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아낙네들이 오자 반죽 만드는 방법부터 가르쳤다.
“우와아! 이런 맛이라니……!”
“와아! 달다! 엄청 달아!”
“캐캑! 앗, 뜨거! 입천장 데었다.”
“세상에! 어찌 이런 맛이……!”
30여 가구 150여 명이 사는 자그마한 산골 마을에서 호떡 잔치가 벌어졌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너무들 좋아한다.
흐뭇해진 현수는 재료를 달라는 대로 다 꺼내주었다. 강력분 20㎏짜리 포대가 벌써 두 개째이다.
호떡을 먹다 입안을 델까 싶어 음료수도 꺼내놓았다.
아이들이 좋아할 오렌지 맛 환타다. 이것 역시 김을 뺀 것이다. 예상대로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환장’이다.
오전부터 시작된 마을 잔치는 오후가 되도록 이어졌다.
사람들은 정말 좋은 마법사님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또 칭송했다.
대놓고 칭찬을 하니 어찌 계면쩍지 않겠는가!
하인스 마법사가 된 현수는 난리법석이 벌어진 텐트 앞을 떠나 마을 어귀로 갔다.
“엘베른, 오늘도 보초를 서는가?”
“아! 하인스 킴 마법사님이시군요. 네에, 매일 이 시간엔 제가 보초를 섭니다. 그런데 마법사님께서는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그냥 구경 좀 하려고. 그런데 식사는 했나?”
“네, 아이들이 호떡이라는 걸 가져다 줘서 정말 오랜만에 배불리 먹었습니다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괘념치 말게.”
“저어, 마법사님,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해보게.”
“귀족들은 항상 이런 음식을 먹고삽니까?”
“뭐어?”
현수는 무슨 뜻이냐고 눈을 크게 떴다.
“마법사님은 귀족이시잖아요. 이놈은 호떡이란 게 너무 맛이 있어서 음식을 먹다가 눈물까지 흘렸습니다요. 그런데 이처럼 맛있는 것을 우리 데리지는 먹어보지도 못하고…….”
“데리지? 무슨 일이 있었소?”
엘베른의 붉게 상기된 눈엔 금방 습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열흘쯤 전에 샤벨타이거가……. 데리지는 겨우 여섯 살이었습니다요. 그 귀여운 것을 그놈이……. 흐흑! 힘이 없는 것이 너무나 원통합니다. 흐흐흑!”
“으으음!”
현수는 침음을 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있어 물었다.
12장 알베제 마을을 위하여
“샤벨타이거 말고 고블린이나 오크, 트롤, 오우거 같은 몬스터들은 접근하지 않는가?”
“전에는 가끔 왔었습니다. 그런데 샤벨타이거가 이 근처에 자리 잡은 이후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요.”
“으음, 그렇군. 잘 알겠네.”
현수는 샤벨타이거에 대한 지식이 있다. 멀린이 준비해 준 몬스터 도감이란 책을 통해 배웠다.
이놈은 몬스터라 하지 않는다. 붉은 피를 흘리기 때문이다.
맹수로 분류된 이놈은 오크의 천적이라 할 수 있다. 숲의 제왕이라는 오우거도 이놈을 보면 슬슬 피한다.
사투를 벌여도 이길 확률이 반반이기 때문이다. 설사 이긴다 하더라도 싸움 도중의 상처 때문에 결국 죽는다.
다시 말해 오우거와 샤벨타이거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며, 격돌하게 되면 양패구상한다. 그렇기에 이놈이 서식하는 인근에는 몬스터들이 드물다.
“잠시 나갔다 오겠네.”
“목책 밖은 몹시 위험한데……. 아, 아닙니다. 마법사님이란 걸 깜박 잊었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엘베른은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마을을 떠난 현수는 앞으로 나아가며 기감을 넓혀 샤벨타이거의 종적을 찾았다. 예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투명 은신 마법으로 놈의 근처로 다가갔다. 하나 놈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수는 과연 멀린의 마법이라며 감탄했다.
‘흐음! 낳은 지 며칠 안 된 모양이군.’
새끼 한 마리가 뒹굴고 있는데 작은 강아지만 하다.
놈이 자리를 떴음에도 현수는 구경만 했다.
어찌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 새끼 딸린 어미를 죽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그대로 되돌아왔다.
여전히 보초를 서고 있던 엘베른이 얼른 목책을 연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렇다네. 잔치는 이제 끝났나?”
“네, 촌장님께서 마법사님 번거로운 거 싫어하시니 모두 해산하라 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알겠네.”
현수는 텐트로 되돌아왔다.
프라이팬이 깨끗하게 닦여 있다. 식용유 남은 것이랑 재료 남은 것들도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아낙네들에겐 모두 욕심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나 어느 것 하나 없어지지 않았다. 텐트 안도 어느 누구도 드나들지 않은 듯 나갔을 때 그대로이다.
자리에 누운 현수는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물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아드리안 공국으로 곧장 가야 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드리안 공국으로 곧장 가는 방법은 그곳의 좌표를 알아낸 뒤 텔레포트 마법을 구현시키면 된다.
문제는 그곳의 좌표를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수는 이곳의 좌표가 어찌 구성되는지를 배우지 못했다.
따라서 좌표를 알아내려면 이곳의 마법사를 만나야 한다. 그것도 5써클 이상 고위 마법사를 만나야 간신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 한 이틀만 더 있어보자.’
오후엔 아공간에 있던 빵을 꺼내 아이들에게 나눠 줬다. 물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먹을 만큼 넉넉한 양이다.
그것을 주면서 딱 하나 요구한 것이 있다.
비닐로 만들어진 봉지는 모두 가져오는 것이다.
썩지도 않을 플라스틱이나 비닐 포장으로 아르센 대륙의 환경을 오염시킬 마음은 없는 것이다.
저녁때에 또 한 번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이번엔 라면이다. 가장 순한 맛을 꺼내 끓였다. 물론 아낙네들의 도움이 있었다. 반찬으로 제공한 것은 단무지다.
물론 현수는 김치를 먹었다.
150여 명이 먹은 라면이 무려 400개이다. 어찌나 맛있어 하는지 먹고 또 먹었다.
현수가 이렇듯 베푸는 것엔 이유가 있다.
첫째, 이곳은 처음 만난 마을이다.
둘째, 어쩌면 이곳을 전진기지로 삼아야 할지 모른다.
셋째, 너무 가난해서 불쌍해 보인다.
일련의 이유가 현수의 마음을 너그럽게 만든 것이다.
아무튼 이날 밤도 아무런 일 없이 무사히 지났다.
다음날 아침 마레바 촌장이 왔다. 현수는 상처를 살피고 약을 발라줬다. 놀랍게도 거의 다 나은 상태이다.
‘마나가 풍부해서 그런가? 지구에서라면 최소 보름은 갔을 상처인데. 그나저나 오늘 아침도 기대를 하는 모양이군.’
현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낙네들을 불러 달라 하였다. 그리곤 삼겹살을 꺼냈다.
150여 명이 먹을 것이다.
그런데 이 동네 사람들은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대식가들이다. 하여 약 100㎏ 정도를 꺼냈다.
다음엔 상추와 깻잎, 그리고 파와 고추, 마늘과 막장을 준비했다. 물론 맛소금과 참기름, 그리고 후춧가루를 섞어 만든 기름장도 만들었다.
아낙네들은 현수의 설명을 잘도 알아들었다.
곧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아침이지만 소주도 꺼냈다.
사람들은 기가 막힌 고기 맛에 목 넘김이 좋은 소주를 곁들였다. 그 결과 대낮부터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어른들이 제법 여럿 등장했다.
현수는 흐뭇한 마음으로 이런 광경을 지켜보았다.
모르긴 해도 이 사람들은 현수가 마을에 머물렀던 며칠을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평생 다시는 먹어보지 못할 진기한 음식의 맛은 전설이 되어 후손에게 전해질 것이다.
“저어… 하인스 마법사님!”
“촌장, 아까도 말했지만 촌장은 상처가 있어서 술을 마시면 안 되네. 그러니 술 먹게 해달라는 부탁은 들어줄 수 없네.”
술이라면 환장하던 촌장은 남들 다 먹는 소주를 자신만 먹지 못하는 것이 억울한 듯 여러 번 청을 했지만 그때마다 냉정하게 끊었다.
그리곤 나아가던 상처가 악화될 수 있음을 주지시켰다.
“그게 아니라 소인이 마법사님께 염치없는 부탁 하나를 드리려고 온 겁니다요.”
“그래? 뭐지?”
“며칠 내로 일 년에 한 번 방문하는 케이상단의 마차가 우리 마을로 올 겁니다요.”
“그런데?”
“그 길목 인근에 샤벨타이거의 둥지가 있습니다요. 그런데 상단 사람들은 그걸 모르니…….”
현수는 촌장의 말을 끊었다.
“내게 보호를 부탁하는 건가?”
“…네. 면목없지만 그래 주실 수 있는지요? 이번에 상단이 들어오지 못하면 큰일이 나서…….”
“큰일이라니? 일상용품이야 없어도 사는 거 아닌가?”
“그건 그렇습죠. 그런데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 상단은 일 년에 딱 한 번만 옵니다. 이곳이 가장 외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촌장이 어눌한 표정으로 설명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 알베제 마을은 바세른 산맥과 테리안 왕국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제법 규모있는 상단인 케이상단은 왕국 구석구석을 방문하며 장사를 하는데 알베제 마을은 12월에 방문한다.
이곳 아스란 대륙은 달이 두 개 있는 행성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지구와는 사뭇 다른 제도가 사용되지만 여러 부분이 일치한다.
첫째는 하루가 낮과 밤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24시간 정도 된다.
둘째는 이곳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존재한다. 그래서 각기 석 달씩 12개월이 1년이다.
달마다 각기 다른 이름이 붙어 있지만 현수는 자신이 편한 대로 이름을 붙였다.
어쨌거나 케이상단은 눈이 와서 운송이 불가능해지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는 12월에 알베제 마을을 방문한다. 가장 먼 곳이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1년 동안 준비한 약초 말린 것 등으로 물물교환을 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품목이 소금이다.
사람에게 있어 소금은 생리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소금은 체내에서, 특히 체액에 존재하며 삼투압 유지라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혈액의 0.9%는 염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금 분자의 일부분인 Na(나트륨)은 체내에서 탄산과 결합하여 중탄산염이 된다. 이것이 혈액이나 그 밖의 체액이 알칼리성을 유지하도록 한다.
인산과 결합한 것은 완충물질로서 작용하는데 체액의 산, 알칼리의 평형을 유지시키는 구실을 한다.
또한 나트륨은 쓸개즙, 이자액, 장즙 등 알칼리성 소화액의 성분이 된다.
나트륨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인 염소는 위액의 염산을 만들어주는 주재료로서 사용된다.
따라서 소금은 알베제 마을 사람들의 생명 유지에 있어 더없이 중요한 거래 물목이다. 워낙 외진 산속이라 소금을 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샤벨타이거에 의해 케이상단이 습격을 받아 모두 죽거나 되돌아가게 되면 어쩌겠는가!
하여 염치불구하고 현수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알겠네. 한번 나가보지.”
“아이고, 고맙습니다요. 정말 고맙습니다요.”
촌장은 마차가 드나드는 길을 설명했고, 현수는 그 즉시 마을을 떠나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곤 가장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사방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촌장의 말대로 마차 여섯 대로 이루어진 상단이 먼 곳으로부터 접근하고 있다.
용병 여덟 명이 행렬의 앞과 뒤에서 상단을 보호하고 있다. 모양을 보니 체계적인 협조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시선을 힐끔 돌려 살펴보니 샤벨타이거가 둥지를 나와 어슬렁거린다. 현수는 놈이 어쩌는지 두고 보기로 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오갈 수 있음을 모르는 샤벨타이거는 다가오는 먹잇감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둘 사이의 거리가 100m 이내로 좁혀지자 샤벨타이거는 확연하게 몸을 낮췄다. 공격하려는 것이다.
“이것으로 네 운명은 결정지어졌다. 마나의 힘이여, 내부를 진탕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라. 쇼크 웨이브(Shock Wave)!”
크와아아아앙!
샤벨타이거는 엎드렸던 자세에서 무려 5미터 이상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떨어졌다. 그리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쇼크 웨이브라는 마법은 아르센 대륙의 3써클 마스터 정도 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다.
이는 근거리 마법으로 적의 몸속에 충격파를 주입하는 것이다. 이에 당하게 되면 내부 장기가 진탕되어 기혈이 역류하는 현상을 맞으며 기절하게 된다.
깨어나기는 하지만 한동안 정양을 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상대의 목숨을 빼앗기엔 부족함이 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시전되기 때문이다.
하나 현수가 펼친 쇼크 웨이브는 통상의 마법과는 궤가 다르다. 다시 말해 이름은 같지만 위력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샤벨타이거는 반항 한번 못해보고 내부의 장기들이 터져서 죽었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곤죽과 다름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니 어찌 목숨을 부지하겠는가.
생명이 끊겼음을 확인한 현수는 시체를 아공간에 넣었다. 그리곤 상단의 시선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
상단은 무사히 알베제 마을에 도착했다.
현수는 외인이기에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소금 값이 엄청 비싼 모양이다.
지게 비슷한 걸로 하나 가득 말린 약초를 가져다주었는데 겨우 한 줌을 내준다. 사슴같이 생긴 동물의 가죽 한 장을 넘겨도 겨우 한 줌이다.
아직은 모르지만 이곳 알베제 마을은 가장 가까운 바다로부터 2,000㎞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