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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42화 (42/1,307)

# 42

그리곤 슬슬 걸어 항구 쪽으로 다가갔다. 총을 든 경비원들이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다.

반군의 느닷없는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일 것이다.

마치 경치 구경하듯 어슬렁거리며 마샬링야드7) 뒤편을 살펴보았다. 제법 많은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다.

통관 작업 직전에 화물이 제대로 실려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이 과장은 어디에 있는지 알았던 것이다.

“흐음, 저거군.”

주위를 둘러보니 인적이 드문 곳인지라 사람이 없다.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현수의 모습이 사라졌다.

“플라이!”

투명인간이 된 현수가 마샬링야드까지 접근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운 일이다.

“아공간 오픈!”

현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같은 슬롯 안에 있던 컨테이너들이 아공간 속으로 빨려든다.

한꺼번에 약 스무 개의 컨테이너를 가져온 것이다.

이 과장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컨테이너까지 집어넣은 것은 통관 작업을 하는 놈들을 골탕 먹이기 위함이다.

이곳에 있는 화물은 주인의 확인을 거쳤지만 아직 반출되지 않은 것들이라 한다. 다시 말해 곧 반출 작업이 이루어질 화물들만 쌓아놓은 것이다. 이것들이 사라지면 책임은 항구를 관리하는 자들이 지어야 할 것이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남의 물건을 훔칠 생각은 없다.

다시 말해 놈들이 골탕을 먹을 대로 먹으면 그 뒤에 다시 가져다 놓을 생각을 한 것이다.

안에 담긴 것을 확인하지 않았기에 이때까지만 해도 이 일이 얼마나 크게 번질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춘만 과장은 곯아떨어져 있었다. 현수는 차를 몰아 킨샤사로 되돌아왔다.

돌아오긴 전, 항구에서 가장 한적한 곳을 찾아 그곳의 좌표를 확인했다. 언젠가 여길 다시 와야 하는데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올 생각을 하니 끔찍했던 것이다.

다음날, 이 과장은 축 늘어진 어깨로 사무실로 들어온다. 뇌물로 줄 돈을 마련할 길이 없으니 도착한 화물을 잃게 생긴 때문이다.

“과장님, 왜 이렇게 힘이 없으세요?”

“응? 으응. 근데 자넨 왜 안 나가고 있나?”

“날씨가 너무 더워서요. 조금 있다가 나가려구요. 근데 제가 말씀드렸던 그 총 구하셨어요?”

“총? 아, 권총? 미안해. 내게 바쁜 일이 있어서 아직 구하지 못했어. 지금이라도 사러 나갈까?”

“그러셔도 되겠어요?”

이 과장의 내심을 알기에 물은 것이다.

“그럼. 가자. 지금 나가서 구해줄게. 근데 자네에게 권총 사줄 돈이 없어. 자넨 돈 있나?”

“얼마나 있으면 되는데요?”

“글쎄? 리볼버를 살 때 100달러 줬으니 그보단 많이 들겠지? 한 150달러쯤 들까? 같은 권총이잖아.”

“그 정도면, 뭐. 가시죠.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좀 피곤하거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고 돌아 당도한 곳은 양철 간판에 ‘휘발유 팝니다’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곳이다.

“이게 주유소에요?”

주유기는 보이지 않고 마당 앞쪽에 나무로 만든 엉성한 매대가 세워져 있다. 그 위엔 하얀 플라스틱 통에 담긴 휘발유가 진열되어 있기에 물은 것이다.

“여긴 이래. 자, 안으로 들어가지.”

“오오, 이 사장!”

“멘델, 잘 있었는가?”

“옆의 청년은 누구지?”

“아, 우리 회사 직원.”

“그래? 무슨 일이야? 총이 또 필요해?”

새삼 느끼는 거지만 흑인이 프랑스어를 하니 조금 이상한 느낌이다.

“그래. 이 친구 호신용으로 하나가 더 필요해.”

“오케이. 어떤 걸로 줄까?”

멘델이라는 흑인의 시선을 받은 현수가 입을 열었다.

“헤클러 & 코흐 USP 있냐?”

“오오! 명품을 찾는 친구가 왔군. 물론 있어.”

“가격은?”

“딱 600달러! 근데 이 사장 동료니까 590달러에 주지.”

“중고겠지?”

“당연한 말 아닌가? 신품은 1,000달러는 줘야 해.”

“흐음, 암시장이 더 비싸군.”

실제로 현수가 요구한 총의 가격은 600달러이다. 물론 신품이다. 이것은 정상적인 루트로 구입할 때의 가격이다.

그런데 이곳은 암시장인 듯하다. 그러니 주인이 부르는 것이 값이고, 깎는 것은 사는 놈의 수완에 달려 있다.

“500달러 주지. 탄창은 두 개, 총알은 500발 줘.”

“오케이! 화끈한 친구구만.”

많이 깎을 줄 알고 부른 값이다. 속으론 450달러까지 생각했다. 이 가격이면 총알 300발이 포함된 것이다.

그런데 흔쾌히 값을 치른다니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멘델, 다른 무기도 구할 수 있나?”

“웬만한 건 다 구하지. 필요한 거 있어?”

“지금 당장은 아냐. 다음엔 나 혼자 와도 되지?”

“오케이. 언제든 환영이야. 단, 외상은 사절이야.”

“물론이야.”

“참, 쓰던 거 바꾸고 싶어도 이리로 와. 좋은 값 쳐줄게.”

“오케이.”

멘델과는 만난 지 5분도 되지 않았건만 친근하게 굴었다. 이런 놈과는 일단 친해두는 것이 상수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500달러를 꺼냈다. 돈을 건네주자 한 장 한 장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센다.

그리곤 둘둘 말아 주머니에 넣고는 씩 웃는다.

“잠시만 기다려 줘.”

“오케이!”

멘델이 나가고 난 뒤 새삼 실내를 훑어보았다. 사방의 벽은 두께 1㎝쯤 되는 나무판자이다. 천장은 슬레이트이다.

실내엔 낡은 나무 탁자 하나와 철제 접의자 하나, 그리고 오래된 선풍기 하나가 전부이다.

전등도 하나 달려 있다. 220V에 30W짜리라 조금 어둡다.

바닥은 그냥 흙이다.

6.25 전쟁으로 전 국토가 폐허로 변한 1950년대 중반의 한국과 다를 바 없다.

“어이구, 이런 나라에서 뭘 하라고.”

해외영업부라면서 이 같은 오지에 보내는 이유를 알 수 없어 한숨을 쉬었다.

“자, 여기.”

멘델이 가져온 총은 현수가 원했던 바로 그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새것이 아닌 중고이다.

현수는 그 자리에서 분해와 조립을 해보았다. 혹여 빠진 부품이라도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뭐야? 당신, 군인이었어?”

“나……? 한때는.”

너무도 능숙한 솜씨였기에 멘델의 입이 벌어져 있다. 늘 무기를 다루는 자신조차 보여줄 수 없는 솜씨에 감탄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젊었을 때 누구나 군대를 가.”

지사장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가시죠.”

“그래.”

멘델의 주유소를 나선 둘은 차를 타고 중심가로 향했다. 그곳엔 쇼핑센터가 있는데 부자와 외국인을 위한 것이라 한다.

눈치를 보아하니 이춘만 과장은 항만 관리자의 마음을 살 뇌물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웃음이 나왔지만 모른 척했다.

내일 대신 통관 작업을 하겠다고 하고는 마타디에 다녀오는 척한 뒤 물건을 꺼내줄 생각인 것이다.

이 과장은 총을 내려놓고 하차하라고 한다. 이곳부터는 제법 치안이 잘 잡힌 곳이라는 뜻이다.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곤 하차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킨샤사에 이런 곳도 있나 싶을 정도로 번화하다. 상점도 많고 가게들도 번듯하다.

“자넨 필요한 물건 없나?”

“저요? 저는 괜찮은데요.”

현수는 말을 하면서도 주변을 살펴보았다. 조심해선 손해 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엔 마투바더러 스팸을 요리하라고 할까? 맥주 안주론 딱이잖아.”

“지사장님, 마투바가 말하길, 통관할 거 있다고 했는데 그거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일 오나요?”

슬쩍 염장을 질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춘만 지사장의 이맛살이 확 좁혀든다.

그 순간이다.

앞에 있던 골목에서 공 하나가 튀어나온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서 트럭 한 대가 달려오고 있다.

많은 짐을 실었는데 운전사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지 입을 벙긋거린다. 그런데 시선이 전방이 아니라 룸미러로 향해 있다.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거울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킨샤사에서도 길이 잘 닦여 있는 곳이라 그런지 시속 60∼70㎞는 되어 보이는 속도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 하나가 골목에서 튀어나온다.

튀어나간 공을 잡으려는 것이다. 아마도 아이의 눈에는 공 이외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멈춰……!”

아이가 튀어나오는 바로 그때 트럭이 달려든다. 운전자의 시선은 여전히 거울에 있다. 그 순간 현수의 신형이 그야말로 번개처럼 앞으로 향했다.

“아아앙……!”

아이가 차의 앞바퀴 밑으로 파고들려는 바로 그때 현수가 낚아챘다. 그리곤 오전에 내린 비에 젖은 땅을 서너 바퀴나 굴렀다.

“아아악! 포올∼!”

촤아아악∼!

현수가 아이를 잡아채는 바로 그 순간 고여 있던 흙탕물이 아이와 현수를 덮쳤다. 그와 동시에 찢어질 듯한 여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실 현수는 마법으로 트럭을 비켜가게 할 충분한 실력이 있다. 하나 이곳은 지구이다.

함부로 마법을 쓸 수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몸을 날린 것이다. 차에 치일 것이 뻔한 아이가 있기에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이런 민첩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결계 안에서 체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과 검술 연습을 거듭한 결과이다.

“포올∼!”

“괜찮니?”

“네에.”

여자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현수가 흙탕물에 젖은 아이를 살펴본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다.

꽃무늬가 요란하게 그려진 옷을 입은 여인은 아이의 어미인 모양이다.

“다행이다. 앞으론 조심하거라.”

“네에.”

대답은 하지만 아이의 시선은 저쯤 굴러가 있는 축구공을 향해 있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여인이 아이를 안아 들며 연신 고개를 숙인다.

“다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네, 정말 고맙습니다. 근데 외국이시죠?”

“네, 한국에서 왔습니다.”

“주재원이신가요? 어디 회사 소속이신지요?”

젊은 여인의 물음에 대답한 이는 이춘만 지사장이다.

“한국에서 온 천지건설(주) 직원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네, 아이더러 차 조심하라 이르십시오.”

여인과 아이가 멀어져 간 이후 이춘만 과장은 쇼핑센터에서 비싼 양주를 구입했다.

최고급 위스키 발렌타인 30을 두 병이나 산 것이다. 한 병당 가격이 무려 1,000달러, 100만 원이다.

한쪽에서는 식량이 부족하여 굶어 죽는데 다른 한쪽에는 병당 100만 원짜리 술이 즐비하다.

쇼핑을 마친 둘은 사무실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밤 8시쯤 되었을 무렵이다.

쾅쾅! 쾅쾅!

“이보게, 이 과장 있는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현수가 물었다.

“과장님, 아니, 지사장님, 이 시간에 누구죠?”

“글쎄? 목소릴 들어보면 대한실업 김 부장인 것 같은데, 그 친구가 이 시간에 웬일이지?”

문을 여니 50살은 되어 보이는 살찐 사내가 들어온다.

“이 지사장, 큰일 났네!”

“큰일? 무슨 큰일?”

“마타디 항구에 하역되어 있던 우리 컨테이너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하네.”

“무슨 소리야?”

술에 취한 이 과장의 반문에 김 부장이 설명한다.

설명을 들어보니 이 과장의 화물인 텔레비전 옆에 있던 땡처리 옷의 주인인 듯하다.

현수는 흥미없다는 듯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마나여, 체내의 노폐물을 제거하라. 바디 프레쉬!”

단박에 술기운이 날아갔다. 밖에선 둘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현수는 마나 집적진에 올라 고요히 마나 모으기를 했다.

쾅쾅! 쾅쾅!

“끄응! 누구야, 이 새벽에?”

새벽까지 마나심법에 심취해 있다가 4시쯤 잠들었던 현수는 새벽 6시쯤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에이, 쉬펄!”

눈을 비비며 문을 여니 정복 경찰들이 보인다. 당연히 다부진 체격의 흑인들이다.

“무슨 일입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현수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완연하다.

‘혹시 항구에서 컨테이너를 쓱싹한 걸 눈치챈 건가? 아냐. 지구에서 투명 은신 마법을 알아차릴 사람은 없어. 근데 경찰이 왜 날 찾아온 거지?’

한국이나 콩고민주공화국이나 경찰이 보자고 하면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잠시 당황하고 있을 때 방문한 경찰이 입을 연다.

“여기가 천지건설(주)입니까?”

“네, 그런데 웬일로 온 거죠?”

“어제 어린아이 하나를 구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요?”

“당신이 아이를 구한 장본인입니까?”

“그렇습니다.”

“청장님께서 부르십니다. 옷을 입고 나오십시오.”

“청장님이요?”

현수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아이 하나를 구했을 뿐인데 경찰의 최고 권력자가 부른다니 이상한 것이다.

‘흐음,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가?’

“네, 킨샤사 경찰청 청장님께서 만나자고 합니다.”

“경찰청장이? 날 왜 만나자고 하죠?”

“어제 구한 아이가 청장님의 아들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준비하죠.”

현수가 청장을 대면한 것은 오전 10시다.

6시에 깨워 서둘러 옷을 입게 하여 그렇게 했다. 연후에 경찰청에 도착하니 7시도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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