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하여 가장 먼저 마나 집적진을 그리라고 한다. 다시 말해 마나가 모여들게 하는 마법진을 그리라는 것이다.
연후에 앱솔루트 배리어 마법으로 결계를 치고 다시 타임 딜레이 마법을 실현시키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마법을 익혀야 아드리안 공국이 멸망당하기 전에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린의 마법진은 특이하게도 마나석의 가루로 그리는 게 아니다. 마나석 그 자체를 촘촘하게 늘어놓아 진을 완성하도록 되어 있다.
아직 마법진의 정수를 모르기에 현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만 실상 멀린의 마법진은 대단한 효용이 있는 것이다.
마나석을 소모해 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멀린의 마법진을 그리면 마나 집적진뿐만 아니라 세상엔 없는 5써클 오토 리차지 마법진까지 같이 그리게 된다.
진 위에 다른 진이 겹치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럼에도 두 진 사이에 충돌이 없도록 했다. 가히 천재적 발상에 의한 혁신적인 마법진 설계이다.
이럴 경우 마나는 마나대로 집적대고, 진을 유지하기 위해 늘어놓은 마나석은 진을 위해 사용한 마나보다도 많은 양의 마나를 충전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멀린의 마법진은 마나석이 상당히 많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소모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현수는 멀린이 그려놓은 대로 마나석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곤 결계를 치고 타임 딜레이를 걸었다.
마나심법을 시전하자 현수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마나의 해일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엔 물속에 잠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황할 정도였다. 그 상태에서 이실리프를 펼쳤다. 그리곤 멀린이 수첩에 기록한 순서대로 마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당연히 1써클 마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상의 마법사들은 1써클 마법을 약 스무 가지 정도 익힌다.
라이트, 윈드, 파이어, 파이어 애로우, 아이스 애로우, 아쿠아 애로우, 윈드 애로우 등등이다.
그런데 멀린의 마법은 약 서른여 가지이다.
2써클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엔 열다섯 가지밖에 없지만 이실리프엔 스물다섯 가지 정도가 기록되어 있다.
3써클, 4써클, 5써클도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외부에서의 하루는 결계 안에서의 6개월과 같다.
하여 외부 시간으로 6일, 내부 시간으로 3년 6개월 정도 흘렀을 때 결계 밖으로 나왔다.
연후에 차원 이동하였는데 조금 이상하다. 예상했던 날짜는 12월 9일인데 12월 4일이다.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현수는 다시 차원 이동하여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현수는 모르지만 멀린의 레어는 이미 타임 딜레이가 걸려 있는 상태이다. 멀린이 죽었음에도 마법이 유지되는 것은 거대한 마법진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레어 곳곳에 마나석으로 이루어진 대형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다.
그것은 앱솔루트 배리어와 타임 딜레이, 그리고 7써클 마나 집적진인 어큐므레이션(Accumulation)이다.
그 안에 다시 결계가 쳐진 것이고, 타임 딜레이 마법이 중첩된 것이다. 원래는 불가능해야 한다.
하나 멀린이 누군가!
멀린의 마법은 시전자가 다르면 중첩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지구 시간으로 하루지만 결계 안에서는 엄청난 시간이 되어버린다.
이론적으로는 1일×180×180=32,400일(약 88년)이다.
두 개의 진이 설치된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설계인지라 손실이 발생되어 지구에서의 하루가 약 30년이 된다. 그래도 1대 10,950이라는 어마어마한 타임 딜레이가 되는 셈이다.
현수는 두 번이나 결계를 나와 차원 이동해서 날짜를 확인했다. 그럼에도 예상했던 시간이 되지 않았다.
하여 자신이 들어가 있었던 시간과 밖에서의 시간을 직접 측정했다. 그 결과 1대 10,000쯤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엔 깜짝 놀랐다.
사람의 한평생을 80년으로 잡는다면 이 안에선 80만 년이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5써클까지 마스터한 뒤 6써클에 도전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어 6써클도 마스터할 수 있었다.
7써클을 이루기 전 현수는 지구로 되돌아왔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소모한 끝에 6써클 마스터가 되고, 7써클을 이루려는 찰나에 지겨움을 느낀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히 강 대리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사무치도록 그리웠던 여인이기에 차원 이동 즉시 연락한 것이다. 물건을 사러 강원도 삼척시에 나왔는데 생각이 나서 연락했다고 했다.
물론 되게 반가워했다.
강 대리가 처음 전화를 받을 때 현수는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30년 가까운 세월 만에 처음으로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오죽하겠는가!
통화를 마친 현수는 스포츠 용품점에 가서 온갖 운동 기구를 사들였다. 마법만 익히느라 근력이 너무 떨어졌음을 체감한 때문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운동을 위해 각종 동영상과 관계 자료들을 구입해 갔다. 그리곤 근력 운동 및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날짜 가기를 가다렸다.
10장 라면 1,400만 봉지
지구 시간으로 2012년 12월 10일 새벽 3시 10분.
백두마트 송파점이 털리고 있다.
연막 소독이 실시되는 동안 거대한 점포 내부의 모든 것들이 깡그리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신문은 물론이고 방송까지 온통 이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누군가의 범행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범인은 물론이고 방법조차 알 수 없는 희대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CNN 같은 외신조차 비중있게 이번 사건을 다뤘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거대한 할인마트의 모든 상품이 사라지는 사건을 어찌 해외토픽으로 다루지 않겠는가!
백두마트를 계열사로 둔 백두그룹은 겉으로는 울상을 지었지만 속으론 웃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기업 홍보를 하는 효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는 도난당한 물품 가액 전체보다도 컸다. 그렇기에 표정 관리하느라 애썼다.
아무튼 이날, 백두마트 본점에선 모든 영업점에 긴급 공문을 보냈다.
예정되어 있던 연막 소독을 취소하라는 것이다.
다음날, 신문을 보던 현수는 뭔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인터넷으로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리곤 차원 이동을 했다.
현수가 결계 안에서 마법을 익히며 몸을 만드는 사이 한반도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라니냐로 인한 기상 이변이다.
한겨울에 마치 여름철 폭우 같은 엄청난 양의 비가 뿌려진 것이다. 일일 강수량이 무려 600㎜이다.
3일 간 내린 빗물의 총량은 1,800㎜이다.
한반도의 1년 평균 강수량은 약 1,250㎜이다. 그것의 1.5배가 불과 3일 만에 쏟아진 것이다.
이로 인해 홍수가 난 곳이 있으며, 도로가 유실되어 교통이 마비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겨울인지라 비가 내릴 경우 그대로 흘러내렸다. 그런데 하천을 정비한다면서 파헤쳐 놓은 것이 피해를 키웠다.
보를 설치해 놓은 곳은 인근 농지로 물이 흘러넘치게 하는 화를 불렀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곳은 공사 이전과 거의 다름없이 변해 버렸다.
덕분에 인근 농지나 주택가가 진흙 밭으로 변했다.
당연히 비 피해 때문에 난리법석이 벌어졌다.
어쨌거나 사흘 만에 폭우는 멈췄다.
그 다음날, 현수는 다시 한 번 차원 이동을 했다.
그리곤 새벽이 되자 백두그룹의 계열사인 제과 공장과 라면 공장을 차례로 방문했다.
그곳엔 지난 사흘 간 생산한 것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공장 앞 도로가 유실되어 반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라면 공장의 경우 1일 생산량이 약 400만 봉지이다.
기존 재고에 3일치 생산량을 더해 모두 1,400만 봉지가 창고 가득 쌓여 있었다.
그런데 모두 사라졌다.
제과 공장의 경우엔 과자뿐만 아니라 껌이나 캔디, 초콜릿 외에도 빙과류 같은 것들도 생산한다.
이곳에서 사라진 껌과 캔디만 180톤이다.
과자는 570톤, 빙과류는 600톤이 사라졌다.
신문과 방송에 희대의 절도 사건에 대한 기사가 났다.
외신 또한 이 사건을 다루기는 했다. 하나 워낙 비 피해가 컸기에 세인들의 관심은 전만 못했다.
그런 가운데 12월 17일엔 백두마트 수원 평촌점의 모든 상품이 털리는 사건이 또 벌어졌다. 내부 수리를 위해 3시간쯤 영업을 중지했을 때 일어난 일이다.
이번엔 연막 소독을 하지 않았다. 하여 사건 직후 CCTV를 살폈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든 CCTV의 가동이 중지된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백두마트가 사람들 모르게 못된 짓을 했고, 천벌을 받았다는 소문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당한 기업 모두 같은 백두그룹 소속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하자.”
현수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았던 백두마트에 대한 복수를 끝내기로 한 것이다.
“흐음, 7써클 마스터가 되었으니 아르센 대륙으로 가서 아드리안 공국의 상황을 살펴봐야겠어.”
2012년 12월 18일.
현수는 차원 이동하여 멀린의 레어에 당도하였다.
멀린이 말했던 7써클 마스터를 이루었고, 희미하지만 여덟 번째 고리가 형성되려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아드리안 공국의 위기에 개입해야 한다. 이에 현수는 한 번도 열지 않았던 레어의 문 앞에 섰다.
“자아! 이제 7써클 마스터가 된 내가 간다. 아드리안 공국이여, 조금만 기다리시라.”
말을 마친 현수가 레버를 당겼다.
우르르르르릉 !
낮은 저음을 내며 거대한 석문이 옆으로 밀려간다. 그와 동시에 강렬한 햇빛이 눈부시다.
아르센 대륙에서 최초로 느껴보는 햇빛이다.
“흐으으음! 아, 공기, 진짜 맑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고, 비교적 청정하다는 강원도에서조차 느낄 수 없는 청량함이 폐부 깊숙이 파고든다.
그런데 조금 서늘하다.
“여기도 겨울인가? 다행이군. 계절이 같아서 혼동할 일은 없겠어.”
현수는 마법사들이 걸치는 로브를 걸치고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아르센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다닐 순 없지 않은가!
하나 겉만 그렇다.
속에 입은 옷은 한국에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사각팬티와 러닝셔츠, 그리고 폴라플리스 재질의 등산복을 입었다. 바지는 검정색 기모 바지이며, 등산 양말을 신었고, 등산화를 신은 상태이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방검복을 걸치고 있다. 최첨단 제품이라 비싸게 주고 구입한 것이다.
아무튼 현수는 멀린이 남긴 스태프를 들고 있다.
약 2m 50㎝쯤 되는 것으로 들고 다니면 폼은 나지만 거치적거린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 그의 옆구리엔 장검 한 자루가 패용되어 있다. 아공간에 있던 것 중 제법 좋아 보이는 것을 골라서 찬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현수의 체형이 달라졌다.
전엔 키만 크고 마른 몸매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가슴 부위가 제법 두툼해졌다. 다리의 근육 역시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달되었다.
런닝머신과 벤치프레스, 덤벨 등으로 한동안 근력 키우기에 몰두한 덕분이다.
시간이 널널해지자 현수는 발전기를 구입했다. 하여 레어 안에서 전기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걸로 DVD 플레이어를 가동시켰다. 그리곤 효과적인 운동법 동영상을 보며 운동했다.
그 결과 제법 탄탄하고 멋진 근육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같은 기간 동안 또 다른 수련을 병행했다.
해동검도를 비롯한 각종 검법 DVD를 구해 검술을 수련했던 것이다. 정수를 모르기에 고수까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검을 다루는 정도는 되었다.
이곳 아르센 대륙을 기준으로 하면 소드 익스퍼트 중급쯤 되는 수준이 된 것이다.
검에 마나를 주입하는 방법을 몰라서 이 정도이다.
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확실한 써클과 한 개의 희미한 써클이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단전 가득 마나가 채워져 있다.
마나 집적진에서 체력 단련과 검법을 연마하는 동안 단전호흡을 병행한 결과이다. 따라서 검에 마나를 실을 수 있게 되는 순간 소드 마스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현재의 실력은 정식 기사로 채용될 수준이다. 따라서 폼으로 검을 패용한 것은 아니다.
“흐으음! 동남쪽으로 곧장 1,500㎞쯤 가면 아드리안 공국이라고 했지? 좌표를 몰라 텔레포트를 할 수 없으니 가는 동안 이곳을 경험해 보면 어떤 곳인지 알겠군.”
멀린이 죽으면서 딱 하나 실수한 것이 있다면 방금 현수가 언급했던 텔레포트 좌표를 누락시킨 것이다.
또한 레어에 곧장 아드리안 공국 왕성으로 갈 수 있는 마법진이 있음에도 이를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너무도 당연해서 잊은 것이다.
어쨌거나 그 결과 현수는 무려 1,500㎞를 걸어가야 한다.
도로가 없으니 자동차는 있어도 무용지물이고, 오토바이, 또는 산악자전거는 나름대로 쓸모가 있기는 하겠으나 아직은 사용할 생각이 없다.
얼마나 오래 아르센 대륙에 머물지 모르니 하나하나를 세심히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나중에 평화로워지면 여기다 전원주택 하나 지을까? 아, 상쾌한 공기. 경치도 끝내주는구만.”
현수는 기분이 좋았다.
“그나저나 레어 근처엔 몬스터들이 없다고 했지만 이제 곧 만나겠지? 고블린이나 오크 정도면 좋겠는데. 처음부터 트롤이나 오우거를 만나면 조금 힘겨울 수도 있어. 혹시 드래곤을 만나면 우선은 도망가야겠지? 하여간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