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39화 (39/1,307)

# 39

이 정도면 직사광선으로 인한 열이 많이 차단될 것이다. 8개월 동안 건설회사 밥을 먹으면서 주워들은 지식이다.

“잠시만 기다리게.”

지사장이 실내의 다른 문을 열고 무언가를 작동시키니 에어컨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여긴 전기 사정이 열악해서 발전기가 필수품이지.”

“아, 네에.”

“자넨 저쪽의 책상을 쓰게.”

시선을 돌려보니 먼지가 뿌옇게 앉은 빈 책상이 보인다. 책상 위엔 아무것도 없다.

“숙소는 사무실 뒤의 민가를 빌렸네. 호텔이 있기는 하지만 워낙 치안이 흉흉한 곳이라 혼자서 오가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이곳으로 정했네.”

“네에,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갓 왔으니 자네 보기엔 형편없겠지만 어쩌겠는가. 여기에 적응해야지. 안 그래?”

“네에, 그래야겠지요.”

“좋아, 오늘은 첫날이니 우리끼리 파티 한번 하세.”

“네에.”

“마투바! 마투바!”

지사장이 소리치자 문이 열리고 웬 여인이 들어선다. 검은 피부에 울긋불긋한 원피스를 걸친 젊은 여인이다.

“Avez―vous appel?”

“Oui. Allez et prenez―moi une biere.”

현수는 여자의 입에서 생전처음 들어보는 언어가 들리는 순간 잠시 당황했다. 프랑스어인 듯하다.

당연히 하나도 모른다. 무슈, 마드모아젤, 봉주르, 쥬뎀무, 뚜레주르가 무슨 뜻인지만 아는 정도이다.

하여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모았다.

여인이 한 말은 ‘불렀어요?’라는 뜻이고, 지사장은 ‘그래, 가서 맥주 좀 가져와’라 하였다.

마투바라는 여인은 대답 대신 묻는다.

“Qui est ce mec?”

‘이 남자 누구예요?’라는 뜻이다.

“C’est nos nouveaux employes. Dites bonjour.”

‘새로 온 우리 회사 직원이야. 인사해.’

“Euh, bonjour? Je suis Matuba.”

‘아, 안녕하세요? 나는 마투바라고 해요’라는 뜻이다.

“Nice, de vous resondre. Eh bien, je t’en supplie.”

현수가 한 말은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려요’라는 뜻으로, 유창한 불어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 사람, 영어만 조금 할 줄 아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불어도 수준급이구만.”

지사장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수의 불어는 거의 마더텅(Mother Tongue)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의 대화는 불어로 이어졌다.

“마투바, 맥주 안 가져올 거야?”

“보스, 이 사람 총각이에요?”

“마투바, 쓸데없는 데 관심 쏟지 말고 가서 맥주나 좀 가져다주면 안 될까?”

“알았어요. 맥주 심부름은 회사 일이 아니니까 안 해도 되지만 착한 내가 가져다줄게요.”

웃기는 대화를 하던 마투바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불쌍한 애야. 너무 괴롭히지 말게.”

“네? 제가 왜 괴롭히겠습니까?”

“그래, 오늘은 일단 맥주나 한잔하고 푹 쉬게. 본격적인 일은 내일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네에.”

“그나저나 자네가 불어를 할 줄 알아 다행이야. 여긴 통역하는 사람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거든. 게다가 본사에선 자네를 위한 통역 비용을 보내지 않았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여긴 영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 영어 알아듣는 사람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곳이지. 하여간 자네 통역 비용은 배정되지 않았어. 모르긴 해도 본사 놈들은 여기서도 영어가 통하는 줄 아는 모양이지.”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영어가 만국공통어 비슷하게 된 요즈음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다. 그렇기에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천지건설(주)은 대한민국에서도 도급 순위 5위 안에 드는 거대 기업이다. 그런 조직이 어찌 그리 허술하겠는가!

본사에선 콩고민주공화국의 공식 언어가 프랑스어이며, 영어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곳이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현수의 업무 편이를 위한 통역사 비용을 배정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현수가 회사에 복직 신청을 한 날 기획실 박진영 과장은 인사과장과 저녁 식사를 같이했다. 그 자리에서 둘 사이에 오간 대화 덕분에 현수가 이런 오지에 와 있는 것이다.

사실 자재과의 자리는 만들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없다 하고 멀고 먼 아프리카로 보낸 것은 박진영 과장의 음모이다. 자신이 흠모하는 강연희 대리와의 대면은 물론이고 대화조차 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여 전화 사정이 극악에 달한 이곳을 골라 보낸 것이다.

사실 박 과장은 현수가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프리카 행을 선택했다.

박 과장은 한때나마 자신이 점찍은 여인이 가깝게 두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어찌하면 더 골탕을 먹일까를 고심했다.

그날 업무지원팀장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그 결과 통역 비용이 통째로 누락된 것이다.

어쨌거나 마투바는 올해 21세로 소녀 가장이다.

아버지와 오빠 둘은 반군에 가담했다 총격전에 사망했다. 오빠가 하나 더 있는데 행방불명인 상태라고 한다.

현재는 나이 어린 동생 셋을 키우며 산다고 한다.

마투바의 거처는 사무실 바로 뒤쪽에 있다.

다음날, 현수는 시내 구경을 했다. 지사장은 자동차 시트 밑에 권총 한 자루가 있으니 유사시에 그걸 사용하라고 했다.

꺼내보니 리볼버 한 자루가 있다.

“흐음, 브레이크 오픈 방식의 웨블리 리볼버군요.”

“어라? 자네, 총에 대해 잘 아나?”

“그럼요. 국방과학연구소 소화기 개발팀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 그럼 그 총에 대해 말해보겠나?”

“이건 구시대의 유물 같은 거죠. 38구경으로 1, 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에 대량으로 보급된 겁니다. 6.25 전쟁 때도 쓰던 겁니다.”

“잘 아는군.”

“근데 권총이 이런 것밖에 없습니까?”

“다른 게 필요해? 하긴 그건 내 것이니 자네 것이 필요하겠군. 좋아, 말만 하게. 이곳에 부임한 기념으로 하나 선물하지.”

“K―5도 구해주실 수 있나요? 아, 미국과 유럽에선 K―5라 하지 않고 DP―51이라고 하는 겁니다.”

“말만 하면 뭐든지 되는 줄 아는가? 여긴 콩고민주공화국이네. 그런 건 없지.”

“그럼 헤클러 & 코흐 USP5)는 구해주실 수 있나요?”

“USP? 그 이름은 들어본 것 같군. 그건 어떤 총인가?”

“현재 나온 권총 중 명중률, 정확도, 견고성, 간편성이 좋은 놈이죠. 그래서 특수부대원들이 가장 선호합니다.”

“흐음, 그런가?”

“아마도 명중률도 명중률이지만 조작이 간편하고 사용하기 편한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담 나도 그걸로 바꿔야겠군.”

“기왕이면 9㎜탄을 사용하는 걸로 구해주십시오.”

“9㎜? 그러면 뭐가 다른데?”

“그건 15발 장전되는 거거든요. 참고로 45구경은 12발, 40구경은 13발 장전됩니다.”

“어떻게 생긴 건가?”

“그건…….”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나 어찌 총을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현수는 수첩을 꺼내 그림을 그려 보여주었다.

“알겠네. 꼭 구해보지.”

“네.”

어제와 마찬가지로 킨샤사의 거리는 거의 모두가 비포장이다.

“보게, 이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도로 포장 공사만 맡아도 떼돈이네. 안 그래?”

“그렇긴 하죠. 그런데 재원이 없잖아요.”

“이 땅엔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원유가 있네. 그거 개발하는 것도 떼돈 버는 일 아닌가?”

“그렇긴 한데 너무 뜬구름 잡으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 거 개발하려면 권력자들과 끈이 닿아 있어야 하는데 여기 권력자 중에 아는 사람 있어요?”

“당연히 없지.”

차 안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 침묵이 깨진 것은 차가 멈춰서이다.

“내리게. 콩고민주공화국 유일의 한국 식당이네.”

“여기에 교포가 하는 식당이 있어요?”

“그럼. 교민이 한 150명쯤 있지. 김치찌개 맛이 괜찮은데 비싼 게 흠이네.”

“그래요?”

식당 이름은 아카시아이다. 우리 고유 수종도 아닌데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8장 세계 성폭행의 수도

“어라, 이 과장님! 이 친구가 말씀하신……?”

식당에 들어서자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년의 사내가 다가온다.

“하하, 네에. 어이, 현수 씨, 인사드려. 아카시아 사장님이네.”

“김현수입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앞으로 종종 뵙시다.”

“네, 그러지요.”

자리를 잡고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그런데 1인분이 무려 28달러나 한다. 한국 돈으로 3만 원쯤 되는 것이다.

“엄청 비싸군요.”

ㅠ“그렇지. 근데 맛은 괜찮아.”

한술 떠서 맛을 본 현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네요. 근데 여기에 교민이 150명이나 있다고요?”

“그렇지. 여긴 말일세.”

잠시 지사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킨샤사에는 한국 교민 150여 명이 거주한다.

광업 분야 진출과 컴퓨터, 에어컨 등 전자제품, 그리고 자동차 수출이 늘어난 때문이다.

여기에 농업 분야와 IT 등 원조 사업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어 교민 수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교민들에게 있어 이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포니카 쌀6)과 무, 배추 등 김치 재료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민이 우리 채소 종자를 가져다 텃밭을 만든다.

혹시라도 무, 배추 등이 시장에 보이면 싹쓸이를 한다고 한다. 배추 한 포기 가격은 무려 2만 원 정도이다.

“이러니 비쌀 수밖에 없지.”

“으음, 그렇군요.”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현수는 샤워부터 했다. 그리곤 후텁지근한 실내 공기를 날려 버리기 위한 마법을 구현했다.

현수가 오기 전까지는 빈방이었기에 아직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때문이다.

“마나여, 기온을 낮춰라. 컴퍼터블 템퍼러쳐(Comfortable Temperature)!”

금방 에어컨을 틀어놓은 것처럼 시원하고 쾌적해진다.

아공간에서 마나 집적진이 그려진 스테인리스 철판을 바닥에 깔고는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곤 마나심법에 몰두했다.

방문을 잠가두었으니 방해받지는 않을 것이다.

마나심법을 운용한 직후 현수는 깜짝 놀랐다. 빨려드는 마나의 양이 서울에서와 달리 상당히 짙었기 때문이다.

아르센 대륙과 서울의 비율은 600대 1 정도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120대 1 정도 된다는 느낌이다.

다시 말해 마나 농도가 서울의 다섯 배 정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났을 때다.

쿵쿵!

“자는가?”

“아, 아닙니다.”

마나심법을 해제한 현수는 창문부터 열었다. 금방 후텁지근한 공기가 가득해진다.

“어휴, 이 더운 방에서 뭘 했나?”

“더워요? 전 별로……. 부모님께 편지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나오게.”

“네?”

“셋이서 맥주나 한잔하자고.”

“네에, 저야 좋죠.”

자리를 잡자 지사장은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꺼내왔다. 그때 마투바가 뭔가를 가지고 들어온다.

“ 비(Mwambe)라는 음식이에요. 땅콩 소스와 함께 요리한 닭 요리지요. 아마 미스터 킴 입에도 맞을 거예요.”

“네에,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자네와 나, 그리고 마투바, 이렇게 셋은 이제 공동운명체이네. 앞으로 잘해보세.”

“네, 그래야지요. 그런데 이곳에 우리 회사가 수주할 만한 공사가 있기는 한 겁니까?”

콩고민주공화국은 국토의 크기가 대한민국의 약 열 배이다. 국민은 망고족, 루바족 등 200여 부족들로 이루어져 있다.

1인당 GDP는 전 세계 229개 국가 가운데 228위로 323달러에 불과하다.

참고로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는 북한의 1인당 GDP가 1,700달러이다.

치안 상태는 개판이며, 곳곳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있다.

인프라는 되어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전기, 전화, 수도는 물론이고 인터넷 등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수도인 킨샤사의 거의 모든 도로가 비포장 상태라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다만 다이아몬드, 구리, 코발트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갖고 있으며, 석유 매장량도 15억 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자원은 동부 지역에 많이 매장되어 있다.

다이아몬드는 전 세계 생산량의 30%, 코발트는 50%, 휴대전화의 원료인 콜탄은 70% 정도 된다.

이를 차지하기 위해 정부군과 반군이 부딪치고 있다.

현수의 물음에 지사장은 피식 실소만 지었다.

“이틀씩이나 보고도 묻나?”

“그럼 여기서 뭘 합니까?”

“여기? 기회의 땅이지. 잘만 하면 큰돈 벌 수 있는 곳이야. 따라와 보게.”

지사장을 따라가니 뒤쪽에 창고 비슷한 것이 보인다. 사무실을 통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이게 뭔지 아는가?”

컴컴한 창고엔 상당히 많은 짐이 쌓여 있다. 보아하니 신발인 듯하다.

“이건 신발 아닙니까?”

“맞네. 한국에서 가져온 신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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