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미스터 킴, 천지건설(주)의 시공 실적서를 가지고 경찰청장실로 오기 바랍니다.
“뭐야? 일이라도 주려는 건가? 마투바, 우리 회사 시공 실적서 어디에 있어?”
“시공 실적서가 뭐예요?”
“끄으응! 알았어. 내가 찾아볼게.”
지사장의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시공 실적을 기록한 서류가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거대 건설회사이기에 시공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화려한 실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흐음, 이거군. 마투바, 나 좀 나갔다 올게. 지사장님 오시면 그냥 외출했다고 해줘.”
“네에.”
현수가 경찰청에 도착한 것은 뜨거운 뙤약볕이 한풀 꺾인 오후 5시경이다.
“정지! 무슨 용무이십니까?”
현수는 사무실 앞에 붙어 있던 쪽지를 보여주었다. 글귀 아래엔 콩고민주공화국의 경찰 로고가 그려져 있다.
“청장실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왔습니다.”
“넵! 들어가십시오.”
위병을 서던 경찰이 경계까지 붙여줘 기분이 좋았다.
“어서 오십시오. 청장님께서는 지금 손님과 함께 계시니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어제 냉커피를 가져다주었던 그 비서다.
“네, 알겠습니다.”
현수는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왜 시공 실적서를 요구했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안으로 들어오시랍니다.”
“알았습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청장 이외에도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정장 차림 사내가 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게. 이쪽은 콩고민주공화국의 내무장관이시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천지건설(주)의 김현수입니다.”
“반갑네. 가에탄 카구지라 하네.”
현수는 내무장관이 내미는 명함을 공손히 받았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 법이다. 현수는 자신을 낮춰 상대로 하여금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손해날 일 없기 때문이다.
“그런가? 자리에 앉지.”
“네.”
자리에 앉자마자 내무장관이 묻는다.
“천지건설(주)은 대한민국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건설회사인가?”
“저희 회사는 도급 순위 5위인 대형 건설회사로서…….”
현수는 설명을 하면서 여러 자료들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회사가 시공한 아파트, 빌딩, 각종 공장, 플랜트 설비, 댐, 발전소, 비행장, 고속도로 등등이다.
이 밖에도 부지 조성 공사, 대규모 하수관로 공사, 그리고 매립 공사 등 토목공사 실적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경찰청장과 내무장관은 이 정도로 큰 회사일 것이라곤 전혀 상상치 못했는지 크게 놀라는 표정이다.
“이건 저희 회사에서 시공한 시공 실적서입니다.”
현수가 내놓는 걸 보니 거의 두꺼운 책 한 권이다. 이것을 대강 훑어본 둘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심지어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우주선 발사 기지까지, 그야말로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이니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천지건설(주)은 2012년 시공능력평가8)에서 10조 8천억을 인정받은 회사이다.
현수는 자료를 손으로 짚어가며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 회사의 2012년 매출액은 약 105억 달러(11조 1천억 원)였으며, 올해 목표는 120억 달러(12조 7천억 원)입니다.”
다음에 보여준 것은 건설회사 세계 순위표이다.
천지건설(주)에서 제작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타임지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여기엔 2012년 세계 100대 건설회사 이름과 실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천지건설(주)은 이중 50위를 마크하고 있다.
자료를 보던 청장과 장관은 하찮게 생각했던 현수가 새삼스레 다시 보인다는 표정이다. 당연히 우쭐한 마음이 든다. 하여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어떤 공사를 계획 중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희 회사에 맡겨주시면 차질없이 완벽한 품질의 시공을 기대하실 수 있을 겁니다.”
현수의 말에 내무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천지건설(주)의 장점을 짧게 설명해 보시오.”
“네, 저희 회사에 일을 맡겨주시면 세계 유수의 건설사에 비했을 때 비용은 덜 들고 공사 기간은 짧지만, 품질은 대등한 결과를 얻으실 겁니다.”
“정말 그렇다면 훌륭하오. 알겠소. 이 서류들을 놓고 가시오. 나중에 연락하리다.”
“네, 알겠습니다.”
내무장관의 말하는 투가 약간 바뀌었다는 느낌에 현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를 한 현수는 고개를 드는 순간 입술을 달싹였다.
“마나여, 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내게 호감을 느끼게 하라. 참 어펜시브(Charm Offensive)!”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의 파동이 있었다. 당연히 둘은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아, 미스터 킴, 갈 때 차 조심 하시오.”
내무장관의 말에 이어 청장이 어깨를 두드린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게.”
“네, 알겠습니다.”
청장실을 나서는 현수의 입가엔 만족한 미소가 어려 있다. 둘의 태도 자체가 확연히 달라진 때문이다.
오늘 경찰청장 후조토 쿠아레가 현수를 부른 것은 어제의 은혜를 갚기 위함이다.
청장은 콩고민주공화국의 내무장관인 가에탄 카구지와 같은 고향 친구 사이이다. 그리고 장관의 누이동생이 바로 청장의 아내이니 처남 매부지간이다.
어제 구해준 폴은 장관의 조카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경찰청장은 현수를 도와주려는 마음을 품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구해준 은인이 아닌가!
하여 계획 중인 새 경찰청 청사 신축 공사를 맡겼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허가권이 처남인 내무장관에게 있다.
하여 어제의 사고 소식을 전하면서 현수가 했던 말도 전했다.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해주려는 의도이다.
그리곤 새 경찰청 청사 신축 공사를 맡겨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랬더니 현수를 한번 보자고 했다.
그 결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애초에 맡기려던 경찰청 청사 건물의 신축 예산은 설계비를 포함하여 약 500만 달러이다. 한국 돈으로 50억 정도 된다.
그런데 만나서 이야길 해보니 천지건설(주)은 그만한 공사에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을 거대 건설회사다. 그렇기에 청사 신축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돌려보낸 것이다.
현수가 나가고 난 뒤 둘은 한동안 대화를 했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둘 다 현수에게 어떻게든 공사를 주려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참 어펜시브 마법이 이들에게 작용한 결과이다.
2013년 2월 11일 월요일.
현수는 내무장관의 부름을 받고 이춘만 지사장과 동행했다.
지사장이 화물을 잃고 하도 안달복달하여 현수는 아무도 모르게 마샬링야드 뒤편에 컨테이너 열여덟 개를 꺼내놓았다.
두 개의 컨테이너를 마저 꺼내놓지 않은 것은 이것이 완전히 밀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컨테이너의 문 부분이 완전히 용접되어 있었다.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흥미가 느껴졌기에 남겨놓은 것이다.
항만 관계자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던 컨테이너들이 다시 나타나자 한바탕 난리를 치렀다.
화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지만 웬일인지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화물들을 통과시켰다. 이 중에는 이 지사장의 텔레비전도 당연히 있다.
지사장은 뇌물을 줬다. 한데 받으려 하지 않는다. 하여 더 기분 좋아했다. 꺼내온 화물을 처리하고 제법 두둑한 돈을 만지게 되어 기분이 좋았는지 이틀이나 술을 샀다.
한편, 항만 관계자들은 나타나지 않은 두 개의 컨테이너 때문에 또 한 번 곤욕을 치렀다.
군인들이 나타났고, 군화에 조인트가 까지는 것은 기본이다. 가장 심하게 당한 자는 이춘만 과장에게 텔레비전 한 대당 1,000달러의 뇌물을 요구했던 자이다.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 게다가 양쪽 눈가에 안와골절9)까지 당했다. 그 결과 팬더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두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든 때문이다.
“장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감사합니다.”
비서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가니 우람한 체구를 한 가에탄 카구지가 환한 미소로 맞는다.
“아, 미스터 킴, 어서 오시오.”
“네, 장관님!”
“근데 같이 오신 분은?”
“네, 저희 회사의 이곳 지사 지사장님이십니다. 이 과장님, 뭐하세요? 어서 인사하세요.”
“으응? 그, 그래. 안녕하십니까? 천지건설(주) 콩고민주공화국 지사 지사장인 이춘만입니다.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말을 하는 지사장의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고 있었다. 과도한 긴장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무장관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실세 중의 실세이다. 대통령이 된 카빌라와는 동문수학을 했고, 그가 대통령이 될 때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혈연으로는 사촌동생이다.
실세 중의 실세가 만나자고 했기에 오는 내내 인사말을 중얼거리면서 외웠다. 그런데 실수하지 않고 잘했다.
하여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반갑소. 내무장관이오.”
“네, 장관님!”
이춘만 과장은 두 손으로 악수를 하며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지극히 황송하다는 표정과 함께.
“자, 앉으시오.”
“네, 감사합니다.”
자리를 잡자 비서가 음료수를 가져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더 들어와 앉는다.
“이쪽은 내무차관인 진저엘 두림바라 하네.”
“네에, 반갑습니다.”
“이 사람은 내무부 건설국장인 조셉 투윙크이고.”
“반갑습니다.”
인사를 하고 서로 명함을 교환하는 시간이 잠시 있었다.
“흐흠, 그럼 미스터 킴을 왜 불렀는지 설명하겠네.”
“네, 말씀하십시오.”
“건설국장, 그것 좀 펼쳐 봐.”
“네, 장관님!”
건설국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는가 싶더니 한쪽 벽에 쳐져 있던 커튼을 열어젖힌다.
그러자 콩고민주공화국의 전도가 보인다. 여기저기에 핀도 꽂혀 있고 붉고 푸른 깃발도 박혀 있다.
“설명하게.”
“네, 장관님! 허험! 우리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건설국장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영토에는 잉가강이 흐른다.
이 강은 콩고강으로 흘러드는 강인데 아마존강 다음으로 수량이 풍부하다.
정부에서는 이 강에 네 개의 댐을 건설하고 각각의 댐에 수력발전소를 지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중 세 번째 댐에 대한 설계와 시공을 천지건설(주)에 상의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현장 실사를 하고 그에 따른 일체의 견적이 되면 면밀히 서류를 검토한 뒤 MOU10)를 체결하고, 턴 키 베이스 방식11)으로 공사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자다가 깜짝 놀란다는 말이 있다.
이춘만 과장이 그렇다.
현수가 내무장관실로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을 했을 때만 해도 무슨 사고를 쳤느냐고 물었다. 국외 추방이라도 당하면 애써 마련한 기반이 송두리째 뽑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현수는 이런 상황이 있을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측은 했다. 그런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무려 35억 달러(3조 7천억 원)짜리 공사인 것이다.
이 정도 공사라면 해외영업부장은 물론이고 전무이사나 상무이사가 기술진을 총동원해서 영업을 해도 딸까 말까 한 공사이다. 어쩌면 사장이나 회장까지 나설 수도 있을 규모이다.
그런데 달랑 두 명뿐인 해외지사에서, 그것도 하나는 사고 쳐서 쫓겨난 만년 과장이고, 다른 하나는 실세의 견제에 밀려난 신입사원이 있는 초 소규모 지사이다.
그런 구멍가게만도 못한 지사에서 본 계약이 거의 확실시되는 MOU 체결이란 소리까지 듣고 있다.
천지건설(주)의 지난해 매출액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공사를 수주하라는 말에 이 과장은 넋이 나갔고, 현수 역시 대단히 많이 놀라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건설국장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다.
“본국은 이번 공사에서 발생되는 수익에 대한 세금을 면제하여 줄 것이며, 공사를 위해 통관되는 모든 자재 등은 최우선적으로 무관세 통과시켜 줄 것입니다.”
최고급 비단에 멋진 그림까지 그려서 준단다. 이를 금상첨화라 한다.
현수는 내무장관과 시선을 맞췄다.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의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무리 마법을 걸었다지만 이처럼 엄청난 결과가 야기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내무차관과 건설국장에게도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들 때에 현수의 입술이 달싹이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나여, 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내게 호감을 느끼게 하라. 참 어펜시브(Charm Offensive)!”
Offensive는 ‘모욕적인’, ‘불쾌한’이란 뜻 이외에도 ‘공격적인’이라는 뜻도 있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매혹 마법이 실현되도록 한 것이다.
설명 도중에 인사를 받은 건설국장 역시 정중히 답례를 했다. 내무장관이 특혜를 베풀 정도이면 대단한 사람일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