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1장 지구로의 귀환
“자아! 생선이 쌉니다, 싸요! 갓 잡아온 싱싱한 생선이 완전 헐값입니다!”
“아아! 저건 뻥입니다! 믿지 마십시오! 저놈이 들고 있는 건 어제 잡은 거고 이게 오늘 잡은 겁니다! 그러니 저쪽으로 가지 말고 일루 와서 사십시오!”
“뭐야? 야, 인마! 넌 생선을 딱 보면 어제 잡은 건지 오늘 잡은 건지 한눈에 알아?”
“그래, 인마! 안다, 알아! 근데 어따 대고 삿대질이야?”
“어쭈! 지금 나랑 한판 붙어보자는 거야?”
“그래, 너 말 한번 잘했다. 그렇지 않아도 네놈 때문에 만날 장사를 망쳤는데 오늘 분풀이 한번 하자. 덤벼, 인마!”
우당탕! 와장창창!
두 상인의 혈투가 벌어지자 사람들이 빙 둘러쌌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이기는지에 돈을 걸고 더 힘내서 주먹질을 하라고 아우성이다.
항구도시 올테른의 참모습이다.
몇 달 동안 배 안에 갇혀 고기만 잡다 하선한 뱃사람들이 많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주먹질이 벌어지는 곳이다.
생선장수라 하여 무어 다르겠는가!
늘 보는 게 주먹질이다. 그러니 엉겨 붙은 것이다. 어제는 구경꾼이자 승패에 돈을 거는 도박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선수로 입장한 것이다.
“와와와! 스테판 이겨라! 스테판 이겨라!”
“로완! 맞지만 말고 갈겨, 이 멍청아! 아따, 덩치가 아깝네. 어째 저보다도 덩치가 작은 사람 밑에 깔려 매만 맞냐? 로완! 힘 안 내? 너한테 5실버나 걸었단 말이야!”
잠시 싸움판을 구경하던 현수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곤 정처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아르센 대륙으로 차원 이동을 한 지 오늘로써 28일째이다. 알베제 마을을 떠나 무려 20일이나 이동했다.
그렇기에 일단 지구로 돌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알론과 헤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구로 차원 이동을 했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멀린의 레어로 떨어지면 어쩌겠는가!
하여 이곳의 좌표를 알아내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다. 문제는 좌표를 알려줄 마법사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거의 반나절이나 돌아다녀도 마법사를 찾지 못한 현수는 올테른 외곽의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혹시 이실리프 마법서에 좌표를 알아내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문득 스친 상념이었다.
“이실리프여, 열려라!”
스르르르릉∼!
말을 마침과 동시에 마법서가 열린다.
목차를 찾았다. 다행히 좌표를 기록하는 방법이 있다.
읽어보니 일정한 규칙이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매우 복잡한 계산을 해야 좌표를 얻을 수 있다.
하나 현수가 누구이던가!
비록 삼류 대학이지만 수학과 출신이다. 그 결과 이십 분도 걸리지 않아 좌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거라면 지구에서도 좌표를 생성시킬 수 있겠구나. 하하, 좋았어. 앞으론 편하겠군.”
좌표는 가본 곳만 생성시킬 수 있다.
잘못 좌표를 생성시킨 뒤 텔레포트를 하면 차원의 틈새에 빠져 영원한 미아가 될 수도 있다.
하여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계산을 했다. 그리곤 노트북을 꺼내 좌표를 입력해 두었다.
올테른 외곽의 바위 위 50㎝의 좌표는 다음과 같다.
SJ759RRT67WK―LW034GHE23PI―RJ765HRE55JD―RT65LLA79RY.
열두 자리씩 네 개로 구성되니 웬만큼 머리 좋은 사람 아니면 외우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그러고 보니 지구의 좌표가 없네. 여기서 트랜스퍼 디멘션을 시전하면 어디로 갈까? 궁금하군. 산속은 괜찮은데 바다라면 어떻게 하지? 헤엄칠 줄 모르는데.”
현수는 잠시 망설였다.
“에라, 모르겠다. 가보기나 하자. 트랜스퍼 디멘션!”
고오오오오∼!
“여긴……? 아, 우리 집이구나.”
찰나의 시간 만에 환경이 확 바뀌었기에 현수는 잠시 당황해했다. 하나 금방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휑하니 비어 있는 자신의 원룸이었던 것이다.
“근데 여기 좌표를 입력해 두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곳으로 온 거지? 이실리프여, 열려라!”
마법서를 읽어보고야 의문점을 덜 수 있었다.
좌표 입력을 하지 않고 차원 이동을 하면 마지막에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흠, 이건 편리한 기능이군. 일단 여기 좌표를 확인할까?”
현수는 자신의 원룸 좌표를 확인하려다가 멈췄다. 급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냐. 오늘이 며칠인지 먼저 확인하자.”
전에 생각했던 것과 다른 시간대에 도착했던 것이 떠올랐기에 얼른 핸드폰을 켰다. 그런데 켜지자마자 도로 꺼진다.
“에이, 고물! 바꿔야지 안 되겠어.”
현수의 핸드폰은 상당히 구형이다. 스마트폰이 나온 지 한참인데 여전히 폴더 형이다.
번호 이동을 하면 스마트폰을 공짜로 얻을 수 있음에도 바꾸지 않은 이유는 기본요금 때문에 그렇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기에 한 달에 55,000원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노트북을 꺼냈다. 전원을 넣자 첫 화면이 보인다.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이미지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켜지는가 싶더니 도로 꺼진다. 배터리가 다된 모양이다. 어댑터를 찾아 연결하니 정상으로 작동한다.
“내가 이곳을 떠나 아르센 대륙에 있었던 것이 28일이야. 전에 떠났을 때가 2012년 12월 18이었으니까 오늘은 2013년 1월 16일이어야 정상이지. 흐음, 어서 떠라.”
현수는 느릿하게 부팅되는 노트북의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부팅이 완료되자마자 오른쪽 아래 시간이 표시되는 곳을 클릭했다. 날씨 및 시간 정보 창이 뜬다.
“어디 보자. 2013년 1월 16일. 맞군. 후후후!”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띄웠다. 없는 동안의 뉴스 검색을 위함이다.
그러다 네이버를 띄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른쪽 로그인 창 아래에 날짜가 보이는데 2013년 1월 2일이라고 되어 있다.
“어라? 이거 왜 이러지?”
서둘러 인터넷으로 현재 시각을 검색했다. 여러 번 검색했는데 전부 2013년 1월 2일이라고 한다.
현수는 당황했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오르는 상념이 있었다.
“이실리프여, 열려라!”
스르르르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백색 이실리프가 눈앞에 나타난다.
“어디 보자.”
현수는 목록을 한참 뒤적인 뒤에야 원하던 것을 찾았다. 워낙 목록이 자세했던 때문이다.
현수가 찾던 것은 전능의 팔찌 사용법이란 항목이다.
글귀가 보이자 손가락으로 전능의 팔찌라 쓰인 곳에 손을 댔다. 그러자 저절로 페이지가 열린다.
과연 희대의 마법서답다.
중세 수준의 문명을 지닌 곳에서 만들어진 것임에도 하이퍼링크1) 기능이 걸려 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현수는 아주 찬찬히 내용을 읽어보았다. 읽는 동안 탄성을 터뜨리기도 했다.
“우와! 이게 그래서 그런 거구나! 이거 진짜 쓸 만한데?”
전능의 팔찌로 차원 이동을 하면 한쪽 세상에서 아무리 오래 머물렀다 하더라도 다른 세상의 시간은 불과 30일만 지났을 뿐이다. 팔찌 안쪽에 타임 리미트 영구 마법진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르센 대륙에서 10년을 머무른 뒤 지구로 차원 이동을 하면 딱 30일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지구에서 10년을 머물다 아르센 대륙으로 되돌아가도 30일이 경과했을 뿐이다.
이는 앱솔루트 배리어가 쳐진 결계 안에서의 타임 딜레이 마법과는 다르다.
결계 안에서는 시간이 거의 멈춘 상태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늙지 않는다. 반면 단순한 차원 이동은 시간의 흐름만큼 성장하거나 노화된다.
다시 말해, 지구에서 10년을 머물다 아르센 대륙으로 가면 한 달밖에 안 지났는데 갑자기 10년은 늙은 것처럼 보인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쨌거나 전능의 팔찌에는 차원 이동을 구현시키는 초록색 보석 이외에도 타임 딜레이를 일으키는 파랑색과 패스트 타임을 실현시키는 보라색 보석이 있다.
사실 보석이 아니라 이것들은 최상급 마나석이다. 이것들을 이용하면 원하던 시간대로 되돌아간다.
물론 그 30일 이내의 시간대로 되돌아간다. 일종의 제한적인 타임머신 역할을 하는 것이다.
파랑과 보라색 보석 모두에 손을 댄 상태에서 차원 이동 마법을 구현하면 된다. 자세한 방법이 기록되어 있기에 시험 삼아 이를 시전해 보려 했다.
그런데 무반응이다. 한참 동안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현수는 팔찌에 박힌 보석 가운데 검은색 둘이 거의 회색으로 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서둘러 사용법을 살펴보니 마나 충전이 되지 않아서라고 한다. 다시 말해 회색이었던 마나석이 모두 검은색으로 변해야 비로소 차원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2012년 9월 28일에 6개월짜리 병가를 냈다. 따라서 2013년 3월 28일 안에 복귀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일찍 왔다.
오늘은 2013년 1월 2일. 연휴 기간이다.
“흐음, 3월 28일이 되려면 2개월하고도 26일이나 남았네. 그동안 무얼 하지? 흐음, 일단 사람 사는 꼴을 갖춰야겠지?”
거의 아무것도 없어 휑한 원룸을 바라본 현수는 아공간에 담긴 가재도구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룸은 예전의 모습을 거의 찾아갔다.
저녁나절이 되어 전등을 켜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나 집주인이네.”
“네, 무슨 일이시죠?”
현수의 물음에 주인은 꼬장꼬장한 음성으로 대답한다.
“우선 문이나 열게.”
“잠깐만요.”
벗었던 옷을 서둘러 걸치는 동안 현수는 짜증이 났다. 월세는 통장에서 매월 자동이체 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집세는 한 푼도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집주인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막무가내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딸깍∼!
문이 열리자 주인이 먼저 밀고 들어온다. 나이가 많다곤 하나 이런 건 예의가 아니다.
그러나 그딴 것엔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듯 주인은 현수의 뒤쪽을 먼저 살펴보고 있다.
부서진 데, 망가진 것이 없나 확인하는 듯하다.
슬며시 불쾌한 기분이 든다.
“총각, 한참 동안 안 보이던데 어디 다녀왔어?”
“아, 네. 회사에서 출장을 보내서…….”
“그랬군. 우편물이 계속 쌓이기만 해서 무슨 일 있나 했네.”
“네에. 뭐, 별일은 없었습니다.”
대답을 하면서 현수는 앞으론 거의 모든 우편물을 인터넷으로 열람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가? 알겠네.”
“네에.”
말을 하면서도 여기저기를 살펴보았기에 현수의 불쾌함은 더 늘어났다. 그렇기에 문을 닫으면서 회사로의 복귀보다 먼저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생활 침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때문이다.
물론 햇볕도 잘 안 들고 바람도 잘 통하지 않은데다 비좁고 여러 모로 불편한 것도 작용했다.
주인이 가고 난 뒤 아르센 대륙의 금화를 꺼냈다. 생각난 김에 거처를 이동할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를 전세 내려면 얼마나 드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포털사이트의 부동산을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서울은 공기가 매우 탁하다.
아르센 대륙의 청정한 공기로 호흡하려다 매연 섞인 서울의 공기로 숨을 쉬려니 호흡이 곤란할 지경인 것이다.
하여 어디로 이사갈까 고심하다 광장동에 위치한 쉐라톤 워커힐 호텔 부근을 떠올렸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천호대교만 건너면 된다. 교통은 약간 불편할 것이다. 이는 소형차 한 대 구입하면 해결될 일이다.
전 같으면 자동차 구입 비용은 물론이고 보험료나 유류비 등으로 어림도 없을 일이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금화 두어 개만 처분하면 소형차 한 대는 사고도 남는다.
아무튼 그곳은 강변에 있으며 뒤로는 아차산이 있는 곳이다.
행정구역상 구리시 아천동인 이곳은 움이 잘 튼다 하여 우미내 마을이라 불린다.
이곳엔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란 곳이 있다.
구리시가 건설한 곳으로, 전국의 유일한 대장간 마을이자 촬영장으로 국내 최대 규모이다.
이곳에서 배용준이 출연한 태왕사신기가 녹화되었으며, 바람의 나라, 쾌도 홍길동, 자명고 등이 녹화된 장소이다.
인근에는 단독주택들이 있는데 그리 많지는 않다. 약 30여 가구뿐이다. 그런데 식당이 제법 많다.
외부로부터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들이다. 냉면집, 손만두집, 매운탕집, 갈비집 등이 있다.
휴가를 내기 전 현수는 곽 대리랑 구리시 쪽으로 외근을 나왔다가 우연히 이곳 매운탕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시간이 남아 일 인당 3,000원씩 입장료를 내고 안을 구경했다. 지름이 7m나 된다는 거대한 물레방아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덕분에 대장간의 내부가 어떤지 확실히 학습하게 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