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현수는 인사과장이 내미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자재과의 충원이 마쳐져 다른 부서로 발령을 낸다 하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다른 부서의 일을 잘 모르는데 어찌 적응할지 부담된다는 것뿐이다.
파일을 열자 사령장이 보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해외영업부?
건축이나 토목 전공도 아닌 수학과 출신 사원에게 해외영업부 발령은 의외이다.
그것도 좋다. 어학연수 간 셈 치면 되기 때문이다.
서류의 하단엔 임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으잉……? 콩고민주공화국?”
현수의 이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인사과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프리카엔 콩고와 콩고민주공화국이 있네. 콩고는 아프리카 중서부 연안에 있는 나라이고, 콩고민주공화국은 중부 내륙에 있는 나라이네. 혼동하지 말게.”
현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듯 인사과장의 말이 이어졌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는 킨샤사이며, 프랑스어, 일갈라어, 스와힐리어, 키공고어, 차루바어 등이 사용되네. 일부는 사바나 기후지만 대부분 열대우림 기후 지역이네. 그리고, 예전 이름은 자이르이네.”
사바나 기후대는 너른 초지에 나무들이 듬성듬성 있는 곳이다. 반면 열대우림 기후대는 무성한 정글이 있는 곳이다.
사자와 기린, 원숭이와 악어 등이 있다는 뜻이다.
‘뭐야? 동물의 왕국으로 가라는 거야?’
현수가 어이없어하는 동안에도 설명은 이어졌다.
“인구는 6,200만에서 7,000만 정도 되며 화폐 단위는 콩고 프랑이네. 자네가 갈 곳은 킨샤사에 있는 지사이며, 지사장은 이춘만 과장이네.”
“인사과장님!”
“왜?”
“우리 회사에서 해외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아프리카 한복판까지 진출해 있는 겁니까?”
“이 사람아, 아프리카가 어떤 땅인가? 이제 곧 개발 붐이 일어날 곳이네.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지. 안 그래?”
“그, 그야…….”
잠재력에 관한 한 부정할 수 없기에 말끝을 흐렸다.
“따라서 회사로선 당연히 진출해 있어야 할 곳이네. 안 그런가? 아, 거기 가거든 이춘만 과장 밑에서 잘 배우게.”
“과장님, 전 건축이나 토목과 출신도 아닌 수학과 출신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게 해외 영업을……?”
현수의 말은 중간에서 끊겼다.
“해외 영업을 건축이나 토목 전공자들만 할 수 있다는 법이라도 있나? 자네도 이번 기회에 경험을 쌓아두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해외 영업이라니…….”
“이 사람아, 영업은 뭐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건 줄 아는가? 우리 회사에서 건설할 테니 일감을 주시오 하면 되는 것이네.”
“그런데 과장님, 저 영어 잘 못합니다.”
“무슨 소릴? 여기 인사 카드를 보면 자네 입사 때 영어 성적이 기록되어 있네. 어디 보자. 아니, 이 사람이? 최상급 점수를 받았는데도 영어를 못한다고?”
“끄으응!”
베니스의 상인의 지문을 써 넣은 게 진짜 좋은 성적을 거둔 모양이다.
“이 사람, 엄살이 너무 심하군. 자네 같이 실력 좋은 사람이 가야지. 안 그래?”
인사과장은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 DRC)에서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는 말은 쏙 빼고 있었다.
“그래도 콩고민주공화국이라니요? 생전 처음 듣는…….”
현수의 말은 또 중간에서 끊겼다. 인사과장이 볼일 다 봤다는 듯 몸을 돌리며 한마디했기 때문이다.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네. 지원자는 넘치니까.”
인사과장의 말은 뻥이다.
누가 있어 아프리카 오지까지 가고 싶겠는가!
지금껏 콩고민주공화국에 발령을 받고 사표를 쓰지 않은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다.
지사장으로 나가 있는 이춘만 과장이 그다.
그가 맡았던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있었다. 갑작스레 비가 너무 많이 온 결과이기는 하지만 회사에선 책임을 물었다.
이춘만 과장은 회사에서 잘리면 미국으로 유학 보낸 아들의 학비를 보낼 수 없다면서 아무 데로나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 먼 곳까지 간 것이다. 부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월급이고 뭐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하소연을 했다.
하긴 문명 세계에서 중세 이전의 세계로 간 것이니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나 회사에선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가 아니면 거기에 있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이 과장은 더 이상 그 일로 회사에 연락하지 않는다.
적응을 한 것인지 포기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회사 입장에서는 아프리카에 교두보를 마련한 셈 치고 있다.
어쨌거나 콩고민주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이다. 내전이 치열했던 수단이 남수단과 북수단으로 분리된 이후의 일이다.
현재는 조셉 카빌라라는 인물이 대통령으로 9년째 집권하고 있다. 장기 집권이며 독재가 진행 중인 곳이다.
“그곳으로 가게. 내가 볼 때는 기회의 땅이네.”
“일단 생각해 보겠습니다.”
“좋네, 늦어도 사흘 이내엔 복명서에 사인하게. 안 그러면 자넨 무보직 대기발령 될 것이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지?”
어찌 모르겠는가!
아무런 일도 주어지지 않고 복도 한구석에 책상 하나만 덜렁 내주는 것이 무보직 대기발령이다. 이는 곧 잘리거나 퇴직 신청을 하게 될 것이란 신호이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온 현수는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인사과장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지사가 앞으로 6개월 내로 이전될 수도 있을 것이라 하였다. 월드컵이 열렸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아프리카 지사가 옮겨간다는 것이다.
이는 중세에서 현대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같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지만 엄청난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단 6개월만 견뎌보라고 했다.
현수는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심했다.
안 간다는 것은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재로선 백수가 된 이후 할 일이 전혀 없다.
여유 자금은 만들 수 있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어 창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평소에 관심 두고 있던 분야가 있어 그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그쪽에서 뽑아준다는 보장도 없다.
이런 상태에서 회사를 그만두면 다시 백수가 되는데 며칠 그렇게 지내보니 이건 마음이 제 마음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적(籍)조차 없어지면 얼마나 허전하고 불안하겠는가!
대전, 대구, 부산을 돌아본 사흘 동안엔 복직할 회사라도 있었지만 그런 거 없이 그냥 논다면 금방 폐인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회사 내에 있어야 강연희 대리와의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아프리카가 오지이고 문명이 낙후되어 있지만 아르센 대륙과 비교해 보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플라스틱 종류는 보급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에라, 모르겠다.”
상념에 잠겨 있던 현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결정했는가?”
“네, 과장님!”
“가는 걸로 결정한 거지?”
“네, 한번 가보지요. 젊어 고생은 돈 주고 사서라도 하라 했으니 말입니다.”
“하하, 잘 생각했네. 내가 이럴 줄 알고 그곳에서의 유의 사항 등을 기록해 두었네. 자, 여기…….”
회사를 나서는 현수는 인사과장이 준 파일을 들고 있었다.
콩고민주공화국에 관한 내용과 그곳에서 할 일들이 기록된 것이다. 대충 뒤적여 보니 공사 규모와 파견된 기술자의 숫자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득 대비 비용을 계산해 본 모양이다.
회사에선 출국을 위한 서류들을 요구했다. 하여 여권을 만들어 제출하는 등의 일을 했다.
“25일쯤 출국하는 걸로 일정이 잡혔네. 그동안은 휴가이니 푹 쉬게. 출국 전날 회사에 꼭 오게.”
“네, 알겠습니다.”
인사과장의 전화를 받은 현수는 인터넷을 뒤져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와 아버지에겐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으며 최하 1년은 근무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가게 될 곳은 콩고민주공화국이며 해외 근무에 대한 수당이 추가되어 월급이 오르게 되었다고 하였다.
갑자기 너른 집에서 살게 된 이후 부모님은 현수의 말이라면 껌벅하게 되었다. 하긴 자식 덕에 평생 소원이던 것보다도 더 넓은 집에서 살게 되었으니 그럴 것이다.
6장 할아버지를 부탁해요
띠리리링! 띠리리링!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네, 누구시죠?”
“오빠야, 저 지현이에요. 설마 벌써 잊으신 건 아니죠?”
“아, 권지현 씨! 오랜만입니다. 잘 계셨죠?”
“네, 근데 조금 섭섭해요.”
“네?”
“서울로 가신 지 열흘이 넘었는데 한 번도 전화 안 주시고.”
‘헐!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사귀기라도 한 거야?’
현수는 뇌리를 스치는 상념 때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하여간, 섭섭해요.”
“아, 그랬어요? 미안합니다.”
미인이 섭섭하다고 하니 마음에도 없지만 일단 사과를 했다.
“저어, 오빠야한테 도움 청할 일이 있는데 도와주실 거죠?”
“제게 도움을 청해요? 무슨 일인데…….”
“시간 있으시면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은데 가능하시겠어요?”
“만나요?”
“네, 저 지금 서울 올라와 있거든요.”
“아, 그래요? 그럼 어디서 뵙죠?”
“워커힐 호텔 아시죠? 거기 커피숍에서 뵙는 거 어때요?”
멀지 않은 곳 정도가 아니라 엎어지면 무릎 닿을 곳이다. 게다가 심심하던 차다.
“그러죠. 언제까지 가면 되죠?”
“가능한 빨랐으면 좋겠어요. 저 지금 워커힐에 있거든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금방 가죠.”
전화를 끊은 현수는 얼른 양복을 걸쳤다. 그리곤 차를 몰고 곧장 워커힐로 향했다.
“어머, 벌써 오셨어요? 회사가 강동구에 있어서 금방 오실 줄은 알았지만…….”
“하하, 제 집이 이 근처거든요.”
“어머, 그래요? 호호, 제가 장소는 잘 골랐네요.”
“네, 그나저나 서울엔 웬일로…….”
“그야 오빠야를 뵈려고 왔지요.”
“네에?”
권지현이 하얀 치열을 드러내며 웃음 짓는다. 붉은 장미 한 송이가 화사한 향을 뿜으며 만개한 듯한 모습이다.
“아! 장난이시군요?”
“어머, 장난 아닌데. 저 진짜 오빠야 만나려고 왔어요.”
웃음기를 지우고 정색하니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이십니까?”
“네, 오빠야한테 도움 청할 일이 있거든요. 꼭 도와주셔요.”
“그래요? 근데 제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아무튼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지요.”
“고마워요. 먼저 차부터 한 잔 마셔요.”
“아, 네에.”
웨이트리스가 와서 주문을 받고, 주문한 것들을 가져다 줄 때까지 둘은 그간의 안부만 물었다.
“자아, 이제 무슨 일 때문에 온 건지 말해주실 거죠?”
“네. 오빠야, 우리 할아버지 좀 구해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구해드리다니요?”
“제 외할아버지께서 지금 삼성병원에 입원해 계셔요. 간암이래요. 그런데 의사들이 손을 쓸 시기를 놓쳤대요.”
“저, 의사 아닌 거 잘 아시잖아요.”
“네, 알아요, 그건……. 하지만 뇌사 상태였던 오대준 씨를 고치셨잖아요.”
현수는 어찌 된 영문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서울에 올라온 다음날 오광섭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부친인 오대준의 뇌사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면서 감사하다는 뜻이다. 그리곤 거의 매일 경과를 알려주었다.
현수가 다녀간 지 7일 후 오대준은 의식을 완전히 회복했으며, 하복부의 자상 역시 완치에 가깝게 좋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오대준이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퇴원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편, 권지현은 현수가 서울로 올라간 후 업무에 복귀하였다. 그런데 오광섭과 현수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궁금하여 계속해서 관심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오대준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 뇌사 상태였는데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서울에 있는 외할아버지가 격통을 느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휴가를 내고 부랴부랴 서울로 왔는데 절망적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암에 걸려 있는데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현을 유독 귀여워하고 아껴주시던 외할아버지다. 그래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솟구쳐 나왔다.
그렇게 슬피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러던 중 오대준에 관한 생각이 났다. 하여 오광섭에게 연락을 취했다.
현수에게 도움받은 것이 오대준의 치료였는지의 여부를 물은 것이다. 오광섭은 한참을 망설이다 이실직고했다.
지현은 현수가 도사님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우주선이 화성은 물론이고 천왕성까지 가는 세상이다. 그런데 도사라니 어찌 믿겨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