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45화 (45/1,307)

# 45

그런데 고개를 드는 순간 마음이 바뀐다. 눈앞의 사내가 무엇을 원하든 최선을 다해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다음 설명은 공사 수주에 대한 대가 지불 방식에 관한 것이다. 가난한 나라인 콩고민주공화국은 공사비를 돈으로 지불할 수 없다.

그렇기에 구리와 코발트, 그리고 콜탄과 석유, 메탄가스 등의 지하자원을 개발하여 직접 캐 가는 방식을 취하자고 한다.

내무장관은 광업부 마틴 카베루루(Martin Kabwelulu) 장관과 광업개발권관리청(CAM)의 뮤판데(Mupahde) 청장과는 이미 사전 조율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것에 대한 설명을 듣는 동안 현수는 공사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광산 개발을 위한 도로 건설뿐만 아니라 이를 반출해 가기 위한 항만 신설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체의 건설을 위해 콩고민주공화국 어디든지 시멘트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나머지 공사비는 계산조차 할 수 없었다.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설명을 듣고 조촐한 연회까지 있었다. 그 자리엔 킨샤사 경찰청장 후조토 쿠아레와 그의 아우 아델 쿠아레, 그리고 내무장관의 동생인 리사 카구지와 그의 아들 폴 카구지가 있었다.

아델 쿠아레는 경찰청 차장으로서 실무 총책임자이다.

샴페인 잔을 들고 다가온 그는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돕겠다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그 역시 현수의 참 어펜시브 마법에 걸려 지극한 호감을 갖게 된 결과이다.

2월 11일 밤 9시 30분.

이춘만 과장은 본사 해외영업부장과 전화 연결을 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시각은 오후 5시 30분이다.

“여보세요? 아! 해외영업부장님이십니까?”

“그렇다네. 해외영업부 최규찬 부장이네.”

“저, 킨샤사 지사에 있는 이춘만 과장입니다.”

“킨샤사? 이춘만 과장?”

해외영업부에선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지사와 이춘만 과장은 없는 존재로 치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완전히 관심 밖이다. 이들의 존재에 대해 확실히 인식하고 있는 부서는 오로지 경리부뿐이다. 매월 급여를 지불하고, 지사 운영비를 송금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규찬 부장은 잠시 수화기를 손으로 막은 채 부하 직원에게 물었다.

“이 차장, 킨샤사 지사가 어디에 있는 거야? 그리고 이춘만 과장이라는 친구는 또 누구고? 우리 해외영업부에 그런 존재가 있었어?”

“아, 잠깐만요. 저도 잘…….”

말끝을 얼버무린 이 차장이라는 사내가 얼른 조직도를 꺼내 확인해 본다.

“아! 킨샤사 지사라면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우리 지사 맞습니다. 이춘만 과장은 작년에 사고를 쳐서 그리로 귀양살이 간 친구구요.”

“그래? 그런 친구가 왜 내게 전화를 했지?”

“글쎄요? 아마 거기서 못살겠다고 다른 데로 옮겨달라는 하소연을 하려는 건 아닐까요? 아님 그만둔다고 하든지요.”

“제길, 조금 이따 임원회의 들어가서 보고해야 하는데 이따위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해야 하다니.”

최규찬 해외영업부장은 나직이 투덜거렸다.

임원들은 올해 해외 영업 수주 금액이 너무 적다면서 매일 직원들을 닦달하라고 야단이다. 오늘은 앞으로 있을 주주총회에 보고해야 할 자료를 만들어 제출하는 날이다.

보나마나 수주 금액이 적다고 깨질 게 분명하다.

어쩌면 정기인사 때 좌천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무도 초조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상황이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곳에서 어떤 듣보잡이 전화를 걸었다.

그렇다고 욕설을 하고 끊을 수는 없다. 보고 자료가 얼마나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러 나왔다가 부하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전화를 받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1장 35억 달러짜리 공사

“아, 이춘만 과장. 먼 곳에서 수고가 많네.”

“네, 감사합니다.”

“그래, 무슨 일로 내게 직접 전화를 했는가?”

“네, 부장님께 보고드릴 사항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통화, 괜찮으시겠습니까?”

“잠깐만, 소리가 잘 안 들리네. 이 차장! 이 전화 볼륨을 키울 수 있는 거라면서?”

“네, 그렇게 해드릴까요?”

“그래 주게.”

“그럼 잠시만.”

이 차장이 버튼 몇 개를 누르더니 최 부장의 손에서 송수화기를 받아 내려놓는다.

“참, 이게 고장 나서 볼륨 조정은 핸즈프리에서만 작동됩니다.”

“음, 알겠네. 아, 이 과장, 이제 말하게. 그래, 보고할 사항이 있다고? 말해보게.”

“네, 부장님. 저희 킨샤사 지부에서 이번에 공사 하나를 수주했습니다.”

“뭐라고? 공사를 수주했다고?”

그렇지 않아도 공사 수주가 적어 스트레스 받는 중이다. 그런데 수주라는 말이 들리니 귀가 활짝 열리는 기분이다.

“네, 아직 계약서 작성을 한 것은 아니지만 곧 MOU 체결을 하고 곧이어 본계약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뭐, MOU?”

최 부장의 이맛살이 확 찌푸려졌다.

이런 걸 작성할 정도의 공사라면 어마어마한 규모여야 한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도 가난하기로 이름난 콩고민주공화국의 직원이라곤 두 명밖에 없는 지부에서 언급하고 있다.

보아하니 양해각서라는 것이 무언지도 모르는 놈인 듯하다. 그렇기에 인상을 쓴 것이다.

직원들이라 하여 어찌 부장의 심사를 모르겠는가!

하여 숨죽인 채 슬그머니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자네 MOU가 뭔지나 알고 하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본계약에 앞서 계약이 거의 확실하다는 의미로 서명하는 양해각서 아닙니까?”

“좋아, 말해보게. 양해각서까지 체결한다는 그 거창한 공사는 대체 무엇인가?”

“네, 이번에 계약하게 될 공사는 잉가강에 댐과 수력발전소를 만드는 겁니다.”

아쉽게도 콩고민주공화국은 전력 사정뿐만 아니라 전화 사정도 좋지 못하여 잉가강부터 댐과 수력발전소라는 말이 뭉개져서 흘러나왔다.

최 부장은 이 차장을 보며 동의를 구한다.

“뭐, 인마……? 지금 이놈이 나한테 인마라고 한 거지?”

최규찬 부장의 물음에 이 차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잉가라는 말이 인마로 들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이다. 시선을 돌려 다른 직원들을 보았으나 그들 역시 고개만 갸웃거린다.

그때 이춘만 과장의 음성이 다시 들린다.

“부장님, 제 말 들리십니까?”

“그래, 들리네. 그런데 조금 전에 한 말이 잘 안 들렸네. 다시 한 번 말해보게.”

최 부장은 부하 직원들이 있기에 화를 억누르고 평상시의 음성으로 대답했다.

“네, 오늘 콩고민주공화국의 내무장관님과 면담을 했는데 우리 회사에서 잉가강 댐 공사와 더불어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공사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뭐, 뭐라고?”

최규찬 부장은 나른했던 오후의 피로가 한 번에 사라지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비단 최 부장뿐만이 아니다.

요즘 들어 해외영업부의 수주 실적이 너무 낮다고 거의 매일 깨지는 중이라 직원들 모두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댐이라니!

게다가 수력발전소도 있다고 한다.

결코 소규모일 수 없는 공사이다.

하여 하던 업무는 모두 중단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전화기로 쏠렸고, 모두의 귀 역시 전화기로 향했다.

당연히 숨소리조차 나지 않는 고요가 유지되었다.

“이, 이보게, 이 지사장! 그 공사 규모가 얼마라 하던가?”

최 부장의 말투는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네, 이곳 내무장관님 말씀으로는 약 35억 달러 정도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뭐……? 삼, 삼십오억 달러?”

“네, 35억 달러 맞습니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3조 7천억쯤 되나요?”

“헉! 3조 7천억! 자, 자네 정말인가?”

최규찬 부장은 얼른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아프다. 꿈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순간 통화를 하고 있던 이춘만 과장은 현수와 시선을 마주치면서 웃고 있었다.

본사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환히 보인다는 뜻이다.

하나 웃음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아직 말할 게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네, 정말입니다. 근데 부장님!”

“왜?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있나? 말만 하게. 적극적으로 돕겠네. 내일이라도 내가 갈까?”

“아이요. 그건 아니고, 공사 대금 지급 방식이…….”

“그래, 공사 대금 지급 방식은 뭔가? 설마 공사비 전액을 우리더러 장기 저리로 융자를 해달라는 건 아니겠지?”

“네, 그건 아닙니다.”

“그럼 뭐지?”

해외영업부장이 이 말을 하는 순간 천지건설(주)의 사장 신형섭이 임원들과 함께 들어섰다.

그런데 해외영업부의 말단인 최 대리가 튀어나오더니 두 팔을 벌려 사장 및 임원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자네, 이게 무슨 짓……!”

“물러서게. 무엄하게 이게 무슨……!”

“쉬잇!”

사장과 전무의 말은 무엄한 최 대리의 손짓에 끊겼다.

왼손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소리를 내면서 오른손으론 최 부장이 통화하는 전화기를 가리켰다.

“자네, 뭐하는…….”

“임 이사, 가만……!”

뒤따라오던 임원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무어라 하려는 순간 이번엔 사장이 임원을 제지했다.

그리곤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했다.

하늘같은 사장이 들어섰다. 그렇다면 보는 즉시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 직장인이다. 더럽고 치사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명예퇴직 1순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해외영업부 직원들은 사장 및 임원들이 들어서는 것을 빤히 보았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물론 인사하는 녀석도 없다.

사장은 이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여기고 임원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것이다.

그 순간 전화기에서 이춘만 과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공사 대금은 광산 개발권을 줄 테니 이곳에 있는 구리와 코발트, 그리고 콜탄 등을 캐어 가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도로도 건설해야 하고 항만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까지 우리더러 공사하라고 합니다.”

“그래? 그 공사는 금액이 얼마나 된다고 하던가?”

최 규찬 부장 역시 사장과 임원들이 들어서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 짐짓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이 차장은 전화의 볼륨을 약간 더 올렸다. 사장과 임원들까지 모두 들으라는 뜻이다.

“그쪽에서 제시한 금액은 없는데 제가 계산해 본 결과 대략 10억 달러는 넘는 것 같았습니다.”

“10억 달러? 그럼 아까 말했던 잉가강 댐 공사와 수력발전소 공사까지 합치면 이번에 수주하는 공사의 총 금액이 45억 달러가 되는 건가?”

이춘만 과장은 아까 끝난 이야기를 또 하는 최규찬 해외영업부장의 말이 이상했으나 얼른 대답했다.

“네, 총 금액 45억 달러짜리 공사입니다. 수주 방식은 턴 키 베이스 방식입니다. 참, 그리고 하나 빠진 게 있습니다.”

“뭔가?”

“공사를 위한 시멘트 공장은 어디든 원하는 곳에 세워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밖에 다른 건 없나?”

최규찬 부장은 사장 및 임원들 들으라는 듯 계속해서 캐묻는다.

“네, 이번 공사에서 발생되는 수익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 줄 것이며, 일체의 관세 없이 자재 반입을 하가한답니다.”

사장 일행이 해외영업부를 불시에 방문한 것엔 이유가 있다.

물론 저조한 실적을 트집 잡아 군기 좀 잡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리곤 사장 일행 역시 숨죽이고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다.

“또 없는가?”

“아, 항만에서의 통관을 최우선적으로 협조해 주겠다고 합니다. 참, 빨리 실사단을 파견해 주십시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했으니 서둘러 주셨으면 합니다.”

“좋아, 수고했네. 근데 이번 공사 수주는 자네가 한 건가?”

“아닙니다. 이번에 이곳으로 발령받아 온 김현수 사원의 공이 거의 100%입니다.”

“김현수 사원?”

“네, 입사한 지 1년 정도 된 사원으로 자재과에 있다가 이곳으로 발령받아 왔는데 정말 큰일을 했습니다.”

“그래? 김현수 사원 옆에 있는가?”

“네, 바꿔 드리겠습니다.”

이 과장이 통화하던 전화를 건네며 얼른 받으라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는 다 말했는데 뭘 더 말하라는 것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 직장인이기에 상사의 지시대로 전화를 받아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킨샤사 지사의 김현수 사원입니다.”

“그래, 나 해외영업부 최규찬 부장이네. 자네가 이번에 큰 공을 세워 너무도 기쁘네.”

“감사합니다.”

“불편한 건 없나?”

“네? 뭐, 별로…….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래, 수고가 많았네. 어떻게 이번 공사를 수주했는지는 자네를 보고 직접 듣기로 하세.”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사장님 바꿔드리겠습니다.”

“부장님, 이춘만 과장입니다.”

“그래, 이 과장. 수고했어. 실사단을 급파하고 나도 곧 그곳으로 가겠네.”

“네, 부장님. 오늘은 김현수 사원과 파티라도 해야겠습니다.”

“좋아, 그 비용은 내가 다 부담하지. 원하는 만큼 실컷 놀게. 아, 오늘만 하지 말고 실사단이 도착할 때까지 매일 파티를 해도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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