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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30화 (30/1,307)

# 30

아무튼 오광섭은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 대구로 내려와 아버지로부터 조직을 물려받는 중이다.

배운 사람답게 예의 바르고 부드럽지만 술만 들어가면 돌변한다. 어쨌거나 그간 여자에겐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주에 그 기록이 깨졌다.

다른 나이트클럽에서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여 현재 입원 중이라 한다. 그리고 오늘 또 여자를 폭행한 것이다.

하지만 성추행이나 강간 전과는 전혀 없다고 한다.

제법 상세한 정보를 획득한 현수는 화장실을 간다면서 오광섭이 있는 룸으로 향했다.

“으으! 도, 도사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닥을 기는 오광섭이 보인다. 그런데 그새 소변을 본 모양이다. 바닥이 흥건하다.

“어때, 반성 좀 했어?”

“네, 도사님! 제,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아까까지만 해도 다른 사내들을 압도하던 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줌 누러 화장실로 기어가던 도중 바지에 오줌이나 싸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오광섭은 현수가 자신에게 도술을 건 것이라 생각했다. 손가락 하나 몸에 댄 적조차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면 어찌하나 생각을 해보니 암담하다. 그렇기에 현수에게 애원하는 것이다.

“오광섭, 역전파 두목의 아들이라고?”

“네, 맞습니다.”

오광섭은 순순히 자신의 신분을 인정했다.

어디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 알아보고 온 듯한데 아니라고 했다가 어떤 일을 더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주에도 여자를 폭행했다고 하던데, 어찌 된 거지?”

“그, 그년은… 아니, 그 여자는 경리였습니다. 그런데 조직의 자금, 아니, 회사 자금을 몰래 빼돌려 왔습니다.”

“돈을 빼돌려? 그 액수가 얼마나 되는데?”

“17억 원쯤 됩니다. 그걸 막느라 운영하고 있던 주유소와 편의점 등을 팔아야 했습니다.”

“뭐, 17억? 그걸 한 번에 빼간 거야?”

17억은 한 달 월급이 300만 원이라면 한 푼도 쓰지 않고 47년 이상을 모아야 되는 거금이다.

그렇기에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그건 아닙니다. 한 2년에 걸쳐서……. 그 때문에 직원들이 직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야?”

“죄송합니다. 조직원들이 너무 무식해서…….”

“그래서 때린 거야?”

“처음엔 말로 했습니다. 빼돌린 돈을 내놓으면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년이… 아니, 그 여자가 때려보라면서 바락바락 대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의 잘못에 대해 불겠다고 해서 몇 대 갈긴 겁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건설회사는 공사를 하다 불법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터 파기를 하던 중 고대 유물이 발견되면 즉시 공사 중단하고 문화재청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면 대학 교수 등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파견되어 일련의 검증 작업을 하게 된다.

적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간 발생되는 모든 비용 또한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다시 말해, 고대 유물이 발견될 경우 이에 대한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매장 문화재는 유실물로 처리된 후 국가에 귀속된다.

어떤 개자식들이 이런 법안을 만들었는지 몰라도 정말 개 같은 법이다.

뿐만이 아니다. 발견된 문화재가 고대 유적이고 보존의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공사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럴 경우 해당 토지는 물론이고 주변 토지까지 땅값이 급락하게 된다. 그렇기에 공사 중 문화재가 발견되어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SB종합건설이 그랬다.

달서구 진천동 일대의 아파트 부지를 매입한 후 공사를 하던 중 고대 유적을 발견하였다.

주변에 고인돌 몇 기가 있는 곳이다. 따라서 고대인들의 생활 터전쯤 되는 듯하다. 그런데 그냥 밀어버렸다. 보존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지면 회사가 망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경리사원은 17억이나 되는 거금을 횡령했다.

그 돈으로 온갖 명품 백들을 사들였고,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비싼 옷과 장신구를 사들였다.

뿐만 아니라 외제 스포츠카를 구입하여 애인과 함께 전국 각지로 놀러 다녔다.

휴가철이면 몰디브 같은 휴양지에서 돈을 펑펑 썼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회사는 자금이 부족하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그 이자를 갚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다 돌아온 어음을 막기 위해 알토란같던 주유소와 편의점 등을 남의 손에 넘겨야 했다.

그곳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은 거의 모두 해직된 상태이다.

그런데 뻔뻔스럽게도 자신이 횡령한 것을 회수하려거나 추궁할 경우 이를 고발하겠다면서 뻗댄 것이다.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하여 주먹을 쥐고 휘두르려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여직원은 계속해서 ‘때려봐!’를 외쳤다. 고화질로 생생히 녹화되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오광섭은 진짜 때릴 수도 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럼에도 여직원은 여전히 때려보라면서 약을 올렸다.

그러다 때려서 이빨이 부러져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그 순간 오광섭은 그게 진짜냐고 확인을 했고, 분명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오광섭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그녀의 아구창을 돌려 버린 것이다. 당연히 기절했고, 이빨도 네 개나 부러졌다.

이후 법적인 절차가 진행 중이다.

회사에선 유적 파괴 행위를 순순히 시인하는 대신 그녀를 횡령죄로 고발했다. 오광섭은 폭력 행위를 시인했다.

그럼에도 불구속 기소된 것은 당시의 장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화질로 녹화되어 있었고, 자수했기 때문이다.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물어본 결과 여자가 때려도 좋다는 말을 수차례나 했고, 때려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 또한 여러 번 했기 때문에 큰 처벌은 받지 않을 것이라 했다.

아무튼 이 사건 이후 여직원이 감춰둔 모든 재산에 대한 압류 결정이 내려졌다.

그간 속 썩이던 일이 한순간에 해결되자 오광섭은 오늘 모처럼 기분을 풀러 나이트클럽에 왔다.

그런데 손님 가운데 아는 얼굴이 있다. 노혜미이다. 오광섭이 대학 시절 꽤 괜찮게 보았던 다른 과 후배이다.

한편 노혜미는 오광섭에 대해 잘 모른다. 다른 과 선배인데다 한 번도 접근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오광섭은 반가운 마음에 웨이터를 보내 부킹을 청했다. 노혜미는 룸까지 왔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이야길 들어보니 진짜 싸가지가 없었다.

돈이 없는 남자와는 말도 섞기 싫고, 쩨쩨한 남자와는 더더욱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장 비싼 양주를 주문하도록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대화는 계속되었다.

학벌이 빈약하거나, 키가 작거나, 뚱뚱하거나, 못생겼거나, 대머리이거나,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사내들은 여자들을 만날 자격조차 없다고 한다. 이것들 모두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라도 해당되면 그렇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자신을 여왕처럼 떠받들어야 하며, 명품 옷과 명품 백, 그리고 비싼 외제차는 기본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이틀에 한 번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어야 하며, 무엇이든 최고를 누리게 해야 한다.

손끝에 물을 묻히기 싫으므로 가사 도우미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침 식사는 본인이 알아서 차려 먹어야 한다.

시부모와는 절대 한 집에서 할 수 없으며, 형제들의 잦은 왕래도 마땅치 않다.

아이를 낳으면 몸매가 망가지니 애는 낳아줄 수 없다. 입양도 싫고, 남편이 바람 피워 애를 낳아오는 것도 절대 용서 못한다.

이러한 제반 조건들을 충족시켜 줄 수 없는 사내들은 사회를 위해 일찌감치 자살하는 게 낫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꾹 참고 들어줬다. 그러다 학교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혹시 자신을 기억하나 싶어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러다 결국 오광섭이란 이름이 나왔다. 그런데 대놓고 욕을 한다. 건방지고, 싸가지없으며, 개 후레자식이라 재수없다고 했다. 왜 이런 오해를 하나 싶어 캐물었다.

그런데 별다른 이유도 없다. 그냥 싫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광섭의 아버지 오대준의 이야기까지 한다.

오광섭의 아버지는 비록 조폭 두목이었지만 아들이 대구에서 초중고를 다니는 동안 학교 육성회 회장을 맡았었다.

나중에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비록 폭력 조직에 몸담고 있지만 아들만큼은 반듯하게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학교에서는 오대준이 역전파 두목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만큼 예의 바르고 열성적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사실 어떤 조폭이 학교에 장학금까지 내놓겠는가!

그런 아버지까지 싸잡아 욕을 하더니 재수없는 깡패새끼라 하고는 바닥에 침까지 뱉었다.

그리곤 곧이어 오광섭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원래 창녀였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이 대목 이후 오광섭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분기탱천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때문이다. 한편 노혜미는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자 기분 나빠졌다면서 나가 버렸다.

한참 동안 분을 삭이던 오광섭은 몇 잔의 술을 들이켰고,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 결과 현수의 눈앞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상황이 발생된 것이다.

“그래서 옷을 벗겨서 강간하려 한 건가?”

“아, 아닙니다. 절대 그건 아닙니다. 그냥 옷을 몽땅 벗겨서 내쫓으려고만 했습니다.”

“옷만 벗겨? 성추행 의도는 없었고?”

“제 아버지와 어머니를 욕한 여자입니다. 아무리 여자가 없어도 그런 여자완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흐음, 그래?”

“네, 정말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도사님!”

“으으음.”

현수는 침음을 냈다. 오광섭의 말을 믿을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기 쉽지 않은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호텔에서 체크인할 때의 노혜미를 떠올렸다. 상냥하게 설명을 했지만 잠시 망설일 때 경멸의 빛이 있었다.

그렇다면 오광섭의 말이 전부 거짓말은 아닐 수도 있다.

이때 아르센 대륙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아르센 대륙은 신분 제도가 확실하다. 가장 상위에 황족, 또는 왕족이 있다.

그 아래가 귀족이다. 대공은 특별한 경우이니 이를 제외하면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순이다.

그 밑이 기사, 평민, 노예 순이다.

마법사와 신관은 특별한 경우라 순위에서 뺐다.

그런데 평민이라 하여 다 똑같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자작가의 시종은 분명 평민이다. 그런데 주인의 신분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다른 평민들을 하찮게 여긴다.

노혜미의 경우가 그렇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일개 여직원일 뿐이다. 그런데 마치 호텔의 주인인 양 일반 객실에 투숙하는 손님들 알기를 아랫사람 정도로 안다.

그럼에도 미소 띤 얼굴로 응대하는 것은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하나 이는 완전히 가식적인 미소이다.

속으론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현수가 망설이는 사이에 오광섭은 어떻게든 일어나려 했다. 무릎 꿇고 빌면 이 상황이 나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하나 전신 근육이 모두 무력화되었다.

그러니 어찌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여 벌레처럼 움직이며 낑낑대기만 할 뿐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현수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나직이 중얼거렸다.

물론 오광섭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나직했다.

“마나로 이루어진 상황이여, 모두 풀려라. 매직 캔슬.”

“으윽! 가, 감사합니다.”

사라졌던 기운이 되돌아오자 오광섭은 얼른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처절히 경험한 때문이다.

“일단은 믿어보지.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현수의 말은 이어질 수 없었다. 오광섭이 얼른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연 때문이다.

“아닙니다, 도사님. 정말 아닙니다.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사람이 어찌 벌레처럼 버둥거리면서 살고 싶겠는가!

오광섭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소란 피우지 말고 조용히 갈 거지?”

“네, 물론입니다.”

말을 마친 오광섭은 혹여나 마음이 변할까 봐 두렵다는 듯 조용히 외투를 걸쳤다. 바지에 오줌을 싼 때문에 축축하지만 내색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명령이 떨어져야 나갈 모양이다.

“마나여, 수분을 증발시켜라. 이베포레이션(Evaporation)!”

“마나여, 냄새를 제거하라. 데오도리제이션(Deodorization)!”

마법의 펼쳐지자 오광섭의 바지가 순식간에 건조되었고, 지린내 역시 사라졌다.

하나 전부 마르고 냄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공격과 방어 마법을 제외하고는 이런 생활 마법에 익숙지 않기에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오광섭은 현수를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현수가 마법을 구현시키는 장면을 볼 수는 없었다. 하나 나직이 뭔가를 읊조린다는 느낌이었기에 도술을 부린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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