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28화 (28/1,307)

# 28

“빠빠베로요?”

“네, 이곳은 중구이고 수성구는 바로 옆에 있는 구입니다. 택시를 타고 가셔도 되지만 저희 호텔에서 손님을 그곳까지 모셔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요? 그래 주시면 저야 좋지요.”

“네에, 다행입니다. 그럼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차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현수는 컨시어즈의 친절한 응대에 기분이 좋아졌다.

현수가 읊었던 이태리 음식들의 값은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컨시어즈는 VIP라 판단한 것이다.

덕분에 현수는 기분 좋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음식의 맛도 훌륭했고 서비스도 괜찮았던 것이다. 물론 계산서를 받아 들기 전까지이다.

“으잉? 뭐가 이렇게 비싸?”

생각보다 훨씬 비쌌던 것이다.

그래도 기분 좋게 계산을 했다. 음식을 먹는 동안 강연희 대리와의 추억이 소록소록 기억났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을 나온 현수는 대구의 저녁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소화도 시킬 겸 생전 처음 와본 대구의 모습을 살필 요량으로 천천히 산책하며 둘러본 것이다.

그런데 서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흥미를 잃자 곧장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리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기분 좋은 목욕을 했다.

저녁 9시경, 창가에 앉아 물끄러미 대구 야경을 바라보던 현수는 저 혼자 떠들고 있던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곤 노타이 차림으로 객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보니 지하에 나이트클럽이 있다.

C&C라는 곳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인데 멀리까지 갈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내친김에 그냥 지하로 내려갔다.

쿵쿵쿵쿵! 쾅쾅쾅쾅! 쿵쿵쾅쾅!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묵직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어서 옵셔! 혼자 오셨는교?”

“……!”

“혹시 지명하실 웨이터가 있는교?”

현수에게 말을 붙인 사내는 스물서너 살쯤 된 웨이터 보조이다. 명찰을 보니 홍길동이라 쓰여 있다.

활빈당을 만들어 없는 사람들을 도왔던 의적이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 보조를 한다 생각하니 웃겼다.

하여 웃음 띤 얼굴로 대꾸했다.

“아는 웨이터 없는데?”

“그래예? 그럼 제가 모셔도 되겠는교?”

홍길동은 목젖이 보일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 그럼.”

“손님, 룸으로 안내해 드릴까예?”

“룸? 아냐. 그냥 홀로 안내해 줘. 혼자 와서 심심하거든.”

“네에, 알아서 자알 모시겠슴돠. 자아, 이쪽으로 오십쇼.”

현수는 돈을 써보기로 마음먹었기에 평상시엔 꿈도 못 꾸던 양주를 주문했다. 안주도 제일 비싼 놈으로 골랐다.

당연히 홍길동의 입이 양쪽으로 쫙 찢어진다.

일사불란한 테이블 세팅이 끝났을 때 현수는 팁을 찔러주었다. 나이트 마니아인 곽 대리로부터 이런 데 오면 어떻게 하는 건지 확실히 배웠던 것이다.

“핫! 이렇게 많이……! 고맙심더. 앞으로도 알아서 자알 모시겠습니더, 손님!”

홍길동의 허리가 거의 직각으로 꺾인다. 처음부터 제법 많은 액수를 준 때문일 것이다. 현수는 피식 웃음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내 플로어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속으로는 여유가 있으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느꼈다.

밤 9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건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이런 델 와본 경험이 너무 적기에 현수는 춤을 출 줄 모른다. 그렇기에 남들이 춤추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술 한잔 들어가서 얼큰해지면 춤을 춰볼 생각을 한 것이다.

빠른 템포의 음악이 잦아들자 플로어에 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온다. 소위 말하는 블루스 타임인 듯하다.

현수는 자음자작하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왼쪽 테이블엔 애인 사이인 듯한 남녀가 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오른쪽 테이블엔 여자들 셋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재잘대고 있었고, 앞쪽 테이블에 여자 넷, 남자 둘이 있다.

건너 테이블엔 외국인들도 보인다. 흑인 하나에 백인 셋이다. 물론 남자들이다.

블루스 타임이 끝나자 또다시 사람들이 밀물처럼 플로어로 밀려나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홀로 미소 지었다.

사람 사는 모습처럼 보인 것이다.

“손님…….”

“어? 왜?”

홍길동이 다가와 고개를 숙인다. 그리곤 귓가에 대고 소리친다. 음악 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손님도 부킹 한번 하셔야지예? 저쪽에 예쁜 아가씨 있는데 데려올까예?”

“아니, 별로 생각 없는데?”

뭔 소린가 싶어 귀를 기울였던 현수는 관심없다는 듯 몸을 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빼지 마십쇼, 손님 같은 분이 부킹 안 하면 누가 하겠는교?”

불과 28일이지만 아르센 대륙에 머무는 동안 현수에겐 전에 없던 것이 생겼다.

그쪽에서의 신분은 이실리프의 대마법사이다.

이것들이 어우러져 눈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3)가 뿜어진다.

사실 호텔의 컨시어즈도 이런 분위기가 느껴졌기에 VIP 대접을 한 것이다.

현수가 홀로 들어와 물끄러미 플로어의 선남선녀들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유심히 쳐다보는 여인이 있었다.

몇 테이블 건너에 앉아 있는 묘령의 아가씨이다.

여자들도 그렇지만 나이트에 혼자 오는 남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속칭 선수라 불리는 놈들이 그러하다.

그런데 현수는 그래 보이지 않는다. 여심을 유혹하기 위해 쫙 빼입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먹잇감을 노리고 온 늑대라면 플로어의 여자들은 물론이고 주변 여자들까지 샅샅이 훑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편안한 시선으로 춤추는 남녀를 보며 희미한 미소만 짓고 있다. 그러고 보니 상당히 괜찮아 보인다.

이에 흥미를 느껴 마침 곁을 지나던 웨이터 보조 홍길동을 붙잡고 부킹을 부탁한 것이다.

“아냐. 별 생각 없으니 나한텐 신경 안 써도 돼.”

“정말인교?”

“그래. 술이나 한잔하면서 남들 춤추는 거 구경하려고 들어온 거야.”

“아, 그랬는교? 알겠슴돠.”

물러서는 홍길동의 얼굴엔 이런 생각이 쓰여 있었다.

‘쳇! 열 계집 마다하는 사내 없다는데, 고잔가? 아냐.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아직 발견하지 못해서 그런 걸 수도 있어.’

홍길동은 사방팔방을 쏘다니며 들어온 손님들을 살폈다.

그러는 동안 현수의 뒤쪽 테이블에 새 손님들이 자리를 잡는다. 여자 둘만 온 듯하다.

웨이터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현수 쪽에 시선을 주지 않아 용모를 알 수는 없지만 젊은 아가씨인 것만은 분명하다.

10시가 되도록 홍길동은 다섯 번이나 더 왔다. 다른 웨이터들도 왔었다. 거의 3분에 한 번 꼴이니 스무 번 이상 부킹 요구를 받은 것이다.

당연히 모두 거절했다. 아무튼 현수는 모르지만 홍길동이 온 것 중 세 번은 동일인이 보낸 것이다.

보통의 경우 누군가 부킹 요구를 하면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려 든다. 그래서 시선을 마주쳐 상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든지 흔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정말 아니다 싶은 정도가 아니면 대개 고개를 끄덕인다. 만나본다고 해서 크게 손해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현수에게 호기심을 느꼈던 여인은 감히 자신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에 대한 불쾌감과 오기가 어우러져 홍길동에게 두 번이나 심부름을 더 시킨 것이다.

두 번 더 퇴짜를 당한 후 여인은 웨이터에게 물었다. 현수가 뭐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뜻이다.

그런데 현수는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물론 시선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정말로 부킹에 관심이 없는 것이거나 진짜 고수라는 소리이다.

아무튼 웨이터 보조는 월급이 없다고 들었다. 다시 말해 손님이 주는 팁이 수입이다.

이런 상황을 알기에 현수는 팁을 한 번 더 주었다. 자신을 위해 애쓰는 것에 대한 보답이다.

그러면서 부킹에 관심없으니 괜한 노력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홍길동은 아예 현수의 곁에 쪼그려 앉는다.

“손님,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없어서 그러는 것인교?”

“아냐. 진짜 관심이 없어서 그래.”

“에이, 아닌 것 같은데? 근데 손님은 대구 사람 아니지예?”

“어떻게 알았어?”

“사투리를 안 쓰시잖아예.”

“그래? 그렇군. 난 서울에서 왔어.”

“아! 출장 같은 거 온 거군요?”

“출장은 아니고 그냥… 아, 잠깐만.”

문득 진동이 느껴진 현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객실 카드키가 바닥에 떨어진다. 딸려 나온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현수는 통화를 하려 했다. 그런데 끊긴다. 번호를 보니 어머니가 하신 듯하다.

“으응? 왜 끊으셨지?”

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에 홍길동은 카드키를 집어 들었다. 객실 번호를 보니 로열 스위트룸이다.

하룻밤 자는 데 132만원이나 내야 하는 최고급 룸인 것이다. 홍길동은 눈빛을 빛냈다.

“손님, 이거 떨어뜨리셨네예.”

“아, 고마워.”

“아니라예. 그럼 즐겁게 노십쇼.”

홍길동이 물러나자 현수는 나이트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그냥 안부를 알고 싶어 전화했다고 한다.

잘 있으니 걱정 말라는 말과 다음 주 주말에 찾아뵙겠다는 말을 했다. 회사에서 휴직한 것을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밥 잘 먹고 높은 사람 눈에 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물론 네, 네 하며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어라? 여긴 내 자린데?”

통화를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보니 웬 아가씨 하나가 앉아 있다. 이십대 중반으로 꽤 예쁜 얼굴이다.

“알아요. 잘난 오빠야 얼굴 좀 보려고 왔어요.”

“네? 그게 무슨……?”

“오빠야한테 세 번이나 부킹 퇴짜 맞은 사람이에요.”

“아, 그래요?”

대강 짐작이 간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라 생각한 현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오빠야는 여자한테 관심없어요?”

“네? 아, 물론 그건 아니지요.”

고자 아니냐는 뜻에 그렇다 대답할 순 없지 않은가!

“근데 왜 내가 같이 놀자고 신호를 보냈는데도 거절했어요?”

“그건… 내가 오늘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 그냥 다른 사람들 노는 거 구경하려고 온 거라…….”

“그러면 저 여기 있어도 되지요?”

“네?”

“이 자리가 마음에 든다는 뜻이에요.”

“뭐, 정히 그러시다면…….”

현수는 여자와 동석해 있으면 부킹하라며 귀찮게 하는 홍길동이 더 이상 오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는 권지현이라 하는데 오빠야는 이름이 뭐지요?”

“아, 난 김현수라 합니다.”

“나는 스물일곱 살인데 오빠야는 나보다 나이가 많죠? 그러니 그냥 오빠야라 부를게요.”

“뭐, 편하신 대로…….”

나이트클럽만 나가면 금방 헤어질 것인지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 한잔 들이켰다. 그리곤 안주를 집어 먹으려는데 권지현이란 아가씨가 술을 따르려 한다.

엉겁결에 잔을 들어 술을 받았으니 안 줄 수 없지 않은가! 하여 아가씨의 잔에도 술을 따라주었다.

권지현은 술을 받으며 현수에게 시선을 맞췄다.

“나는 현수 오빠야한테 흥미를 느꼈어요. 이런 기분 오랜만이에요. 그래서 기분이 좋아 한잔할 건데 괜찮지요?”

“아, 네에, 그러세요.”

현수가 대답하는 사이에 원샷으로 잔을 비운다.

“양주라 조금 독한데 그걸…….”

스트레이트로 마셔 버리곤 입술에 묻은 술을 손등으로 닦아낸다. 그리곤 안주 한 점을 오물거리며 먹는다.

참 섹시하고 화통한 아가씨이다.

“근데 오빠야는 와 혼자 왔어요?”

“네에, 그냥 심심해서……. 대구엔 아는 사람도 없고.”

막 이야기꽃이 피려는 찰나이다.

“야! 이런 십장생 같은 년아!”

“아악! 왜 이러세요?”

쾅! 콰당∼!

양복을 걸친 사내가 밀어붙이자 여자가 나뒹군다. 이것은 현수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의 모습이다.

“니년들 때문에 비싼 양주까지 시켰는데, 뭐?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자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화가 난 사내가 여자를 걷어차려는 순간이다. 주변에 있던 웨이터가 득달처럼 달려들어 사내를 잡았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뭐야, 이건? 놔! 놓으란 말이야!”

“손님! 일단 진정하시고……!”

“진정은 무슨! 놔! 이 손 안 놔!”

“손님……!”

“놔……! 어서 안 놔?”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웨이터가 사내의 뒤에서 양팔을 잡고 있지만 힘으로 당해내지 못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내는 185㎝ 키에 100㎏을 훌쩍 넘기는 덩치이다. 운동선수라도 되는지 근육질로 보인다.

나이는 삼십대 초반쯤 된다.

“이게 어디서! 놔아!”

콰당∼!

“에라, 이 십장생 같은 년아!”

짜악∼!

“아아악!”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힘으로 밀쳐내자 웨이터는 힘없이 나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몇 발짝 앞으로 나간 사내는 겁에 질린 여자의 뺨을 후려갈겼다.

당연히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현수는 그제야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