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자식들은 다 결혼하여 분가했고, 부부만 큰 집에서 살았는데 집 치우는 것도 힘들어 지난해 구리시에 있는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한다.
그리곤 집을 내놓았는데 받은 전세금으로 여행을 다닐 계획이라고 한다. 아내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모두 해주고 싶어 집을 내놓은 것이다.
현수는 중개사 수수료까지 모두 지불했다. 그리곤 따로 비용을 들여 집 청소를 부탁했다.
차를 몰고 원룸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인지한 환자들의 마음이 어떨까를 생각한 것이다.
“혹시 마법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을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암에 걸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소리가 마음에 걸린 것이다.
원룸에 당도한 현수는 의학 전문 서점을 검색했다. 그리곤 상당한 양의 서적들을 주문했다.
“흐음, 내일 복직 신청을 하면 뭐라고들 할까? 강 대리님 반응이 제일 궁금하네.”
놀라면서도 환한 웃음을 지을 것이란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현수는 유쾌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현수는 출근하여 인사과에 들렀다. 그리곤 복직 신청서를 썼다.
인사과 직원이 말하길, 신청서를 쓴다 하여 당장에 복직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면서 연락하겠다고 한다.
강 대리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는다. 사수인 곽 대리에게 전화를 했더니 반가워한다. 그런데 전주에 있는 업체를 방문 중이라고 한다. 맥이 빠졌지만 어쩌겠는가!
그나마 안면이 있던 구조계산팀을 방문하여 박 대리를 찾았더니 그새 진급하여 기획실로 인사 발령되었다고 한다.
“박 과장님, 안녕하세요?”
“누구……? 아, 자재과 김현수 씨? 몸은 좀 어때요?”
“네, 많이 좋아졌습니다. 하여 오늘 복직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아, 그래요? 축하합니다.”
“저도 축하드립니다. 기획실은 아무나 오는 데가 아니잖아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아무튼 복직 축하합니다. 열심히 근무해서 이 회사의 동량이 되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현수는 구원은 이제 잊고 좋은 감정으로 새 출발하자는 뜻에서의 방문이었다.
그런데 박진영 대리, 아니, 박진영 기획실 과장은 아니었다. 현수의 방문을 받은 이후 한참 동안이나 생각에 잠겨 있었다.
회사를 나선 현수는 우미내 마을로 차를 몰았다.
오늘이 이삿날이기 때문이다. 포장이사를 의뢰했기에 본인은 몸만 가면 되는 것이다.
“호호, 마음에 들어요?”
“네, 고맙습니다. 좋은 집 소개해 주셔서.”
중개인 아줌마가 휴지 한 뭉텅이를 들고 찾아왔다.
“총각, 이 동네 살면서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 내가 도와줄 테니. 우리 남편이 이 동네 통장인 건 알죠?”
“네, 고맙습니다.”
중개인 아줌마는 텅 빈 집을 보며 얼른 가구를 채워 넣으라고 조언을 한다. 하나 현수는 그럴 맘이 없다.
가구로 가득한 집보다는 넓은 집이 좋기 때문이다.
“넓긴 넓구나. 내가 너무 넓은 집을 골랐나? 흐음, 아버지, 어머니더러 오시라고 해야겠구나.”
새벽 3시쯤에 내린 결론이다.
공기도 경관도 나름 괜찮은 집은 분명하다. 하나 혼자 살기엔 지나치게 넓다.
“흐음, 뭐라 말씀드려야 할까? 급한 일로 외국에 나간 선배가 있다고 할까? 아님 회사 소유의 집?”
현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띠리리! 띠리, 띠리링!
강연희 대리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면 늘 베토벤 바이러스가 흘러나온다. 귀에 익었고, 경쾌한 음악이다.
한참을 기다렸건만 강 대리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할 수 없어 회사로 전화를 했다.
“저어, 강연희 대리님과 통화하고 싶은데요. 계십니까?”
“누구십니까?”
목소리를 들어보니 업무지원팀 팀장의 목소리이다. 하나 모른 척하고 대꾸했다.
“네, 자재과 김현수 사원입니다.”
“김현수씨? 난 업무지원팀장이네. 그리고 강 대리는 지금 출장 중이네.”
“아, 출장 가셨어요? 언제 오시죠?”
“한 반년쯤?”
“네에?”
“몰랐나? 강 대리 오늘 영국으로 출국했네. 반년쯤 지난 후에나 오네.”
“아, 네에.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현수는 멍한 시선이다. 어제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출국 준비를 하느라 그랬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집요하게 전화를 했다면 틀림없이 통화를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오랜만에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사를 하느라 바빠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 통보받은 것이다.
“보고 싶었는데……. 에이, 인연이 아닌가?”
전화기를 내려놓은 현수는 한참이나 실의에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전화가 진동을 한다.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웅!
“여보세요?”
“현수니?”
“아, 어머니. 네, 접니다.”
“그래, 지금 통화 가능하니?”
“네, 말씀하세요.”
왠지 어머니의 음성이 착 가라앉은 듯하다.
“너한테 면목이 없는데 돈 좀 구할 수 있겠니?”
“네?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가… 아버지가 다치셨다.”
“네에? 어딜 얼마나요? 지금 병원에 계신 거예요?”
“그래, 창경궁 앞에 있는 서울대 병원에 계시다.”
“어딜 얼마나 다치신 건데요?”
어머니는 아버지의 상태를 비교적 담담한 음성으로 이야기하셨다. 아버지의 업무는 보석의 광을 내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다른 사람의 작업을 돕다가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었다고 한다.
공방 사장은 본연의 임무 이외에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일을 돕다 발생된 일이므로 치료비를 책임질 수 없다고 하였다.
말은 안 했지만 손가락을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해고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작업을 같이 하자고 했던 인물은 공방 사장의 동생이다. 사장 동생이 도와달라는데 어찌 돕지 않겠는가.
아무튼 핸드 그라인더로 작업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산재보험이라도 들어 있으면 병원비 걱정은 덜할 텐데 불행히도 업주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손가락 봉합 수술에 앞서 비용을 청구했다. 그런데 그걸 마련할 길이 막막하여 현수에게 전화한 것이다.
전화를 끊은 현수는 즉각 서울대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곤 서둘러 수납 창구에 돈을 입금하였다.
곧이어 수술이 진행되었다. 어머니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수술실 앞을 서성거렸다. 사장은 물론이고 사장의 동생이라는 놈까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현수야, 이제 우린 어쩌면 좋으니? 아까 사장님이 말하길, 공방에 더 이상 나오지 말라 했다는데…….”
저금해 놓은 돈도 없다는 것을 뻔히 안다. 그렇다고 거금을 내놓으며 쓰라고 할 수도 없다. 출처를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어찌할 것인지를 궁리했다.
아버지가 수술실에 들어가고 세 시간쯤 지났을 때다. 이제 더 이상 말할 기운도 없다는 듯 어머닌 아무 소리도 없다.
“어머니!”
“왜?”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뭔데?”
현수는 자신이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었다는 이야길 했다. 수령한 당첨금은 7억 원이 조금 넘는다고 하였다.
그 돈 중 3억 5천으로 우미내에 전세를 얻었으며 나머지 3억 5천은 부모님께 드리려 보관 중이라 하였다.
당장 병원비 걱정을 덜게 된 어머닌 너무나 좋아하셨다. 그러면서도 80평짜리 집은 너무 크다고 한다.
현수는 이제 넓은 집에서 살아볼 때도 되었다고 응수했다.
그리곤 3억 5천을 은행 정기예금에 넣었을 때 한 달 수익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연 이율 5%에 15.4% 이자세를 내고 나면 매월 140만 원 정도 받게 된다.
다행히도 아버진 국민연금을 불입하였다.
그래서 다다음 달부터는 연금을 받게 되는데 월 수령액이 10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현수는 불안해하는 어머니를 다독였다. 드디어 수술이 끝나고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현수는 어머니에게 배가 고프니 김밥을 사다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곤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갑작스레 늙은 것 같고 초췌해 보인다.
현수는 눈두덩이 뜨거워지고 콧날이 시큰해지는 느낌에 억지로 인상을 썼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은 때문이다.
잠시 후 커튼이 쳐졌고, 두 손가락에 리커버리 마법을 시전했다. 그리곤 마나 디텍션으로 아버지의 신체를 검색했다.
평소 술을 즐겨하신 때문인지 간 부위의 마나 움직임이 순조롭지 않다. 이곳엔 컴플리트 힐 마법을 시전했다.
그제야 마나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진다.
그 때문인지 아버진 한결 편안한 모습이다.
“아버지, 제가 잘 모실게요. 얼른 쾌차하세요.”
오후 늦게 아버지를 수술했던 외과 과장이 회진을 왔다.
“아니? 어떻게 이런……! 정 선생, 이 환자 환부 좀 봐.”
“왜요, 과장님?”
“아까 수술한 부위가 벌써 아물고 있어.”
“네에? 그럴 리가요?”
상처가 아무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아버진 아닌 모양이다.
“어라! 정말 그러네요? 과장님, 실 뽑을까요?”
“아냐. 그냥 놔둬.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거 학회에 보고할 만한 케이스인 거 같은데요?”
하긴 수술 후 몇 시간 만에 벌써 실밥을 뽑아야 할 정도로 상처가 아문 환자를 보았겠는가!
현수는 마법의 효용성이 상당히 좋음에 만족스러웠다.
마법 덕분인지 아버진 불과 이틀 만에 퇴원했다. 절단되었던 손가락의 움직임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신다.
겉으로 보기엔 실밥 뽑은 흔적을 제외하면 언제 다쳤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외과 과장은 학회에 보고해야 할 만한 일이라면서 흥분했다. 병원비를 깎아주겠다고 했지만 거기에 협조할 이유가 없다.
수술은 그 사람이 했지만 낫게 한 것은 현수이기 때문이다.
“우와, 넓네! 이게 우리 집이니?”
“네, 어머니. 어머닌 아버지하고 아래층을 쓰세요. 전 2층을 쓸게요.”
“현수야!”
어머닌 목이 메는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아버진 아예 아래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지도 않고 있다.
모르긴 해도 눈물이 그렁그렁할 것이다. 단 한 번도 이렇듯 넓은 집을 구경조차 못해 보았으니 그럴 것이다.
“어머니, 얼른 이사하세요.”
“그래……!”
불과 하루 만에 김포 집은 비워졌다. 이사하면서 손때 묻은 가구들은 모두 정리했다.
그렇기에 1톤 트럭 한 대에 짐을 실으니 끝이다.
현수는 부모님의 장롱이 너무 낡았기에 새것으로 장만해 드렸다. 또한 낡은 것 모두를 바꿔 드렸다.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침대, 식탁 등이다.
돈 없는데 이러지 말라는 말은 하셨지만 기분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흔쾌한 마음으로 한 일이다.
그러는 동안 아버진 공방에 나가셨다. 그런데 그만두고 나가라고 한다. 이미 다른 사람을 뽑아서 쓰는 중이란다.
공방 사장은 10년을 넘게 근무했건만 사고를 당한 이후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이다.
너무도 섭섭해 부르르 떠는 아버지를 다독이며 이제 집에서 쉬시라고 했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아버진 실없는 웃음만 지을 뿐이다.
다음날 새벽, 아버지가 일하던 공방 건물이 통째로 주저앉았다. 공방 사장이 소유하던 2층짜리 건축물이다.
이는 현수가 시전한 콜랩스(Collapse) 마법의 결과이다.
며칠 후, 사장 일가가 외식을 나간 후 그의 집에 화재가 발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 역시 붕괴되었다.
파이어 필드와 콜랩스 마법이 중첩된 결과이다.
그날 밤, 여관에 잠든 사장 부부의 머리맡에 현수가 나타났다. 그리곤 중증 근무력 마법을 시전하였다.
사장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들을 갖지 못했다. 다시 말해 사람 같지도 않은 놈이다. 하여 벌레처럼 기어 다니며 살도록 만든 것이다.
다음에 시전된 것은 메모리 일리머네이션, 즉 기억 삭제 마법이다. 그 결과 금융기관에 맡긴 돈과 부동산이나 주식 등에 투자한 일체의 기억이 삭제되었다.
사장의 동생이라고 하여 멀쩡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사람이 다쳤음에도 들여다보지도 않은 싸가지없는 인간이다.
자신의 탓이었다는 사과조차 없었다.
현수는 그가 사는 집의 소유주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곤 그 집 역시 붕괴시켜 버렸다.
물론 사람이 없을 때의 일이다. 그리곤 그에게도 중증 근무력 마법을 걸었다. 인간이 인간답지 않으면 벌레처럼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내리기 위함이다.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인사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복직이 허가되었으며 사령장을 받으러 들어오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자재과에 근무하던 김현수입니다. 오늘 사령장을 받으러 오라고 해서 왔는데요.”
“아, 어서 오세요. 과장님께 가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자재과 김현수입니다.”
“아, 김현수 씨! 그렇지 않아도 기다렸습니다. 김현수 씨는 자재과로 복직 신청을 했지만 현재 자재과는 필요 인원이 충원되어 있습니다. 하여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습니다.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