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도로가 발달되지 않은 세상이니 운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현실에서의 소금 값을 알기 때문이다.
“흐음, 이렇게 살기 힘든 오지 마을까지 들어와 물건을 공급해 주는 건 고맙지만 조금 너무하는군.”
그래도 자신이 끼어들 상황이 아니기에 현수는 자신의 텐트로 돌아갔다.
“안녕하십니까? 하인스 킴 마법사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누구지?”
“케이상단의 제7지부 서기를 맡고 있는 알론이라 합니다. 마법사님을 뵙습니다.”
정중히 고개 숙여 절하는 사내는 30대 중반 정도 되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똑똑하게 생겼다.
“내게 무슨 용무가 있소?”
폭리 아닌 폭리를 취하는 상단이라 생각하였기에 현수의 말끝은 조금 짧았다.
하나 알론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마법사란 으레 이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레바 촌장에게 듣자 하니 곧 이곳을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행선지를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내 행선지를 묻는 이유는 뭐지?”
“마법사님, 저희는 올해 상행이 끝났습니다. 따라서 이제 지부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전에 없던 오크 부락이 있습니다. 길이 같다면 저희 상단과 같이 가심이 어떨까 해서 여쭙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더러 용병처럼 상단을 보호하라는 것이오?”
“아이고, 그건 아닙니다. 제가 어찌 마법사님께……. 그게 아니라 같이 가주셨으면 좋겠어서 그러는 겁니다.”
완곡한 표현이고,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는 대처이다. 현수는 알론이라는 사내를 잠시 바라보았다.
“내 목적지는 아드리안 공국의 수도라네.”
“아! 멀린을 말씀하시는군요.”
“멀린?”
“네, 600여 년 전 카이엔 제국의 대마법사이셨던 멀린 아드리안 후작님의 후손이 공국을 건국하면서 수도 이름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아……!”
후손들이 조상을 잊지 않는다.
그것도 몇 백 년이나 흘렀는데도 그렇다. 현수는 아드리안 공국을 구해야 할 이유 하나가 늘어난 것에 기분이 좋았다.
“그렇다네. 나는 멀린으로 가네.”
“다행입니다. 저희 상단도 일단 동남쪽에 있는 올테른까지 갑니다. 같이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흐음! 그럼 그러지. 그런데 언제 떠나나?”
“오늘은 늦었으니 예서 쉬고 내일 아침 떠나려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그러지.”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뵙도록 하지요.”
알론은 현수의 텐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론이 가고 난 뒤 마레바 촌장과 엘베른을 불렀다.
“하인스 마법사님, 부르셨습니까?”
“케이상단에서 같이 떠날 것을 제의했네.”
“……!”
둘은 말이 없다. 하여 현수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러기로 했지.”
“아! 마법사님, 어제와 그제, 그리고 오늘 마법사님이 계셔서 참으로 든든했었는데…….”
아쉽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나도 섭섭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여기서 평생을 살 것도 아니니.”
“네에, 그러시지요. 저희가 어찌 마법사님의 발목을 붙잡겠습니까?”
오늘 오전 마레바는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젊고 예쁜 아가씨라도 있으면 현수와 인연을 맺게 하여 마을에 붙잡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괴팍하기에 큰 도시가 아니면 마을에 마법사들이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촌장은 없다.
옥상옥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상전 모시듯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 현수는 다르다. 너무나 마음씨가 좋다. 하여 붙잡아둘 묘안을 짜내느라 고심한 것이다.
어쨌거나 마을엔 젊은 여자가 없다. 유부녀 중에서도 현수의 마음을 끌 만한 미녀는 없는 것이다.
“내가 수련을 마치고 하산하여 처음으로 만난 마을이 이곳 알베제 마을이네. 하여 가기 전에 자그마한 성의를 보이고 싶은데 어쩌겠는가? 받아들이겠는가?”
“무슨 말씀이신지……?”
“어제 나가서 살펴보니 이 마을 바깥에 샤벨타이거의 둥지가 있더군. 이놈 때문에 마을에 몬스터들이 못 온다고 들었는데 맞는가?”
“네, 저희는 그런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요.”
“아까 상단을 덮치려던 놈을 잡았네. 이놈의 사체에 보존 마법을 걸어 마을 밖에 놓아주겠네. 그러면 몬스터들이 접근하지 못할 것 아닌가?”
“네에? 그, 그게 정말입니까?”
“믿지 못하는군.”
“아이고, 아닙니다요. 믿지 못하다니요?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저희는 그놈을 잡으셨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자아, 그럼 말 나온 김에 바깥으로 나가보세.”
“네? 바깥에는 왜……?”
“마을 한가운데에 놈의 사체를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아, 그렇군요.”
현수는 엘베른, 그리고 마레바 촌장의 안내를 받아 전에 몬스터들이 나타나던 길목을 안내받았다.
좁은 협곡 너머는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마을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마을에선 죽음의 협곡이라 부르는 이곳은 길이가 대략 3㎞ 정도 된다.
“흐음! 여기가 좋겠네. 마을 사람들을 불러 여기에 집을 하나 짓도록 하게.”
“네에?”
“샤벨타이거의 시신에 보존 마법을 걸기는 하겠지만 눈과 비를 계속 맞으면 부패하기 시작하네. 사체를 오래 보존하기 위함이니 눈과 비를 피할 정도면 되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이보게, 엘베른, 마을로 돌아가서 장정들을 데리고 오게.”
“네, 알겠습니다.”
“올 때 연장 챙겨오는 거 잊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엘베른이 물러가고 난 뒤 현수는 주변의 나무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곤 스태프를 앞으로 내밀며 소리쳤다.
“마나의 힘으로 강력히 회전시켜라! 윈드 써클 쏘우(Wind Circle Saw)!”
위이이이이잉!
쿠와아아앙 !
위이이이이잉!
쿠당탕탕 !
제재소에서나 쓸 원형 톱날이 맹렬한 회전을 하며 나무 밑동을 파고들자 얼마 지나지 않아 굉음을 내며 쓰러진다.
현수는 장정들이 오기 전까지 목재를 마련한다는 생각에 몇 그루 더 베어놓고 적당한 크기로 자르기까지 했다.
“후와아! 정말, 정말이지, 대단하십니다.”
마레바 촌장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장정 서넛이 하루 종일 도끼질을 해도 한 그루 베어낼까 말까 할 정도로 목질이 단단한 나무이다.
그런데 서너 번 숨 쉴 사이에 차례차례 넘어진다.
베어진 나무는 가지들을 다듬어 곧바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되게 하였다.
“촌장, 이쪽으로 오게. 시간이 있으니 상처를 한번 보지.”
“네에.”
두말이 없다. 촌장의 상처는 거의 아무는 단계였다.
벌써 딱지가 앉은 것이다. 그래도 힐 마법으로 치유하고는 약을 발랐다. 반창고도 갈아주었다.
“여기에 눈과 비를 피할 곳을 만들어놓고 샤벨타이거의 사체를 놓으면 한동안 몬스터의 침입이 없을 것이네.”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마법사님!”
“근데 사체 보존이 영구하지 않네. 그래서 생각한 건데, 새끼를 데려다 길러봄이 어떨까?”
“네에? 샤, 샤벨타이거의 새끼를 길러요?”
“그렇다네. 엘베른에게 맡겨 기르면 좋을 듯하네.”
“어, 어떻게? 놈은 2∼3년만 지나면 성체처럼 덩치가 커집니다. 우린 감당할 수 없습니다요.”
촌장은 다 자란 샤벨타이거 새끼가 마을 사람들을 차례차례 잡아먹는 광경을 떠올렸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흔든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것이다.
“걱정 말게. 내가 놈에게 복종 마법을 걸 것이네. 그럼 엘베른의 명을 절대적으로 따를 것이니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네.”
“복종 마법이요?”
“그렇다네. 새끼는 엘베른을 자신의 충성을 받을 절대적인 주인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네.”
“흐음, 그렇다면야… 마법사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지. 그리고 또 한 가지.”
“네, 말씀만 하십시오.”
마레바 촌장은 현수가 팥으로 메주를 쑤자고 해도 믿고 따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소금이 매우 귀한가 보네.”
“네. 여긴 바다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지요.”
“가기 전에 내가 보유하고 있는 소금의 일부를 남겨주겠네. 그러니 마을에 적당한 창고 하나를 짓도록 하게.”
“……!”
“아! 창고를 지으라 하여 엄청난 양을 준다는 건 아니네. 그러니 그냥 한 사람이 사는 정도의 크기면 되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요.”
마레바 촌장은 눈물까지 흘렸다.
마을의 안위를 위해 샤벨타이거를 사냥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엘베른을 주인으로 여기게끔 새끼에게 복종 마법을 걸어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블린이나 오크, 또는 트롤이나 오우거의 침입도 두렵지 않다. 이제 안위는 어느 정도 해결된 셈이다.
여기에 귀하디귀한 소금까지 준다고 한다.
어찌 감격스럽고 고맙지 않겠는가!
“하하! 어른이 왜 눈물을 보이는가? 그나저나 엊그제 남들 다 먹는 술을 못 마셔서 섭섭했는가?”
“네에……. 솔직히 조금 서운했습니다요.”
부인하지 않는다. 다음날 소주의 대단함을 귀가 닳도록 들었기에 억울함은 더 컸다.
“가기 전에 촌장에게도 술 몇 병 남겨주지.”
“네에? 저, 정말이십니까?”
소금을 준다고 했을 때보다도 눈이 더 커진다.
“하하, 이따 밤에 치료받으러 오면 그때 주겠네.”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하하! 하하하!”
앓던 이가 빠지면 시원하다. 그리고 원수가 죽으면 통쾌하다. 이 두 가지 기분이 동시에 느껴지자 촌장은 호탕한 너털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장정들이 몰려들었다.
현수의 지시를 받아 목재를 세우고 못을 박아 샤벨타이거 사체 안치소를 만들었다.
현수가 아공간에서 사체를 꺼내자 모두들 놀라며 물러선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런 상처 없이 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수는 안치소 바닥에 보존 마법진을 그렸다. 또한 리차지 마법진도 그려졌다. 중심엔 하급 마나석을 박아 넣었다.
특별한 외부적 변화가 없는 한 적어도 10년은 사체가 썩지 않을 것이다.
현수로부터 주의 사항을 들은 장정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마을로 되돌아간 뒤 현수는 새끼를 잡아왔다.
나중에 흉포한 맹수가 될 놈이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지 귀엽기만 하다.
텐트로 돌아와 엘베른과 촌장이 있는 자리에서 새끼에게 복종 마법을 걸었다. 그리곤 엘베른의 명에 따르도록 명령했다.
엘베른에겐 딸을 잡아먹은 원수의 자식이다.
하나 몇 년 후엔 마을을 지켜줄 수호신이 될 놈이다. 그렇기에 엘베른은 잘 키우겠다고 약속하고 물러갔다.
다음에 방문한 곳은 소금 창고이다.
급조한 것치고는 견고하게 잘 지어졌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컸다. 어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가!
현수는 실소를 머금고는 아공간에서 소금을 꺼냈다.
이곳의 소금은 짠맛 속에 쓴맛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간수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그런 것이다.
한마디로 품질이 좋지 않다.
그런데 한국 소금에 어디 그런 것이 있는가!
현수는 보유하고 있던 질 좋은 천일염을 쏟아 부었다. 포대째 놓지 않은 이유는 이곳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 소금은 라면 공장을 방문했을 때 그곳 원료 창고에서 가져온 것 중 일부분이다.
마레바 촌장은 소금 창고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2∼3년이 아니라 10년은 충분히 먹을 양이었기 때문이다.
또 눈물을 흘린다.
현수는 60이 다 되어가는 어른의 눈에서 눈물 빼는 게 좋지 않았다. 하여 소주를 꺼내 들었다.
효과 만점이다.
꺼내는 김에 50병을 꺼냈다. 그러는 동안 촌장의 입은 점점 양쪽으로 찢어졌다. 나중엔 침까지 질질 흘렸다.
현수는 두 가지를 당부했다.
나중에 반드시 회수할 물건이다. 그러므로 뚜껑을 따서 함부로 버리지 말 것, 다 마시고 난 병은 각종 액체 등을 담는 용기로 사용하되 깨지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 그것이다.
여러 번 당부했으니 잘 쓸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현수는 마을 사람 전부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알베제 마을을 떠났다.
정든 님이 떠나기라도 하는 듯 모두들 눈물까지 흘렸다.
케이상단 일행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인스 킴이라는 마법사가 대체 무엇을 어찌했기에 이런 대대적인 환송이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하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피자, 라면, 삼겹살, 콜라, 환타, 소주, 초콜릿 바를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현수가 아이들을 위해 남긴 것이 있다.
100개의 초코파이와 500개의 각종 과일 맛 사탕, 그리고 150개의 설탕 시럽 페스트리11)가 그것이다.
현수는 이것들 봉지를 벗기느라 새벽부터 애를 먹었다.
“하인스 킴 마법사님!”
“왜 불렀는가?”
“어느 마탑 소속이신지 여쭈어도 되는지요?”
“그건 왜 묻지?”
“저희 테리안 왕국의 실론 마탑 소속이 아닌가 싶어 여쭈어봤습니다.”
“실론 마탑? 거긴 아니네.”
“그렇군요. 그렇다면 아드리안 공국의 수도 멀린으로 가신다고 했는데 혹시 아드리안 마탑 소속이십니까?”
“아드리안 마탑? 흐음, 거기도 아닐세. 아마 당신이 알고 있는 마탑은 아닐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