들을 것이고, 묻지 않더라도 알려줄 거면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난해한 내용을 담은 마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메모리(Memory) 마법, 1써클 마법이다.

한 번 듣거나 본 것을 반영구적으로 기억하게 해준다. 마나 배열의 순서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수가 다시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은 것은 결계 안 시간으로 3일이 지나서였다.

“메모리 마법을 다 익혔는가?”

더 창로해진 음성이다. 하나 묻지 않았다.

“네, 다 익혔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가?”

“지구 시간으로 약 32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오로지 마법 익히기에 몰두한 시간이다.

“괜찮군.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메모리해 두게.”

“네, 말씀만 하십시오.”

“내가 기운이 없어 여러 번 반복할 수 없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듣게. 알겠는가?”

“물론입니다. 세이경청하겠습니다.”

“세이경청? 그건 무슨 뜻인가?”

“네, 귀를 깨끗이 씻고 잘 듣겠다는 겁니다.”

“그래, 그래야지.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네. 마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멀린 대마법사는 한 번 설명할 때마다 거의 세 시간씩 했다. 현수는 메모리 마법으로 이것들을 모두 기억하였다.

그럼에도 혹시 잊을까 싶어 들었던 내용을 암송하고 이를 노트북과 헤드셋을 이용하여 녹음했다.

이런 설명이 거의 열흘에 걸쳐 있었다.

30시간이나 설명한 것이다. 점차 멀린의 음성에서 힘이 빠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현수는 묻지 않았다.

그런 걸로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수는 멀린이 가르쳐 준 마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진짜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곤 오로지 마법에만 몰두한 것이다.

멀린이 통상적인 마법서들을 볼 수 있도록 하지 않은 것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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