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근처에 신관은 없소?”
“아이고, 마법사님! 신관이 어찌 이리 조그만 마을에 있답니까? 대처로 가야 간신히 보는 게 신관입니다요. 게다가 돈이 없으면 만나주지도 않습니다요.”
“흐음, 그도 그렇겠군.”
“여긴 촌구석이고 저는 돈도 없습니다요. 그러니 신관을 만난다는 것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습죠.”
말을 들으며 현수는 응급처치용 의약품 통을 개봉했다.
가장 먼저 솜을 잘게 찢어 핀셋으로 두텁게 엉겨 붙은 상처의 고름을 닦아냈다. 닿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는지 움찔거리지만 어쩌겠는가!
어찌나 심했는지 거의 십여 분에 걸쳐 고름을 닦아냈다.
심하기도 했지만 혹시 통증을 느낄까 싶어 세심히 닦아낸 때문이다.
드디어 환부가 드러난다. 한 2㎝ 깊이로 살이 푹 파여 있다. 이 정도면 꽤 많은 피를 흘렸을 것이다. 변변한 것 하나 없는 이곳에서 어찌 지혈을 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꽤 큰 놈인가 보군.”
“네, 몸통 길이만 6m쯤 되는 놈이었습니다.”
“몸통만 6m? 크군. 음! 이제 고름은 모두 닦아냈소. 다리를 펴서 발을 이쪽 의자에 올려놓으시오.”
“네에, 마법사님.”
현수는 촌장의 다리를 움직여 환부가 수평을 이루도록 했다. 그리곤 거즈 몇 장을 꺼내 환부 위에 올려놓았다.
“자아, 이제 소독이란 걸 할 것이오. 잠시 따끔거릴 수 있소. 하나 아주 고통스런 것은 아니니 꾹 참으시오.”
“네에.”
대답과 동시에 현수는 거즈 위에 과산화수소를 듬뿍 뿌렸다. 상처를 소독하기 위함이다.
“헉……! 으윽! 으으으으윽……!”
상처에 과산화수소가 상처에 닿으면서 부글부글 기포를 발생시키는 느낌을 언제 경험해 보았겠는가!
촌장은 이를 악물어 이상한 감촉을 견뎌냈다. 그런데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의외로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화농으로 인해 상처 부위 신경 조직 대부분이 괴사한 때문이다.
아무튼 현수는 핀셋으로 거즈를 들어 그것으로 덜 닦인 고름을 처리했다. 그리곤 잠시 기다렸다가 후시딘을 꺼내 상처 주위에 골고루 발라주었다.
상처 전체가 번들거리자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마나의 효능으로 상처를 치료한다. 힐(Heal)!”
아직 치료 마법은 서툴지만 그냥 놔두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시전한 것이다.
아무튼 너무 심해서 그러는지 원상 복구는 되지 않지만 상당히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수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즈를 꺼내 환부보다 약간 크게 접었다.
다음엔 반창고를 길게 잘라 그것을 고정했다. 그리곤 붕대로 전체를 감쌌다. 거즈가 떨어질까 싶었던 것이다.
촌장은 현수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는 의약품들을 뒤져 소염진통제와 항생제, 그리고 소화제를 꺼냈다.
소염진통제는 상처가 곪는 것을 완화시키는 소염 작용과 통증을 완화시키는 진통 작용을 모두 갖는 약물이다.
항생제는 병원균이 생산하는 대사산물로서 소량으로 다른 미생물의 발육을 억제하거나 사멸시키는 물질이다.
소화제는 이 두 가지 약품이 잘 소화되어 약효를 발휘하도록 촉진시키는 약물이다.
아무튼 현수는 약국에서 쓰는 기구들을 이용하여 마치 약사처럼 한 번 먹을 분량씩 조제했다.
다만 현대인과 달리 양을 반 이하로 줄였다.
현대인들은 평소에 많은 약물을 복용하면서 산다.
대표적인 것이 항생제 남용이다. 그렇기에 내성이 생겨 적은 양으론 별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하나 단 한 번도 약을 복용해 보지 못한 이곳 사람들에게 같은 양을 복용시켜선 안 된다.
자칫 너무 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지식은 약국에서 알바할 때 짠돌이 약사가 가끔 하던 말을 귀담아 들어두었던 것이다.
11장 피자, 콜라, 호떡
“상처가 너무 많이 곪아 그냥 놔뒀으면 다리를 절단하게 되거나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소. 하지만 조치를 잘 취했으니 이제 괜찮을 것이오.”
“아이고, 고맙습니다요.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긴……. 이거 받으시오. 이건 약이라고 하는 것이오. 하루에 세 번 음식물을 섭취하고 한 30분쯤 있다가 한 봉지씩 뜯어서 물과 함께 드시오.”
“30분이요? 그리고 하루에 세 번 음식 먹은 뒤예요?”
“그렇소. 하루에 세 번 드시오.”
“저어, 30분이 뭘 말씀하시는 건지는 알겠습니다. 한데 우린 하루에 두 번 먹기도 바쁜데…….”
현수는 말 안 해도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너무 가난해서 하루에 세 끼를 다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 마을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몹시 가난한 곳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걸치고 있는 의복, 천으로 대강 감싼 더러운 발, 버짐 핀 얼굴, 바싹 마른 체구 등등이 그것의 증거이다.
알베제 마을은 현수가 이 세계에 와서 처음 만난 마을이다. 게다가 멀린의 레어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기도 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현수는 세력의 필요성을 느꼈다.
아드리안 공국을 위기에서 구해준다 하여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여 쓸 만한 인재들을 발굴하여 제자 내지는 조력자로 삼을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아드리안 공국 내에 있어선 안 될 것이다.
마법사들이 나쁜 마음을 품은 결과 나라를 망친 사실이 아르센 대륙 역사책에 여러 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자 내지 부하들은 멀린의 레어 근처, 또는 모종의 장소에서 수련시키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려면 일상 생활용품부터 온갖 것들까지 구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중 식료품은 중요한 품목이 된다.
나중에 어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 식량을 조달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문득 스쳤다.
하여 선의를 베풀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하루에 세 번 오시오. 음식을 나눠 주겠소. 약도 그때 줄 것이오. 그럼 되겠소?”
“아이고, 마법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렇게 상처 치료까지 해주셨는데 음식 대접은 저희가 해야지요.”
“아니오. 이렇게 마을에 머물게 해주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오.”
“네에, 정말 고맙습니다. 흐흑! 사실 아파도 하소연할 데도 없었습니다. 어젯밤은 고열 때문에 잠도 못하고……. 선량하신 마법사님을 만나 이렇게 치료를 받으니… 흐흑! 정말 고맙습니다요. 흐흐흑!”
“고맙긴, 그나저나 그 샤벨타이거라는 놈은 마을에 자주 내려옵니까?”
“네, 그래서 정말 걱정입니다요. 다행히 야행성이라 낮엔 마을을 덮치지 않습니다. 하여 해가 떨어지면 문단속을 단단히 하고 안에만 있는 형편입죠.”
상황이 짐작되기에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냈다.
“흐으음!”
“그저께 밤에도 놈이 마을을 습격하여 기르던 염소를 세 마리나 잡아갔습니다요.”
“흐으음!”
현수는 연속해서 침음을 냈다.
보아하니 변변한 무기도 없는 촌구석이다. 사람 수도 적어 샤벨타이거 같은 맹수는 상대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다시 말해 맹수가 습격하면 몸을 숨기는 것이 고작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이러고 사는 것이오?”
“휴우! 별수가 있어야지요. 이 마을 사람 대부분이 도망친 농노입니다요. 대처로 나가면 모두 잡혀가 죽을 고생을 하게 되니 여길 떠날 수 없는 겁니다요.”
어느새 촌장은 하소연하는 어투로 말을 하고 있다.
마법사들은 그 성품이 괴팍하여 조금만 실수해도 버럭 화를 내거나 마법으로 사람을 죽인다고 하였다.
하여 마법사라면 벌벌 떤다. 그런데 이 마법사는 전혀 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처럼 하소연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도움의 손길을 받고 싶음이다.
한편, 현수는 촌장의 마지막 말을 듣고 생각을 굳혔다.
이 마을 사람들 거의 전부가 도망친 농노라고 했다. 이는 이곳을 다스리는 영주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곳을 레어를 위한 전진기지로 삼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을 한 것이다.
“흐음, 알겠소. 일단 며칠 머무를 테니 어찌 되는지 한번 두고 봅시다.”
마음은 먹었지만 실제를 알아야 하기에 며칠 머물기로 한 것이다.
“네에.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요. 편히 쉬셔야 하는데 이 천한 놈의 상처를 봐주시느라 애쓰셨습니다요.”
“아니오. 별로 힘든 것도 없었는데, 뭘.”
촌장은 마법사의 안식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듯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몰아갔다.
잠시 휴식을 취한 현수는 천천히 걸어 마음을 둘러보았다.
“흐음, 튼튼하긴 하겠네.”
거의 모든 집이 지름이 최하 30㎝ 정도는 되는 통나무로 지은 것들이다. 그래야 맹수나 몬스터의 습격으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건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 너무도 엉성해서 겨울엔 어떻게 지내나 싶다.
나무라는 놈은 인간들 좋으라고 곧게 자라는 놈이 아니다. 하여 목재와 목재 사이로 틈이 보인다. 그나마 진흙 같은 걸로 대강 메운 모양이다.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르면서 다 떨어져 나간 듯 속이 훤히 보인다.
현수가 마을을 둘러보는 동안 일곱 살쯤 된 꼬맹이들이 줄줄 따라다닌다. 머리는 봉두난발이요, 의복은 넝마다. 얼굴엔 땟물 흔적이 그득하고 몸은 비쩍 말라 있다.
‘거지나 다름없군. 근데 아이들 영양이 너무 나쁘구나.’
이곳의 주식은 지구에서의 밀과 아주 비슷하다고 했다.
하여 농토를 둘러보았다. 수확을 마쳤는지 지푸라기만 남아 있다. 그런데 그리 넓지도 못하다.
마을을 둘러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이다. 워낙 규모가 작아 볼 것이 없었던 때문이다.
텐트로 와보니 누군가 물과 밀가루 비슷한 것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종지 같은 것에 무언가가 담겨 있다.
“흠흠, 이게 뭐지? 꿀이구나.”
꿀을 섞은 물에 밀가루를 반죽한 뒤 이를 익혀 먹는 것이 이곳 음식인 듯하다.
“섬유질이 풍부하여 변비 해소엔 좋겠구나.”
나직이 중얼거릴 때 촌장이 다가온다.
“아이구, 마법사님! 죄송합니다. 마누라에게 마법사님 드실 윗플을 가져다 드리라 했는데 이놈의 마누라가 말을 잘못 알아들은 모양입니다요. 죄송합니다.”
“응?”
“후딱 가서 윗플을 만들어 오겠습니다요.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말을 마친 촌장은 아픈 다리를 끌고 밀가루 비슷한 것과 벌꿀 종지를 들고 갔다.
“윗플이 뭐지? 흐음, 그나저나 저녁 먹을 때가 되었군. 가만 오늘은 뭘 만들어 먹을까? 피자! 그래, 생각난 김에 피자나 한번 먹어보자.”
현수는 아공간에서 피자를 꺼냈다.
“흐음! 좀 식었군. 마나의 힘이여, 사물을 따뜻하게 데워라. 히팅(Heating)!”
피자는 갓 만든 것처럼 따끈따끈해졌다.
“흐음, 마법이란 참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군.”
전자레인지에 넣고 적어도 2∼3분은 기다려야 하는 과정이 생략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참, 콜라가 빠졌군.”
아공간에 손을 넣으니 시원한 콜라가 잡힌다. 1.5리터짜리 큰 병이다. 또다시 손을 넣어 일회용 컵을 꺼냈다.
식탁에 앉은 현수는 앉은 자리에서 네 조각을 해치웠다. 그러는 사이 콜라를 세 잔이나 마셨다.
“끄으으윽!”
탄산음료를 마신 티를 낸 현수는 문득 시선을 밖으로 두었다가 새까만 눈동자 몇을 보았다.
아까부터 현수를 따라다니던 아이들이다.
그것은 현수가 남긴 피자 네 조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침을 꿀꺽 삼킨다.
무슨 뜻인지 어찌 모르겠는가!
“얘들아, 이리 와서 이거 먹어볼래?”
후다다닥!
현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들은 사방으로 도망쳤다.
하나 그리 멀리 간 것은 아니다. 근처에 있던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아이들의 시선은 여전히 피자에 고정되어 있다.
세어보니 일곱 명이다. 네 조각으론 부족하겠다 싶은 현수는 두 판의 피자를 더 꺼냈다.
“마나의 힘이여, 사물을 따뜻하게 데워라. 히팅(Heating)!”
금방 따끈따끈해진다.
이번 것은 소갈비살과 얇게 저민 마늘, 그리고 발사믹 소스로 양념한 것이다.
현수는 다가오기 꺼려하는 아이들을 배려하여 텐트 밖에 이것들을 가져다 놓았다.
아울러 콜라도 일곱 잔을 만들어놓았다. 이곳 아이들은 톡 쏘는 탄산음료를 경험한 바 없을 것이다. 하여 흔들어서 김을 뺀 것이다. 그리곤 텐트로 돌아와 지퍼를 내렸다.
후다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허겁지겁 먹는 소리도 들린다. 괜히 웃음이 난다. 그리고 유쾌한 기분이다.
15분쯤 있다가 지퍼를 내렸다.
찌이이익 !
깨끗하다!
아이들은 현수가 나타났지만 이번엔 도망가지 않았다.
“아직도 배가 고프냐?”
“……!”
대답 대신 모두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진다.
“쬐끄만 놈들이 먹기는 엄청 먹는구나. 좋다. 오늘 피자 파티 한번 해보자꾸나.”
보아하니 저녁때가 되었음에도 음식을 만드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겨울이 되면서 하루에 두 끼 먹던 끼니를 한 끼로 줄인 때문이다.
현수는 아공간에 손을 넣어 피자를 꺼냈다. 그리곤 계속하여 히팅 마법으로 데워냈다.
콜라도 꺼냈다. 아이들의 눈이 빛난다.
하긴 먹을 게 지천으로 널린 한국에서도 아이들은 피자와 콜라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곳 아이들은 굶주림이라는 것이 뭔지를 처절하게 체험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