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3화 (33/1,307)

# 33

프랑스의 자랑인 ‘샤토 무통 로칠드’를 누른 와인이 바로 현수가 주문한 레드 와인인 것이다. 이것은 특히 스테이크 요리와 아주 잘 어울린다.

한편, 권지현에게 권한 피노 그리지오는 화이트 와인이다.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딸기, 블랙커런트4) 등 상큼한 과일향이 풍부하며, 엷은 황금색으로 맛은 우아하면서도 달콤한 풍미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해물 요리와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그런 이유로 지현 씨께 피노 그리지오를 주문해 드린 겁니다.”

“아!”

와인에 대한 현수의 설명을 들은 권지현은 탄성을 내며 새삼스런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인맥을 총동원하여 현수에 대해 알아보았다.

천지건설(주) 자재과 직원이 맞다고 한다. 그런데 질병을 사유로 몇 달 전부터 휴직 중이라고 한다.

지현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더 이상의 정보가 모이질 않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오광섭이 방문했다.

모르는 사이인 것이 분명한데 이름을 정확히 대며 어디에 있는지 알려달라면서 애원을 한다.

그래서 부산에 있을 것이라는 정보만 주었다.

오후 4시경 지현은 오광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도움을 주셔서 대단히 고맙다는 정중한 감사 전화였다.

더더욱 이상한 기분이 들어 오후 내내 현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래서 얻은 정보는 현수가 다섯 평도 안 되는 작은 원룸에 기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가용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프다고 병가를 낸 사람치고는 너무나 멀쩡하다. 그리고 월세를 내어 작은 원룸에서 기거하는 사람치고는 씀씀이가 크다.

하룻밤에 132만 원짜리 방에 머물렀다. 또한 나이트클럽에서도 최상급 양주와 안주를 주문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문제가 있다.

첫째는 자재과에 근무하면서 많은 뇌물을 수수한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오광섭에 의해 이빨을 네 개나 잃고 구속된 경리 여직원 같은 경우이다.

둘째는 로또복권에 당첨되었을 수도 있다.

셋째는 정말 귀한 집 자식일 수도 있다.

넷째는 밀수, 마약, 도박 등 많은 돈을 주무르는 범죄와 관련된 자일 수도 있다.

먼저, 천지건설(주)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특히 자재과와 관련된 비리가 있는가를 알아봤다. 그런데 깨끗하다.

천지건설(주)엔 암행감사팀이라는 조직이 있다.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누구인지, 몇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조직이다.

그들에 의해 비리가 밝혀지면 최하가 파면이다. 부정을 저질렀다면 그에 해당하는 액수를 토해놓아야 한다. 그렇기에 천지건설(주)은 비교적 청렴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로또복권 당첨에 대한 것이다.

지현은 비선을 통해 현수의 나이와 거주지를 알려주고 그런 사람이 당첨되었는지의 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 없다고 한다.

이때 주민등록번호를 알려고 마음먹었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나 불법이기에 그렇게 하진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현수의 아버지가 김포의 작은 연립주택 지하에 세 들어 산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아무튼 세 번째가 귀한 집 자식인지의 여부이다.

하여 천지그룹 사주 일가와 계열사 경영인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김 씨는 아무도 없다.

네 번째는 검찰청 컴퓨터를 이용하여 손쉽게 알아보았다. 범죄 경력 조회를 한 것이다.

김현수라는 이름을 가진 범죄자는 많다. 하나 현수와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미궁에 빠진 기분이 된 지현은 오광섭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현수의 소재를 물어본 것이다.

그 결과는 금방 알게 되었다. 오광섭이 지현을 현수의 애인쯤으로 오해하였기에 전심전력을 다해 알아봐 준 결과이다.

그래서 퇴근하자마자 곧장 이 호텔로 왔다.

올라오기 전 객실 요금에 대해 물어보았다. 어제보다는 훨씬 싼 룸이지만 결코 일개 회사원이 머물 만한 방은 아니다.

레스토랑엘 가자고 하여 왔다. 음식을 주문하더니 와인 주문을 해주겠다고 한다.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여 줬다.

얼마나 아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짐짓 와인에 대해 잘 모르는 척했더니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그런데 거의 전문가 수준이다.

일부러 와인만 공부한 게 아니라면 늘 이런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광섭 씨가 도와달라던 일은 뭐였나요?”

주문한 음식이 나와 그것을 먹던 중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묻는 것처럼 묻는다.

“별일은 아니었어요.”

“말해주기 싫으신 모양이네요?”

“네?”

무슨 뜻이냐는 반문이다.

“오광섭 씨 아까 저한테 와서 현수 씨 어디 있냐고 물으면서 거의 울 듯하던데요? 그런데 별일이 아니에요?”

“아, 그건…….”

“뭐, 말씀하시기 싫으면 안 해주셔도 되요.”

“네에, 개인적인 일이라…….”

현수는 말끝을 얼버무렸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인터넷에선 이런 상황을 네 글자로 깔끔하게 정리한다.

대략난감!

“그 사람 아버지가 어제 습격을 당했어요. 그건 아시죠?”

“네.”

“그 일 때문에 도움을 청하셨나 봐요.”

“그, 그게…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요. 오대준이란 분 때문에 만났어요.”

“전부터 아는 사이셨나 봐요.”

“아뇨. 어젯밤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봤어요.”

권지현은 현수를 추궁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식사를 계산했다.

“어머, 이거 되게 맛있어요. 한번 맛보실래요?”

지현은 포크로 무엇인가를 찔러 앞으로 내민다.

“이건……?”

“일단 한번 드셔보셔요. 정말 맛있어요.”

“아, 네.”

입안에 넣고 씹으니 향긋한 향과 쫀득쫀득함이 느껴진다. 양념과 잘 어우러진 바다가재의 속살인 듯하다.

“호호, 맛있죠? 이 집 요리 잘하나 봐요. 근데 스테이크는 어때요?”

“조금 드셔보겠습니까?”

“네에.”

현수는 얼른 접시를 지현 쪽으로 옮기려 했다.

“아이, 번거롭게. 그냥 현수 씨가 포크로 콕 집어주세요.”

“네……? 아, 네에.”

현수는 여우에 홀리기라도 한 듯 지현이 시키는 대로 했다.

사내란 미인의 미소에 약하지 않은가!

지현은 신장 165㎝에 체중 48㎏쯤 되는 미인이다.

분위기가 비슷한 탤런트를 고르라면 김태희와 흡사하다.

얼굴만 그런 게 아니라 공부 잘 하는 것까지 비슷하여 행정고시도 패스한 재원이다.

그런 미녀의 말이기에 홀린 듯 하라는 대로 한 것이다.

“오대준 씨는 어떻게 되셨어요? 소문엔 뇌사 상태라고 들었는데. 그렇게 심해요?”

“아뇨. 아마 괜찮아질 겁니다.”

현수는 별 뜻 없이 대답했다. 하나 지현은 아닌 듯하다. 의사들도 포기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을 한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뭔가가 있다.

그렇기에 눈빛을 빛낸 것이다.

식사는 잘 마쳤고, 커피까지 한 잔 마셨다. 그리고 지현은 대구로 돌아갔다.

현수는 캔 맥주 하나를 들고 비 내리는 바닷가를 거닐었다.

그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내일 당장 서울로 올라갈 것이다. 가면 곧바로 이사를 하고 복직 신청을 할 생각이다.

강연희 대리를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 그보다는 불과 며칠이지만 직업 없이 있어보니 한심해서이다.

다음날, KTX를 타고 서울로 온 현수는 집주인에게 이사갈 것임을 통보했다. 주인은 언제든 돈을 빼주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속이 쓰릴 것이다.

사실 현수의 원룸은 몇 달 동안이나 나가지 않던 방이다.

햇볕도 안 들고 바람도 안 통하는데 누가 얻으려 하겠는가!

현수에게 경험이 있었다면 결코 얻지 않았을 방이다. 그런 방을 빼겠다고 하니 부동산 수수료도 수수료지만 몇 달 동안 월세가 들어오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속이 쓰릴 것이다.

현수로서는 그러거나 말거나이다.

집을 나선 현수는 자동차 영업소에 들러 차를 한 대 샀다.

최고급은 아니고 소형차를 골랐다. 크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 남들의 시선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매일 혼자 타고 다니는데 큰 차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여 현수가 고른 것은 현대에서 나온 액센트이다.

1,396CC, 108마력이다. 경차는 아니지만 혼자 타고 다니는 데 힘이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현금으로 지불하니 1,4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 든다. 마침 갓 전시장에 입고되는 차가 있어 그것으로 받았다.

5장 아프리카로 출장 가라고?

차 시트의 비닐을 뜯어내고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우미내 마을 입구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이다.

단독주택 전세를 얻으러 왔다고 했다. 공인중개사 아줌마는 현수의 겉모습을 보고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이다.

그 아줌마의 안내로 몇 군데를 돌아보았다.

그러는 동안 이것저것을 캐묻는다.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얼마짜리 집을 찾느냐이다.

이 동네 단독주택 전세 시세가 어느 정도 되느냐고 묻자 평수가 넓어서 제법 비싸다고 한다.

그래서 비싸도 괜찮다고 했더니 더 안 믿는 눈치다. 하긴 현수는 현재 보풀이 일어난 추리닝 차림이다.

다음은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회사원이라고 대답했다. 이 대목에선 별 반응이 없었다.

식구가 몇이냐는 물음에 혼자라고 했더니 조금 삐친 듯하다.

날씨도 추운데 공연한 발품만 팔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내심 웃음이 나왔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러던 중 마음에 드는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대지 662㎡, 연면적 264㎡!

200평짜리 땅에 건평 80평짜리 주택이 있다는 뜻이다.

크고 작은 방 여섯 개에 거실은 별도이고, 화장실이 세 개나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이다.

언덕 위에 있는데 2층 거실에선 한강이 조망된다.

공인중개사 아줌마는 주인에게 급한 사정이 있어 매물로 내놓았는데 안 나가서 전세로 바꾸었다고 한다.

전세가는 3억 5천인데 싼 물건이라고 한다.

그리곤 손에 든 공책을 뒤적인다. 이제 남은 집은 한 집인데 30평짜리 빌라의 1층이라고 한다.

중개인 아줌마를 따라 나온 현수는 다시 한 번 집의 외관을 보았다. 좋아 보인다.

“저어, 사장님.”

“왜요, 총각?”

“이 집 마음에 드는데 계약하죠.”

“…정말요?”

“네. 집주인 불러주시면 잔금까지 다 치르지요.”

“네에……? 아, 알았어요.”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은 거래가 완결되었을 때, 다시 말해 매매든 전세든 잔금을 치렀을 때 중개 수수료를 받는다.

그런데 오늘 다 낸다고 하니 돈 좀 만져보게 생겼다.

“근데 총각, 수수료는 얼마나……?”

“법정 수수료율이 얼마나 되지요?”

“0.8% 이내로 받게 되어 있으니… 가만있어 봐요.”

아줌마의 사무실은 며칠 전 내린 눈 때문에 손님이 없었다. 하여 정초부터 빈 가게만 지키고 있었다.

새해 댓바람부터 집을 얻으러 다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현수가 새해 첫 손님인 셈이다.

그런데 집을 보자마자 계약을 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일시불로 전부 치른다니 잘하면 오늘 수수료를 받을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아줌마는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리곤 이내 생각을 정리했다는 표정이다.

“총각, 법정 수수료는 280만 원인데 200만 원만 줘요.”

“네에, 그러지요.”

현수는 이곳에 오기 전 이 집에 대한 정보를 알고 왔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서이다. 그렇기에 3억 5천이라는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깎으려면 조금은 깎을 수 있겠지만 없어지는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수료 역시 계산해 보았다. 280만 원이 법정 최고 수수료인 것 맞다. 여기저기 검색해 보니 3억 이상 주택을 임차할 때에는 수수료를 중개인과 협의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280만 원을 전부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의 75% 수준인 210만 원쯤 하자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적은 액수를 요구했기에 얼른 OK한 것이다.

기분이 좋아진 아줌마는 집주인에게 드디어 집이 나갔음을 알리는 전화를 하며 빨리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집주인이 오는 동안 아줌마는 커피도 주고 과자도 주면서 이것저것 조언을 한다. 집이 적은 동네이니 이 집 저 집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집주인이 왔다. 60세쯤 된 남자이다.

중개인의 안내에 따라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현수는 보유한 현금과 수표로 전세금을 지불했다. 수표보다는 현금이 훨씬 많았기에 돈 세는 데만 한참 걸렸다.

그러는 동안 집주인이 왜 집을 급하게 내놓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중개인 아줌마의 수다 덕분이다.

집주인의 부인은 암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항암 치료만 잘 받으면 살 확률이 크다고 하지만 환자 본인은 물론이고 집주인도 믿지 않는다고 한다.

소세포 폐암에 걸렸는데 살았다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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