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7화 (27/1,307)

# 27

고구려 대장간 마을을 구경하고 내려오다 보니 경치가 제법 좋았다. 탁 트인 한강이 조망되었기 때문이다. 뒤로는 제법 울창한 숲이 있어 쾌적한 기분을 느끼게 하였다.

하여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부모님 모시고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쨌거나 현수는 남들의 이목이 많은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 나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가끔 마법 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 서둘러 검색해 보았다. 매물은 네 건이나 있었는데 모두 평수가 넓은 것뿐이다.

당연히 돈이 만만치 않다. 제일 싼 게 8억 5천만 원이다.

물론 제법 널찍한 집이다. 내용을 살펴보니 2층짜리 주택으로 건평이 75평 정도 되고 방이 여섯 개나 있는 큰 집이다.

당연히 마당도 있다.

마당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한강이 조망되고, 창문에서 찍은 걸 보면 아차산의 숲이 보이는 모양이다.

내부 인테리어도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는 듯하다.

골방에 가까운 곳에 살던 현수에게 있어 거의 궁궐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널찍하고 쾌적해 보이니 당연히 마음에 든다.

“흐음! 8억 5천이면 등록세와 취득세까지 해서 얼마나 되지? 꽤 되겠지? 한 9억이면 되려나? 참, 나는 안 되는구나.”

현수는 대졸 신입사원이다. 회사는 겨우 8개월 정도를 다녔다. 당연히 소득이 얼마 발생되지 않은 시기이다.

그런데 8억 5천짜리 집을 샀다고 등기 이전을 하면 세무 조사를 나올 수도 있다.

부동산 취득 자금이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고 물으면 둘러댈 방법이 없다. 따라서 현재로선 집을 사서는 안 된다.

“제기랄, 돈이 있어도 쓸 수가 없군. 불법으로 얻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현수의 아공간엔 상당히 많은 금화가 들어 있다.

원래부터 있던 것도 있지만 몬스터 가죽과 부산물을 팔아 얻은 수익금만 1,000여 골드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11억 원이다.

이것에 대한 소득세를 내야 한다면 아르센 대륙의 국가에 내야 한다. 대한민국 국세청에는 단 돈 1원도 낼 이유가 없는 소득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지. 일단은 전세 물건을 찾아봐야겠군.”

인터넷에서 전세 시세를 파악해 보았다. 마음에 드는 집이 있다. 그런데 전세가가 무려 3억 5천이다.

방이 일곱 개이고 화장실이 세 개 있으며, 주차장엔 차를 두 대 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당연히 마당까지 딸린 단독주택이다.

현수는 금화를 꺼냈다. 현금이 없으니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여러 조각으로 잘라내며 중얼거렸다.

“팔자에도 없는 여행을 해야 하나? 제기랄!”

지은 죄도 없건만 마치 장물 처분하듯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조금씩 처분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CCTV도 마법이 실현될까? 되면 좋은데……. 기계라 안 되겠지? 아냐. 어쩌면 될지도 몰라. 흐음, 일단 실험해 봐야 하는데… 으음, 어떻게 하지? 그걸 사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현수는 비용을 알아봤다.

1세트 구입 비용이 30만 원쯤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걸 사, 말아?”

한참을 고심하던 현수는 결국 포기했다. 필요도 없는 물건 구입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수는 자신이 직접 벌어들인 1,000개의 금화를 꺼냈다.

이것들은 10골드짜리가 아니라 1골드짜리이다. 따라서 굳이 잘라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일이 멜트 마법으로 녹여 자그마한 금괴 형태로 바꾸었다. 이것들은 팔면 11억 8천만 원 정도 받을 것이다.

이렇듯 많이 꺼낸 것은 돈이란 계속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며, 이번에 조금 넉넉히 준비하기 위함이다.

“일단 종로부터 가야겠지.”

다음날 종로의 금은방을 돌며 처분한 것은 300여 개뿐이다.

가급적 CCTV에 찍히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느라 그랬다.

가게 주인들은 현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거래를 마치고 헤어지는 순간 이미지 컨퓨징 마법을 건 때문이다.

그럼에도 금은방을 들를 때마다 옷을 갈아입었다. 모자를 쓰기도 했고 안경을 끼기도 했다. 때론 가발을 쓰기도 했다.

다음날은 인천의 금은방들을 순례했다. 이곳에서도 200여 개의 금화를 처분했다.

그 다음날은 대전이다. 그리고 대구도 들렀다. 두 곳에선 각기 150개 정도를 처분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금화를 처분한 곳에서 현수가 받아 쥔 돈은 1,600만 원이 조금 넘는다.

“오늘은 조금 놀아볼까?”

어젯밤 현수는 대전에 있었다. 여러 군데 금은방을 돌며 금화를 처분하고 나자 저녁 무렵이 되었다.

배가 고팠기에 자그마한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로 저녁을 때웠다. 그리곤 곧장 모텔로 가서 밤새 캔 맥주를 홀짝이며 재미도 없는 유선방송을 보았다.

차를 타고 대구로 이동하는 동안 생각해 보니 처량하고 한심했다. 이실리프의 대마법사가 한낱 모텔에서 백수들이나 하는 짓을 연출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오늘은 조금 시끄러운 델 가볼까?”

오후 여섯 시경 현수는 택시에서 내렸다. 기사의 말로는 대구에서도 손꼽히는 호텔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호화롭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하룻밤 묵어가려 합니다.”

“아, 그러십니까?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노혜미라 쓰인 명찰을 단 여인은 브로셔(Brochure)를 내놓는다. 그리곤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일 대구에서 대규모 국제 행사가 열리게 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일반 객실은 물론이고 슈페리어부터 프리미어 스위트룸까지 모두 동이 났다고 한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워낙 대규모 국제 행사인지라 대구 시내의 거의 모든 호텔의 룸이 예약 완료되었을 것이라 한다.

특급호텔 직원이 하는 말이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참고로 이 호텔의 일반 객실은 1박에 15만 원, 슈페리어 룸은 60만 원, 스위트룸은 90만 원 선이다.

당연히 부가세는 별도이다.

남은 것은 최고급인 로얄 스위트룸이라면서 그에 대한 설명을 한다. 그런데 별로 내켜하지 않는 표정이다.

현재 현수는 노타이의 캐주얼한 양복 차림이다. 당연히 비싼 브랜드가 아닌 마트에서 산 것이다.

현수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 때문이란 생각에 슬며시 불쾌했다. 손님인데 입은 옷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튼 로열 스위트룸은 하룻밤 객실 요금이 무려 120만 원이다. 부가세까지 포함되면 132만 원이 된다.

현수는 태어나 단 한 번도 마음 놓고 돈을 써본 적이 없다.

어릴 땐 부모님의 재정 형편이 좋지 못해 먹고 싶은 것 못 먹었고, 입고 싶은 것 못 입었다.

갖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가져본 것이 드물다. 또한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도 해보지 못한 일이 수두룩하다.

그 결과가 남들은 몇 번씩이나 가본 설악산이나 제주도를 여태 한 번도 못 가 본 것이다.

심지어 바다 구경을 해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너무 오래되어 그런지 기억도 없다. 아주 어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가보았다는데 그때 나이가 세 살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말 다 한 것이다.

실상 현수네 가족은 간신히 먹고만 살았다. 물론 아버지의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이다. 하나 현수는 아버지를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아버진 본인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공부를 등한히 한 결과 고등학교 성적이 별로였다고 한다. 그 결과 간신히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은 했지만 결국 대학을 못 갔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루저 내지는 쓰레기 취급을 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개나 소나 다 대학을 가겠다고 야자를 하는 나라이다. 그 결과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이 PC방 알바를 하면서 중딩, 고딩들에게 라면 끓여다 바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어쨌거나 현수의 가난은 취직을 하고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 하나 근검절약이 몸에 밴 때문에 함부로 돈을 써본 기억이 없다.

만 원이 넘는 물건을 사려면 사기 전에 몇 번을 생각해 본다.

핸드폰도 가장 저렴한 요금제에 가입해 놓고 가급적이면 받는 용도로만 쓴다.

음식을 먹으러 식당엘 들어가면 먼저 가격부터 확인했다. 자신의 기준보다 비싸 보이면 아무리 먹고 싶어도 참았다.

월급을 받으면 가장 먼저 효도 자금을 송금한다. 실수령액의 20% 정도이다.

다음은 원룸의 월세와 카드 값, 그리고 각종 공과금을 위한 돈을 계산해서 떼어둔다.

그러고도 돈이 남으면 일부는 미래를 위한 투자로 남겨두었다. 그리곤 정말 최소한의 돈만으로 살아왔다.

냉장고 안의 캔 맥주는 현수가 유일하게 부리는 사치이다.

아무튼 현재의 현수에겐 아공간에 상당히 많은 돈이 있다.

거의 대부분이 현금이다. 오늘 이 중 일부를 원없이 써보기로 마음먹었었다.

하나 몸에 밴 근검절약 정신이 어디 가겠는가!

하여 객실 요금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사실 하룻밤 잠을 자는 데 132만 원이면 너무 비싸지 않은가!

그래서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어젯밤처럼 하룻밤 자는 데 3만 원짜리 조그만 여관으로 갈까 고민한 것이다.

그 순간 설명했던 여직원의 눈에 그러면 그렇지 하는 빛이 감돈다. 물론 이해는 된다.

호텔에서 근무하지만 하룻밤 자는 데 그만한 돈을 내는 것이 본인도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태 능력도 안 되는 사람에게 정성껏 설명한 것이라면 맥 빠진다.

그래도 호텔리어가 아니던가!

노혜미는 이내 표정을 고치고 끝까지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하나 아무리 순간적이라 하더라도 어찌 그 뉘앙스를 못 느끼겠는가!

‘제길, 사람을 뭐로 보고…….’

현수는 슬쩍 기분이 상했지만 물러나진 않았다. 그러면 등 뒤에 대고 비웃음을 날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 이기는 것이다.

“흐음, 110㎡라면 조금 작지만 그런대로 쓸 만하겠군요. 좋습니다. 체크인하죠.”

“……!”

현수가 주민등록증을 꺼내 건넬 때까지 여직원은 아무런 말도 없다. 모르긴 해도 예상 밖이라 이럴 것이다.

“키, 안 주십니까?”

“아, 네에. 자, 잠시만요.”

카드키를 받아 든 현수는 굳게 마음을 다져 먹었다.

언제 이럴 기회가 또 올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원없이 돈을 써보기로 다시 한 번 작정한 것이다.

특별한 짐이 없기에 객실은 들어가 볼 필요가 없다. 하여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데스크로 갔다.

“저어, 식사를 하려 하는데 추천 좀 해주시죠?”

“네에, 저희 호텔엔 가든 스퀘어와 그랑데뷰, 그리고 윈드 테라스 카페가 있습니다. 가든 스퀘어는 뷔페이고, 그랑데뷰는 프랑스 요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윈드 테라스 카페는 아직 날씨가 쌀쌀한 관계로 추천해 드리지 않습니다.”

2장 부킹하실래요?

“그랑데뷰는 몇 층에 있죠?”

“이곳 8층에 있습니다, 손님.”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네, 즐거운 식사되시길 빌겠습니다.”

최고급 룸에 체크인을 해서 그런지 더 상냥하고 싹싹해진 느낌이다. 그런데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동안 문득 스치는 상념에 현수의 입꼬리가 슬며시 위로 올라간다.

아주 오래전, 현수의 시간으로 몇 십 년 전에 강연희 대리와 이태리 식당을 갔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랑데뷰라는 곳을 찾아보니 복도와 유리로 격리된 공간이다. 탁 트여 있기는 한데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하여 발걸음을 돌려 다시 데스크로 향했다.

“노혜미 씨.”

“네, 손님.”

“가봤는데 내키지 않는군요. 이 근처에 이태리 식당 괜찮은 곳 있으면 추천해 주십시오.”

“네, 손님. 가까운 곳에 스파게티와 리조토 전문점이 있습니다. 후레쉬이태리라는 레스토랑이죠.”

“제가 먹고 싶은 건 마늘과 올리브 오일을 곁들인 소고기 콩소메, 다진 해산물로 채운 가지 크림소스의 라비올리, 그리고 겨자 크림소스로 맛을 낸 바다가재와 오렌지 소스로 맛을 낸 구운 바나나입니다. 이런 걸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네에? 아! 잠깐만요.”

현수의 입에서 줄줄이 이태리 음식 이름이 나오자 여직원은 당황한 듯하다. 비싼 룸에 묵기에 겉보기완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다. 하나 이처럼 이태리 음식 이름을 줄줄이 댈 정도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당황한 것이다.

양해를 구한 여직원이 데리고 온 사내는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인상 좋은 사내이다.

아마도 이 호텔의 컨시어즈2)인 듯하다.

“안녕하십니까, 손님. 컨시어즈 박인호입니다. 제가 도와드리고 싶은데, 드시고 싶은 음식 이름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네, 그러죠. 제가 먹고 싶은 건…….”

현수는 또 한 번 이태리 음식 이름을 댔다. 말이 끝나자 컨시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알겠습니다. 마침 손님께서 원하시는 음식을 맛보실 좋은 이태리 식당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수성구에 위치한 빠빠베로(Papavero)라는 곳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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