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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29화 (29/1,307)

# 29

호텔에 체크인할 때 안내했던 노혜미다. 보아하니 근무를 마치고 친구와 나이트클럽에 놀러온 모양이다.

“어머, 저 남자는……?”

권지현이 경악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요? 아는 사람이에요?”

“네……? 아, 네에.”

권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 이 계집애야.”

사내가 쓰러져 있던 아가씨의 손목을 잡아 일으키는 순간이다. 웨이터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선다.

“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느새 다가온 웨이터들이 사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쪽에서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느라 여념이 없다. 워낙 시끄러운 곳이라 이 정도 소란은 표도 안 나는 모양이다.

사내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웨이터에게 눈을 부라렸다.

술에 잔뜩 취했는지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니들 나 몰라?”

“……!”

나이트클럽은 개장 시간이 오후 늦은 편이다.

웨이터들은 그전에 개인적인 영업 활동을 하는 한편 몸 만들기를 주로 한다.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술 먹고 행패 부리는 이들을 상대하기 위함이다.

지금 사내의 앞을 가로막은 웨이터 역시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매이다. 하나 사내에 비하면 역부족이다.

사내 쪽이 훨씬 더 크고 우람한 몸이었던 것이다.

“압니다.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놀다 가시면 안 되겠는교?”

“안 돼. 이 계집애 버릇을 고쳐놓기 전엔.”

말을 마친 사내는 웨이터를 밀쳤다. 아무리 덩치 차이가 나더라도 웨이터들이 합세하면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심지어 앞을 막고 있던 웨이터마저 옆으로 비켜선다.

“따라와!”

“아악! 왜 이래요, 싫다는데?”

“시끄러! 얌전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사내의 우악스런 손에 잡힌 아가씨는 질질 끌려갔다. 그렇게 사내가 멀어지고 있을 때 권지현의 입이 열렸다.

“저 아가씨… 하필이면 왜 저 사내를…….”

“권지현 씨, 저 남자 안다고 했죠?”

“네……? 아, 네에.”

멀어지는 사내의 떡 벌어진 등을 바라보던 권지현이 얼른 시선을 맞춘다.

“누굽니까, 저 사내?”

“역전회 회장의 아들이에요.”

“역전회 회장……? 분위기는 무슨 조폭 같은데요?”

사내에게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물어본 말이다.

“맞아요, 조폭. 대구에서 가장 큰 조직이에요.”

“흐음, 요즘엔 무슨 무슨 파라고 안 부르고 회라고 부르는 모양이네요.”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지요.”

그러고 보니 조금 전 사내가 여자를 우악스럽게 다룰 때 근처에 덩치 큰 놈 서넛이 있었다.

모르는 사이라면 사내가 여자를 걷어차려 할 때 제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보고만 있었다. 아마도 일행인 듯하다.

현수가 일련의 기억을 떠올릴 때 권지현의 말이 이어진다.

“저 사람, 며칠 전에도 소란을 피웠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떡해요, 저 여자?”

“무슨 소립니까?”

“저 사람, 맨정신일 땐 저러지 않는데 술만 먹으면 제어가 안 되는 사람이라고 들었어요.”

“술만 먹으면?”

“네, 술 먹었을 때 누구든 비위를 건드리면 가만 안 있는다고 해요. 근데 워낙 힘이 좋아서 감당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요? 근데 더 때리겠어요?”

“여자가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으니 더 이상 때리진 않겠지요. 그런데 만일 반항을 하면…….”

“반항하면……?”

“몹쓸 짓 당할 수도 있잖아요.”

“몹쓸 짓……?”

“네.”

권지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같은 여자로서 호텔 아가씨가 당할 고통을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흐음, 그래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현수가 슬쩍 일어섰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다녀오세요.”

화장실로 들어온 현수는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근데 내가 개입해도 되는 걸까? 나하곤 관계없는 일이잖아. 아니야. 김현수! 약한 여자가 어쩌면 위기에 처해 있을 수도 있잖아. 안 그래? 가서 도와주자. 으음, 어떻게 한다?”

잠시 고심한 현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곤 화장실을 나섰다. 사내가 들어간 룸의 밖에는 건장한 사내 둘이 마치 보초를 서듯 서 있다.

약간 떨어진 곳에도 두 명의 사내가 더 있다. 한눈에 봐도 깍두기로 보이는 놈들이다.

“이미지 익스체인지!”

나직한 목소리로 마법을 걸자 다가가는 현수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들의 눈엔 현수가 조직의 형님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그래, 형님 안에 계시지?”

“네, 계십니다.”

“그래, 알았다.”

현수가 문을 열고 들어섬과 거의 동시에 소리가 들린다.

“누구야?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

사내는 여자의 하체 쪽을 깔고 앉아 있었다.

주변엔 여자가 걸치고 있던 블라우스의 단추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힘으로 잡아당긴 모양이다.

노혜미는 사내에게 끌러오면서 봉두난발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공포와 고통에 눈물을 흘려 마스카라가 번진 모습니다.

“누구냐, 넌?”

“나……? 너 같은 놈들 혼내주시는 분이지.”

“뭐라고? 어디서 개잡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내는 손을 들어 현수를 후려갈기려는 자세를 취했다.

전 같으면 위압감을 느껴 벌벌 떨거나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하나 현수가 누구인가!

아르센 대륙의 오우거는 물론이고 트롤과 와이번을 수백 마리씩이나 때려잡은 무적의 대마법사이다.

“마나의 힘이여, 저자의 힘을 빼앗아라. 마이어시니어 그래비스(Myasthenia Gravis)!”

“헉……! “

사내는 전신의 힘이 빠짐과 동시에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고개를 제대로 들고 있을 기운조차 없을 정도로 힘이 쏙 빠져 버린 것이다.

마이어시니어 그래비스는 중증 근무력 마법이다.

물론 멀린만의 독창적인 마법이다.

사람의 근육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불수의근(Involuntary muscle)과 수의근(Voluntary muscle)으로 나눌 수 있다.

수의근은 의지의 힘으로 수축시킬 수 있는 근으로 골격근 외에 피부 내의 피근과 관절에 있는 관절근 등이 속한다.

반면, 불수의근이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근육을 말한다. 내장을 이루는 근육과 심근이 이에 속한다.

방금 현수가 시전한 마법은 수의근만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목숨엔 지장이 없지만 제자리에 서 있을 수 없어 그대로 무너지게 만든 것이다.

“뭐, 뭐야, 이거? 끄으응! 헉! 내가 왜 이래? 야! 너,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으으윽!”

제법 의지가 강했는지 간신히 고개를 든 사내의 물음에 현수는 대답 대신 싸늘한 눈빛만 보여주었다.

그리곤 노혜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브래지어가 흘러내려 가슴의 절반 이상이 드러나 있다.

소담스러우며 하얗고 봉긋하다. 하나 자신의 상황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듯 멍한 시선이다.

“괜찮아요?”

“소, 손님? 손님이 어떻게……?”

“노혜미 씨가 험한 꼴을 당할 것 같아서……. 괜찮은 거예요?

“네, 전 괜찮아요. 어머나!”

말을 하며 자신의 몸을 살피던 노혜미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얼른 쪼그려 앉았다.

상의 단추는 모두 뜯겨 나갔고, 브래지어는 풀려서 배에 걸쳐 있다. 치마 역시 벗겨져 나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옷부터 입으세요.”

“네, 네에.”

현수가 몸을 돌리자 허겁지겁 걸친다. 그러는 사이에 현수는 밖으로 나가 그녀의 외투를 가져왔다.

다행히 그걸 입으니 안의 상태가 완벽하게 가려진다.

“정신적인 충격이 컸을 겁니다. 곧장 집으로 가서 쉬세요.”

“네에, 정말 고맙습니다.”

“자아, 그럼 나가시죠.”

현수의 손짓에 노혜미가 주저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밖에 있는 놈들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 정말이요?”

“흐음, 그럼 저랑 같이 나가시죠.”

“고, 고마워요.”

문이 열리고 현수와 노혜미가 나서자 사내들의 고개가 일제히 숙여진다.

“흐음, 나는 잠시 나갔다 올 테니 니들은 놀고 있어라.”

“네, 형님! 편안한 밤 되십시오!”

사내들의 눈엔 현수가 두목의 아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혜미는 어떤 영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이기에 찍소리 않고 따라 나왔다.

나이트클럽 입구에 당도하자 노혜미는 새삼스레 인사를 한다. 그리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는다.

그런 그녀의 뒤를 보며 현수의 입술이 달싹인다.

“마나의 힘이여, 이곳에서의 기억을 삭제하라. 메모리 일리머네이션(Memory Elimination)!”

샤르르르르릉∼!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나가 노혜미의 머리 부분을 잠시 감쌌다가 흐트러진다. 이제 이곳에서 있었던 모든 기억이 완벽히 삭제되었을 것이다.

현수는 다시 사내가 있던 룸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진 채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어때, 힘을 잃으니?”

“누, 누구십니까?”

밖으로 나갔다 오는 잠시의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는지 사내의 음성엔 경외감이 섞여 있다.

“나? 너같이 힘만 믿고 남들 못살게 구는 인간들 벌주는 사람이야.”

“도, 도사님, 잘못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도사? 도사는 무슨. 나, 도사 아닌데?”

3장 도사님, 용서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도사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나쁜 짓 안 하고 살겠습니다. 그러니 정말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글쎄? 내가 네 말을 믿어야 해?”

“맹세합니다. 정말 나쁜 짓 하지 않겠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도사님!”

“그래? 그럼 니가 진짜로 반성하는지 볼까? 일단 반성하고 있도록. 나가서 네 평판을 들어보고 결정하지.”

말을 마친 현수는 룸을 나섰다. 그리곤 입술을 달싹였다.

“마나의 힘이여, 입구를 봉쇄하라. 브락케이드(Blockade)!”

룸의 외벽에 마나가 스며드는 희미한 모습이 보인다. 물론 현수의 눈에만 보이는 현상이다.

이제 어느 누구도 사내가 있는 룸엔 드나들 수 없다.

“오래 걸리셨네요.”

권지현의 말에 현수는 미소만 지었을 뿐이다.

“오빠야, 오빠야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현수가 자리에 앉자마자 비어 있던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묻는다.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에요.”

“정말요? 어디 다니는지 물어봐도 돼요?”

“천지건설(주)이라고 혹시 알아요?”

“천지건설(주)이라면 천지그룹 계열사 아닌가요?”

“맞아요. 그 회사 자재과에서 근무해요.”

“아, 그래요?”

궁금한 것이 풀렸다는 듯 물러나 앉는 권지현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러는 지현 씨는 혼자 온 거예요? 일행 없어요?”

“네, 저도 오늘 기분이 꿀꿀해서 혼자 왔어요.”

“으음, 그랬군요.”

현수는 상대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없다. 그렇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술잔을 비웠다. 그리곤 스테이지로 시선을 돌리려는데 권지현이 술잔을 내민다.

“제 잔 비었어요. 그리고 전 대구지청에서 근무해요.”

“대구지청?”

“네, 대구지방검찰청이요.”

“아! 그래요?”

현수는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권지현이 어딜 근무하든 상관은 없지만 일단 평범하지 않은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치이, 제 말 안 믿으시는군요?”

권지현은 현수의 반응이 떨떠름하다 느낀 듯하다.

“여기요. 이거 제 명함이에요.”

핸드백에서 꺼내 건네는 명함을 받아 들었지만 조명이 워낙 어두워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여 보는 둥 마는 둥 하다 물었다.

“설마 지청에 근무하는 형사님은 아니죠?”

“쳇! 물론 아니에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처음엔 말문 트기가 어려운 법이다. 하나 한번 말문이 트이면 쉽게 대화가 이어지게 마련이다.

현수는 권지현과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다.

술이 바닥을 보일 때쯤엔 같이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물론 블루스는 아니다.

스텝도 모르는데 어찌 추겠는가!

그러는 동안 룸 안에서 반성하고 있을 사내에 대한 것을 물어보았다. 검찰청에 있다니 혹시나 하여 물은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사내의 이름은 오광섭, 나이 30세, 미혼이다.

역전파 두목 오대준의 큰아들이며, 학창 시절 공부는 좀 했는지 서울에 있는 4년제 이류 대학 출신이다.

졸업 후 특전사에서 복무했다고 한다.

역전파는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려 발버둥치는 조직이다. 다시 말해, 여타 조직처럼 유흥가를 장악하고 보호비를 뜯어내는 깡패 집단이 아니다.

속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외부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상적인 회사를 운영하여 얻은 수익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SB종합건설과 SB무역, 그리고 SB패션 등이 역전파가 일궈낸 기업들이다. SB는 Station Before의 약자라고 한다.

조폭들의 영어 실력을 알 만하다.

이것들 이외에도 주유소와 편의점, PC방 등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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